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Animato(활기차게)

모든 일은 시작부터 무언가 삐걱거렸다.

그의 기억에서 지워진 부분,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는 1985년에 있었던 일뿐이었다. 카에스틴은 지금 자기의 이력을 열람해보고 있었다. 항목은 몇 개 되지도 않지만.

██████████ 사건으로 ██████의 AWCY 세력이 초토화된 직후 재단에 포섭됨.

1985년에 있었던 일은 그게 다였다. 도대체 저걸 가려놓은 이유가 뭐지? 왜 달랑 저거만 적어놓은 이유는 뭐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저 이력보다는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최소한 블록으로 가려진 장소는 알고 있었고, 그 곳이 그의 꿈에 나오는 곳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카에스틴은 저 문장의 뒷부분, AWCY 세력이 초토화되었다는 데에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틀림없이 무언가 작전이 진행되었거나, 어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재단에도 당연히 그 기록이 있겠지.

그는 컴퓨터에 그 장소를 쳤다. 잠시 윙 하는 소리가 났고, 모니터에 검색 결과가 뜨기 시작했다. C-85I0358, C-85I0321, C-85I1234… 그는 ‘C’로 시작하는 문서들은 굳이 클릭해 보지도 않았다. 재단의 문서 분류 체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앞의 두 숫자는 연도, ‘I’는 정보국을 의미한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C는… Classified. 기밀. 보안 등급이 2등급에 불과한 그가 열람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C-85I0231, C-85I2345… 문서명은 계속 이어졌다. C가 붙어있지 않은 항목은 두 개였다. ‘SCP-984-KO’와 U-12380E3. SCP라고? 그럼 뭔가 확실히 수상쩍은 사건이 있긴 했나보군. 그러나 그 이름을 클릭했을 때, 뜨는 것은 경고창뿐이었다.

5등급 열람 권한 필요. 보안 등급 미달.

5등급? 카에스틴은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면 이건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일일지도 몰랐다. 그의 꿈 속에 나오는 여자가 누구인지 찾겠다고 나서서는 기밀들을 수도 없이 쑤셔대는 게 아닌지도. 머뭇거리다가, 그는 마지막 문서 U-12380E3을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문서가 뜨는 것 같았다. 로딩이 끝났을 때, 카에스틴은 마우스를 모니터에 집어던져 버렸다.

죄송합니다. 전산화되지 않은 자료입니다. 문서의 현 보관 장소가 아래에 표시됩니다. 아래 장소를 방문하여 열람하십시오. 필요 보안 등급: 0등급
보관 장소: 제3기록보관소 분관
담당자 확인: L.H.Sein
Code: Unavailable-12380-Evidence-3

빌어먹을.


제3기록보관소를 찾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록보관소는 엄밀히 말하면 독립된 부서이고 따로 소장도 있지만, 과학부가 넘기는 보고서에 올라가지 못한 실험 기록들, 부록들, 감시 기록들을 처리하기에도 허덕였고 정보국이나 내부 보안부는 기록보관소는 정보유출의 우려가 크다고 자기네 부서 밑으로 집어넣어야 한다고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그 입지에 걸맞게, 제3기록보관소의 건물부터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진짜 작네.”

카에스틴이 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렸다. 주차장은 달랑 네 칸뿐이었고 건물도 일층짜리 건물에 불과했다. 로비로 들어서자, 그런 기분은 더더욱 심해졌다. 건물 안에 있는 데스크에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가 다가가자, 그 여자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3기록보관소 분관 담당 사서 자인입니다. 여긴 무슨 일이시죠? 누구시죠? 혹시 드디어 저한테도 후임이라는 게 생긴 건가요?”

설마요. “아니, 전 분류번호 U인 문서를 열람하러 왔는데요.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으니 여기서 보라는군요.”

그 여자는 의자에 앉은 채로 쭉 움직였다. 바퀴 달린 의자는 쭉 움직였고 데스크의 반대쪽 끝에 닿자, 자판에 손을 올려놓았다. “문서 코드가 어떻게 되죠?”

그는 U-12380E3이라는 코드를 자인이 입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컴퓨터가 느린 건지, 아니면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로딩 화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카에스틴은 잠시 공상에 빠졌다. 설마 여기서는 막 제9기록보관소 지하 6층 데이터뱅크 같은 곳으로 가라고 뜨는 건 아니겠지… 그 때, 자인이 손뼉을 쳤다. “아하!”

그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뭐죠?”

“문서 코드가 Unavailable-12380-Evidence-3이군요. 그러니까, 비전산화 문서 12380번의 증거 3번이라는 뜻이죠.”

“어… 다행이군요. 열람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따라오세요.”

여자는 데스크에서 걸어 나와 뒤쪽의 문 하나로 다가갔다. 문 옆의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탔고, 여자가 버튼을 조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카에스틴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여긴 1층 건물 아닌가요? 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오, 지하라, 당연한 건가. 그들 앞에는 거대한 서가들이 끝도 없이 보였다. 자인은 능숙하게 그들 중 하나로 들어갔고, 태그된 이름표를 따라 문서들의 미로를 누볐다. 곧 U-12380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칸에 멈춰섰을 때, 카에스틴은 당황했다. 거기에 있는 거라고는 사진 몇 장뿐이었다.

“이게 뭐죠? 증거물이라면서요?”

“어…증거 코드가 붙어있으면 전부 폐기해요. 오래된 문서부터. 지금은 4만 번대 이전 증거는 전부 폐기했어요. 문서를 저장하기에도 벅차서 관리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어서. 저는 U-39485E9, 그러니까 푸아그라 한 접시를 증거물이라고 받은 적도 있어요. 맛있었는데.”

자인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올라시 국장에게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보시다시피 폐기 전에 그 물품을 사진으로 찍어놔요. 초고화질로.”

카에스틴은 사진들을 집어들었다. 자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사진에는 몇 가지 문서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하나는 공연 팜플렛이었다. 불에 군데군데 타서 모든 글씨를 볼 수는 없었지만, 우아한 글씨체로 K.Brome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사진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뒤에서 자인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름이 뭐죠? 나이는요? 아직 이름도 못 들었네요. 제가 너무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여기 열람자가 오는 게 그렇게 많은 일이 아니어서.”

“카에스틴이요. 62년생이고.” 그가 사진에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연주회에서 그의 순서는 세 번째였다. 작곡한 곡인지, 아니면 지휘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지금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의 꿈은 3악장이 시작할 때가 시점이었고. 즉 첫 번째 곡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객석에 앉아 있었을까? 그 여자는 왜 도망치라고 했을까? SCP가 관련된 일이야. 무언가 변칙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브람스의 교향곡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두 번째 곡. 카에스틴은 그 부분을 바라보았다. Miss. O.J의 ‘의지의 승리’. 곡 옆 설명에는 작게 마이크만 가지고 진행되는 새로운 현대음악의 지평을 열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Miss. O.J.라.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데. 뒤에서 자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카에스틴? 카에스틴?”

“무슨 일이죠?”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제 말 듣고 있어요? 비전산화된 문서는 대개 정말 중요하지 않은 문서이거나, 아니면 너무 중요해서 전산화할 수 없는 문서죠. 그리고 정보국 소속인 당신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 집중해서 찾아보는 걸 보니, 후자가 들어맞는 것 같은데요.”

“내가 정보국 소속인 건 어떻게 알았죠?”

“여기 있는 컴퓨터로 잠깐 검색을 해 보았죠. 문서 분류 코드로 검색하는 알고리즘은, 문서의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을 키워드로 지정해서 그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문서를 나오게 하는 게 기본적인 틀이죠. 이 문서에 걸려 있는 키워드는 딱 하나, 지명 하나네요. 그리고 그 지명을 검색하니까 나오는 건 거의 정보국 파일들이고. 그러니 뻔하죠.” 자인이 다시 그가 있는 서가로 돌아오며 줄줄줄 읊었다.

이 사서는 생각했던 것만큼 허술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호오. 재단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는 데에는 그보다 나을지도 몰랐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좋아요… 저는 지금 어떤 여자를 찾고 있어요. 꿈 속의 여자라고 해야 하나.” 카에스틴은 꿈에 대해 말했다. 브람스 교향곡 3번, 초록색 눈, 갈색 머리카락, “도망쳐요”, 그리고 폭발까지. 자인은 아무 말 없이 그 얘기를 들었다. 그가 얘기를 끝냈을 때, 자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로맨스군요.”

“아니에요!” 그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기는 뭘. 이게 로맨스가 아니면 뭐라는 거에요.” 자인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보죠. 일단 당신이 보고 있는 건 Ms. O.J라는 이름이군요. 아마 그 여자가 당신의 여자인가 보죠?”

“음…잘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건 얼굴뿐이에요.”

“그럼 이 여자가 누군지 찾아야겠군요. 어디 보자… O.J라는 이름만 가지고 누군가를 찾는 건 불가능하죠. 다른 것도 있을 텐데, 목록 하나군요. 관객 명단이네요.” 자인이 다음 사진을 그의 손에서 빼내며 말했다. “와우… 화려한 명단인데요. UN 주재 미 대사에, 국제 분야의 온갖 관료들은 다 있군요. 이만한 데에서 연주를 할 정도면 꽤나 유명한 사람일 것 같은데. 재단의 고위 인물도 있고. 여기서 폭발이 생겼다면, 뉴스에도 기록이 있을 테고, 우리 데이터베이스에도 수많은 기록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요. 찾아봐야겠죠?”

그들은 서가 바깥쪽에 놓인 컴퓨터로 다가갔다. 책상에는 PC 세트 하나와 전화기, 텅 빈 커피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인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흠. 아무 것도 없군요. ‘1985년, 미스 O.J’로 검색해 보아도 아무 결과도 뜨지 않는데. 그렇다면 보나마나 우리의 좋으신 재단이 무언가 기억 소거제를 이용한 공작을 벌였다던가 했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되면, 저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제 보안 등급은 0등급이어서.”

“0등급이요?”

“우리 사서들은 옛날 정보들, 정식 SCP 보고서에 올라가지 못한 정보들, 올라가더라도 ‘정보 요원의 첩보를 통해 확보하게 되었다.’라는 한 줄로 축약된 것 속에 숨어 있는 정보들을 접할 수 있죠. 그런 우리들이 최신의 정식 정보까지 접할 수 있다면…” 자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꽤나 위험할 것 같네요.”

“그렇군요. 그래도 뭐 쓸 만한 충고 같은 건 있겠죠?”

“아마 이 O.J라는 사람은 재단과 연관이 있을 거에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폭발이 일어난다는 걸 전혀 알리거나 하지 않았고, 그 폭발로 피해를 입을 대상이 거물들이라는 걸 고려해 볼 때, 아마 이 여자는 요주의 단체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아요.”

“요주의 단체의 인원이라…AWCY가 가장 가능성 있겠군요. 예술이라면 그 쪽이니까.”

“그렇겠죠, 아마.” 자인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당신은 재단 소속이잖아요. 이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카에스틴은 천천히 입술을 씹었다. “다시 찾아올게요, 자인. 나중에 또 봐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카에스틴? 내 질문에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글쎄요…어쩌면 당신 말대로 로맨스여서 그런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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