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사면, 그리고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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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시간이 지나, 클라이드와 슈판다우는 손목뿐만 아니라 발목에까지 수갑을 찬 채 더 삼엄히 지켜지는 구금실로 이송되어야만 했다.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걸 정리해 보겠습니다. 앨리슨 그 여자가 밤 사이에 클라이드 씨를 혼자 제압하고 스크랜턴 닻까지 부순 채 감시를 뚫고 몰래 빠져나갔다, 그거 아닙니까? 부상당한 사람이?" 하프너가 물었다. 말투는 지극히 평온했지만, 상당히 화가 난 듯 한 표정이었다.

"당신들, 그 자가 지금까지 뭔 짓을 해왔는지 알고 있다 하지 않았었나." 슈판다우가 한심하다는 듯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놈이란 건 충분히 파악했을 텐데. 그 책임을 왜 우리에게 묻는 거지?"

"아, 물론 당신들이 그 여자와 한 패 아니냐, 그런 추측을 하는 건 아니고, 좀 비슷한데 다른 겁니다. 그 여자를 이용해서 탈출을 하려다 실패한 게 아니냐, 그런 뜻이죠."

"하아…" 슈판다우가 미간을 잡았다. "우리는 그 여자의 행동이 묶여야 더 이득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럼 왜 지난번에 그리 조급해하신거죠?"

"…" 슈판다우는 대답할 기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것조차 아니면 진짜 답을 못 하는 건지 입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3개 모두였을지도 모른다.

"클라이드 씨, 당신이라도 대답해 보시죠. 앨리슨을 저지하려다 실패했다고 증언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요."

"저희 측 폐쇄회로 카메라엔 안 찍혔습니다만."

"몸싸움이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걸 뭐 어쩌겠나요. CCTV를 사각지대가 있게 설치한 그쪽 잘못이죠."

"그러니까 그걸 이용한 거 아니냐, 그런 말입니다. 포트 클레이모어는 지금까지…"

클라이드는 더 이상 하프너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으로 미루어, 뭔 말을 하든 상관없이 하프너는 자신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버릴 것임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슈판다우가 말했듯이, 이해할 가치도 없었다.

다행히도, 구원의 손길은 하프너의 주머니 속에서부터 찾아왔다.

"네, 지금 심문 중입니다. 잠깐만요, 네?" 전화기 너머로 짤막한 의문문과 평서문이 오갔고, 곧바로 하프너는 슈판다우와 클라이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운도 좋으시군…"

이내, 슈판다우와 클라이드는 포트 클레이모어의 정문으로 아무런 탈 없이 나오게 되었다.

"타이밍 맞게 보증 석방이라…"

"솔직히, 죽인 사람은 없었긴 합니다" 클라이드가 말했다. "그런데, 누가 해 준 겁니까?"

"내가." 클라이드의 말에 대답하듯, 둘의 뒤에 정차해 있던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의 운전석 창문이 열리며 낯서면서도 익숙할 얼굴이 나타났다.

"관리이사관 각하…?"

"왜, 관리이사관이 차 운전하는 거 처음 봐? 아니면 탱크만 타다 보니 승용차에는 타 본 적이 없어서 그래? 빨리 타."


슈판다우는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살면서 수십, 수백 번의 압박을 받아왔지만, 한국지역사령부 관리이사관 그레이스 "노래마인" 최가 직접 운전하는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이 순간 느껴지는 압박은 그동안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한국사령부 관리이사관께서 직접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슈판다우 옆에 앉은 클라이드가 예의바르게, 그러나 눈치없게 감사를 전하며 침묵을 깨뜨렸다.

"뭐, 필요해서 한 거야. 스리포츠에 재단이 직접적인 간섭을 하긴 어려우니까, 너희처럼 개인 자격으로 온 거지. 넌 모리츠에게 감사해야지. 걔가 필요해서 온 김에 너도 여차저차 데려가는 거니까."

"제가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슈판다우가 어리둥절한 듯 물어보았다.

"응." 노래마인이 말했다. "왜? 징계라도 받을까 무서워?"

"…" 슈판다우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입을 앙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탱크 하나와 전차병 셋의 비전투 손실, 요원 두 명의 탈영, 허가받지 않은 외부 차원 진입, 적대 인물과의 거래, 인가받지 않은 독단적인 특수 작전 실행, 그리고 횡령까지… 다 파악은 못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하지?"

"…면목 없습니다." 슈판다우는 간신히 대답을 짜냈다.

"그래. 해임당해도 할 말 없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논의를 거쳐서 혐의를 사면해주기로 결정했어."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슈판다우가 말했다.

"사.면.해.주.겠.다.고." 노래마인이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대체 왜…?" 슈판다우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큰 범죄를 저지른 자신이 왜 용서받는지, 노래마인은 왜 용서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노래마인이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해.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네 출중한 능력은 람다-92를 지휘하면서 충분히 드러났고, 이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제76K구역에서는 그 "검은 여왕"을 거의 잡을 뻔 했었지."

"사실이긴 합니다만…"

"두 번째. 람다-92 대원들에게 네 혐의를 알려주니 공통적으로 그럴 리 없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더군. 괜히 이들의 반발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그리고 세 번째로, 정황상 모든 혐의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어."

"그래도 그런 게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슈판다우가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네 번째… 이건 이유라기엔 뭣하긴 한데, 재단이 언제부터 조리 있게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집단이었지? 연구하는 대상들조차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존재들인데, 자네는 재단에게 너무나도 큰 기대를 품고 있었던 모양이야. 자, 이제 마음의 짐이 좀 풀렸어?"

슈판다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좋았다.

"좋아. 지난 번 재단 내 정기 인원 심리 검사 때 이강수 이사관하고 네 조카가 걱정 많이 하던데, 다행이야."

노래마인이 덧붙였다. "그동안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던 부조리가 널 구원하다니, 아이러니하네. 감사히 여기라고."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해." 노래마인이 말했다. "앨리슨을 저지해. 그것뿐이야. 난 네가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이번 작전의 계획과 실행을…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들을 전적으로 너에게 믿고 맡길게. 반드시 성공시켜."

그 순간, 슈판다우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았다.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제76K구역 공격받았습니다. M-60호실 포함 여러 곳 털렸습니다."

슈판다우는 핸드폰의 화면을 다시 끈 후, 옷 주머니에 거칠게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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