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중앙기지의 아침

 
 
 "유리 수사관, 좋은 아침입니다."
 "아, 브릴러 박사님."

 소명 절차를 마치고 복도의 벤치에 앉아있던 유리에게 브릴러가 반갑게 인사했다. 유리도 그를 보자 기쁘게 웃으며 답했다. 지난 사건에서 함께 고생한 둘은 지난 주에 처음 만난 사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친밀해져 있었다. 자판기 커피 두 개를 뽑아온 브릴러가 유리에게 하나를 건넸다.

 "일이 잘 풀린 것 같던데요. 축하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진범이 밝혀져서 그녀의 혐의는 순식간에 완전히 벗겨졌고, 이제 형식적인 최종 절차까지 끝마친 참이었다. 전해들은 소식에 의하면 둘이 필사적으로 되찾은 자료 덕분에 제리코 박사 역시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리는 커피를 받아들며 감사를 전했다.

"다 박사님 덕분이죠. 기꺼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흠, 아닙니다. 그나저나, 한국 사령부에 남겠다고 하셨면서요? 내부보안부도 그만두고."

 그녀의 감사 인사를 피하듯이, 브릴러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화제를 바꿨다.

"네. …50기지에는 그 사람과의 기억이 너무 많이 새겨져 있어서요. 이렇게 어머니의 나라에 오게 된 것도 무언가의 인연이겠죠. 이곳에서 현장요원으로 다시 한 번 시작해보려고 해요."
"현장요원이요?"
"뮤-39에서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어요. 내부보안부 사직 절차가 끝나면, 곧 무진으로 내려갈 거에요."
"그렇군요…"

 유리는 그렇게 말하곤 커피를 한모금 홀짝 들이켰다. 따뜻한 커피가 몸을 진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며 옆에서 초조하게 종이컵을 비운 브릴러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유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유리, 헤어지기 전에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네. 말씀하세요."
"난… 난 당신에게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

 유리는 브릴러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날 당신을 구하러 가겠다 했지만, 내 상사는 내가 나 자신을 구하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옳아요. 난 내 공허한 죄책감을 메우려는 알량한 동기로 움직였습니다. 일전에 동료들과 죽음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친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길 바랐던 겁니다. 그 날의 당신의 눈빛은… 그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박사님에 대해서, 서아인 행정관님이 말해주셨어요."
"…"
"모든 것이 걸린 순간에도,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당신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난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
"…자책하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난 당신 덕분에 구원받았는걸요."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브릴러를 꼭 안아주면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브릴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려 두 눈을 꼭 감았다. 둘은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
"말했잖아요. 제가 더 고맙다고…"
"…난 곧 기억소거를 받을 시간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당신까지, 잊어버리게 될까요?"
"서로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분명."

 유리의 말에 브릴러는 눈물이 맺혀 엉망이 된 얼굴로 활짝 웃어보였다. 둘은 포옹을 풀고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다시 만나요, 유리 요원."
"그때까지 잘 지내요, 브릴러 박사님."

 2011년 3월 10일, 그날은 청명한 하늘 속에서 봄빛 햇살이 비추며 그들이 걸어갈 앞날을 조용히 축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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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자네답지 않은데."
"면목없습니다, 회장님."

 노인의 질타에 중년 신사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에 동요를 드러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노인은 잠시 혀를 차며 넓은 홀을 거닐었다. 그는 상황을 정리하듯이 득실을 짚어 그의 충실한 직속 부하에게 상기시켰다.

"철저한 실패로군. 잠입 요원들과 밀수 총기까지 전부 잃었어. 그렇게 우리 패를 다 내보여준 채 얻은 것이라곤 없이 재단의 심기만 건드리고 끝난 셈이 되었으니."
"교전 세포와 잠입 세포를 대기시키겠습니다."
"그래… 이번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직원들은 여전히 신뢰할 가치가 있다. 자네도 말이야."
"영광입니다."

 윌은 그제야 평소의 표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굳이 그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사항을 입 밖으로 꺼내어 그의 경각심을 더 세게 일깨웠다.

"기억하게. 다음에도 실패한다면… 나로서도 중대한 각오를 할 수 밖에 없네."
"명심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다신 없을 것입니다, 회장님."
"좋다. 그러면 우리 전 세포조직에게 전투 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한다."

 노인, 베르나르 엥엘베르트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두 번째 전쟁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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