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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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부터 1400m 떨어진 회의실엔 박사와 로봇과 인형 그리고 자동차 모형, 이렇게 넷만이 있었다. 그들 중 박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모두 박사의 피조물이였으며 또한 모두 주식회사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이사진이기도 했다. 모두가 왜 회의실에 도착했는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무렵에, 로봇인 원더봇-3000이 아이들이 쉽게 돌릴 수 있도록 제작된 머리의 나사를 스스로 조이며 삑삑거리는 소음과 함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박사, 이번 안건은 무엇인가? 원더봇-3000 빨리 머리에 윤활유 주입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작동 멈춘다. 시간이 없다. 빨리 회의를 끝내라."

웅변가이면서 달변가이자 명언가이며 또한 이사벨 헬가 아나스타샤 파르바티 원더테인먼트 박사 5세의 후계자이기도 한 로크 하워드 필립스 원더테인먼트 박사 6세는 그가 오늘 준비해온 안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십호흡을 몇 번 한 후, 그의 풍성한 갈색 콧수염을 매만지고는 나비넥타이를 한 번 더 고쳐 매었다.

"으흠, 우선 작년 리틀 미스터 판매량을 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군요. 캐서린 양?"

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도 없던 모형 자동차의 문이 열렸다.

"오, 캐서린 양.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제작년 리틀 미스터 판매량을 수치로 보여주었으면 하네. 이번 안건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단 말이지."

"박사님, 전 박사님이 필요하신 건 언제든지 준비해 놓는 비서랍니다."

캐서린은 가슴 쪽 주머니에서 일반적인 텔레비전보다 100배는 작은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즉석 통계 텔레비전TM을 꺼내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무사히 도착한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즉석 통계 텔레비전TM은 곧 일반적인 텔레비전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크기로 돌아온 후에 캐서린은 텔레비전의 버튼을 힘을 주어 꾹 눌렀다. 버튼에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이 화면을 보시면 작년 리틀 미스터의 시장점유율은 제작년 미스터보다 약 24.7%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시한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선 16.5%로나 작년 대비 만족도가 하락했습니다. 특히 '반짝 씨'를 재판매해달라는 요청이 소비자 편지를 지속적으로 건의되고 있는 사항입니다. 더군다나 점유율도 일시적으로 24.7%를 기록했을 뿐 지속적으로 하락 중인 추세입니다."

캐서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 인형이 제작 시엔 분명히 의견 제시하기 기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제시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에 박사의 입가에는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박사님, 저는 이번 리틀 미스터의 새로운 대개편을 요구해요. 최근 시리즈는 너무 단조로웠던 감이 없지 않나 싶어요. 저는 미스터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는 편이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좀 더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로봇의 기계음으로 된 반박을 무시하고 인형은 말을 끝마쳤다.

"맙소사,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마아아안!" 박사는 열렬한 박수를 치며 원래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캐서린, 당장 상장을 가져오게, 내 이 작고 아름다운 인형에게 상을 주어야겠어."

"네, 박사님. 오늘같은 날에 상장이 빠질 수는 없죠!"

캐서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호쾌하게 웃으면서 상장을 가지러 문도 닫지 않은 채로 방 밖으로 호들갑스럽게 달려나갔다.

"음..나는 이건 어떨까 싶네. 미스터를 가지고 새로운 쇼를 계획하는 거지. 미스터들 홍보도 되고, 각 미스터마다 팬이 늘어나는 것도 기대가 될 것 같지 않나? 요즘 인터넷과 텔레비전에만 빠져 살아 장난감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네. 쇼 포맷은 나중에 내가 찬찬히 구상해보지. 어떠나?"

인형이 털실로 만들어진 보드라우면서 또한 거친 손을 천장에 닿으려는 듯이 올리며 대답했다. "동의해요."

로봇은 빨리 윤활유를 가지러 가야 한다고 계속 툴툴대면서 대답했다. "원더봇-3000은 동의한다."

회의가 그렇게 서서히 끝날 무렵, 캐서린이 검은 크레용으로 써진 투박한 상장을 가지고 다시 자동차 모형에서 나왔다.

"박사님! 말씀하신 상장 여기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쓰느라 고생했어요."

"수고했네, 나중에 내가 커피 한 잔 대접하도록 하지."

"박사님도 참, 그건 제 일이랍니다. 제 일을 가로채려 하시다니 장난도 심하세요!"

"이제 상장을 준 후에 회의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말을 끝마친 후 박사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인형에게 상장을 건네주려 하였으나, 인형은 태엽이 이미 다 풀려나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박사는 원더봇-3000에게라도 상장을 건네주려 했지만 제 때 윤활유를 찾지 못한 로봇은 원래부터 그랬었던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박사는 한숨을 몰아쉬고 잠깐 눈을 감았다. 이런 일은 여러번 겪어 보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이상한 것 같았다.

숨을 다시 몇 번 몰아쉬고 감았던 눈을 뜨자 박사는 자신이 회의실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업무실에 앉아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박사는 놀라며 언제나 자신이 부르면 달려올 비서를 불러 보았지만…

"캐서린?"

박사의 귀에 돌아온 건 숨막히는 정적과 고요뿐이었다.

박사는 책상 속 서랍에서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이제 제발 진정해!TM알약을 꺼냈다. 물과 함께 넘어가는 알약은 쓰디썼다. 알약이 목구멍을 넘어 위에 무사히 안착했을 때에야, 박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박사는 의자를 돌려 뒤에 걸려 있는 자신의 어머니의 초상화를 쳐다보았다.

아들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셨던 이사벨 헬가 아나스타샤 파르바티 원더테인먼트 박사 5세.

어머니라면 이런 때엔 어떻게 했을까? 어머니라면………….

박사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을 그 때 갑자기 박사의 머릿속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나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박사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머니?"

"내 아들, 무언가 막히면 내 초상화 뒤를 살펴보거라."

"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웠어요, 어머니."

초상화의 뒤를 조심스레 들춰보자 박사의 발치에 접힌 종이 하나가 툭하고 떨어졌다. 박사는 허리를 굽혀 그 종이를 집어 들고 펼쳐 보았다.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는 몰라도 종이를 본 박사의 얼굴은 그전과는 다른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박사는 무언가 떠오른 듯 자리에 앉아 펜을 들어 아래와 같은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와!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새로운 컬렉션, '뉴 미스터'의 일원이 되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전부 이기고 승리자 씨가 되어 보세요!!

01. 나누기 씨
02. 둥실 씨
03. 아이스크림 씨
04. 박살 씨
05. 눈물 씨
06. 무차별 씨
07. 고혈압 씨
08. 불협화음 씨
09. 행복 양
10. 풍선 씨
11. 똑똑 씨
12. 시체 씨
13. 태양 씨
14. 불행 씨
15. 벌 씨
16. 도마뱀 씨
17. 잠수 씨
18. 독재자 씨
19. 매운맛 씨
20. 박사 씨

"이제 '뉴 미스터'의 생산을 시작하게나."

박사가 말을 끝마치자, 어딘가의 시설에서 새로운 미스터가 될 배아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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