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것들을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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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는 가장 멀리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정확히 무엇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1초의 시간이 흐르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세 명의 연구원들이 증발했다.

2초가 흘렀고, 그 뒤에서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 중이던 다섯 명의 연구원들이 두 동강 났다.

4초가 흐른 뒤, 향후 실험 방향에 대해 논하다가 그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여러 명의 연구원이 죽었다. 아무도 그들이 원래 몇 명이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어쨌거나 시신은 전부 세기엔 너무 많았으니까. 서로 엉겨붙어 있기도 했고.

6초가 흐른 뒤, 파동이 연구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7초가 지나고, 연구실 바로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던 요원 셋이 공중으로 날아갔고, 그 상태로 즉사했다.

8초 후, 연구실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일곱 명의 인원들이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미동이 없었고, 각혈하던 일곱은 이내 서로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덜컹거렸다.

10초 후, 기지의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래층에서 회의를 진행 중이던 수십 명의 인원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느끼기도 전에 참수되었으니까.

15초 뒤, 기지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20초 뒤, 서로를 먹고 있던 일곱 명의 인원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며 1층으로 떨어졌고, 부서진 철제관에서 기어나온 식인귀들이 중앙 로비에서 서 있던 인원들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30초 뒤, 연구실이 있던 5층이 산산조각 나며 4층으로 추락했다. 참수된 시체 위로 엉겨붙은 시체가 추락하며 거대한 소음을 냈다. 2층, 6층, 7층의 연구실에 배속되었던 사람들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40초가 지나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은 심하게 이어졌고 곧 각혈했다. 그리고 죽었다.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천연두였다.

50초가 흐른 뒤, 천연두를 앓은 사람들 가운데 이성을 잃고 다른 이들에게 덤벼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육체는 이상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1층에서, 늘어난 팔이 이사관보 마셜 매더스의 얼굴을 강타했다. 남자는 쓰러졌다. 꺾인 목은 여지를 주지 않았다.

1분이 흘렀고, 4층이 무너졌다.

1분 10초가 흘렀고, 기지 이사관 클라우디아 깁슨이 죽었다. 3층이 무너졌다. 천둥 같은 굉음이 일었다. 기지는 급성 쇼크가 온 사람처럼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1분 15초 뒤, 그것이 1층에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그가 속해 있던 형이초학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쿠즈코-뷜러 절차는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swn001-1 개체의 상 하나를 추출해 낼 수 있었다. MigueludeomMigueludeom이라는, 별로 중요해 뵈지도 않는 그런 개체였다. 고작 그 하나를 추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돈과 힘을 쏟아부었다.

그도 그런 멍청이 중 하나였다. 수일 밤을 새우며 연구에 매달렸다. 인정받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그래서 제420기지가 붕괴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설사 누군가 알 수 있다 한들 이미 죽었으리라. 타 기지에서 근무하던 형이초학부 인원들 역시 명쾌한 해답을 줄 수는 없었다. 증거로 삼을 무언가도 없어진 마당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었던 답변은 오로지 "실험 계획 수립의 부실"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었다.

죄다 병신들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잘못은 그의 팀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계획에 문제가 있었고, 결과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기지가 무너졌다, 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형이초학부 연구원들은 공손하게 그를 공격했다.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었으므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었고 그 책임을 지기엔 살아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잃을 게 많았다.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에, 그 역시 살고 싶었으니까. 모두를 버리고서라도.

아무도 그를 대변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곳이 그러하듯 정치적 기류는 파편적이었고, 태풍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휘몰아쳤다. 그가 병실에 있던 내내 비가 내리쳤다. 그는 침대에 누워 창문을 바라보며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낭랑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열대성 저기압이 북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문에 빗줄기가 부딪혔다. 그는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 사이 사이로 비명이 들린 것 같았지만, 그는 무시하고 돌아누웠다. 빗줄기 아래에서 죽음은 오로지 그들 자신의 몫, 그리고 생존한 그의 몫인 것처럼 보였다.

제420기지에는 105명의 인원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72명이 사망했고 32명이 실종되었다. 생존자는 한 명이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은 이틀 만에 종료되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들이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입원한 동안 일주일에 두 번 검사를 받았다. 이송된 제17기지에서, 그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차임벨이 울리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타고 옆방으로 갔다. 옆방에는 글라스 박사가 있었다. 몇 가지의 질문이 오갔고, 그것으로 땡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글라스 박사에게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언젠가 박사가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그가 대답했다. 네.

글라스 박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묻고 있었다. 취조자처럼 집요한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속셈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

글쎄요.

그는 마음속으로 그날의 정경을 그리지 않는다. 구조된 후 며칠 동안은 그 생각에만 젖어있었다. 덕분에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멍하니 있는 일도 잦았다. 언젠가 오랫동안 방 안에서 불을 끄고 앉아 있던 적이 있었다. 다섯 시간 뒤에야 발견되었고, 덕분에 그는 심리 치료를 받게 되었다. 마음 속 어딘가가 이상해 진 것을 그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칠 방도는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이미 무언가가 망가진 뒤니까.

그때 무슨 느낌이었는지는 기억나죠.

생각난다.

손발이 차가워지며, 차 밖으로 뛰쳐나가 진동하는 대지 위를 질주하여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 제420기지 주위를 둘러싼 긴 잡초들과 멀리서 들려오는 농기계의 소음. 그는 질주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직감으로 전해져 오는 그 감촉. 창문이 박살 나고, 달릴수록 가까워지는 비명. 그는 질주하고,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보이는 것들— 지옥.

자네 괜찮나?

그는 고개를 든다.

또 멍하니 있었군요.

박사는 그가 PTSD 환자라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는 박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박사는 신뢰하기엔 너무 견고한 사내였고 그를 고칠 수 있으리라고 너무 깊게 믿고 있었다. 그는 광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사태 이전의 그들이 승리에 대한 광신에 젖어 있었으므로.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거대한 무언가가 환상처럼 그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게 역병에 걸린 괴물인지 아니면 그들이 추출해 낸 swn001-1 개체의 상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든 못하든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박사와의 면담 이후 그는 다시 기억 속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날이 춥지 않던 때에 잠시 농땡이를 피우던 시간. 밤을 새우며 논문을 정리하고 규합해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모색하던 시간. 굉장한 진전을 이루어 냈을 때 함께 소리치며 껴안던 순간들. 그리고 어느 날 밤 누군가와 난간에 기대어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일.

모니카 엘린은 그 사태에서 아홉 번째로 죽었다. 시체는 기지의 잔해 속에서 발견되었다. 정확히 어느 부분까지 모니카고 어느 부분까지 다른 사람임을 몰랐기에, 여러 명이 얽히고설킨 시쳇더미는 그대로 현장에서 태워졌다. 재단 앰뷸런스로 이송되면서 그는 계속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주검 타는 향취가 코를 찌르고 눈을 공격했다. 눈에서 흐르는 게 연기 탓인지 슬픔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그 팀에서 그와 함께 제일 젊은 축에 속했다. 키가 크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처음 재단에 영입된 뒤 미국 쪽 기지로 전근을 갔을 때, 회화가 미숙했던 그를 도운 것도 모니카였다.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려는 사람이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때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침대에 얼굴을 묻는다. 그때 나가지 않았더라면. 하필이면 그때 상비약이 다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덧없는 가정은 한없이 부유했다. 모니카는 그곳에서 죽었다. 그 무참한 사실이 그를 괴롭힌다.

그날 오전에 그는 반차를 써서 기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장 가깝다고 해봤자 몇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이라 정오를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처방전을 들고 약을 타내,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도 약간의 비일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운전하는 동안 모니카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였다.

캐럴 교수가 엄청난 발견을 한 것 같아! 다들 쉬다 말고 연구실로 가고 있어. 그녀가 발견한 수식을 대입하면 이번에야말로 절차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겠지. 게다가 보완도 할 수 있을 거고. 어디야? 아직 멀었어?

그는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그 말대로였다. 너무 늦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중요한 질문,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된 거에요?"

"아니, 내가 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지. 그래서 이름이 그 꼴이 된 거라고?"

"제가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하죠." 소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끼어들었다. "여기가 정말 제21K기지 사랑방이 아닌 거 확실해요?"

그들은 제21K기지 보안대 사무소 탕비실에 앉아 있었다. 각자의 자리 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잔을 두고, 김가딕 격리이사관보와 윤덕희 요원, 그리고 유소라 보안대원이 한 남자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시선의 표적이 된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글쎄, 우리야 컨퍼런스 준비 때문에 내려온 것이지 않나." 남자가 대답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가기 전에 짧은 옛이야기도 듣고 좋지." 가딕이 툴툴거렸다. "게다가 지금은 보안대 대부분이 업무를 보니 말일세."

"그럼 윤 요원님은요?" 소라가 한숨을 쉬며 눈길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탕비실 한쪽에 놔둔 과자를 먹고 있다가 사레가 들린 덕희에게로 향했다. "제가 온 첫날부터 매일 출근하시는 것 같던데."

간신히 커피를 마시고 진정한 덕희가 능청맞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에에이, 소라 언니. 좋은 건 나누고… 응? 여기가 기지 안에서 제일 먹을 것 많고 따뜻한 곳이란 말이에요! 업무로 지친 제 심신을—"

"자네가 지칠 새가 있어?" 가딕이 궁금하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헐. 제 공헌을 모르신단 말이에요?!"

"공헌이고 뭐고 자주 오지 마. 너 은근슬쩍 여기 껴서 아주 자연스럽게 같이 놀고 있는데, 자꾸 그러면 탕비실 간식비는 네 월급에서 깐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으름장을 놓았다.

"내 삶의 낙이…"

"어쨌거나, 그게 자넬 변화시켰다는 거지?" 가딕이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형이초학적 존재가?"

"그래. 기지 문으로 들어간 직후였어. 내가 그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기에 죽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네."

남자의 눈에 흐릿한 섬광이 스쳤다.

"모습이 어땠나?"

"모습이라."

남자는 커피를 홀짝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 감정은 소거되었지만 이미지만은 생생하다. 흰 불빛. 적갈색 환영과 어떤 끔찍한 동상의 얼굴. 동상이 입을 열고 있지만 무얼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비명을 지를 뿐이다. 비명, 비명, 끝없는 비명. 일순간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존재한다. 존재하며 다시금 존재하지 않는다. 불분명한 시간이 영겁처럼 이어진다. 비명, 비명, 그리고 비명.

"못생겼어."

"김 새는군."

"기대한 자네 잘못이야."

알람이 울렸다. 두 이사관보는 동시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가 되었군." 남자가 무미건조한 투로 중얼거리고는 소라와 덕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세. 준비는 다 된 거겠지?"

"준비는 차량에. 마 비서가 세팅했다고 보고했어." 남자는 피곤이 묻어나는 투로 대꾸했어. "유 대원, 좋은 하루 보내게. 윤덕희, 넌 빨리 무속학부로 일하러 가라. 농땡이 부리지 말고."

"치."

"저거 아주 버릇 됐어."

"우리도 가지. 기다리고 있겠군."

남자, 김뷁쉙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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