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사름네 두린 어멍

바르사름네 두린 어멍

SH-KO.png
바다 민족의 어린 어머니,
바릇 신앙의 대제사장,
바르사름의 유일한 생존자,
아시아파랑인어,
SCP-331-KO-A (옥리들),
KTE-19133-러브록-레드 (분서꾼들),
푸른 인어 소녀 (풀무치들)

개요

한때 제주 앞바다를 중심으로 융성했던, 동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해상 유랑 제국의 주민들은 무참히 도륙당했다. 제국의 제정최고지도자이자 모든 바르사름 혈육의 창조자인 어린 어머니만이 홀로 살아남았으나, 이는 옥리들의 변덕스러운 수집욕에 기인함에 지나지 않는다. 어멍은 아직도 일족의 부흥을 꿈꾸며 발버둥치고 있지만 옥리들의 압제 아래에서 이를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알려진 바

특징: 어멍의 생김새는 물로 만들어진 십대 소녀라고 하면 거의 정확하다.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구성 물질을 제외한 외형 자체는 평범한 몽골로이드 아동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피부색은 물과 그 밑의 모래층의 색깔이 빛과 얽혀서 주로 밝은 푸른색이나 거의 흰색에 가까운 하늘색으로 보인다. 생김새와 달리 어멍은 수백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으며, 도서관의 학자들은 어멍을 비롯한 바르사름이 단순한 장수종이 아니라 불로불사의 영생종이라는 사실에 거의 동의하고 있다.

성질: 바르사름은 물과 미생물이 인간의 형상으로 뭉쳐서 존재하는 군체형 생물 개체들로 구성된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바르사름족은 신비동물학자들이 흔히 파랑인어(Mermaid Caeruleus)의 아종인 아시아파랑인어(Mermaid Caeruleus Asianus)로 분류하는 생물종이다.12 완전히 무관한 미생물종이 뭉쳐서 구성되는 이들을 별도의 생물종으로 지정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 학문적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어찌됐든 확실한 건 바르사름은 지적 사고력이 있는 고등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 지능 수준은 인간과 거의 상동하며, 종족 안에선 물의 진동이나 물질교환으로 소통하지만 인간과 돌고래의 말을 학습해 구사한 개체도 있었다. 바르사름은 인간과 소통할 때 주로 제주말을 사용했기에 인간의 기록에서 이들의 고유 명칭은 제주말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 신비동물학계의 학설, 바르사름과 조우했던 대부분의 고전 기록들의 묘사, 뱀의 손의 공식적인 견해는 모두 바르사름을 인어의 일종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여타 인어종과는 구분되는 특징이 많다.3 다리가 있는 것은 동아시아의 인어종들이 흔히 갖는 특징이지만, 어류도 포유류도 아닌 미생물 군체가 아인류의 형태와 정체성을 갖는 것 자체가 바르사름 외에는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생태이다.

바르사름의 생태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이한 요소는 '봇물'이다. 옥리들이 "부유체"라는 무식한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이 봇물은 제주말로 '태'와 '물'의 합성어이며, 기본적으로는 바르사름의 몸과 같이 미생물이 풍부한 걸죽한 바닷물이다. 바르사름은 이 봇물과 바다가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봇물은 마치 태중의 아이와 어미를 이어주는 태반과 탯줄처럼 바르사름이 바다로부터 영양을 얻고 노폐물을 배출하도록 돕는다. 봇물 없이 바다에 빠진 바르사름은 물질교환에 대한 통제를 잃고 몸이 바다에 희석되어 끝내 형태를 잃게 되고, 봇물 없이 맨땅에 올라온 바르사름은 금세 몸 안의 영양분을 다 소모하고 미생물이 죽어가는 끝에 고통스럽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어멍의 신체는 겉보기 나이만 어릴 뿐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르사름 개체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어멍은 바르사름 중에서 유일하게 봇물을 만들 수 있고, 후손을 만들 수 있다. 어멍은 자신이 만진 바닷물을 자유롭게 봇물로 바꾸어낸다. 더구나 봇물을 다듬고 굳혀 마음대로 형상을 만들 수 있어, 건축물을 빚어내거나 새 바르사름 개체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어멍은 바르사름 종족과 문명과 기술과 역사의 핵심이며, 바르사름이 몰살당해도 어멍이 살아남으면 문명을 재건할 수 있고, 천만 바르사름이 살아 있어도 어멍이 없으면 그 모두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내력 및 관계: 뭍의 인간들, 해저의 돌고래들과 더불어 인어들은 해수면에서 문명을 일구었는데, 그중 바르사름은 중세 이전부터 한반도, 특히 제주 근해에서 영역을 이루고 무리 생활을 해왔으며 늦어도 후한 시대부터는 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살아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르사름은 기원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토착 종교인 바릇 신앙을 믿었으며, 동아시아 바다의 유일한 인어종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적 다수를 점해온 듯하다. 바르사름 제국은 1669년 성립했으며, 그 영해는 한반도 근해와 동중국해를 비롯해 태평양 일부까지 이르렀다.

바르사름 연대기에 남아있는 그들 스스로의 증언은 고대 바르사름이 인간을 해치며 문명을 일구었다고 말한다. 바르사름은 원래 제주 앞바다의 좁은 영역에서 해녀나 물에 빠진 사람을 덮쳐 동족을 늘려갔는데, 그 피해가 엄청나 종국에는 주호국의 공주가 제 백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바르사름에게 바쳤을 정도라고 한다. 공주는 바르사름이 된 후에도 인간과 공존하는 평화로운 삶을 설파했다. 문명인이 다른 문명 종족을 해하는 것에 도의적으로 고민하던 바르사름의 식자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바르사름은 변화했다. 공주는 새로운 번영의 방법을 찾아 종족을 이끌었는데, 최초의 어멍인 늑신 어멍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전한다.

늑신 어멍은 바르사름과 너무나 닮았지만 너무나 다른 존재인 인간들과 붙어 살아가다 보면 갈등이 생기고 다시 살육의 시대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인도를 따라 바르사름은 섬을 떠나 먼 바다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그들은 제주도 근해를 벗어나 세 바다에 걸친 거대한 바르사름만의 나라를 일구었다. 그 후로 천년의 시간 동안 바르사름은 늑신 어멍의 지혜로운 통치 아래에 영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지내게 된다. 당시의 번영을 설명하는 연대기 기록에 따르면 바르사름의 궁전은 이어도 주위에 있었는데, 마치 건물을 거꾸로 해서 바다에 빠트린 것처럼 해수면을 바닥 삼아 아래를 향해 지어올린 이 장대한 건조물은 봇물로 만들어져 바다 위에서 보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지만 해저에서 보면 누구나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밖에도 바르사름 문명은 수많은 문화적,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는데, 이는 대제사장이자 국왕이었던 늑신 어멍의 현명한 치세 덕분이었다. 하지만 늑신 어멍은 다른 바르사름과 달리 닥쳐오는 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어멍은 자신의 종교적 권능과 생태적 지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창조했는데, 그녀가 바로 두린 어멍이다. 두린 어멍은 자신을 낳으면서 기력이 쇠한 선대를 극진히 모셨지만, 늑신 어멍은 그 이듬해 붕어했다.

두린 어멍은 즉위 후 변화보단 안정을 추구하며 왕국을 평안하게 통치했다. 이는 분리정책을 비롯한 자신의 뜻을 그대로 이어주길 바랐던 늑신 어멍의 유훈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어멍의 마음 속에는 지상과 인간을 향한 호기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바르사름의 활동 영역을 섬 근처까지 넓혀가던 어멍은 1311년(고려 충선왕 복위 3년) 첫 암행을 시작으로 가신들 몰래 지상에 올라 자신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인간 측에서 기록한 두린 어멍의 목격 정보는 탐라총관부에 대한 정동행중서성 기록이 최초이며, 이후 승정원일기와 불어도감일기 등 조선시대 사료에 몇 차례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해당 사료들은 대부분 소실되어 자세한 내막을 알기는 힘들다.4

1669년(조선 현종 10년)의 미복잠행을 마지막으로 두린 어멍이 지상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절묘하게도 이 해는 바릇 신앙에 경전이 도입된 해이자 바르사름 제국이 선포된 해이다. 어멍이 지상에서 갖고 내려간 아브라함계 종교의 구약 경전, 특히 시편은 그들 나름의 재해석을 거쳐 바릇 신앙의 공식 기도문으로 채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해당 경전이 어멍에게 전해진 구체적인 경위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대를 다룬 행장 기록에 따르면 네덜란드 표류자들에 의해 조선에 반입된 기독교 성경이 유력한 출처로 추정된다. 시편에 기반한 바르사름의 기도문은 그 일부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제국 선포 이후 어멍은 다시 선대와 같은 분리 정책으로 노선을 선회했고, 이에 따라 그 이후 바르사름의 행적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15세기부터 활동하던 바르사름 손도 얼마 후 탈퇴를 결의하고 활동을 멈췄기에 도서관에도 기도문을 비롯한 일부 사료를 제외하면 바르사름의 역사 기록은 대부분 제국 이전의 것들 뿐이다. 그 이후 제국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1995년 어멍이 재단에 의해 생포되어 바다에서 떨어지면서 봇물이 붕괴됨과 함께 제국도 일족도 소멸한 것은 확실하다.

접근법: 본디 바르사름은 종족을 불문하고 남에게 해 끼치기를 싫어하고 위험에 빠진 자를 돕기를 좋아해 옛날부터 인어가 사람을 구한 일이 민담으로 전해지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어멍은 동족이 몰살당하고 십년이 넘게 강제로 감금당한 채 지내면서 크나큰 절망감 탓에 변해버렸다고 전해진다. 어멍을 쫓고 있는 풀무치(Locusts)들이 알아낸 대로라면5 어멍은 지하 감옥에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받으며 갇혀 있고, 이런 처지를 비관하여 거의 제정신을 놓은 채 사나운 모습을 보이며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어멍은 인간 전체에 대한 증오로 미쳐버렸으며, 직접 대면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만약 손이 어멍과 접촉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가급적 인간이 아니거나 바르사름과 친분이 있던 맹원이 나서야 할 것이다.

관찰 및 이야기

나의 7대조 할아버님 되시는 담천(曇天) 홍세담 선생께선 혼란의 17세기에 불어도감에서 관직 생활을 하셨다. 비록 당신께선 도사가 아니었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 중엔 누구보다도 소위 "괴력난신"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사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경술금난을 몸으로 겪으셨던 당신의 생애는 18세기 말 우리 가문이 본격적으로 지하 도사의 삶을 선택할 무렵 글로 옮겨졌다. 우리 가문 사람들은 누구나 읽는 필독서인 이 행장에는 당신께서 바르사름과 만났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사실 행장이라는 것이 사료적으로 엄밀성이 높은 기록물은 아니지만, 옥리 이전까지의 두린 어멍의 마지막 목격담으로 전해지는 드문 기록이기에 오류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옮겨 적는다.

제주목은 본래 조정과 멀리 떨어져 있고 주민들이 전통과 관습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주로 민간이나 제주목사 차원에서 이물을 다뤄왔다. 특히 인어는 이물이라기보단 바다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존재로 여기었다. 잠녀들은 물질하다가 인어와 마주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조업 도중에 표류하다가 당도한 이어도에서 인어 왕국을 보고 돌아온 사내들도 있었으니 인어란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이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유년 신월6, 담천 선생은 불어도감의 관리들을 이끌고 섬에 당도하였는데 마중 나온 인파가 없어 괴이쩍게 여겼다. 관아로 가던 중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인파가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찾아 가보니 주민들이 모여 한 계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지삿갓과 쓰개치마로 가린 몸은 살이 아니라 물로 되어 있었다. 주민들에게 묻자 그것은 인어이며, 본디 물에 사는 자인데 어쩐 일로 뭍에서 죽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였다.

불어도감 사람들이 인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던 중 제주목사 이인과 판관 노정이 소란의 와중에 도달하였다. 판관 노정이 제 살 곳을 벗어나 말라 죽어가고 있는 어린 것을 딱히 여겨 구원하길 청하자 이인이 이를 받아들였다. 담천 선생은 동행한 기술제장 남연수에게 어찌할 지 묻고 남연수 역시 우선 살려놓은 뒤에 처분을 정해도 늦지 않겠다 하자 그 뜻에 따랐으나, 다만 도망할 염려를 면키 위해 인어는 이곳에 두고 바닷물을 떠와 주기로 하였다.

과연 바닷물을 내어주자 계집은 곧 기운을 차리고 말문이 트였다. 제주 토박이말로 말하여 처음엔 일행이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주민을 통해 몇 마디를 주고받자 곧 한양 말씨를 익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계집은 자신이 이어도에 있는 인어들의 왕국의 여왕이며, 지상이 궁금해 올라왔다가 바다에 돌아가지 못한 채 몸이 말라 곤경에 처한 참이었다고 했다. 불어도감의 관리들은 이물이 살아 도망치고자 궁색한 거짓말을 한다 하며, 금제소에 옮겨가기 어려우니 곧장 죽일 것을 진언하였다. 담천 선생이 이를 일축하고 계집에게 제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인간 세상에 발을 들이지 않겠느냐 물으니 이물은 감사 인사를 올리며 필히 그리하겠다 약조하였다.

떠나기 전 계집은 이 만남을 기념하는 동시에 인간 세상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증표로써 진주로 만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장신구를 꺼내 담천 선생께 바쳤다. 선생은 이를 귀히 여겨 남연수에게 주어 보전원 금제소에 잘 보관하라 일렀다. 남연수는 이를 받고 자신도 작별 선물을 주겠다며 고향 화란의 종교 서적을 계집에게 주었고, 계집은 이를 소중히 받아들고 먼 바다로 헤엄쳐 사라졌다.

이듬해 조선 팔도에 큰 흉작이 들어 제주도민 역시 굶주림을 면할 길이 없게 되었다. 이인의 뒤를 이어 제주목사가 된 노정은 매일같이 주민들과 함께 직접 포구에 나가 구휼미를 기다릴 만큼 고통받는 백성들을 걱정했지만 전라에서 오는 지원은 형편 없었다. 목사는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 생각에 통곡하고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통곡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안에서 고래와 물고기 떼가 밀려올라와 목사 일행 앞에 널부러졌다. 주민들이 이를 반겨 성대하게 잔치를 열고 다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으니, 필시 인어 여왕이 담천 선생과 노정 선생의 은덕에 보답한 것이라 칭송하였다.

교차 검증할 다른 사료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이 기록에서도 어멍은 알려진 바와 같이 선량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고결한 존재를 학살하고 감금, 학대, 고문하고 있는 옥리들의 야만성에는 진저리를 칠 수 밖에 없다. 옥리들이 하필이면 어멍을 안개나루의 시설에 가둔 탓에 손이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인지라, 지금으로썬 어멍의 정신이 버텨주길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은 통탄할 일이다.

- H.H.

의문점

천 년을 온화하게 살아온 어멍은 옥리들의 가혹하기 짝이 없는 취급 속에서 증오에 휩싸인 복수귀가 되고야 말았다. 훗날 어멍이 해방되어 바르사름이 부흥한다고 해도, 과연 지금의 어멍이 창조해낸 바르사름 사회는 이전과 같을 수 있을까? 유서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평화주의자 종족은 우리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솔직히 뱀굴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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