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전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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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이 정도면 진짜 씨게 쳐준 거여. 봐봐. 이 번쩍번쩍한 거 완전 진퉁이잖어.」
「글씨. 진퉁이란 놈이 뭐 이리 오돌토돌하고 어디서 낯익은 냄새가 난담? 자네 그저께 여따가 막걸리 부어 마셨나?」

장터 가운데서 한 1리 반 토막 떨어진 바리전 앞, 가게주인하고 봇짐장수 둘이서 승강이를 한껏 벌인다. 봇짐장수는 저번 장터에서 제법 귀한 놈들을 싸게 사서 한 몫 챙긴가 했더니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는갑다. 장수놈은 툭툭 뱉어내는 씹어먹을 주인놈에게 뭐라고 하고 싶다만 이내 포기했다. 그도 그럴 놈이 왜 어제 주막에서 막걸리를 코가 비뚜러지게 줄창 마셔대고 바로 옆 놈이랑 투닥거리다 묘시에 일어나보니 그릇이란 그릇은 죄다 땅바닥에 푹 자고들 있는게 아닌가. 씻기야 아주 냇물로 빡빡 씻었건만 누리끼리한 술내는 주인과 연을 끊기 싫었는지 꾸역꾸역 솟아온다. 가게 앞 탁자 위에 앉아있는 육신에 붙은 염소마냥 짧은 수염은 자기도 물건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지 주인과 같이 한숨을 쉬며 비틀어댄다.

「아아, 됐어 됐어! 사기 싫음 말어! 댁 말고도 살 사람 수두룩 혀!」
「어? 허, 허허. 어이구 한번 그래보슈, 누가 사기야 잘 사주겄네.」

장수는 애써 태연하게 앞놈이 들고 있던 귤마냥 오돌토돌한 그릇을 다시 넣고 돌아서려 하건만 그 불그스레하게 약이 한없이 오른 얼굴은 가게주인은 물론이며 옆 옹기전 남정네도 헛웃음을 칠수 밖에 없게 했다.

「어이고 참네, 장사한단 놈이 속이 저래 뒷간마냥 좁디좁아서야 어디 밥 빌어먹고는 살겄나?」
「뭐셔 이 씨불딱놈이?」

장수는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그새 불그레한 면상이 시뻘게져 붉은 걸 너머 자색이 돼가고 쑥 들어갔던 눈 개구리마냥 튀어나오고 누린 이는 같이 멘 놋그릇과 똑같이 번쩍이니. 거리에선 그를 비웃는 소리만 가득이라. 장수는 더욱이 화가 올라 손을 서서히 올리기 시작한다-

「오, 오늘도 오셨구만! 이봐, 어제 그 사람 오늘도 왔어!」
「진짠가? 오늘도 놓칠 수 없지!」
「이봐 박 씨. 나 저기 갔다 올 테니까 여기 끈들 좀 봐주게나.」
「아서. 댁 아내한테 또 바가지 긁힐라.」

비웃는 소리도 잠시, 알 수 없는 뭔가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장터 중앙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벌건 얼굴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이건 또 뭐여하면서 서서히 돌아보고, 누구 싸움이라도 났나 궁시렁거리면서 터덜터덜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모인 곳과 가까워지자 이 소란의 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중인이었다. 딱히 미모가 수려하다던지 매우 곧아 보인다던지 그런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익히 친해질 만한 상이며 나름 사람들 사이에서 큰 풍채를 지녀 보이기는 하다. 중인은 모인 사람들을 한껏 둘러보며 싱긋 웃는다.

「..뭐여 저 멀대는?」
「쉿, 조용혀. 인제 시작하겄네.」
「뭐를? 뭘 시작한다는-」
「아따, 일단 한번 들어봐. 아주 진귀한 구경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을 끊은 앞 놈의 뒤통수를 바닥에 확 매다꽂고 싶은 그였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중인은 곁에 있던 자루를 들고 뭔가를 찾더니 이내 꺼내었다. 다름아닌 책이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다 바로 멈춘다. 장사꾼은 이 사태가 이해가 갈 리 없었다. 중인은 다시 웃고는 책을 피더니 바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게슴츠레 지켜보고 있던 장사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맨 처음엔 당찬 목소리로 책을 읽더니만 어느 거지가 말하는 부분으로 넘어가자 빌빌대는 목소리로 바뀌고, 못 되먹은 부자에선 퉁퉁하고 거만한 목소리, 아낙네들은 한껏 빼어낸 목소리, 애기들은 옹알옹알대는등 그야말로 한 사람에게서 온갖 놈들이 숨어있다가 불러내는대로 나오는듯 하였고, 박에다 톱을 대고 써는 시늉을 하는데 마치 진짜 박이 나타나 썰리는 듯하며, 다들 박이 터지기를 숨죽이며 기다리다 뻥하고 나는 소리에 또 다들 놀라 그대로 땅바닥에 나자빠져지는지라.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중인이 읽어주는 내용에 함께 묻어가면서 어떤 때는 박장대소, 어떤 때는 눈물을 폭포수같이 흘러내며, 또 어떤 때는 매우 놀라 저 멀리 있는 탁자 밑으로 다들 기어들어가려고 하니 그야말로 구경거리가 아닐리가 없다. 장사꾼도 그들과 같이 동조하고 있기는 하나 저 중인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영 아니올시다 하는 눈이었다. 이윽고 이야기는 끝이 나는듯했고, 중인은 책을 덮어 자루에 다시 넣으려 하다 사람들이 매우 안타까워하는 소리에 그대로 멈추고는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더니 사람들의 각자 품 안에서 동전 몇 푼을 꺼내더니 그한테 던지는 것이다. 돈은 한푼이 열푼이 되고 열푼이 백푼이 되고 점점 쌓여갔다. 그는 그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다시 책을 편다.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며 계속 돈을 던진다. 그중에는 아까 실랑이를 벌였던 바리전 주인놈도 있었다. 장사꾼은 그 광경을 보고 고양이 만난 쥐마냥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다 다시 얼굴을 붉히며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씨부럴 세상 참 말세네 그려. 누군 고생 찍살나게 혀도 10전 벌까말깐데 누군 책만 읽어도 일확천금이여. 에이 이 망헐놈의 세상. 에이 이 씨벌것들의 세상.」

주저리주저리. 시종일관 불만 가득한 마음을 듬뿍 담은 말들을 누가 들을까 입에서 새어 나오듯이 계속 말하며 장터를 빠져나간다.

「참으로 희한한 재주란 말이지. 도대체 저런 건 어떻게 익히는 거람.」
「그러게 말이지. 저건 도인이 와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야.」
「내가 저 책을 슬쩍 봤는디, 책에서 범상치 않은게 느껴졌어.」
「뭐? 그거 참말인가?」
「그렇다니께, 저 책 자체에 뭔가 요술같은게 있어. 저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요술을 부린다니까?」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어.」
「말도 안 되긴! 그럼 저게 요술 아니고 뭔가?」
「참 내, 암만 저 사람이 대단하다해도 요술은 아녀. 저게 요술이면 내가 이 고을의 원님이다, 원님!」
「카하학, 원님이랜다. 자네 또 그새 취했구뭔!」
「시꺼! -에이, 요술은 무슨. 아 됐고, 오늘 그냥 축시까지 쭉 달려보자고, 자!」
「크허허허허, 그려그려, 오늘 한번 진탕 놀아봅세!」

계속 지나가면서, 근처 주막에서 그 중인에 대한 얘기가 그의 귀를 계속 건들였다. 그는 매우 거슬려 하다가 그 중 한 단어만 그의 귀에 들어가 뇌를 한껏 때려줬다.

「…요술?」

울그락불그락 하던 얼굴이 점차 풀리더니 갑자기 입을 한쪽으로 크게 비쭉댄다.

「그 양반이 이 망할 요술도 다뤄줄진 모르겠네…」

그는 봇짐 한쪽을 한동안 애기 얼굴 쓰담듯이 만지다가, 터덜터덜 짚신을 끌고 앞으로 걸어간다.


「여긴가.」

어둑어둑한 하늘에 구름에 묻힌 보름달만이 희미하게 밝혀주는 밤. 장사꾼은 산골에 박혀있는 누추한 집에 다다드렀다. 다름 아닌 시장에서 봤던 그 중인의 집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꽤 낡게 사네. 뭐하러 돈을 버는 거여 대체?」

시장에서 쌓였던 돈에 비해 집의 마루는 검게 썩어가 구더기가 보이고, 벽이란 벽은 금이 여기저기에 가서 오히려 원래 그랬던 듯한 대다, 기둥은 휘어지기가 마치 갈대 같더라. 그나마 제대로 쳐줄 만한 곳이 문이니, 문 안에선 초를 켜놨는지 붉게 보인다.

「아직 안 자나..? 체, 자고 있으면 그냥 두고 갈까 했는데… ..그래 뭐, 일단 말이나 터볼까.」

그는 짧게 혀를 차고 슬금슬금 집 쪽으로 걸어가려던 차, 뒤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엔 기분탓이겠거니 했는데 영 아니다싶어 뒤돌아보니 웬 검은 옷을 뒤집어쓴 놈 두 명이 그의 뒤를 바짝 붙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

뭐라 말하려는 찰나, 검은 사내들 중 한 명이 바로 그의 입을 틀어막아 칼을 그의 명치 앞에 바로 댔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우읍?!」
「조용히 말해라. 우리 질문에 잘 대답하면 해는 없을 것이야. 알았나?」

쇠같이 딱딱하고 무거운 자객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그저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좋다.. 넌 저 요괴놈하고 무슨 관계를 맺었나?」
「예..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시침때지 마라. 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산중에 뭐하러 여길 왔단 말이냐.」
「아니 그러니까, 전 이, 이번이 처음 만난겁니다.」
「이놈이, 계속 거짓만 말할 셈이냐.」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과 사슬같이 차가운 눈빛에 그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매우 무서워했다.

「너희 등이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나 내 재주를 구경하라.」

갑자기 집 안에서 아낙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객과 장사꾼 사이의 무거운 공기를 그 목소리가 한꺼번에 베어버리니, 그는 물론이고 자객들도 놀라 집 쪽을 쳐다보았다. 그 중 한명은 뭔갈 알아냈는지 그 품 안에서 횃불을 들고선 불을 피우는 것이다.

「..문득 공중으로 두 줄 무지개 일어나며 우박이 담아 붓듯이 오며, 순식간에 급한 비와 설풍이 내리고 얼음이 일어, 호진 장줄이며 말굽이 얼음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이번엔 남정네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시장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다. 당찬 목소리가 집밖으로 흘러 나오면서 하늘에 떠 있던 달이 스르륵 없어지더니, 갑자기 반주먹 만한 우박과 비들이 함께 뿌리고, 매서운 바람이 나무를 거스르며 죄다 얼려버리니, 자객 발밑에 떨어진 우박과 빗물이 함께 얼어 그들의 발을 휘감았다. 장사꾼은 이래저래 놀래 발을 놀리다 얼음장 위에 미끄덩하면서 넘어지고 휘리릭 돌다 집 문고리에 매달려 바로 중인의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머리가 핑핑 돌던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안이었고, 옆을 보니 한 손에는 글이 써진 종이를 들고 있는 중인이 자기를 넋을 잃은 듯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도 이게 뭔 일인가 어안이 벙벙하였고, 한동안 둘의 얼굴을 멍히 쳐다봤다.

「네 이놈! 네놈이 그런다고 무사할 줄 아느냐! 썩 나오지 못할까!」

밖에 서슬같이 차가웠던 자객이 불호령을 내니 그제서야 둘은 정신을 차렸다. 장사꾼은 밖에 있는 자객때문인지 다시 벌벌 떨었고, 중인은 그런 그를 지켜보다 싱긋 웃고는 넌지시 말했다.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되겠습니까.」
「뭐, 뭘 부탁하겠다는 거요?」
「여기 있는 책들을 모두 저 자루에 집어 넣어주시오.」
「뭐, 뭐요? 이 상황에 무슨 책을.. 아니 게다가 이 많은 책이 저 자루 안에 어찌 다 들어갈 리가 있겠소?」
「부탁하오. 그럼 전 일단.. 흠 이게 좋겠군. 청명하던 날이 문득 흑운이 일어나며 뇌정 벽력이 천지 진동하더니..」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고 다시 품 안에 있던 종이를 다시 꺼내 글을 계속 읽기 시작했다. 장사꾼은 그를 잠깐 쳐다봤으나 입을 쭉 내밀고 책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근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자루의 10배가 되던 책들이 전부 다 자루 안으로 쑥쑥 그것도 별 힘없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넣으면서도 이상하게 여겼으나 한시가 급하니 계속 집어넣는다. 중간에 밖에 콰광콰광하는 소리에 생쥐마냥 움찔움찔대면서 말이다.

「다 집어넣었소.」
「오, 고맙소.」
「제길! 네놈이 이런 재주를 부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밖에서 약이 오를대로 오른 목소리와 여기저기서 풀 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투척을 준비하라!」
「이런, 이젠 이 집하고 안녕이군.」

중인은 밖의 엄한 분위기에 비해 매우 태연하고 여유가 넘치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품 안에서 종이를 찾더니 들고는 또 읽는다.

「..공주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려치니, 천 리가 훌쩍 넘어가고, 다시 한 번 치니 다시 천 리, 또 다시 한 번 치니 천 리로 삼천리를 지팡이 하나로 넘어가더라.」

그러더니 그의 옆에 금색 지팡이가 생겨나고, 그는 그 지팡이를 잡고 자루를 맨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장사꾼한테 자루를 향하여 손짓한다. 장사꾼은 자기도 모르게 자루를 잡았으며, 이내 중인이 활짝 웃으며 지팡이를 높게 든다.

「꽉 잡으시오!」

뭣 때문이냐고 물으려던 입을 떼기도 전에 중인은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고, 그와 동시에 펑소리와 함께 그 둘은 집 안에서 사라졌다.

「콜록콜록! 요괴는 찾았나!」
「어..없어졌습니다! 그 요괴가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제길, 완전히 놓쳤다!」

화약 탄에 의해 마루와 앞 벽이 통째로 날아간 집 안쪽에는 구겨진 놋그릇 두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아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오?! 방금까지 우리 둘 다 집에 있지 않았소?」

조금 전만 해도 누추한 집 안에 있었던 두 사람은 지금 어느 산 밑 중턱에 있는 들판 위에 서 있다. 바람은 기분 좋게 그 둘을 감싸고 있다.

「허허, 이젠 걱정할 게 전혀 없소. 이걸로 그 자객들로부터 완전히 떼어 놨으니.」
「이 지팡이 말이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잠깐, 방금도 그렇고 아까 우박도 그렇고,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요?」

땍땍대는 그의 물음에 중인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으나 이내 표정을 고치고 여유롭게 말하였다.

「저는 그저 책 읽어주는 전기수(傳奇叟)일 뿐이오. 다른게 있다면.. 책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낼 수 있을 뿐이라오.」
「모든게..? 그럼, 이 지팡이나 우박하고 비도 전부 책 속에 있던 걸 여기에 나타냈단 거요?」
「그렇소. 책을 읽으면 그 글에 있던 놈들이 다 튀어나온다오. 저번에 시장에서 가끔 읽어줄 때도 조금 약하게 해서 한거라오.」
「허..」

지금 자기 앞에 요술을 부리는 자가 앞에 있다. 그는 분명 그게 앞에 있는데도 두 눈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속으로 실망도 조금 했다.

「자루도 그 요술로 한 거요?」
「아 이거는, 어디보자.. 이거라오.」

중인은 자루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바로 그한테 넘겨줬다.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다. 조금 전만 해도 온 방을 채우던 금은보화나 모든 보물이, 그 얄팍한 도적놈한테 한꺼번에 자루에 담겨가지더라. 자루는 그 모든 걸 담고서도 전혀 부풀지 아니하고 오히려 겨우 이 정도냐는 듯 여유가 넘친 모습이었다. 그를 짊어맨 도적도 전혀 무거운 걸 든 얼굴이 아니라 목화솜 한 되를 든듯한 표정으로 폴짝폴짝 개구리마냥 뛰어가는 것이다…? 이걸 읽었다는 거요?」
「내가 한번 지어봐서 읽어보니까 저게 생기더구려.」

장사꾼은 그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다.

「..해서, 이제 어쩔 셈이오?」
「흠?」
「그렇잖소. 댁이야 그 요술 가지고 밥은 어떻게 먹겠지만, 난 지금 한낱한시가 급한 상인이잖소. 내일이라도 당장 마을 장터로 가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어떡할 거요?」
「그렇군.. 아, 그럼 한동안 같이 지내는게 어떻겠소?」
「뭐요?」

장사꾼은 상대의 태연한 말과 태도에 어이가 없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태 한동안 집에 나 혼자 살다 보니 좀 쓸쓸했는데, 이참에 같이 지냅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남정네 둘이 어찌 한집에 산다고? 아니, 게다가 지금 집까지 잃었잖소?」
「집은 문제 없소.」

중인은 팍 찡그린 상대를 뒤로하고 들판 위를 걷다가 종이를 꺼내 뭔갈 읽더니 그의 앞에 초가집 하나가 쑥하고 솟아올랐다. 아까 그 집보단 제법 괜찮은 모습이다.

「일단 들어오시오. 날이 너무 늦었소.」
「아니 그러니.. 하, 됐다.」

장사꾼은 뭐라 더 따지다 체념한 듯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고 마루에 걸터앉아 짐을 푼다. 짐에 있던 놋기는 18기. 2기가 없어진걸 그제서야 안 그는 더욱더 화가 났다.

「호오, '담헌서'라, 이게 대체 무슨 책이오?」

중인은 툴툴거리는 장사꾼 옆에 있던 짐 중에 책을 발견하여 작게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러더니 바로 왼손에 두고 펼치려 했다.

「읽지 마쇼.」
「? 그게 무슨 소리오?」
「그거, 불량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몇 장만 쓰여 있고 다 백지인데다 읽기만 하면 악몽을 꾸게 될 거요.」
「그게 정말이오?」
「하아, 나도 그거 읽고 어느 망할 돼지 같은 놈에게 호되게 맞는 꿈만 꿨수다.」

하하하 하고 웃으며 중인은 책을 펼쳐봤다. 과연 장사꾼이 말했듯이 대부분 백지에 오직 '의산문답'이라는 곳만이 쓰여 있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내려놓는데, 그 주위에 있던 물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붉고 투명한 돌이 박힌 쌍가락지, 버선 12켤레, 종이에 감싸서 말린 초롱꽃과 씨앗, 붉은 명주실로 잔뜩 묶인 은장도. 버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것들은 분명 상인이 들고 있을만한게 아니었다.

「이것들은 도대체 다 무엇이오? 이것도 파는 것이오?」
「..이건 파는게 아니오.」

입을 쭉 내밀며 짜증내면서 말하였다.

「바닷가에 거닐다 어느 코쟁이 놈이 나한테 잠깐 맡아달라고 했었소. 절대 아무거나 손대지 말라면서. 그러다 그놈이 어느 짐승 놈한테 잡아먹혀서 이렇게 갖고 있는 거고. 허, 몇 번을 버리려고 애썼는데 이상하게 다시 내 짐으로 돌아오는 것이외다. 」
「호오.」
「몇 개는 손대보려고 했긴 했는데 어느 날 도적 둘이 쌍가락지 끼고 좋아하다가 서로 둘이 다투다 죽은 꼴 보고 마음접었수다. 한명이 쑥 찔렀는데 자기도 배에 구멍이 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흐음…」

중인은 다시 물건들을 쳐다봤다. 겉보기엔 석연치 않다던가 그런 건 느껴지진 않았다.

「뭐, 도인이라도 만나서 이것 좀 버려주라고 했으면 좋겠지만. 무당은 만나는 곳마다 쫓겨나지. 산속 도인은 무시하지. 중은 불경만 외우지. 믿을 놈이 한 명도 없소.」
「음, 내가 믿을만한 도인을 한 명 알긴 하오.」
「허, 그게 누구요.」

중인은 잠시 깊이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일단 내일 얘기 해주겠소. 오늘은 이만 잡시다. 벌써 해시가 넘었겠구만.」
「뭐요, 얘기를 할 거면 끝까지.. 하아, 참 나. 오늘따라 운수 드럽게 꼬이네.」

먼저 들어간 중인을 뒤로하며 장사꾼은 그릇을 닦으면서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쉰다. 구름에 묻혔던 달은 서서히 벗어나 검은 풀들을 말갛게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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