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테라스와 달빛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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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KO가 일본에서 목격됨. PoI 동행 중. 목적과 현재 위치는 불명. 소재 및 동선을 파악하여 보고할 것. 특별 보안 등급이 부여되었으므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 후 추가 정보 확인 가능. 우리의 활동이 연합이나 다른 GoI를 자극할 위험이 있음. 목표 달성에 지장이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작은 규모의 팀을 파견하는 것을 권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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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신월

New Moon


2019년 9월 29일 밤, 일본 도쿄

야경이 화려한, 도쿄라는 이름의 대도시에도 마지막으로 유지보수된 지 수개월 지난 가로등과 밤하늘에 뜬 달만이 길을 비춰주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의 어느 한 구획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존재도 눈치채기 어려운 구석진 주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노쇠한 가로등이나 심지어 아침해조차도 외면하는 듯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둠속에 잠겨 있는 이 집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한 남자의 소유였다.

SCP 재단 정보부 소속인 요원 공작관 에드워드 A. 덴브래스Edward A. Denbrass는 10년 전부터 이 집을 일본에서의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물론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는 거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반경 1킬로미터 내의 사람들 중 9할이 아시아계인 곳에서 혼자 백인이라는 사실부터가 그의 안전 보장에 큰 저해 요소이지 않은가. 에드워드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 거점에 자주 들르지도 않았다. '요원Agent'이 아니라 '요원 공작관Agent Handler'으로서 에드워드의 임무는 스스로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휘하 요원들이 어떤 위험한 일에 어떻게 뛰어들지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이므로, 직속 요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와 얼굴을 마주할 일도 별로 없었다.

물론 때로는 단순히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곤 했다. 그럴때면 에드워드는 이곳으로 자신의 요원들 중 한 사람을 불렀다. 에드워드가 현관 바로 옆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인내심 있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야심한 밤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에드워드는 아주 절묘한 위치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가 기다리던 방문객은 바로 문을 열고 현관 옆에 앉은 그를 지나쳐 가게 되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에드워드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방문객은 가만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극지방의 날씨는 어땠나?" 에드워드가 말했다.

"대기압이 좀 낮더군요." 방문객이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들고 있던 총을 오른편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방문객은 그제서야 돌아서서 시선을 공작관에게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파스칼 클라인Pascal Klein." 에드워드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맞는지 확인하느라고 장난을 좀 쳤어. 괜찮지?"

"괜찮은지 어떤지는 둘째치고, 너무 옛날 방식 아닙니까?"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시아적인 외모를 가진 현장 요원이 투덜거렸다. "홍채 인식기랑 지문 장치는 어디 갔습니까? 하다못해 도어락이라도?"

"들어올 때 이 집 외관이 어떤 꼴인지 자세히 안 봤구먼 그래. 이런 집 문에 첨단 기기가 달려 있으면 동네 사람들한테 '이 장소가 대단히 수상하다!'라고 광고하는 꼴이지." 에드워드는 능글맞게 웃었다. "물론, 암구호랑 총 겨누기는 내 취향이 아날로그라서 그런 거기는 해. 하지만 이런 시대에 뒤처진 집에는 시대에 뒤처진 중년 남자야말로 적격 아니겠어."

"알 게 뭐랍니까." 파스칼 클라인은 진절머리를 내며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았다. "본론을 말씀하시기 전에 뜸을 들이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군요."

"아주 길지." 공작관의 얼굴에서 능글맞은 태도는 여전했지만, 웃음은 간데 없었다. "지령이 내려왔네. SCP-940-KO와 PoI-273-KO의 소재 및 동선을 파악, 보고하는 임무가 우리 쪽에 맡겨졌어. 12시간 전에 도쿄에서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 정보망에 포착됐고, 자네가 들어오기 정확히 15분 전에 여길 떴네."

자신이 대략 반 년 전에 생포했던 변칙 개체의 일련번호를 듣자마자 파스칼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 두 사람 뿐이었습니까?"

"지금은 그렇네. 근방에서 BE나 다른 적성 GoI들의 활동은 없었어. 하지만 양측의 협력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네. 적어도 상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상부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이유는요?"

공작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게. 자네가 봐야 하는 것들이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지금까지 그가 앉아있었던 의자를 앞으로 밀었다. 의자는 예상치 못한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밀려나며 그 아래에 가려져 있던 수직문을 형광등 불빛에 드러내었다.

잠시 후 파스칼은 시대에 뒤처진 집 5미터 아래, 그다지 시대에 뒤처지지 않은 기기들이 완비된 지하 벙커로 내려와 있었다. 냉각 팬 돌아가는 소리와 푸른색 조명이 가득한 곳이었다. 에드워드는 벙커 한쪽에 설치된 컴퓨터에 저장된 이미지를 벽에 거치된 40인치 스크린에 띄웠다. 파스칼은 벽으로 다가가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들을 훑어보았다.

"일본어로 작성된 연구 보고서군요."

"우리가 처음 SCP-940-KO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변칙 존재의 확보와 격리에만 집중했지, 그 아이가 다른 맥락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네. 그저 단단히 잘못된 실험의 불쌍한 희생양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거지. 프로메테우스와 엮인 것들은 대체로 그랬으니까." 공작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우리는 대가를 치렀네.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보안 시설 중 하나가 30분 동안 통째로 기능을 정지했지.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심산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기로 했네."

"어느 방향 말입니까? 솔러스 사이언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연구 시설이 완전히 붕괴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솔러스 사이언스는 파산했네. 이미 망한지 5년도 더 된 기업에 남아있는 게 뭐가 있었을 것 같나. 하지만 우리의 오랜 친구 '엔트로피를 넘어서'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고, 만약 솔러스 사이언스의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있기는 하다면 그 놈들 수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 BE 녀석들도 숨기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체급 차라는 게 있으니까.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BE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긁어모은 걸세."

"솔러스 사이언스가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인 줄은 몰랐군요." 파스칼이 연구 보고서의 첫 페이지 한복판에 적힌, 미래적으로 디자인된 글귀를 해독하며 말했다. "아마테라스 프로젝트AMATERASU Project가 뭐죠?"

"재정적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솔러스 사이언스가 상황을 한 번에 반전시킬 심산으로 가용한 모든 자원을 털어넣은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일세. 잘 찾아보면 거기에 고 신정우 박사의 이름도 있을거야. 유감스럽게도 세부적인 내용은 불명이지만, 뭔지는 몰라도 솔러스 사이언스가 이 프로젝트에 기대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는 건 분명해."

에드워드의 말이 사실인 듯 했다. 보고서의 대부분은 검은색 칠로 검열이 되어 있었지만, 중간중간 검열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에너지 부문 연구를 선도', '스폰서십', '전세계적 파급력' 등의 희망차지만 결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안쓰럽기 그지없는 단어와 표현들을 볼 수 있었다.

"솔러스 사이언스가 노리던 화려한 부활이 좌절된 건 뭐 그렇다 치고, BE 녀석들 주머니에서 나온 정보는 이게 끝입니까?" 파스칼의 어조는 회의적이었다. "어디서 놈들이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한일간의 협력을 저지할 목적으로 테러를 일으켰다는 증언이라도 나온 게 아니라면야, 이렇게 검열된 정보들이 많아서야 별로 쓸모는 없겠는데요."

"보고서는 시작일 뿐이야. 우리가 확보한 정보들 중에는 동아시아에서 주로 활동하는 세포들의 인사 파일도 있었네. 대부분은 견고하게 보호되어 있었지만, 해독이 가능한 인사 파일들과 프로젝트 보고서에 나오는 이름들을 대조해 봤더니 이쪽과 저쪽에서 모두 등장하는 사람이 세 명 정도 있더군."

스크린 위에 다른 이미지들이 세 개 띄워졌다. 각각 누군가의 이름과 간단한 인적 사항,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간략한 보고서였다.

"고다 스에히로, 유지훈, 타카하마 치세."

"고다 박사는 아마테라스 프로젝트의 최초 제안자 중 한 사람이고, 유지훈은 솔러스 사이언스의 파멸을 앞당긴 그 연구 시설에서 보안 전문가로 근무하던 사람이네." 에드워드 덴브래스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스크린을 바라보며 서 있는 파스칼 옆으로 다가왔다. "타카하마 치세는, 일단은 BE 쪽 잠입 세포의 일원인 게 확실하네만 정확히 그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는 불명이고."

"버리는 패입니다."

에드워드는 팔짱을 꼈다. "타카하마 양이?"

"잠입 세포들은 원래 정체가 발각될 만한 상황을 극도로 꺼립니다. 이바노프가 일을 거하게 망친 뒤에는 더 그렇죠. 우리 감시망에 포착될 위험을 감수하는 건 일회용 인력과 '용병들', 그러니까 PoI-273-KO 같은 외부인들 뿐입니다. BE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사람들이요. 아마 가장 중요한 공작원들은 우리가 해독하지 못한 파일들에 정리되어 있거나 애초에 그런 인사 파일 자체가 우리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타카하마 양의 경우는?"

"윗선에서 작정하고 재활용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놓은 뒤에 개들한테 던져준 것이던지, 아니면 애초에 한 번 써먹고 버릴 심산으로 접촉한 사람입니다." 파스칼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지금 보니 솔러스 사이언스에서 연구원으로 꽤 오래 근무했군요. 그러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래 연구원이었던 사람을 잠입 세포 측에서 스카웃한 거죠."

"훈련이 공짜로 되는 건 아니었을 텐데." 에드워드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BE는 그녀가 한 번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면, 그 효용이 훈련 비용을 거뜬히 상회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이군."

"이런 버리는 패는 그 효용이 임무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파스칼이 말을 이었다. "앞서 말했죠. '개들한테 던져준'다고. 만약 재단이나 연합이 이번 사건과 연루된 BE 쪽 인원들을 잡으려고 시도하면, 이 여자는 훌륭한 미끼가 되는 겁니다. ……하긴 이 부분은 좀 애매하네요. 요즘은 우리든 저쪽이든 그 정도 규모의 작전을 함부로 시도하기가 난감하니 말이죠."

"사실이네." 공작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12년도 이후로 서로 눈치를 많이 보게 됐지. 그런데 그러면 저 아가씨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어둠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편안한 삶을 살겠죠. 어디 따뜻한 곳에서 집 하나 얻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파스칼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미소는 입 위에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아뇨.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요원이 방치되면 그것도 골칫거리입니다. 머지않아 BE 쪽에서 직접 손을 쓸 겁니다."

"바람처럼 사라지겠군."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에 잠겨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타카하마 양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BE에서 보낸 사람과 대면하게 될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그녀 주변에 잠복하다가 공작원을 체포하자는 얘기라면, 안 됩니다." 파스칼의 어투는 단호했다. "어떤 방식으로 그녀를 제거할지도 오리무중이고, 오히려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그리고 자네 말대로라면 암살도 절찬리에 아웃소싱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 난 좀 다른 걸 생각했네. 잠깐 실례."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무언가 다른 파일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번에는 영상이었다.

"이건 전에 본 적 있는 영상 같은데요." 파스칼이 말했다. "2013년 사고 당시 영상 아닙니까?"

"이 영상을 우리 측에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불명이네만, 이건 연구 시설 최심부에서 일어난 일을 녹화한 거야. 아마테라스 프로젝트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영상을 손에 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세 사람 중 한 명일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네."

"제3자가 있군요." 파스칼은 흥미롭다는 듯 답했다. "재단과 BE 양측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요."

"그리고 제145K기지의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 그 말인 즉슨 개인이든 단체든, 아주 튼튼한 정보망을 구축해놓고 있다는 뜻이네. 그러니 내 생각은 이래." 에드워드는 그의 뒤편 벽에 달린 키패드를 조작하며 말했다. "타카하마 양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이 끝나고 나서 현장에 잠복하는 걸세. 분명 '사고 소식'이 우리한테 영상을 보낸 쪽에게도 전달이 될 테고. 그 쪽에서도 분명 불쌍한 타카하마 양이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궁금해할 거야. 우리는 그 쪽을 노려보자고."

에드워드가 키패드에 암호를 입력하자, 숨겨져 있던 장치가 작동하면서 단순한 콘크리트 벽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격벽을 개방했다. 공작관은 격벽 뒤에 있는 창고에서 서류 가방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인지, 그녀인지, 그들인지 하여튼 간에 그쪽 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단체들을 자극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봤자 셋 이상은 아닐 거야.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인 건 사실이지만, 섣불리 움직이다가 BE가 눈치를 채 버리는 것보다는 사건의 가장자리에서부터 공격해 들어가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자는 거죠."

"그렇지." 공작관은 서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걸 가져가게."

"그건 뭡니까?" 파스칼이 물었다.

"자네 장비. 기억소거제, 구속 장치, 라이플이랑 마취 탄환은 익숙할 테지." 파스칼이 서류 가방을 집어드는 것을 보고 에드워드는 덧붙였다. "자네 임무는 어디까지나 정찰 및 감시지, SCP나 PoI를 생포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게. 그 이후는 윗선에서 알아서 할 일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정해진 범위를 살짝 벗어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대놓고 무시하거나 바보짓을 해서 다른 GoI들 까지 냄새를 맡는 일이 없도록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아, 한 가지만 더요."

"뭐 추가로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

"공작관님 총이요."

"안 돼. 그건 내 거야. 창고에 글록 있으니까 그거 가져가."


crescentmoon.jpg

2019년 10월 2일 저녁, 일본 시즈오카

발신인: 패스파인더
수신인: 미션 컨트롤

TC가 제거됨. BE 흔적 찾을 수 없음. 거주지에 잠입. 작전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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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파기됨

타카하마 치세의 자택에 들어와 안을 둘러본 파스칼은 가장 먼저 사흘 전에 찾아갔던 공작관의 집을 떠올렸다. 하지만 덴브래스 공작관의 집은 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내지 활동 거점에 가까웠다. 치세에게 있어서 이곳은 진짜 집이었고, 그래서 공간의 황량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파스칼은 집에 불을 켜는 대신 손전등으로 어두운 집의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차가운 불빛이 집의 바닥과 천장, 벽을 비추며 주인의 두려움과 불안, 피해망상의 흔적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파스칼이 방금 열고 들어왔던 문에는 대여섯개의 잠금 장치가 이 악물고 상대를 붙잡으려는 씨름 선수의 손처럼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다. 훈련받은 현장 요원에게는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는 장애물이었다. 그가 지금 집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또 BE가 보낸 저승사자에게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거실 한복판에 잠든 것처럼 얌전히 누워 있는, 30대 여성의 시체가 그 증거였다. 파스칼은 주변을 둘러보고 적들이 일을 아주 깨끗이 처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싸늘하게 식은 치세의 몸을 살펴보았다.

심각한 외상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격렬하게 저항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타박상과 찰과상 중에 치명적인 것은 없었다. 주변의 얼마 없는 집기들이 멀쩡히 잘 정돈되어 있는 것도 파스칼의 추측을 뒷받침했다. 그는 뻣뻣하게 굳은 치세의 목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살폈다. 아주 미세하게 주삿바늘 자국이 나 있었다.

"독극물." 파스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치세에게서 손을 뗐다.

암살자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이상,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이 상황에서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기다리고 있는, 이 불운한 집의 또다른 불청객이 언제쯤 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파스칼은 다시 일어나 생각에 잠긴 채로 널찍한 거실을 돌았다. 그는 무언가 이상한 기척을 감지하고, 다시 몸을 긴장시키며 자신이 감지한 위험 신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실 한쪽 구석 바퀴 달린 받침대 위에 놓인 화분 하나가 그의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파스칼은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화분을 한 쪽으로 밀어 치웠다.

화분이 가리고 있던 지름 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은색 마법진이 벽에 그려져, 아주 미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스칼은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 주머니에서 PDA 형태의 기적술 해석장치를 꺼내 벽에 그려진 마법진을 인식시켰다. 단순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는, 일종의 기적학적 감지 장치였다. 이 장치를 설치한 것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집의 주인이 목숨을 잃은 순간 그 사실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파스칼이 알기로 엔트로피를 넘어서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환경 보존과 외부엔트로피 기술이지, 이런 고전적인 기적술이 아니었다. 그 말은 이 사건에 재단도, BE도 아닌 제3자가 확실히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감독관의 예측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은 듯 했다. 문제는 이 알려지지 않은 기적사가 어떻게, 왜 치세의 집 구석진 곳에 감지 장치를 설치했냐는 것이다. 이 기적사에게 타카하마 치세는 누구였을까? 연인? 감시 대상? 아니면 BE나, 어느 정도는 재단의 입장에서도 그랬듯이 이 사람에게도 단순한 미끼였던 것인가? 이 자가 BE의 활동에 개입함으로써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갑작스레 문이 덜컹거리면서 큰 소음을 냈다. 파스칼은 빠르게 화분으로 마법진을 다시 가리고 현관문 옆에 미끄러지듯 자리를 잡았다. 문은 계속해서 덜컹거렸다. 마치 파스칼이 들어올 때 다시 작동시킨 잠금 장치가 자신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변수라는 듯이, 불청객은 아주 격렬하고 감정적으로 문고리를 잡고 마구 앞뒤로 흔들었다.

문은 마치 앞서 실패한 임무를 지금은 완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완고하게 버티며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파스칼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바깥에 있는 상대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을 열 것이라 짐작하고, 감독관이 내준 권총을 빼든 채 그가 문을 뚫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현관문의 덜컹거림은 계속해서 심해졌다. 파스칼은 숨을 죽였다.

"난 이미 들어와 있어." 누군가가 그의 등 뒤에서 말했다.

파스칼은 그대로 몸을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조준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그의 눈은 누군가가 현관문 바로 반대편 부엌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간신히 포착했다.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쪽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나라면 그거 완전 헛수고거든."

파스칼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여전히 상대의 머리를 조준한 채로 현관문을 흘낏 쳐다보았다. 문은 여전히 미친듯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원한다면 문 밖에 뭐가 있길래 그 난리인지 봐도 좋아." 의문의 침입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을 내밀었다. "봤지? 기습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돼."

파스칼은 천천히 문을 향해 뒷걸음질 치다가, 현관에 이르자 재빨리 열쇠구멍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열쇠구멍 바깥에 펼쳐진 풍경은 일본의 도심지가 아니라 폭풍우가 치고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였다.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자기가 방금 본 것이 사실인지 다시 열쇠구멍에 눈을 갖다대고 싶은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그가 물었다.

"우리? 시즈오카." 침입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 문? 남태평양 한복판."

파스칼은 손전등을 켜서 침입자를 비추었다. 훤칠하고 밝지만 어째서인지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검은 머리의 청년이었다.

"공간변칙이군."

"비슷해." 청년은 손전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튼, 그쪽한테 총을 맞는 일 없이 주의를 끄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이제는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좀 나누자고."

갑자기 현관문의 덜컹거림이 멈췄다. 이번에는 파스칼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열쇠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일본의 도심지가 보였다. 파스칼은 한숨을 쉬며 총을 내렸다.

"애초에 쏠 생각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나도 장담 못 해. 그러니 일단은 그쪽이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그러지."

"그 기적학적 감지 장치. 당신 작품인가?"

"나도 그쪽이랑 마찬가지로 이 집에 사는 사람에게 관심이 좀 있었거든. 뭐 사적인 감정 때문은 아니고. 또 보다시피 지금 와서 애정을 갖기에는 너무 늦었지."

"타카하마 치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나?"

청년의 시선이 아주 잠깐 다른 곳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연구원. 솔러스 사이언스의. 아닌가?"

"그게 끝인가?"

"뭐가 더 있어?"

"모르는 척 하지 마."

"역시 걸렸군." 청년은 힘없이 팔을 내렸다. "그래, 뭐, 타카하마 치세는 2008년 솔러스 사이언스에 입사해서 근무하다가, 대략 2010년 즈음에 BE에 스카우트된 잠입 세포 측 요원이지. 2013년 사고 후에는 BE에게 사실상 버려졌고, 2019년 10월 2일 기준으로 고인이다. 이 정도면 됐나?"

"솔러스 사이언스와는 어떤 관계지?"

"그게, 이 맥락에서 그건 적절한 질문이 아니야."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이 맥락에서 적절한 질문은, 내가 신정우 박사님과 어떤 관계였냐 하는 것이지. 일단 불을 좀 켜 주지 않겠어?"

파스칼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스위치가 있어. 당신 바로 뒤에."

"난 딱히 불편하지 않아."

"그래 알았어." 청년은 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그냥 내가 당신 손전등 때문에 눈이 머는 걸 감수하도록 하지, 뭐."

"하던 얘기를 계속했으면 좋겠군."

"2013년 사고 때 돌아가신 신정우 박사님은 내 스승님이셨다. 솔러스 사이언스에서 근무하실 적에나,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태양기적학을 가르치실 적에나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셨고, 나는 그분에게 있어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할 수 있는 친구였지. 나는 태양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먼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걸로 끝인가?"

"글쎄, 약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청년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제 그 쪽이 보답할 차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쪽 정보를 공유해 달라?"

"당신 이름이나 직위 같은 건 궁금하지 않지만." 청년이 덧붙였다. "당신은 누가 봐도 옥리 중 한 사람이라는 게 티가 나거든. BE랑, 내 스승님이랑, 저기 누워 있는 사람이 관련된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도 대략 감이 잡히고. 내가 잘못 생각했나?"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대답해줘서 고맙군. 그러면 대강 서로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는 걸로 치고, 피차 바쁜 몸이니 최대한 간결하게 얘기하도록 할까."

"원하는 대로."

"신정우 박사님께서는 세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셨어. 장남인 신승연. 그 다음이 신소연, 그러니까, 당신네 옥리들이 반년 전에 잡아 가뒀던 SCP-940-KO고, 마지막으로 막내딸인 신지연. 신승연은 빼도 박도 못할 악당으로 자랐고, 소연이는 사실상 완전히 그 녀석 영향력 안에 있는 꼭두각시가 됐지. 문제는 지연이야."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지연 양은 사고 이후로 줄곧 실종 상태였다." 파스칼이 말했다. "그쪽에도 알려진 게 없나?"

"유감스럽게도. 하지만 지연이도 분명히 BE가 수립하고 신승연 그 녀석을 부추겨서 실행하려고 드는 계획의 일부야. 내가 보내준 영상은 봤겠지. 정확히 어떤 식이었는지는 몰라도 신정우 박사님의 두 딸은 BE에 의해 강제로 개조당했고, 앞으로 계속해서 이용당하다가 BE가 수없이 박살낸 가엾은 영혼들을 따라갈 운명이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지연이가 실종됐다는 사실이 우리뿐만 아니라 BE 녀석들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인 것 같다는 말이지." 청년이 말을 이었다. "최근에 놈들이 분주하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급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어. 속임수일지도 모르지만, 치세 같은 제일 말단부의 요원들이 하나같이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하면서 곳곳에 중요한 단서들을 흘리고 있는 걸 보면 이 상황을 실제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평소 같았으면 그쪽은 타카하마 치세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거야."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BE도 우리도 신지연 양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군." 파스칼은 그렇게 말하며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LED 전등에서 빛이 쏟아지며 가운데 놓인 시체가 약간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실을 환하게 밝혔다. "그럼 뭐야, 우리가 먼저 신지연 양을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 보자는 말인가?"

"머리를 맞댈 필요는 있는데, 그런다고 반년 동안 못 찾은 아이를 지금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청년의 얼굴 빛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지연이 말고 다른 아이들한테 집중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야. 정말이지 고통스럽지만."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는 두 사람을 찾아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솔러스 사이언스가 진행하던 연구니 '엔트로피를 넘어서'의 계획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 없어. 내 관심사는 오직 신정우 박사님의 아이들이 멀쩡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 뿐이야. 신승연 그놈이 지금 자기 여동생을 가스라이팅으로 끌고 다니면서 하고 있는 건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멀쩡한' 게 아니야."

파스칼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발견하면, 내 방식대로 처리하게 내버려 둬. 한 명은 몸과 마음에 심하게 상처를 입은 상태고, 한 명은 마음이 이미 죽어 있어. 당신들이 '격리'라고 부르는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그것만 지켜준다면,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서 당신과 협력할 마음이 있어. 그게 내 제안이야."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파스칼이 정적을 깨자 청년은 눈을 반짝였다. "그쪽도 알 테지만, 재단이 당신 제안을 꼭 받아들일 이유는 없어. 당신이 기적사로서 얼마나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사실 당신이 기적사로서 뛰어나다면 그건 오히려 감점 요소가 되지."

"물론. 하지만 재단 측에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텐데." 청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타카하마 치세가 아직 살아있을 때에도 이 집 안에 있었어. 당신은 분명히 그녀의 안위에 관심이 있는 재단 요원이 분명한데도 뒷북을 쳤지. 설마 당신이 사건 현장에 지각한 게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라고 할 생각이신지?"

"내가 그냥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면?"

"그러면, 뭐……"

문이 또다시 미친듯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파스칼은 피식 웃었다.

"일회성 공간변칙이 아니라, 아예 문 자체에 주술을 걸었군. 그런 걸 남의 집에서 주변에 들키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문데, 실력이 좋은걸."

"칭찬 고마워. 사실 아주 열심히 만들었거든." 청년은 옅은 미소를 유지하며 파스칼에게 다가갔다. "그럼,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파스칼 클라인은 혀를 차며 청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SCP 재단의 파스칼 클라인이다.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강나루라고 해. 한자로는 강진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불러주면 고맙겠어." 나루가 파스칼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는 딱딱해져가고 있는 치세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마 내일 아침 정도 되면 여기서 일어난 사건은 민간 경찰들 소관이 되겠지. 그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온 불청객들한테 관심을 갖기 전에 사람들 눈 앞에서 사라져야 해."

"그렇겠군." 파스칼이 나루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차를 끌고 오지 않았단 말이지…… 그 쪽은 어때?"

"하, 저 문이 남태평양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니 걱정 마." 나루는 화분으로 가려진 마법진의 한가운데를 오른손으로 지긋이 눌렀다. 마법진은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희미해지며 곧 사라졌다. "'어떻게' 가느냐는 큰 문제가 안 되고, 진짜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는 거지. 생각나는 곳 있어?"

"있어. 하지만 그 전에 그쪽에게 전달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럼 어디 조용하고 외진곳으로 가면 딱 좋겠군." 나루가 그렇게 말하며 문의 잠금 장치들을 풀고 문을 열었다. "오늘 같은 날에 초승달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알지……"

나루는 열린 문을 통해 치세의 집에서 나갔다. 파스칼이 그를 뒤따라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즈오카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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