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교과서
평가: +2+x
blank.png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고 아빠가 아직 다정해서, 나를 때리는 일도,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던 그때.
딱 한 번, 아빠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영화였습니다.
내가 영화의 CM을 가리켜 이걸 보고 싶다고 아빠한테 부탁하여, 아빠는 나를 데려가 주었습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타, 나는 옆 동네에 있는 영화관에 갔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지금도 기억납니다.
여름방학의 어느 날, 주인공이 마을 변두리에서 신기한 생물과 만납니다.
주인공은 그 생물과 즐거운 일, 기쁜 일을 함께 경험하고, 때로는 위험한 일에도 휘말리며, 그래도 어떻게든 주인공 일행은 그걸 이겨내어,
……마지막으로 주인공과 신기한 생물은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여, 영화는 거기서 끝났습니다.

이 만남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가령 이제 만날 수 없더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들은 이어져 있다고. 그러니 우리들은 계속 함께라고.
주인공은 헤어지기 전에 울며, 그렇게 말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빠가 사 준 팝콘과 마실 것에는 손도 안 대고 계속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아빠는 내게 “재밌었니?”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끄덕이자, 아빠는 아무 말도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이것이,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마지막 기억이었습니다.

 
 
 
 

요정님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게 된 지 두 달 정도 지난 때에, 나는 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나, 요정님에 대해 내게 물어온 박사님은, 내가 원하는 건 가능한 한 갖다 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하는 공부가 끝나고는 선생님에게 그 영화가 보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영화를 알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조금 놀랐습니다.
그래도 금방 웃고는 “박사님과 이야기해서, 박사님이 괜찮다고 말하면 줄게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어째서 그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는지.
선생님이나 박사님은 머리가 엄청 좋은 사람이니 그 이유는 분명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뒤, 선생님은 공부가 끝나자 내가 부탁한 영화 비디오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방에 있는 비디오 데크의 사용법을 내게 알려주고는 선생님은 내 방에서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나간 뒤, 나는 손에 든 비디오의 패키지를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패키지에는 주인공과 신기한 생물,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그날 영화관에서 아빠와 본 포스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나는 비디오를 보지 않고, 내 준 밥을 먹고는 목욕을 하고, 그대로 자 버렸습니다.

 
 

그날은 꿈을 꾸었습니다.
나와 요정님이 처음 만난 날의 꿈이었습니다.
뒷산 속의, 한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던 집.
그 집에 있던, 탁한 물이 차 있는 크디 큰 수조.
그 수조 안에서, 내게 도움을 청한 요정님.
나는 그 수조에서 요정님을 꺼내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슬쩍 집에 들여, 물을 채운 욕조에 넣어 주었습니다.
요정님은 욕조 안에서, 내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동 상담소와 경찰이 집이 찾아오기 전까지, 나와 요정님은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별로 밖에 나가 논 적이 없었고, 요정님은 물 밖에는 조금밖에 있을 수 없었어서,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이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요정님은, 내가 보여주려고 한 모든 것에 놀라고, 그리고 기뻐해 주었습니다.

요정님은 나와 함께 있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기뻤어요.
아빠는 자주 나를 때리면서,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요정님은, 나를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없었으면 자신은 계속 거기에 있었을 거라고, 나는 요정님의 은인이라고.
이런 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요정님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 요정님이 나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나 역시 요정님에게 감사합니다.
틀림없이 나는, 요정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눈을 떴을 때, 나는 탁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제 선생님이 건네준 영화의 비디오가 있었습니다.

 
 
 
 

나는 무서웠던 거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의 주인공과 신기한 생물과 같이, 나와 요정님도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올 지도 모른다는 게.

이 만남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가령 이제 만날 수 없더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들은 이어져 있다고. 그러니 우리들은 계속 함께라고.
주인공은 헤어지기 전에 울며, 그렇게 말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와 요정님은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요.
나는 저 주인공처럼 강하고, 용기 있는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나는 저 주인공처럼은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요정님과 헤어질 수 있을 자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는 요정님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요정님이 여기 계속 있기 위해서는 내가 필요하고,
그러니 나도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한다고, 박사님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요정님이 없어진다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그 집에 돌아가게 되는 걸까요.
그 영화를 보던 시절의 아빠는, 그 집에는 이제 없습니다.
영화를 본 뒤와 같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않습니다.
그때와 같은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분명 나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요정님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요정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래도, 요정님에게 그 영화가 보고 싶다고 선생님에게 말한 건 비밀로 해 두려고 합니다.
언젠가 나와 요정님이 헤어져야만 하는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알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돌아가면, 선생님이 올 때까지 이 비디오를 보려고 합니다.

비디오를 보아도, 나는 아빠가 다정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비디오를 보아도, 내가 요정님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보려고 합니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에, 분명 해답은 없을 거예요.
나는 나의 형태로 요정님과 헤어질 때를 마주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비디오는 교과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마 매일 선생님이 내게 건네 주는 수학 프린트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주인공의 용기가, 어떤 모양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나와 요정님이 헤어질 날이 온다면.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