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소의 저주

Watcher’98 2012/10/18 (목) 23:19:33 #75542091


「베르소의 저주」라고 알고 있나. 이것은 용기 있는 시민들이 혁명을 하기 전, 아직 절대왕정이 꿈쩍 않던 16세기경 프랑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당시의 왕을 비롯한 강자들은 그 권력을 남김없이 사적으로 행사했다는 전제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시민을 짓밟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휘황찬란한 세계를 구가했다. 그리고 일부 강자들은 그 밟는 방법에서도 일정한 쾌락을 찾아내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구루푸스 백작은 최악이었다. 공적이 한미하여 많은 문헌에 이름이 남지 않은 그이지만, 그 본질을 뒤져보면 온갖 악명이 드러난다. 소수의 문헌에 따르면 그는 상당한 로맨티스트로, 누구보다도 집념이 깊은 성격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구루푸스 백작의 저택에는 종일 많은 시녀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저택 청소부터 밤일까지 생활의 대부분을 그녀들에게 맡긴 백작은 고용의 관계를 넘어선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가족, 친구도 아닌, 본래는 운명의 상대에게 품어야 할 감정──깊은 애정이었다. 맑은 날이면 그는 시녀를 데리고 밖에 나가 추국빛 들판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랑의 아름다움을 속삭였다. 비 오는 날에는 벽난로 앞에서 포도주를 한 손에 들고 역시 사랑을 열변했다. 시녀들 쪽의 마음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백작 쪽의 사랑은 진짜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는 광기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시녀 중 한 명인 로자의 임신이 발각되었다. 그것은 구루푸스 백작과의 성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가난한 빵장수 청년의 아이였다. 축복되어야 하는 순애보였지만, 백작으로서는 중대한 배신행위이며 용서받지 못할 부정이었다. 불쌍한 청년과 그 가족은 이유 없는 대죄를 선고받고 영민들의 호기심의 눈과 성대한 박수소리 가운데 처형되었다. 그래도 가라앉지 못한 그의 분노는 로자에게도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안에서는 소용돌이치는 증오와 대조적으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애정이 존재했다. 이 커다란 모순을 해소하고자, 고심 끝에 그는 답을 얻어냈다.

구루푸스 백작은 자기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다른 시녀를 자기 방에 불러냈다. 도수 높은 포도주와 약한 독초로 그녀를 잠재운 뒤 프랑스 굴지의 의사에게 명하여 자식을 꺼내게 했다. 이후 같은 순서로 로자의 아이를 꺼내고 곤혹한 로자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로자여,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을 부정하는 것. 또 하나느 내 아이를 낳고 진실된 사랑을 맹세하는 것. 어느 대답이건 기꺼이 환영하겠다.

악마레비아탄」에 비유된 악명 높은 그루푸스 백작이 태어난 순간이었다.

격통과 두려움으로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로자는 대답했다. 그것을 구루푸스 백작은 만족스럽게 듣고, 의사에게 「내 아이를 그녀에게 옮겨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자신의 아이가 난로에 집어던져진 뒤였다.

수술을 받고 며칠 후, 로자의 신체에 이상이 생겼다. 맑고 흰 피부는 그 매력을 서서히 잃고, 우아한 금발에는 백발이 성성하더니, 몇 주 후에는 병상에서 자리보전하게 되었다. 구루푸스 백작은 비싼 약초와 우수한 시술을 동원하며 그녀에게 매일 문안을 가서 열심히 말을 건넸다. 그녀는 나름대로 기력을 유지했으나 어느 아침 시중 담당자가 아침식사를 가져와 보니 숨을 거두어 있었다. 로자의 가족을 포함해 수백 명의 장례식 참석자 앞의 관 옆에 선 그가 어떤 연설을 했는지는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다음날 로자의 가족 전원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니, 그가 그녀에게 건네온 말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그 후로도 그루푸스 백작의 흉행은 끝나지 않았다. 애인과 임신 뿐 아니라 정원사에게 시선을 보낸 시녀, 화장을 바꾼 시녀들까지 그의 편집증적 사고에 의해 형벌을 집행받아갔다. 임신도 하지 않은 시녀에게는 더욱 맵게 느껴졌을 것이다. 고통의 끝에는 로자와 똑같이 병상에 눕고 이윽고 절명했다. 그 이상한 죽음, 그의 아이를 충성스럽게 지키고 모체의 역할을 하는 그 모습은 「베르소berceau의 저주」라고 불리며 주변 인물에게 공포를 샀다.

의학이 발달된 현대에는 이 말을 참으로 하찮게 부정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시녀들의 태내로 옮겨진 구루푸스 백작의 아기가 영양기아로 사망하고 썩어가면서 유해한 부패가스를 발하는 일종의 독물로서 태내에 잔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부패의 개념은 있었지만 주술신앙이 성행했기 때문에 의학적 견해보다 그쪽이 우선시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해명되지 않은 기묘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루푸스 백작 역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만년의 그는 편집증, 환청, 환각을 일으키며 형태 없는 망령을 심하게 두려워했다고 한다. 더 기묘한 것은, 그라고 생각되는 시신에서 발달되지 않은 소아의 뼈가 수십 점 발견되었는데, 그 발견된 장소는 여자로 치면 자궁이 있는 위치에 해당하는 하복부였다.

두 번째는 구루푸스 백작의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가계가 단절된 것이다. 일족의 번영을 제일로 여기던 당시, 더군다나 정욕에 빠진 그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벌을 우선하여 후사가 모두 사망해 버렸다고 판단하며 또 그것이 통설이지만, 후사의 출생과 죽음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어느 문헌에도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벌의 일환으로 사용하느라 다 죽여 없애 버렸다는 그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태어난 것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이상의 사실들의 전모가 앞의 통설과 같은지, 혹은 억지에 의해 죽은 그녀들의 아이들의 저주인지, 혹은 아버지에 대한 충성을 도모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모체의 굴욕적 짐이 된 아이들의 저주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구원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 일화가 기록된 문헌은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비참한 그녀들, 그리고 구루푸스 백작은 안녕을 주는 진정한 요람으로 기능하지 않았음이다.」 아이들이 잠든 무덤만은 그 요람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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