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3

나는 관사로 돌아가지 않고 작업실에 머물러있었다. 작업실 쓰레기통 안에는 빈 에너지 음료 캔이 여섯 개가 있었다. 눈이 뻑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시였다. 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고 있었다.
"헤헤……."
내가 들어도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광란의 일주일 중 셋째 날, 내가 기록보관실에 들어가는 것은 두 시. 휴게실에 가서 잠시 눈을 붙인다면야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일기장을 다 읽고, 궁금한 자료들은 다 찾은 뒤였다. 아직 SCP 재단이 SCP 연구소였을 때, 리는 재단에 합류했다. 그 당시 재단은 지금과 다른 분류체계를 쓰고있었는데, 직원들의 직책은 연구소와 동일했으며, SCP는 안전, 페르마, 데카르트 급으로 나뉘었다. 17기지……. 에 리가 근무했지만, 리는 아무래도 연구소가 열 일곱개 있을거라 믿지 않았던 것 같았다. 리 말로는 말만 17기지이지, 사실상 여기가 본부이자 유일한 연구소라고 한다. 뭐, 이것도 리의 추측이지만. 리는 SCP-131을 좋아했고……. 그 때문에 케테르와 그뤼네테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다.
"거 참, SCP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도 가지면 안된다고 했잖습니까?"
리는 고개를 들었다. 문서실에서 빠져나와 제 17기지를 돌아다니는 SCP-131을 구경하고 있었다. 남자였지만, 케테르는 아니었다. 군복을 입고있었다.
"그냥 구경이에요."
리가 변명했다.
"봐요. 쟤들은 저를 보고 반응하지 않는다고요."
남자는 껄껄 웃었다. 정말 호탕한 웃음이었다.
"새까만 옷이라. 마치 마녀같습니다!"
"뭐, 다들 그렇게 부르기는 하더군요."
"흠……. 문서실의 마녀가 당신이었군요?"
다시 남자는 웃었다. 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였지, 거 본명이…… 리? 반갑습니다. 리안한테서 말 많이 들었습니다. 나보단 젊은거 맞죠?"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
"음, 아마 그럴 것 같군요."
리는 의심스럽게 그 남자를 보았다.
"나는 킬리언 오캐인이요. 리안이랑은 전쟁터에서 만났지."
남자는 리의 손을 억지로 끌어 악수했다. 단단하고 호쾌한 몸짓이었다.
"근데 리가 이름이요, 아니면 성이요?"
"성입니다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름을 물어도 되겠소?"
오캐인은 리의 눈치를 보았다.
"……. 아가씨?"
"다른 여자한테도 그럽니까?"
리가 쏘아붙였다.
"두말하면 잔소리!"
오캐인은 호쾌하게 웃었다. 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오캐인을 훑어보았다. 불쾌한 눈초리였지만, 오캐인은 웃어넘길 배짱이 되었다. 이제 보니 그는 지팡이를 짚고있었다. 오른쪽이었다.
"대령으로 제대했지. 아마 사람들 말 중에서 '대령' 이란 말이 나오면 그게 나일거요. 리안은 중위였던가? 남자한테는 영 관심이 없어서 원……."
"저는 전보나 치는 사람이었고 말이죠."
"오! 전우였군!"
오캐인은 다시 리의 손을 끌어다 악수했다. 리는 이제 포기한 표정이었다.
"전보나 치다니,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알았소?"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럼 그 지팡이는……."
"아암, 영광의 상처요. 이 덕에 제대하기는 했지만."
오캐인은 그 뒤로 삼십분동안 어떻게 영광의 상처를 얻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리는 대놓고 관심이 없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멍하게 초침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리의 6개월짜리 이야기가 서서히 엉키고 있었다.
"그나저나 리안 봤소?"
오캐인이 큼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큼지막한 소리가 작업실 전체를 매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11시. 앉은 자리에서 곯아떨어졌던 것이다. 나는 눈을 비볐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큼직하게 들렸다.
"안에 누구 있나?"
남자 목소리였다. 기록보관소에는 남자가 드물어서 남자 사서끼리는 다 알고 지낸다.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네에,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관사 경비원일세."
"아, 아저씨."
그냥 오며가며 인사나 하는 사이었다.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사람이었다.
"근데……. 여긴 왜……."
나는 급히 문에 체인을 걸었다.
"엉? 자네 앞으로 소포가 왔는데, 자네가 이틀간 방에 안 들어왔잖나! 뭐 먹을거면 어쩌려고?"
"음……. 문 앞에 두세요. 혹시 아저씨인 것을 증명할 것 있나요?"
"어디, 이 문 밑으로 밀어넣으면 되려나?"
문 밑으로 직원 카드가 들어왔다. 기동특무부대 부대원이었다가 다리 부상을 당한 뒤 그냥 재단의 말단 경비원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다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재단의 복리후생에 대해 혀를 찼지만, 정작 그 아저씨는 자기의 위치에 만족하고 지냈다. 나는 문을 빼꼼히 열었다. 직원 카드와 똑같은 사람이 서있었다.
"지금 이 안에 기밀 문서 있으니까, 그냥 거기 두세요. 뭐 서명해야한다던가 그런거 없죠?"
"없네. 직원 카드나 줘."
다리 부상을 당한 연유는 어째 들을 때 마다 달라졌지만, 아무튼 그는 다리를 절었고, 지팡이를 짚고있었다. 오른쪽에 말이다.
"여기요. 여기까지 오게 해서 죄송해요."
친근한 아저씨였다.
"무슨 소리! 오늘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해서 전해준 것 뿐이네."
"그럼 관사는 누가 지켜요?"
"이 기지의 다른 경비원이 지키겠지. 힘내시게!"
하긴, 오늘 보니까 꽤 번듯하게 차려입고있었다. 평상시에는 도대체 언제 적 것인지 짐작도 안 가는 군복을 입고있었다.
"네, 고마워요."
나는 그 사람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을 보고 문을 열었다. 소포를 끌어당겼다. 기록보관소는 벌써 사람이 복작거렸다. 문을 닫고 책상을 치웠다. 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책을 잘 집어넣고, 소포를 한쪽에 잘 치워놓고, 나는 문 밖을 나섰다. 선배의 책상으로 갔다. 보안 카드를 넘겨야했다. 선배는 그날따라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야 임마, 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선배는 급한 표정이었다.
"어서 내 카드 내놔."
"미안해요. 근데 선배 카드 번호는 외우잖아요?"
"닥쳐, 임마. 나 나가봐야 할 데 있어."
나는 선배에게 카드를 건넸다.
"어디 가는데요?"
내가 물었다.
"어디긴 어디야, 너 때문에 까이러 가는거지!"
선배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거 혹시……."
선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네, 나갑니다, 나가요."
선배는 가방을 챙겼다.
"너 조금 있다가 보자잉? 아주 반 죽여놓을 줄 알아라."
나는 선배가 나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오늘 무슨 야유회인가……. 경비 아저씨도 나가고 선배도 나가고."
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2014년 1월 3일
적어도 야유회는 아닐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어제 꺼내온 문서를 책수레에 싣고 기록보관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에게는 보수한 문서라고 둘러댔다. 야근을 거의 한 적 없는 내가 작업실에서 밤을 샜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믿어주었다. 나는 꺼낸 문서를 차근차근 집어넣었다. 1910년대. 별 일 없었다. 리가 들어와서 문서실을 만들고, 폐가제로 그것을 운영했다. 사람들은 리를 문서실의 마녀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다. 오캐인은 SCP-131을 보며 쉬고있던 리를 귀찮게 했고, 같은 날에 오캐인은 SCP 연구소를 SCP 재단으로 바꾸자는 건의를 했다. 케테르는 망설였지만, 오캐인은 남을 잘 설득했다. 몇 번의 공방이 있은 뒤, 케테르는 SCP 연구소를 SCP 재단으로 개명하였다. 1920년대. 리는 문서실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문서실을 기록보관소로 개명했다. 리는 기록보관소의 관장이 되었다. 리는 4등급이었기 때문에, 케테르, 그뤼네테, 도킨스, 데미안, 오캐인이 정기적으로 여는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되었다. 오캐인이 직원들의 등급을 더 세부적으로 나누고, 보안 등급과 직위를 따로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 재단의 보안 등급과 비슷했다. 다시 몇 번의 공방이 있은 뒤 사람들은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재단은 미국의 여러 사람에게서 후원금을 받았다. 재단은 확장해갔고, 도킨스는 마악 생긴 기지의 관리자로 지원했다. 조건은 자신이 관리하던 SCP를 그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의 의견은 거부당했고, 마침내 그는 SCP 재단을 뛰쳐나가 혼돈의 반란을 만들었다. 1930년대. 반란과 재단은 미친듯이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혼돈의 반란은, 미국을 떴다. 나는 마지막 문서를 케비넷에 넣었다. 안경을 치켜올렸다. 제대로 넣었겠지. 나는 케비넷을 잠그고 문서들을 확인하러 앞으로 갔다. 이제 1950년대 후반부 기록이던가……. 다행이 케비넷에는 자석이 붙어있었다.

나는 이번에 기록보관소의 기록들을 무단으로 들고나오지 않았다. 이건 무지하게 가슴 떨리는 행동이었고, 이제 리의 6개월 남짓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더이상 그것들을 볼 필요는 없었다. 사실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이미 나는 수십개의 규칙을 위반했다. 기록보관실에서 나오니 네시 반이었다. 책수레를 끌고가며 선배의 자리를 힐끗 보았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 때문에 깨지러 간댔었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선배를 위해 괜찮은 담배잎을 사놓아야겠다. 나는 문을 열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할 문서를 작업대 위에 잘 펼쳐놓았다. 소포를 봤다. 나한테 일가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생일인 것도 아니고, 내 친구들이 또 그렇게 살가운 놈들도 아니었고, 최근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한 적이 없었다. 나는 소포를 집어들었다. 우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내 이름만 적혀있었다. 나는 소포에 귀를 대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포를 더듬었다. 뭔가 유연하고 납작한 것이 여러개 포장되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어보았다.
"……. 공책?"
그렇다, 공책이었다. 나는 공책을 꺼냈다. 색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어두운 빛깔이었다. 나는 거칠게 남은 포장을 벗겨냈다. 역시나 낡은 공책이었다.
"아……?"
나는 맨 위에 놓인 공책을 펼쳤다. 앞장.

L.Lee
1919. █. 30, 나의 소유가 되다.
이렇게 일기를 많이 쓰다니,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원.

"어……."
나는 다음 공책을 폈다.

L. Lee.
1███. ██. █, 나의 소유가 되다.

다음 공책도, 다다음 공책도 어김없이 그 사람의 이름이 써있었다. L.Lee. 나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공책을 내던졌다.
"씹할!"
나는 소리쳤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씹할!"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지나가던 사서였을 것이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문 좀 열어봐요, 이봐요!"
사서는 문을 열려는 듯 문고리를 돌렸다.
"아,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괜찮다고요, 씹……. 하……."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바닥에는 공책이 널브러져있었다.
"하……."
밖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정말 괜찮은 것 맞아요?"
"씹……. 네,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아마, 아마 못 자서 그럴거에요, 젠장."
헛것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건 도를 넘었잖아요, 신이시여. 내가 신을 믿는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건 신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야.
"어서 들어가서 자요. 어디 아픈건……."
"제발, 제발! 혼자 두세요! 혼자……. 하, 젠장, 미안해요. 잠시 혼자 있으면 될거에요."
나는 바닥에 앉았다. 내 주변에는 공책이 있었다. 밖은 이제 조용했다. 나는 멍하게 초침을 쳐다보았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리가 물었다.
"글쎄요, 뭐하는 곳일까요?"
그뤼네테가 답했다.
"책이 피를 먹고 자라는 곳?"
선임과 케테르가 한 입으로 말했다.
"씹할, 여기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
나는 되물었다. 이제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리. 나. O5. 나. 1919년. 나. 1950년. 나. SCP 재단. 나. 공책. 나. 도대체 어떻게 이 공책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게 올 수 있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1등급 요원. 아직 나는 SCP를 본 적도 없었다. 이게 바로 SCP라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나한테? 나는 안경을 벗어 내팽겨치듯 땅에 놓았다. 마른 세수를 했다.
"씹할."
나는 공책들을 하나하나 집어 품에 안았다.
"나한테 뭘 바라는거야."
마지막으로 안경을 집어들었다. 눈 앞이 흐릿했다. 책상 속에 숨겨둔 공책을 꺼냈다. 다른 공책과 한데 그러모았다. 문을 열었다. 근처에 서있던 사서가 나에게 왔다. 나는 손짓으로 그 사서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사서는 거기서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니, 쳐다보았다고 생각했다. 앞이 잘 안 보였으니까. 나는 흔들거리면서 관사로 왔다. 침대로 직행했다. 안경은 바닥에 대충 팽개쳐놓았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나야?"
나는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빌어먹을 듀이!"
리가 소리쳤다.
"그 소리만 아마 수백번은 들은 것 같아요."
그뤼네테는 잠시 기록보관소에 방문한 것 뿐인데, 어느새 리의 보조처럼 일하고 있었다.
"사서에게 있어서 듀이는 천사이자 악마거든요."
리는 케비넷에 문서를 채워넣으며 말했다.
"그래보여요."
"새로운 청구기호가 필요해요. 이런 십진법 분류기호 말고요."
"그래보이네요."
그뤼네테는 남의 말을 잘 들었다.
"이 분야들을 봐요. 지금의 학문 체계에 집어넣을 수 없다고요!"
"확실히 그렇죠."
"그렇다면……. 몇 개의 기초 학문을 기호로 놓고, 그걸 나중에 합치는……."
리는 급하게 종이를 찾았다.
"예를 들면, 이렇게 의학이…… A라고 하고, 수학을……. B라고 하면……."
콜론 분류법인가. 리는 웃고있었다. 그뤼네테는 엄마처럼 리가 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기록은 뒤에 arc.를 붙입시다. 일반 문서는 arc.를 붙일 필요가 없고."
리는 기록보관소 분류체계를 설계하고있었다. 케테르는 리가 쓰는 것을 묵묵히 보았다.
"문서는 크게 이렇게 나뉘는거죠, SCP 문서와 기록. SCP 문서는 보안 등급에 따라 다시 나뉘고, 그 안에서 안전, 페르마, 데카르트로 또 나뉩니다. 그리고 동시에 종교, 의학, 정신자 등으로 나뉘고요."
"그게 무슨 뜻이요?"
오캐인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콜론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죠."
내가 답했다.
"몇 개의 단순한 범주를 모아 복잡한 것을 표현하겠다는 뜻입니다. 훗날 랑가나단이 정립하고, 우리 재단 기록보관소와 도서관에서 쓰이게되죠."
오캐인은 눈을 끔벅였다.
"아니에요, 무시해요."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직 큰 그림일 뿐이라 자세히 못 나누는건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기록은 이렇게 나뉩니다. 실험 기록과 사건 기록."
리가 커다란 종이에 나뭇가지를 그렸다. 나뭇가지에는 수십가지의 분류가 매달려있었다. 탐스러운 사과처럼 그것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실험 기록이 따로 분리된다면, SCP 문서와 같이 볼 수 없다는거 아닙니까?"
"그거 XML……. 아."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이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지.
"일단은 기록상으로 분류만 할 것입니다. 너무 분산되는건 좋지 않으니까요."
리가 답했다.
하지만 표정은 영 석연찮았다.
"흠……. 기계가 있으면 좋겠는데."
리는 문서실에 혼자 서있었다.
"맞아요, 컴퓨터가 있다면 정말 편했겠죠."
내가 대꾸했다.
"카드목록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지?"
리가 물었다.
나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서들이 어떤 가상 공간에 있는거지. 그 가상 공간에……. 구름처럼 둥 떠있는거야, 문서들이. 문서들에는 각각 꼬리표가 붙어있어. 이 문서는 SCP 문서이고, 데카르트 등급이고, 4등급 이상 볼 수 있고, 실험 기록이 있으며 면담 기록 역시 있다. 다들 그런 상태로 꼬리표를 달고 헤엄치는거지."
리가 내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이 명령하는거군요."
"오. 꽤 영리한데?"
"기본 중의 기본이죠."
"그 다음은……."
"명령한 다음은?"
"휴게실에 가서 말할까?"
선배가 파이프 담배를 들고 짖궂게 웃고있었다.
"선배가 왜 여기있어!"
내가 소리쳤다.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
선배도 지지않고 소리쳤다.
"문 열어!"
"예?"
"문 열어!"
나는 눈을 떴다. 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문 열어!"
선배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누가 문을 부숴져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자고있었다.
"지금 문 열지 않으면, 부수고 진입한다!"
협박인가. 나는 멍하게 대답했다.
"누구세요?"
꿈인가. 저기 밖에 있는 사람은 오캐인 대령이라도 되는 것일까. 밖은 잠시 조용했다.
"누구시냐고요."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기지개를 켰다. 새벽 한 시.
"SCP 재단 내부 보안부입니다."
"……예?"
나는 눈을 비볐다. 안경이 어디있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조해주시지요."
"뭘…… 하면 되죠?"
나는 비몽사몽 중에 발을 내디뎠다.
"악, 씹!"
나는 내디딘 발을 들어올렸다. 뒤로 자빠졌다.
"문 열으십시오!"
"내 발! 아!"
안경을 밟았다. 안경 유리가 산산조각나서 내 발을 찔렀다. 발바닥을 더듬었다. 날카로운 유리를 만질 수 있었다.
"셋 셀 때 까지 문을 안 열면……."
"그냥 부수고 들어와요, 썅!"
나는 발바닥에서 유리를 뽑아냈다. 발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리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정말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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