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평가: +2+x

"결국 이 곳까지 왔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청년이 한 격리 기지의 뜰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건물의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음색만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말했다.

"철이 들고 제 얘기를 듣게 되면서, 어떻게든 당신을 한 번쯤은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시가 심했지만 요즘 세대에 그런 게 문제는 아니지요."

그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허하게 울려퍼진 음파는 뜰의 벽에 매달린 식물에 닿았다 힘없이 튕겨져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청년에게는 포기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한 번 셔츠에 닦고 이어서 말했다.

"이 바닥이 인재 뽑기 힘들어서 그런것도 있네요. 대부분 인맥으로 들어오잖아요, 여기는. 임학박사 학위 따고 나서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보러 올 수 있을까, 혹시 일하게 된다 하더라도 일부러 다른 기지에 전근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제 의지 표명이 어느정도는 먹힌 모양입니다. 아니면 양아버지가 힘을 써주셨을 수도 있죠. 이제는 기지 관리자시니까요. 하지만."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떻게든 왔습니다. 해냈습니다. 이루고 나니 조금은 허전하네요. 악착스럽게 달려왔는데, 목표를 손에 넣고 나니 마땅히 느껴져야 할 충만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그랬구나'. 같은 느낌만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벽에 매달린 식물은 답이 없었다. 식물로 봐야할 지, 동물로 봐야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단백질의 집합체는 그저 말없이 그의 관리자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새롭게 부임한 격리 책임자를 향해 뻗은 가지는 한치의 미동도 없다. 어찌 보면 그는 무언가를 인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신임 책임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사진도 없습니다. 친어머님은… 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D계급이란 그런 법인 것 같으니까요. 전 그 분이 사회에서 어떤 죄를 저지르셨는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가끔은 슬픕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벽에 달라붙은 무언가에 뭘 겹쳐놓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35년동안 인내하며 살아온 그 공백에 다시 한번 짓눌리고 있었다. 묵묵히 그를 지켜보는 가지의 끝에는 안타까움이 살짝 비쳤다.

"알고는 있었습니까?"

식물이 대답할 리 없다. 말 없는 눈물을 깬 건 다시 한 번 책임자였다.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반복해서 그의 비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전 왜 이렇습니까? 당신은 왜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이내 땅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는 마지막 질문을 쥐어짰다.

"전 인간입니까?"

폐쇄된 뜰에 부는 바람이 가지를 미약하게나마 흔들었다. 바람을 타고 손가락이 하늘에 날렸다. 한 때 소년이었던 사람은 수십, 수백년, 어쩌면 그 이상을 반복해서 살아온 나무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그의 존재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지난 15년동안 배워온 수많은 지식들과, 그가 숨겨왔던 지식들과, 가장 친했던 사람들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의 양아버지가 그에게 말해준 그 말을 떠올렸다. 그 모든 것은 그가 한번 더 참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입양된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었다.

"면담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격리 책임자는 표정을 수습한 채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감정의 변화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천천히 그의 발을 움직여 신체를 회전시켰다. 안경 렌즈는 깔끔했지만 한 구석에는 눈물이 약간 남아 있었다.

"CCTV를 꺼 두라 지시했으니 직원들이 걱정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만 가 봐야 겠네요. 잘 지내십시오."

식물은 그가 지난 세월동안 그래왔듯 뜰 안에 조용히 서 있었다. 바람에 떨리던 손바닥도 어느 새인가 떨림을 멈추고 있었다. 땅 위에 드러난 뿌리의 끝이 잠시동안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그것에게 신선한 양분을 공급하던 심장은 빨라진 심박수를 서서히 원래대로 복귀했다. 식물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채, 격리 책임자는 잠시 멈춰서서 끝내 그 단어를 말하고야 말았다.

"아버지."

나가는 그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에 로버트 프랜디스 Jr.이라는 이름이 살짝 비쳤다 사라졌다. 남자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시야에서 없어졌다. 꺼져 있던 CCTV가 다시 돌아가기 전, 나무의 손가락 끝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 흔적은 기이하게도 오랜 시간동안 마르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에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