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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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걸어내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걸치고 있는 갈색 판초는 가을 바람에 맞추어 서로 나부끼고 있었다. 남자의 갈색 머리카락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람에 고요히 날리었다. 그의 새까맣고 우수에 찬 눈동자는 다른 사람이 그를 바라볼 때 그가 묘하게 슬픔에 젖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앞판에 떡갈나무 문양이 새겨진 바이올린을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때 그의 극단과 함께였던 바이올린은 숲 속의 여러 메아리들과 어울려 선율들을 쏟아내었다. 현을 잡은 왼손이 좌우 앞뒤로 격렬히 요동칠수록 바이올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바람에 실어서 하늘로, 들판으로 날려 보냈다.

새들은 이 음색을 듣고서 날아 올라가 퍼져버린 소리를 더 듣고자 하는 듯이 하늘로 솟구쳤다. 나무들은 다른 나무들에게도 한시바삐 자랑하려는 것마냥 서로 가지들을 맞부딪히며 바이올린에 맞추어 소리를 냈다. 숲 속의 짐승들도 그때만큼은 모든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노래를 듣곤 했다.

연주를 할 때 만큼은 남자의 우수에 찬 눈빛은 기쁨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 눈빛은 보는 이에게도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느새 남자 앞에 와 있는 꼬마에게도 이 남자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실로 기묘한 것이었다. 그 꼬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쉽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이 남자한테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느꼈다. 꼬마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남자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꼬마는 문득 남자를 마을로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꼬마가 원래 떠올린 생각인지, 아니면 무언가가 꼬마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꼬마는 바이올린의 선율에 맞추어 마을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을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이올린과는 다른, 수많은 악기들의 연주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남자는 조급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더 빠르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꼬마의 발걸음도 더 빨라졌다. 기묘하게도 저 멀리 마을 쪽에서 들려오는 악기들의 화음과 남자의 바이올린은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듯이 기묘하고도 완벽한 합창을 이루어 내었다.

마을이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남자는 멈추어 섰다.
남자의 연주도 멈췄다. 남자의 눈동자 안에는 저 멀리, 마을 광장에 있는 한 극단이 들어오고 있었다. 극단의 연주는 절정 부분에 이르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의 노을과 극단의 수많은 멜로디들은 그 자체로 하나인 듯했다.

남자는 더 이상 마을로 걸어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사방으로 퍼져가는 노을을 등지고 가만히 서서 연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남자는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 중인 극단을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도 그곳에 있었어야 한다는 듯이. 꼬마의 귀에는 남자의 바이올린이, 구슬프게 울어대는 것처럼 들렸다.

마을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꼬마는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고 꼬마는 생각했다. 꼬마는 옆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발 밑에 떨어져 있던 판초 부스러기만이, 꼬마의 옆에 누군가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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