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소경 박사의 화려한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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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변칙예술학부를 뭐라고 보는 거지?"

크리스 연구원은 입을 달싹거렸다. 지금까지 풍소경 부장에게 불려 나간 후 말 그대로 울면서 나온 연구원과 요원이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희는 변칙 예술을 격리하고 보호하며 궁극적으로는 해명을 하고자 하는 사명을 가진 업무 부서입니다. 변칙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변칙적 능력을 갖춘 인간들이 제작한 예술품으로 변칙적인 작업물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술의 특성상 사회적인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재단은 변칙성을 띈 물체 중에서도 변칙예술학부를 따로 두어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풍소경 박사는 입을 벌려 한 마디를 던지면서 크리스 연구원의 말을 막았다. 다행히 크리스 연구원은 한국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저희라니, 저희 부서의 부장인 나까지 왜 비하를 해?"

하지만 크리스 연구원이 망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네 말 대로라면 그냥 예술가들 싹 다 잡아넣으면 되는데 왜 그림이나 모으고 자빠져 있어? 아주 문제의 원인까지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해버리지 그러지?"

풍소경 박사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기회 한 번 더 준다. 네가 뭐하고 있는지 똑바로 말해."

크리스 연구원이 억지로 외운 미학 이론을 떠올리면서 다시 말하기 시작하자, 풍소경 박사는 그의 말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너한테는 여기가 실험실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걸 외워야 알아는 건가?"

"한 번이라도 여기에 오고 가는 예술품을 이해한 적이 있어? 밈이라서 안 봤다 변명하지 말고. 너한테 밈 접종 맞춘 사람이 나니까. 그래, 저기 A동 707호실에 있는 작품, 그거는 뭘 표현한 거 같아?"

알 리가 없다. 살인 충동에 빠진 목상을 왜 알아야 하는가.

"너는 그 옷 주름을 처리해놓은 게 왜 그렇게 화려한지 궁금해 본 적이 없지? 아니, 나는 단지 급소 부위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원한 게 아니잖아. 나름의 예술 공부하겠다고 미학책을 뒤져보았겠지. 그래 봤자 예술가들한테는 헛똑똑이인 거라고…. 잠깐 기다려."

다행히 이름 모를 이사관이 크리스 연구원을 구원했다.

"네, 잠시만요…. 야, 너 이만 가봐라. 다시 또 그따위로 면담하면 진짜 죽을 줄 알고."

크리스 연구원이 문을 닫기 직전 그는 풍소경 부장이 큰 소리로 빼액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여긴 미술관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긴 미술관이 아니란 말입니다!"

풍소경 박사는 충격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그 A동 707호실에 있는 작품을 소장하신다고 집무실이 세련되어 보이실 거 같습니까? 그건 그냥 나무로 된 쓰레기에요!"

풍소경 박사의 강력한 부정에도 수화기 너머 이사관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느낀 점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풍소경 박사는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언젠가 이 예술들을 예술가들에게 돌려준다는, 자신만이 지키는 약속이었다.

"선생님, 예술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맥락을 차지하는 것은 작품의 위치가 아니라 누가 만든 작품이냐는 겁니다. 하…. 대신 경매에 나온 작품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네, 네, 카탈로그에 나온 좋은 작품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넘긴 풍소경 박사는 쓰러지듯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 이사관은 목상을 통에 집어놓고 대충 소파 옆에 놔두면 사무실 분위기가 화려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당연히, 시도때도없이 움직여댈 테니 분위기만 산만해질 것이다. 설마 산만한 분위기와 화려한 분위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또 다른 멍청이였을지도 모르지만…. 여기 재단에서는 그런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아주 중요한 미팅에서 예술품이 사고를 치는 일이 없도록 도와준 거로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약탈자 같은 상부와 멍청한 부하들 사이에서 예술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풍소경 박사뿐이었다. 이제 또 크리스 자식은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서 또 새로운 SCP이자 작품이 들어오면 그걸 연구하겠다고 예술가를 붙잡고 털어대겠지. 그렇게 예술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말이다.

이사관이라는 것은 예술 시장의 돼지일 뿐이다. 물론 풍소경 자신도 상관을 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잘 보이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돼지들이 여물을 처먹어야 시장이 유지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풍소경 부장은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명천구에서 구해온 이 조각상이 왜 격리함으로써 보존할 가치가 존재하는 개체인지 재단에 이해시켜야 했다. 그래야 예술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풍소경 이 새끼는 아주 예술을 제 혼자 다 처먹으려고 해!"

깡소주가 들어가자 상용은 욕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상용이 명천구에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술버릇이었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서 대답하듯이 또 다른 욕이 튀어나왔다.

"풍소경 이 죽일 놈!"

사실은 절반 정도 되는 명천구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야, 상용아, 그 새끼 명천구 시절에 만들어놓은 작품 아직도 남겨놓은 거 아냐?"

"그 골목길에 있는 그거? 당연히 알지. 수찬이 걘 좀 친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삼류는 아니지만 일류도 절대로 아니고 딱 이류의 솜씨야."

상용은 시뻘게진 얼굴로 친구들 앞에서 풍소경의 작품을 비평하기 시작했다.

"표현은 좋아. 하지만 온통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거야. 걔는 미술가라기보다는 표현 기술자에 어울리는 인간이라니까? 그 새끼 뇌를 탁하고 치면 온갖 기법이 쏟아져나올걸. 하지만 거기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는 하나도 없는 거야.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상용은 얼마 전에 직접 풍소경을 직접 만난 기억을 떠올리면서 씩 웃었다. 이미 그 자리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서 풍소경이 나가자마자 신 나게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나도 얼마 전에 걔한테 제대로 후려쳐서 작품 하나 팔아봐서 알게 된 건데, 걔는 예술을 아예 못 느끼는 게 아니더라고? 오히려 감동을 존나 쉽게 받는 타입이었어. 아마 그러니까 예술을 시작한 모양이야."

"걔도 참 고생이겠다. 능력도 안되면서 낑낑거리다가 안돼서 재단으로 튄 거 아니야?"

"시바, 남의 돈으로 예술품 수집하고 다니면 예술 할 필요도 없는데 뭐가 불쌍해."

"근데 풍소경한테 뭘 판 거야?"

친구의 질문에 상용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별로 기교를 부린 건 아니었고, 생과 사가 딱 붙어있다는 걸 좀 뿜어내는 듯이 표현하는 조각상이었어. 나뭇값만 받아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뭐 넉넉하게 받아서 오늘 이렇게 소주는 사줄 돈은 얻었다는 말씀."

"안주는 제일 싼 거 시켜놓고."


"박사님은…. 참 화려하게 일하시네요."

예술작품이자, SCP인 살인 욕구를 가진 목상과 면담하기 위해 변칙예술학부에 오게 된 스완 요원의 감상이었다.

"비꼬는 거 아니에요. 보통 박사님들은 저에게 정말 필요한 일만 어쩔 수 없이 맡긴다는 티를 엄청나게 내시는데, 풍소경 박사님은 업무를 뻗쳐나가시고 또 그걸 전부 해내시잖아요. 처음 보는 요원에게 프레젠테이션도 해주시는 것처럼요."

"면담 분과에서 온 요원 맞지? 처음 보는 박사님께 너무 아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어차피 이 사무실에 나가면 좋은 얘기 하지도 않을 것도 알고 있고."

"아뇨,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사슴대에서 취미로 미니어처 육공예하던 룸메이트가 생각나서요. 걔는 항상 작업을 기숙사 방 안에서 했는데, 당연히 한창 작업을 할 때면 방 안이 난리가 났거든요. 게다가 옆 방에는 자기 몸으로 육공예를 하느라 고기를 못 먹는 친구가 있어서 고기 냄새만 나면 미친 듯이 신경질을 냈어요."

"자넨 그냥 눈 귀 막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어."

"사실 저는 작품을 봐도 느끼기는커녕 이해할 필요조차 알지 못하는 막눈에 막 귀거든요. 그냥 저는 얘가 뭐 하는지만 지켜본 거였어요. 아무튼, 걔는 오히려 그 채식 수행하던 친구를 보고 예술을 이해 못 한다고 자기가 성을 내더라고요. 결국에는 서로 크게 붙어서 서로 육공예 하던 게 둘 다 완전히 망가졌는데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영감을 받았다고 같이 육공예 동아리에 들어가서 더 크게 일을 벌이게 되었어요. 하나는 지금 문학 하고요. 나머지 하나는 얼마 전에 개인전을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네는 그 룸메이트의 행동을 이해 못 했고 결국에는 자네에게는 무의미한 사건이었어."

"저는 이해 못 하니까, 그런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항상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처음 보고서를 읽었을 때부터 A동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개체가 죽어있는 건지 살아있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박사님의 작품 해설을 듣고 나서야 처음부터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고, 오히려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박사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실수를 했겠죠."

"지금 나에게 칭찬을 해준 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나에 대해 욕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거야. 나에 대해 칭찬 탓에 자네가 위선자로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자네의 잘못은 아니야. 자네에게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지금 나의 행위에서 타인의 평가는 의미가 없거든."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예술의 의미와 박사님의 생각하신 의미가 달랐던 것 같아요."

면담 보고서 초안을 제출하고서 사무실에 나가는 스완 요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풍소경 박사는 자신이 어디서 실수했는지 잠깐 생각을 했지만, 또다시 걸려오는 그 신경질 나는 전화 때문에 사고가 끊기고 말았다.


풍소경은 빈 캔버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변의 연구원들은 또 무슨 변칙 개체인지 수군거리면서 풍소경 박사 주변을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오직 나무와 직물로만 이루어진 정상적인 사물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물들에서 예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니, 연구원들의 생각도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풍소경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업무만 보느라 들어있는 이미지나 아이디어는 충분했다. 단지 그려내기만 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그려내기만….

정말 생각 없이 그리기만 하면 예술이 탄생하는 거였나? 풍소경의 머리 속에 담긴 이미지들은 회백색의 시멘트로 지어진 격리실, 그 격리실과 잘 구분되지 않는 연구실, 그리고 그 통들 속에 들어있는 오브제들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 없이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말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린다면, 풍소경은 자신의 그림은 전혀 빛을 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 것이다. 풍소경의 깊은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을 가진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차가운 메커니즘 뿐만이 있었다. 풍소경은 항상 그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작품을 예술로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풍소경은 결국 한숨을 쉬고서 캔버스를 치웠다. 언젠가는 풍소경도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하지만 풍소경은 펜을 놓지는 않았다. 풍소경은 항상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 앞에 누군가 가로막든 혹은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든 풍소경은 자기 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풍소경은 자신의 행위가 언젠가 꽃피기를 바랐다. 가능하다면 화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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