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분노의 경부고속도로

 
 
 2011년 3월 7일, 그 날은 옅은 안개가 계속해서 한국의 하늘을 흐리고 있는 날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언제나 바다안개를 안고 살아가는 남도의 항구도시 무진도 여느때보다 짙은 안개가 해안과 마을을 가리우고 있었다. 그 안개 사이로 작은 등불을 켠 어선 한 척이 선착장으로 다가갔다. 중국 칭다오에서부터 밀항해 온 이 배는 잔잔한 연안을 가르며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부두에 들어섰다. 이바노프는 짧지 않았던 항해의 피로를 뒤로하고 선실을 나섰다. 그들이 사로잡은 소년 요원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로.
 


 
 비슷한 시간, 경찰 승합차로 위장한 재단 호송차량 두 대가 한국사령부 중앙기지 게이트를 나섰다. D계급 인원 세 명과 서다인 박사의 연구팀을 제159K무장격리기지로 이송하기로 한 이 스타렉스 승합차량들은 호위하는 위장 경찰차량 쏘나타 한 대와 함께 노을에 물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용인시로 향했다. 선도차량에 수용된 유리는 기억소거를 받은 후유증인지 약간 멍한 상태로 얌전히 호송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20여 분 동안 조용히 고속도로를 달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주행이었다. 이동하는 거리도 멀지 않고, 중요하거나 위험한 개체를 옮기는 것도 아니기에 서다인 박사를 제외한 인원들은 별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인은 계속해서 불길한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위험부담이 상당한 내부보안부 작전에 차출된 것이 긴장되어서기도 했지만, 앞서가는 차량에 갇혀있는 여자의 존재가 지금만큼은 그들에게 있어서 웬만한 유클리드 등급 개체들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이송 계획 자체에 반대했다. 적대 단체가 철저한 뒷막음을 위해 유리 연구원을 끝까지 노릴 가능성을 낮게 볼 수 없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엔트로피를 넘어서', 흔히 B.E로 불리는 이 단체는 이미 수십년 동안 재단과 갈등을 빚어왔을 뿐 아니라, 10여년 전엔 재단과 세계 오컬트 연합을 상대로 거의 전면전에 가까운 대대적인 전투를 벌인 적도 있는 조직이었다. 그들이 정말로 내부보안부까지 기만해가며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면, 기껏 안전하게 확보한 유리를 다른 기지로 이송하는 것은 자칫 도중에 탈취를 허용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한국은 최근 B.E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지역이라 더욱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두익 박사의 판단은 달랐다. 그 역시 B.E의 공격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송을 서둘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아무리 변칙개체도 별로 없는 행정기지에 가깝다 해도 사령부 중앙기지는 유능한 인재들과 핵심 보안사항이 가득한 한국사령부의 최중요 거점이다. 그러나 격리 개체의 중요도가 낮다는 것은 예산 문제로 물리적 보안 태세가 비교적 약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적대 단체에게 공격을 허용하거나 피해를 입는 상황은 절대로 피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B.E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일 수 있는 그녀를 하루빨리 안전한 무장격리기지로 보내는 것이 기지와 유리 모두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두익은 판단했다. 대신 차량 유동량이 늘어나 도로상 급습이 힘든 오후 시간대에 경찰 위장차량까지 동원해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이송을 끝마치자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다인도 그 판단에 수긍했기에 지금 이렇게 이송 작전이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녀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운 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평소라면 퇴근하는 차량으로 가득했을 월요일 오후 7시의 경부고속도로 성남구간은 오늘따라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다인은 묘한 한산함에 불길함을 느꼈지만, 이동 시간이 단축되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자고 되뇌며 부디 도착할 때 까지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망을 무참히 깨트리는 긴급 연락이 휴대용 메신저에 도착했다.

『쯔산 요원 연락 두절! 사령부 전 인원 경계태세 발령!』

 우연이 장난을 부리는 것처럼, 바로 그 순간 파란 포인트가 들어간 회색 랜드로버 차량 두 대가 고속으로 호송 대열에 접근했다. 재단 차량들은 그들을 뿌리치기 위해 속력을 냈지만 랜드로버는 호송차량을 멈춰세울 기세로 다시 거칠게 붙어댔다. 경호차량이 범퍼를 위태롭게 부딪혀가며 접근을 막으려 했지만 체급이 다른 탓에 효과가 없었다. 다인은 지체없이 무전기를 뽑아들고 지시를 내렸다.

"적대 단체의 기습이다! 전 차량, 무기 사용과 응전을 허가한다. 단 선도차량은 상황을 무시하고 최고 속력으로 교전 구간을 이탈하라. 화물을 목적지까지 반드시 사수하라!"
"무슨 일입니까, 팀장님?!"
"말했잖아, 기습이라고! 당장 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선도차에게 길을 터 줘!"

 곧 다인의 차량이 경광등과 사이렌을 울리며 랜드로버와 선도차량 사이로 거칠게 머리를 들이밀었고, 랜드로버는 2차선과 3차선을 넘나들며 충돌을 피했다. 1차선을 달리고 있던 선도차량은 마찬가지로 사이렌을 켜고선 다인의 지시대로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뒤따르던 두번째 랜드로버가 4차선으로 치고 나가며 선도차량을 따라갔다. 유리를 비롯한 D계급 인원들은 영문을 모른 채 덜컹거리는 선도 호송차 뒷칸에서 흔들림을 견디고 있었다.

 추격전은 점점 더 격렬해져갔다. 두 대의 랜드로버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각각 선도차량과 후위차량에 한 대 씩 달라붙고 있었다. 호위차량이 선도차량을 추격하는 랜드로버를 쫓아가 앞을 막아선 채 창 밖으로 총을 겨누자, 랜드로버는 아예 호위차량의 후미를 치어버렸다. 좌후방을 강하게 들이받힌 호위차량은 균형을 잃고 몇 바퀴를 돈 뒤 우측 가드레일에 충돌하며 멈춰섰다. 수적 열세를 만회한 습격자들은 다시 호송차량들에 바짝 따라붙었다. 제159K기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민간 차량이 널려있는 고속도로에 역주행으로 진입해올 순 없으니 실질적으론 기껏해야 출구에 차단선을 치는 것 이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스스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한 다인은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하려 애쓰면서, 글로브박스에서 리볼버를 꺼내어 장전했다. 필수 사격 훈련은 받았지만 자신은 없었다. 창문을 열며 다인이 운전석에 소리쳤다.

 "브레이크 밟아! 거리를 만들어!"

 다인의 차량이 급감속하자 랜드로버는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주저없이 그 앞으로 차선을 옮겼다. 다인은 창 밖으로 몸을 기울여 내민 채 랜드로버의 타이어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겨댔다. 하지만 총알은 애꿎은 트렁크 도어만 몇 방 맞췄을 뿐, 명중탄을 내지는 못했다. 랜드로버 운전자는 총성에 놀란 듯 했지만, 총격이 멎자 금세 다시 호송차량에 뒷범퍼를 들이대며 주행을 방해했다. 후위차량은 따돌려내려고 애썼지만 훼방 때문에 속력을 높일 수가 없었다. 다인이 실린더에 탄을 채워넣던 그때 선도차량에서 다급한 무선이 도착했다.

"서 박사님! 출구를 타지 못했습니다. 목적지를 제133K기지로 변경하겠습니다!"
"제길! …알았다. 우리는 지금 따라잡기 곤란하다. 상황을 더 보고해라!"
"좋지 않습니다. 거리가 많이 좁혀졌습니- 뭐야 이건?! 콜록콜록!"
"무슨 일이야?! 이봐!"

 다인이 급하게 외쳤지만 답이 없었다. 호송관이 미처 보고를 마치기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했다. 다인이 앞을 가로막는 랜드로버 너머를 애써 내다보자, 수상쩍은 녹색 연막이 저 멀리에서 뭉게뭉게 피어르고 있었다. 그 순간 랜드로버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고, 다인의 차량은 손쓸 새도 없이 그대로 랜드로버와 충돌하고 말았다.

 강한 충격이 탑승자들의 몸을 덮쳤다. 다인은 자신의 고통보다도 선도차량이 걱정되어 진정할 수 없었다. 좌석벨트를 풀어제끼고 뛰어내리듯 차에서 내린 그녀는 리볼버를 단단히 쥐고 한동안 정신없이 달렸지만, 녹색 연막에 휩싸인 선도차량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멀리에 있었다.

 "…젠장!"

 다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급작스런 상황에 고속도로 출구에서 차단선을 지키고 있던 차량과 병력이 다급히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다인은 허망하게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늦었군."

 안개와 어둠에 휩싸여 음산함을 자아내는 무진항의 뒷골목에서, 이바노프는 뒤늦게 합류한 일행들을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 중 하나인 정이 로켓 런처를 어깨에 멘 채 대꾸했다.

"아직 겨우 11시 반 조금 넘었다고. 추격을 피하려고 차까지 바꿔 타면서 최대한 빠르게 온거야, 새꺄."
"그래서, 작전은 성공한 거겠지?"
"물론. 이걸로 제압용 수면 연막탄을 먹여줬지. 그거 정말 물건이더군. 연구 세포에서 자신만만하게 자랑할 만 해."
"여자는 어디 있나?"

 정은 말없이 턱으로 자신들이 타고 온 미니버스를 가리켜보였다. 이바노프는 두말없이 차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유리는 꽁꽁 묶이고 입이 테이프로 봉해진 채 뒷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확인한 이바노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위로 음흉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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