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 이런 부탁을 했던 것은 아마 내가 유명한 사기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저 사기라는 것은 범죄의 꽃이요,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수많은 요소가 첨가되기 마련이다. 화가가 풍경화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내가 빚어내는 작품은 무관심이나 유려한 언변같은 것들을 섞어 그려낸 한 편의 그림이었다. 이 예술을 하는 작가들 중에서도, 나는 특별히 잘 나가는 작가였다. 미켈란젤로니 피카소니 하는 거장들에는 비교할 수 없더라도 어디 대학교의 미술 교수정도는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그림을 그려내다 그를 만났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당당히 볼 수 있으려면 그가 바라보는 대상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유명한 사기꾼이었듯이, 그는 유명한 허풍쟁이었다. 그는 어느정도 알려진 살인마의 누명을 자발적으로 쓴 적이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주눅들지 않고 마주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와 나는 수배되었다는 점에서 공평했으니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면, 그는 세간에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혹시 여러분들이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몰라도, 무진에서 경찰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던 사람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대생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다, 덜컥 죽어버린 사람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진범이 잡히자마자 죽어버려 사건이 상당히 꼬여버리기도 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내가 포장마차에서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원한다면 그런 흉악한 살인마의 누명을 쓸 정도로 수완 있는 허풍쟁이였는데 어찌하여 그런 이상한 일을 했는지 궁금증이 동했던 것이다.
"김 형, 왜 그런 누명을 쓴 거요? 나야 뒷길로 유명해지면 일거리를 보장해주니까 그랬다고 쳐도, 당신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않소?"
"이유가 왜 없나. 사람 사는데 다 이유가 있지."
이후로 이 질문은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는 음울한 얼굴로 술잔을 쳐다보며 대답하고 이내 그 특유의 허풍을 떨기 시작하는 것인데, 주로 "검은 액자"의 이야기였다. 그의 술버릇은 그의 장기이자 밥벌이인 심한 허풍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술버릇에 비하면 꽤 점잖은 축에 끼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피곤한 것이기도 했다. 이 술버릇을 보일 때마다 그는 언제나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감정을 느끼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술 상대로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고, 그래서 언제나 섬세하게 그를 대했다. 술을 마시면서, 목구멍에 넘어가는 차가운 유리와도 같은 그런 감각에 취해 이런 섬세한 일을 한다는 건 매우 힘들고 피곤했지만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탁은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 마음을 날카롭게 가다듬는 숫돌이었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신들은 내가 꽤나 대단한 화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찌되었거나 그의 허풍대로라면 나는 지금부터 당신들에게 할 얘기를 하지 못할 테니까. 물론, 이 위대한 과업은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라도, 다섯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게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준 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평범한 중저음을 가지고 있었고, 목청 역시 적당히 큰 편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하여 추가적인 노력의 소모 - 예를 들자면, '뭐라고?'하고 다시 묻는 것 - 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해야만 할 일이란 건 이따금씩 술잔을 비우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시간에 나는 오로지 내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넘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제어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데에는 그의 목소리의 공이 크다.
두 번째 도움은 그의 화법이었다. 그에게는 지루한 이야기를 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이 천부적인 것인지, 아니면 뼈를 깎는 노력의 산물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는 매우 지루했다. 대저 좋은 이야기꾼이라면 화자의 감정에 듣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법인데,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도무지 내가 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담화가 조성한 자연적인 함정을 뛰어넘어 좀 더 명확한 승리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릎을 탁, 하고 치는 것 같이 호응을 해 줄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내 정신력의 상당 부분을 소모해야만 했고, 자연 그 희미한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지막은 역시 그의 분위기였다. 으레 그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그는 나의 술 상대에서 완벽한 자연이 되었다. 그는 사람이 아닌 저녁 바람에 스치는 노을이나 포장마차 불판에 놓인 참새의 시체쯤으로 변했다. 만일 내가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야기는 내 귓가에 들어오는 TV소리 정도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이 내게 말했고, 나는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구경하듯 멀찌감치 물러서서 그의 이야기를 감상했다. 어릴적에 읽은 지루한 동화와도 같이, 나는 그의 이야기를 완전한 제삼자로 감상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나는 이 셋의 조력을 받아 지금부터 말 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나는 사기꾼이고, 따라서 약간의 사기를 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전라도 어디라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의 부모님은 밭에서 콩을 키웠고, 그는 가끔 집안 사정에 보태기 위해 뒷산에서 폐지나 고물 따위를 줍고는 했다. 나무 사이를 헤치며 그는 15살이 될 때 까지 수많은 고철과 추억을 주웠고, 친구 몇 명도 사귀었다고 했다. 그러다 그는 검은 액자를 하나 줍게 되었다. 흙에 반쯤 묻혀 있었는데, 묘하게도 검은 리본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액자 안에 거울이 있다는 걸 눈치채었고 그걸 떼어다 팔면 꽤나 좋은 돈벌이가 될 거라는 생각에 이내 그것을 떼어보려고 했다.
대저 거울과 액자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마주보아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거울을 마주보아버렸고, 그 순간 거울 속의 그가 늙어가기 시작했다. 기묘한 이야기고, 그의 허풍에 걸맞는 이야기다. 그가 겪지 않았더라면 어디 전래동화집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그에게 틀림없이 일어났던 일이라고 그는 늘상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무서운 마음에 거울을 산자락에 던져버리고 집으로 도망쳤고, 밤 새 그 거울을 잊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물론 거기서 그가 잊어버렸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야속하게도 거울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거울 안의 그는 점점 늙어가더니 어느 순간 덜컥 죽어버렸다. 한 40대쯤 된 얼굴이었다고 했다. 우습게도 내가 그를 보았을 때 그가 그 정도로 보였으니 참 묘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참으로 끔찍하게 알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울 안의 그가 늙는 대신 썩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썩으면 뼈가 남는다. 그래서 그는 머리 속에 자신의 두개골 모양을 담게 되었다. 그 두개골은 어느 순간부터 검은색 가루에 휩싸여 사라져갔고, 한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없어졌다. 그는 마침내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했지만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몇 차례 말을 더듬기도 했는데, 말 또한 앞 뒤가 맞지 않아 굉장히 기이했다. 예를 들자면 그는 그의 부모님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점잖게 내가 헛기침을 하면 그는 그런 거대한 거짓말을 그만두었고, 다시 내가 어느정도 믿을 수 있는 허풍을 떨었다.
그래서 그는 공황상태로 그의 고향에서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근처의 대도시인 무진에 왔다. 무진에서 배급을 받으며 그는 여러 친구를 사귀었으나, 그들 역시 그를 죽은 사람 취급했다. 이내 그는 세상에 분노가 쌓여 감옥에라도 들어가있고자 했다. 아예 유명해져 버리면 아무도 그를 죽었다고 하지 않을 것이란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너무 여린 사람이었기에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의 운명에서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서의 형사가 그러더니, 나중에는 뉴스에서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마저 그를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산 송장이 되는 것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서울역에 나앉아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정으로 연명하는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은 그의 질긴 목숨을 붙들어 준 원동력이다. 그것은 천원짜리 지폐가 아닌 관심이었다. 그는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가끔 내가 사주는 술을 먹으며 댓가로 이 기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래도 그에게 강한 감정을 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그래서 내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이야기가 끝나면 역에 덜컥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아직까지 그가 살아있다면 여기서 이 술상대 이야기를 끝내는 게 옳을 것이고, 이런 사족을 붙일 일도 없었겠지만 그는 슬프게도 죽어버렸다. 그는 갈 때도 기이하게 갔는데, 나와 술을 먹다 갔다. 그는 옛날부터 북한산 자락에 버려진 컨테이너 하나를 알고 있었고, 오늘만은 거기서 술을 먹자고 애원해서 갔더니 이미 자기 관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 날의 나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고, 왠지 그와의 내기에서 이길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실색해서 벗어나려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판 대작을 하더니, 이내 내게 축객령을 내렸다. 순간 나는 머쓱해져서 그 컨테이너를 벗어났다.
다음날 내가 그의 유별난 행동이 걱정되어서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내가 그날 다시 컨테이너에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는 술에 취해서라고 해 두자. 나는 그 일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이 화제는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여하튼 그는 관에 들어간 채 곱게 누워 죽어 있었다. 나는 119를 부르려고 하다 그의 본적이 이미 말소된 지 오래라는걸 깨달았고, 대충 얼버무린 후에 그를 묻기로 했다. 다행히도 내가 평소에 쓰는 차는 트럭이었다. 그의 관은 트럭에 싣기 딱 좋은 크기였다.
그는 죽었다. 그를 위해 지관까지 써줄 돈 같은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옛날에 사두었다던 땅 하나를 찾아 그를 묻었다. 야산이라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비목을 하나 놓아두는 것이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 이 시대를 살다간 하나의 허풍선이에게 하나의 사기꾼이 줄 수 있는 선물이란 가벼운 성의밖에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목에 글씨를 새겼다. 그는 누구에게던, 심지어 그의 술상대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던 완벽한 타인이었기에, 그의 무덤에 어울리는 글은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아마 그 글이 무엇이었는지 다들 깨달았을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