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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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살 때 살던 집 근처에는 문방구가 하나 있었다.
문방구 앞에는 오락기가 몇 대 있었는데 지금은 무슨 게임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기억에 남아있는 거라곤 그것들이 아주 재미있어 보였다는 것과 하고 거기 있는 게임들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알록달록하고 뿅뿅 거리는 오락기 게임을 하고 싶어 문방구로 달려가면 언제나 먼저 와있던 애들에게 밀려 멀리 뒤쪽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야 했다.
어쩌다 사람이 적은 때가 와도 그때는 무서운 형들이랑 아저씨들한테 자리를 빼앗겼다.

그렇게 조그마한 오락기 화면을 멀리서 손가락이나 빨며 지켜보던 어느 날, 문방구에 새로운 오락기가 하나 들어왔다.
새로운 오락기는 곧 많은 애들에게 둘러싸였지만 얼마 안가 애들은 원래 하던 오락기로 돌아갔다.
이건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구경하던 다른 애들 때문에 제대로 못 봤고 오락기 화면이 보일만큼 애들 수가 줄었을 땐 아무도 그 오락기를 가지고 놀지 않아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낡아빠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먼저 오락기를 자세히 살펴봤다.
새로 들어온 것 치고는 많이 낡았었다.
아마 중고로 싸게 사온 것이었을 거다.
그리고 화면은 아주 새까맸다.
분명 전원이 들어왔었지만 꺼진 텔레비전 화면처럼 새까맸다.
그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점이 없었다.
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오락기에서 우웅 하는 소리고 들려왔고 화면은 번쩍번쩍 빛이 났다.
하양색, 빨강색, 파랑색, 노란색, 아주 눈이 아프도록 번쩍거렸다.
대충 10초 정도 번쩍거리고 게임 시작이란 하얀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기계 오류인지 글자는 좌우가 바뀐 상태였다.
이번엔 대충 5초 가 지나고 화면이 바뀌었다.
바뀐 화면은 나처럼 오락기 앞에 앉은 아이가 있었다.
화면 왼쪽 위에는 까만 내모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무슨무슨 버튼을 누르라는 지시가 나와 있었다.
이 지시들도 게임 시작처럼 좌우가 바뀐 상태였다.
곧 왜 애들이 이 게임에 관심이 식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걸 하다보면 눈은 물론이고 머리도 아파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오락기들은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난 눈앞의 오락기를 계속 가지고 놀았다.
지시에 나온 버튼을 누르는 건 처음 몇 번은 재미있었다.
제대로 누르면 경쾌한 소리가 났고 틀렸을 때 나오는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곧 싫증이 났다.
좌우가 바뀐 지시를 계속 보니 눈도 피곤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난 학교가 끝나고 문방구로 갔다.
오늘도 늘 그랬듯이 오락기들 앞으로 애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어제 새로 들어온 그 오락기만 빼고 말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으니 저건 머리가 아파 못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새로 들어왔던 오락기 앞에 앉았다.
다른 오락기들은 만원상태였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낡아빠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내 얼굴만 비쳐보이던 까만 화면은 여러 색깔로 번쩍거렸고 곧 여전히 좌우가 바뀐 하얀 게임 시작 글자가 나타났다.
어제랑 똑같았다.
지시들도 어제처럼 좌우가 바뀐 상태였다.
어제랑 똑같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난 어제보다 훨씬 오래 앉아있었다.
좌우가 바뀐 지시를 따라 버튼을 눌렀다.
내가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화면 속 아이도 버튼을 눌렀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이 게임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것이었다.
전날 처음 했을 땐 분명 적응이 안 되어서 금방 싫증이 났던 것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난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화면 속 아이도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너무 많이 해서 눈이 피곤해 졌는지 화면 속 아이가 나보다 먼저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난 학교가 끝나고 문방구로 갔다.
여전히 아무도 하지 않는 오락기 앞으로 갔다.
낡아빠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화면은 번쩍거렸고 좌우가 바뀐 하얀 게임 시작 글자가 나타났다.
좌우가 바뀐 지시를 따라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아이도 나보다 먼저 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하고 난 집으로 돌아갔다.
화면 속 아이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난 문방구로 가 오락기 앞에 앉았다.
까만 화면에는 내 얼굴만이 비쳐 보였다.
난 주머니에 오른손을 집어넣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화면 속 아이도 주머니에 왼손을 집어넣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난 도망쳤다.
화면 속 아이도 도망쳤다.
그 뒤로 난 지난 일주일 전까지 그 문방구에 들르지 않았다.

내가 지난 주 문방구로 간 이유는 거기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 문방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들른 문방구는 인테리어 빼고 그대로였다.
주인도 그대로였다(지금은 자기 딸이랑 같이 운영한다).
오락기들도 그대로였다.
화면 속 아이가 도망갔던 오락기만 빼고 말이다.
그건 없어졌다.
문방구 주인에게 그 오락기가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아무도 하지 않아 팔아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디에 팔았었던 진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도 합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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