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냉장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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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구요.”

김현주는 이제 안전을 조금 보장받았기 때문에 경비 요원들을 치우고 매킨토시와 단 둘이서만 면담할 수 있었다.

“왜 내가 아무것도 지우지 않았을까요?”

그 말을 들은 매킨토시는 눈을 내리감으며 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변종이라서?”
“변종이라서?”

김현주는 매킨토시를 그대로 따라한 다음 고개를 휘휘 저었다. 서로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매킨토시는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당신 머릿속에 여러가지 답이 떠다니지만 사실은 간단해요. 저는 뭔가를 지우려다 실패했어요.”

김현주는 살그머니 웃었다. 매킨토시는 무언가 말하려다 김현주가 다시 자신을 따라할까봐 입을 다물었다.

“당신들이 왜 저를 잡으러 왔는지는 알아요?”

“너는 접촉자니까.”

“내가 SCP-115-KO를 만진 건 석 달이나 전이었어요. 왜 이제야 잡으러 온 거죠?”

그저 위에서 절차가 하달되었기에.

“그럼 왜 그 절차가 이제야 하달된 걸까요?”

행정 실수로?

“행정 실수? 오히려 너무 꼼꼼해서 탈이에요. 석 달 전 자료까지 뒤져 가며 나를 찾아냈어요.”

아니, 왜 이제야?

“그러니까 그게 씨발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거잖아!”

김현주가 버럭 소리질렀다.

“대가리가 있기는 한 거냐? 답을 생각해보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그 질문으로 답변을 하고 있으면, 넌 대체 어떻게 재단에 들어와서 특무부대원까지 됐어? 미래가 암담하구만.“

김현주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점점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숨을 길게 내쉬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SCP-115-KO의 접촉자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 며칠 내로 그 사람에게서 잊혀지고 지각마저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아실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여서 꽤 오랫동안 쭉 홀로 지냈어요. 그러다 SCP-115-KO의 첫 번째 침입자가 죽는 그 순간 갑자기 내게 인사가 들려 왔어요.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금 저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지요. 잊혀지는 일이 끝난 거예요. 그럼 이제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당연히 제가 접촉자였다는 사실도 다시 기억하게 되는 일이죠. 제가 접촉할 당시의 동료였던 격리반 목격자 두 명이 상부에 제 존재를 알리고 대응책이 만들어지는 데는 불과 며칠밖에 안 걸렸어요. 이거 잘 녹음되고 있나요?”

“너는 굉장히 특수한…….”

“특수한 경우죠. 잊혔다가 다시 기억됐고, 재접촉을 원하는 좀비가 되지도 않았어요. 이 모든 일이, 제가 지우는 일을 실패했기 때문에 벌어진 게 확실해요. 원래 지우는 일은 실패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말하자면……. 편법이나 오류인 셈이죠. 실패할 수 없는 걸 실패했으니 절차가 꼬이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그 다음의 대응 매뉴얼이 없으니까? 우주가 저 때문에 당황하고 있어요.”

김현주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피식 웃었다.

“뭔가 자랑스러운 표정이군.”

“제가 없애려고 한 건 ‘최초의 인식’이었어요.”

“씨발!”

“그리고 자랑스럽다니, 난 아주 수치스러워요. 유일한 실패자라는 타이틀이 내 마음을 얼마나 엉망으로 휘젓고 다니는지 알기나 해요?”

매킨토시가 격리창을 쾅쾅 두드렸다.

“그 ‘최초의 인식’이 너한테 복수하려는 거야!”

“몰라요. 그 놈 속은 읽지 못하니까요.”

“이 모든 일이 너 때문에 일어나는 게 맞는 것 같고! 네가 뭘 할 수 있나고!”

“할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아요. 당신의 도움도 필요해요.”

매킨토시는 거부 반응을 표출했다.

“너처럼 신 같은 거에 눈도장 찍혀서 같이 죽으란 거야? 좆까! 의미없는 죽음은 사절이야!”

“넌 씨발 변칙개체가 그냥 나타났었는 줄 아냐? 접촉자는 예전에도 있었고 우주의 구멍도 그 접촉자들만큼 있었어! ‘최초의 인식’이 우주의 구멍을 깁는 동안 그 바늘과 실은 우주를 찔러 아프게 하고 가끔은 실밥이 날려 주변을 어지럽게 하지. 너나 나나 ‘최초의 인식’의 관점에서는 티끌일 뿐이야!”

“어쩌란 거야!”

“우주는 나를 죽이지 못해!”

“뭐?”

“우주에 구멍을 뚫으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은 우주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랑 똑같으니까!”

그제서야 매킨토시는 아까보다 몇 배나 더 붕붕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무서워하고 심호흡 좀 해요. 누가 일부러 뭐 어떻게 해서 허무하게 죽는 그런 일은 없을테니까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이어 활기찬 외판원이 건넬 것 같은 인사도 문 너머에서 들렸다.

“대체 어떤 새-”

김현주가 격리창을 주먹으로 세게 두드리며 매킨토시를 말렸다.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안녕하십니까!”

아까와 같은 세기, 간격, 목소리로 노크와 인사말이 다시금 들려 왔다.

김현주는 목소리와 행동을 자제하라는 손짓을 내 보였다.

“문에서 눈을 떼고 아무 관심도 보이지 마세요. 뭔지 묻지도 마시고 그냥 잠시 가만 있읍시다.”

둘은 그저 땅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노크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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