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생일 축하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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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

딱 잘라 말했다. 소식을 전하러 온 신입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노래마인 님 생일이신데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매 더럽게 생겨먹었네. 신입 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다시 짧게 말했다.

“아, 아니, 다 같이 모이는 자리인데 그래도…”

“그래서?”

그는 몇 마디 더하려다 말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연구실을 나갔다.


며칠 전 신입이 가져온 소식은, 2월 7일,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축하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노래마인 님의 생일 축하파티라고 하던가. 설맞이도 겸사겸사하는 것 같고. 아마도 그런 것이었다.

아, 내가 말 안했던가? 난 시끌시끌한 것을 원체 싫어한다. 물론 사람이 싫다던가,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사람들하고 수다 떠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다만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을 싫어할 뿐,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이번이 두 번째로 맞는, 재단 주요 인원의 생일 축하파티다. 저번 데반 님 때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린 것으로 기억한다. 이야,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게 재미없는 이야기였는데. 그는 경청해주었다. 어쨌건 그때는 데반 님을 따로 불러 선물 아닌 선물을 드렸다. 그때도 축하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제 와서 뭐 달라진바 있겠는가. 그냥 조용히 지내련다. 선물이야 주는 사람이 정말 주고 싶으면 주는 건데, 내가 꼭 줘야할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하시겠지.

“그래도 노래마인 님 생일이신데요.”

젠장. 신입 놈이 했던 얘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지역사령부 초창기 때부터 쭉 봐온 분인데, 그냥 넘어가긴 껄끄러웠다. 못해도 선물은 드려야겠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후 2시. 축하파티가 저녁 7시라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서둘러 지갑을 챙기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뭘 선물하지?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정작 선물을 하려니 뭘 선물할지 몰랐다. 내가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었던가?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그녀의 인사파일에 적혀있는 것뿐이다.

선물은 포기하기로 했다. 난 포기가 빠른 남자니까. 편지나 한편쓰기로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노래마인 님.

취소.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에게 무슨 인사를 또 하는가.

날씨가 좋군요.

취소. 창밖의 하늘에는 흰색 쓰레기가 쏟아지고 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이건 괜찮네. 그런데 다음엔 뭘 쓰지? 모르겠다. 이것도 취소.

이후의 일은 말 안 해도 뻔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 다시 지우고. 결국엔 종이가 너덜너덜해졌다. 펜을 내버리듯 놓았다. 그리고 책상 앞에 엎어졌다.


하품을 하며 책상에서 일어섰다. 아마 책상에서 잠든 듯 했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저녁 6시. 이미 시간은 지날 대로 지나있었다. 허리가 뻐근했다.

연구실 밖을 나가니, 모두들 축하파티 준비로 바빠 있었다. 또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생기려는 듯 보였다. 오늘만 잘 지나면된다. 오늘만. 내일부턴 다시 바빠질 테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몇몇 요원들 손에는 선물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그중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도 있었다. 선임자의 생일이라고 축하해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연구실 문을 닫았다.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렸다. 아마 연구실 근처에서 축하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이어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선물 전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한참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손에는 ‘그것’을 들고.


축하파티에는 지역사령부 요원들이 전부 다모인 것 같았다. 어색했다. 이런 자리를 많이 겪어본 것도 아니고, 내가 피하다보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풀그림 님도 오셨네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래마인 님이었다.

“아, 그, 그게.”

나는 손에 있던 것을 내밀었다. 종이와 철사로 조잡하게 만든 물망초 몇 송이였다.

“2월 7일 탄생화가, 물망초라고, 하길래.”

더듬더듬 말을 했다. 그리고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을 위해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말을 더듬지 않았다. 솔직히 걱정되었다. 다른 요원들은 훨씬 더 좋은 선물을 전했을 것이다. 나를 돈 몇 푼 아끼기 위해 이런 조잡한 것이나 선물하는 구두쇠로 볼 지도 몰랐다. 다른 요원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죄송해요. 제대로 된 선물 못해드려서.”

노래마인 님이 물망초 꽃을 받아들자마자, 몸을 돌려 연구실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제대로 된 선물을 전할 걸 그랬다. 적어도 책이나 그런 걸 선물하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아니면 그럴 듯 한 편지라도 써서 드리던가.

난 왜 이렇게 한심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비틀비틀 연구실을 나왔을 때는, 이미 축하파티가 끝난 후였다. 머리를 긁적였다. 연구실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을 때,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노래마인 님이었다.

“아까는 어디 간 거예요? 선물하나 달랑 줘놓고.”

아 그래, 잔소리. 예상은 했다. 그래도 내가 전한 것을 ‘선물’로 봐주신다니, 황송한 마음에 절이라도 해야 할 심정이었다.

“오늘 받은 건 잊어주실래요? 다음엔 멀쩡한 걸로 선물할게요.”

나는 억지로 킥킥거리며 말했다. 노래마인님은 한쪽 눈초리를 올렸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거 나름 괜찮았는데. 설마 그거 전해줬다고 의기소침하고 그런 거였어요?”

노래마인 님은 피식 웃었다. 어라, 이건 내가 생각치도 못한 반응인데.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다행이고요. 꽃은 잘 장식해놓을게요. 내일부터는 다시 일해야 하니까 일찍 들어가시죠. 아, 그리고.”

그 다음 대답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답이었다.

“선물 고마워요.”

그녀는 빙긋 웃고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다음엔 축하파티에 제대로 참석 해야겠다. 그리고 그 때는 제대로 전해야겠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노래마인 님.”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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