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트리히는 화장실 샤워실에서 나와 세면대로 다가갔다. 밑창이 세게 갈린 신발의 발자국소리가 한걸음 걸을 때마다 벽에 메아리쳤고, 빠르게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이 빈 남자 화장실의 침묵을 깼다. 진정하기 위한 세수를 하고 긴 한숨을 쉰 뒤에,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거울을 통해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그래 나도 알아… 나도 이메일 봤어… 삼 주 후에 잡혀버렸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디트리히는 말을 멈추고 대답을 기다렸지만, 무시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멀… 진짜… 오늘 그란 거 할 생각 읎어, 알긋어? 니한테 수화를 가르친 걸 후회하기 만들지 마레이. 그냥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있으면 안 되긋냐?”
디트리히는 얼굴에 물을 더 끼얹고 검은색 넥타이와 하얀색 옥스퍼드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렸다. 그의 곱슬머리가 거의 수직으로 곤두섰지만, 그게 평소의 상태였으며 대부분의 요원들은 임무 중에 머리카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디트리히는 거울에 비친 멀의 공허한 표정을 계속 보느니 차라리 오자크 연못에서 블루길 낚시를 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너하고 이렇게 대화할 수도 읎어. 왠지 알아? 그 인간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 행동을 눈치 챌 테니께. 그리고 우리가 연례검사 때마다 계속 여그서 있으면, 우리 둘 다 좆되는 것이여.”
그는 대답을 보기 위해 잠시 멈췄다.
“알갔어. 그냥 이번 한 주만 더 버티게 도와주면 약속 시간 전에 전근을 요청헐게. 그러니까 좀 비이봐라, 멀. 어? 잘했어.”
그는 어깨에 걸린 권총집을 정돈한 뒤에 화장실에서 복도로 나왔다. 자기 주변에 있는 멀은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꽤나 빨리 익숙해졌던 행동이었다.)

칼라일은 자신의 재킷을 고쳐 입고 서버실에 들어갔다. 제19기지의 기술 센터는 확실히 인상 깊었고, 칼라일에겐 이건 마법처럼 보였다. 그는 그저 어떤 혼돈이 일어날까 궁금한 마음에 플러그를 뽑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자기보다 더 젋고, 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위해 양보하도록 했다.
해밀턴 박사는 북쪽 벽에서 헐거워진 콘센트를 느긋하게 땜질하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칼라일이 악수를 하기 위해 다가와 앞에 선 것을 알아챘다.
“이사관님,” 해밀턴이 말했다. “서버랙1들의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긴… 음, 핵심 중앙 컴퓨터는 아니지만, 저희 부서를 관장하는 곳이긴 합니다.”
칼라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사. 언제나 그랬지만, 제19기지를 돌아가게 하는 혁신을 절 놀랍게 하는군요.” 해밀턴이 겸손하게 웃었다. “제 사내 통신을 받았을 것 같은데, 맞나요?” 칼라일이 말을 이었다.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얘기하고 싶은 게 무엇이죠?”
“당신의 인공지능 부서에 대한 겁니다. 그 쪽에서의 몇 가지 예비 결과들을 봤는데,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제81기지의 제 기술자들도 비슷한 모델을 설치하는데 관심이 있기도 하고,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기도 했지만…” 칼라일은 말을 멈추고, 이마를 찌푸렸다. “안타깝게도, 몇 가지 매우 미묘한 특징이 그들에게는 좀 낯선 것이더군요.”
“괜찮습니다. 누구와 얘기를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 것 같군요.” 해밀턴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당신이 왜 여기까지 오셨는지는 모르겠네요. 당신은 바쁜 사람 아닙니까. 누군가를 보낼 수도 있지 않나요?”
칼라일은 웃었다. “박사님, 전 새로운 것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게다가 전 다른 일로도 왔어야 했거든요.”
칼라일이 말을 마친 순간에, 디트리히가 서버실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구부정한 자세를 고치고 어떤 놀라움도 내비치지 않으려고 했다. 서버실은 청소부의 사물함만큼 활기찬 곳이었고, 높으신 분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냥 평범한 수요일이기도 했다.
“안녕하쇼.” 디트리히는 두 사람에 평소대로의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 다 로그인 문제로 온 것은 아니죠? 아인가?”
근처에 있던 멀이 한 손을 얼굴에 얹었고, 디트리히는 그 모습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진 않고.” 해밀턴은 재밌어하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자네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네, 러크 요원.”
“러크?” 칼라일이 눈썹을 올렸다. “그게 당신의 호출명은 아니죠?”
“아닙니다. 이건 어, 스코틀랜드식인데… 아버지 쪽이 그짝이라서예. 원래 발음은 M'Lurgh인데, 뭐, 미국인들이 이런 거 발음하는 걸 어려워하더라고예. 처음 들었을 때 다들 그렇게 반응합디다.”
해밀턴은 이상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요. 아무튼, 이사관님께서 제81기지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군.”
디트리히는 해밀턴을 보다가, 칼라일에게 눈길을 돌리고, 박사들 뒤에서 관심을 끌려고 하는 멀을 빠르게 째려봤다.
디트리히는 대답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제가 연구원 마냥 삐약삐약거릴 수도 있긴 허지만, 지는 그럴만한 사람은 못됩니다… 이사관님. 전 그저 괴짜들이 자신들의 주요 프로젝트를 실질적인 도구로 만드는 걸 돕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거시 제 일이라는 거죠. 이해하셨나요?”
칼라일은 웃었다. “차차 알아가겠지만,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 해밀턴 박사님, 괜찮으시다면?”
해밀턴은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데리고 가세요, 이사관님. 제 생각엔 이 이상 연관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칼라일은 옆 방으로 손짓했고, 러크가 들어가자 따라 들어갔다. 그는 문을 닫았고, 두 사람은 회의실에 앉았다.

“러크씨…”
“그냥 디트리히로 부르시면 됩니다.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면예.”
칼라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디트리히 씨. 인공지능 부서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침략적이고 매우 기술적인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들어보고 싶군요.” 그는 의자에 앉아 발로 차서 의자를 밀었다. “어떤 공격적이고, 기술적인 SCP 개체가 격리에서 어떻게든 탈출하여 기지의 중앙 컴퓨터에 들어갔다고 해 봅시다. 그 개체는 기지를 폐쇄하겠다며 협박도 하고, 기지 내 장치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등의 행동들을 할 테죠. 그럼 당신들의 인공지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려 합니까?”
“음…” 디트리히는 잠시 그 문제를 생각했고, 뭐라 해야 할지 생각하며 의자에서 긴장을 풀었다. “우선, 이건 제 부서의 일이 아입니다. 말하자면 전 그들이 서버실에서 나와 현장에 오도록 돕는 역할을 하니까예. 그리고 하나 더, 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인공지능은 진짜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고, 느끼고, 실수도 하죠… 그저 우리보다 빠르게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죠, 그랗지요?” 러크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계속 말했다. “그들은 빠르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보다 빠릅니다… 그리고 가끔씩 일이 시작됨과 동시에 처리하기까지 하죠. 만약 헛간에 불이 났다면,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깁니다. 이해하셨나요?”
칼라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의 경험에 따르면, 지금 저희가 가진 모델만으로도 기지의 하루하루의 일을 처리하는 데 충분하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랗게 만들어진 존재니까예.”
“전투에 관해서는요?”
디트리히는 머뭇거렸다. “전투에 관해서라뇨?”
“괜찮으시다면, 변칙적 위협이 이 세계 어딘가에서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인공지능이 다른 명령 없이 그 위협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공격하고 격리하려면 저희가 어디까지 발전해야할까요?”
“인공지능은 다른 사람들맹키로 훈련을 받아야 헙니다. 스스로 행동 하려면 프로그램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경험시켜야 하고요. 아마… 그짝의 전형적인 바이러스는 레이다에 안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변칙적인 위협은…”
디트리히의 눈은 터치 스크린이 달린 벽에 나타나 수화를 보내는 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칼라일의 뒤를 쏘아봤다. 그가 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기 전에, 러크는 자신이 말을 너무 길게 끊었다는 걸 알았다.
“…예측할 수 없습니다.” 러크가 결론을 내렸다.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고삐 풀린 인공지능을 맹글라면 시간이 쪼매 걸릴겁니다.”
칼라일은 자기 뒤쪽을 잠깐 봤고, 멀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아무거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디트리히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사관 님?” 디트리히가 물었다. “인공지능이 격리해야하는 기라도 있는 겁니꺼?”
칼라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이 이상한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히 지적이긴 했지만, 무언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칼라일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요즘 전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제 기지와 제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서요.”
“다른 프로젝트요?”
“러크 씨-”
“디트리히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디트리히 씨,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있어 당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이곳에서 당신의 전문가들은 얼마나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칼라일은 디트리히의 어깨 너머로 그들 뒤에 있는 서버실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배정되어있는 다른 프로젝트가 무엇입니까?”
“지금요? 이것 밖에 읎습니다. 제가 뮤-13에서 나온 이후로 여러 부서와 실험실들을 전전하긴 했지예. 하지만 실제로는… 모바일 앱과 인공지능에 관련된 일을 저희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원하는 것의 좋은 첫걸음이 되겠지예.”
디트리히는 자신의 표준 보급형 핸드폰을 회의실 책상에 놓았다. “전 이 인공지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사관님. 초반 작업에 참여할 순 없었지만, 제거 조정하고 수정했죠. 그러니까, 제가 알만큼 안다는 거죠. 그랗제, 알렉스?”
핸드폰에 신호음이 울렸고, 생기 넘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 그렇죠!»
칼라일은 호기심을 눈에 품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이건 4세대 시스템이군요, 그렇죠? 알렉산드라 시스템인가요?”
디트리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기 제19기지를 관리하고 있죠. 이제까지 만들어진 인공지능 중 가장 최신이자 최고의 인공지능이죠.”
늙은 박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푸른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의 아바타가 화면 중앙에 있었다. 그녀는 칼라일과 얼굴을 마주치차, 웃었다.
«안녕하세요, 악투스 박사님!» 목소리 합성이라, 이거 괜찮군. 칼라일이 생각했다. «마침내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칼라일이 디트리히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까?”
«그럼요!» 알렉산드라가 빛을 내면서 답했다. «전 이런 기기들에 탑재된 모든 하드웨어들에 들어갈 수 있고, 제가 필요할 때마다 제가 쓰고 싶은 모든 기기들에 접속할 수 있어요. 카메라, 마이크, 레이저-» 그녀가 웃었다. «-아, 레이저는 안되겠네요. 그래도 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환상적이군.” 칼라일이 자기 손 위에 있는 물체를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제81기지의 접근 시스템보다 훨씬 앞서있는 기술이야.”
«워우, 접근이라.» 아바타가 혀를 내빼며 말했다. «소스를 보긴 했는데,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더군요.»
칼라일은 동의의 의미로 눈썹을 들어보였다. “디트리히, 만약 괜찮다면, 가까운 시일에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인공지능과 함께 당신의 일을 계속 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요.”
“지는 적임자가 아입니다, 이사관님. 팔방미인이지만, 특출난 재주는 없죠.” 디트리히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한텐 좀 그란 면이 있습니다. 무시 받는 걸 싫어하지예. 그라서 뮤-13을 나온 걸지도예.” 그는 두드림을 멈췄다. “그렇다면… 제81기지란 말이죠? 그럼 제 주변이 좀 달라지갔네요. 그럼 하죠.”
멀은 변화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의 관계를 눈 앞에 다가온 일 년에 한 번 있는 정신 검사에서 조현병 환자로 검진 받는 걸로 위장해 볼 계획을 생각해봤을 때, 이런 변화는 축복이었다.
“언제 시간이 됩니꺼, 이사관님?” 디트리히가 물었다.
칼라일은 재킷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꼭 제81기지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칼라일이 봉투를 책상 너머의 디트리히에게로 넘겨주면서 말했다. “그리고 전 지금 당장 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