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너머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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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여는 때보다 더디게 흘러갔다. 한 시간이 반나절 같았고, 하루가 일주일 같았고, 한 달이 일 년 같았다. 4월, 5월, 6월이 되도록 연락은 없었다. 물론 평행차원의 '나'는 6월이나 7월에 온다곤 했지만 확정된 날짜가 아닌 막연한 날짜를 기다리는 일은 훨씬 힘들었다.
나름대로 그 일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려했다. 그 녀석과의 대화가 왜 내 눈에만 보이고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왜 기록으로는 남겨지지 않는 걸까. 왜 하필 나일까. 상부에 사정사정 해 가며 개인 단말기의 변칙적 특성을 확인해 봤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개인 단말기에서 0.01% 확률로 변칙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평범한 물체에서 측정되는 확률의 평균이 0.0095%에서 오가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변칙 현상이 아니라면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내 문제였다.

'과로인 것 같아요. 상담이라도 받아보세요.'

침묵 요원의 그 말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질 않았다. 정말로 내 문제인 것 같았다. 이런 문제로 상담할 사람은 몇 없었다. 그나마 좀 친한 전문의를 찾아갈까 생각도 했다. 물론 정말 찾아가진 않았다. 그 분이 외과 전문인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의사를 소개해주면서까지 정말 '전문적으로' 상담을 할 것 같아서 다소 걱정되었다. 그래서 적당한 베테랑을 찾기로 했다. 기지관리관을 찾아갔다.


"과로군."

내가 무슨 기대를 한 걸까. 흰머리 밀리터리 마니아 역시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았다. 두 명이 같은 말을 했다면 거의 사실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자네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네."

그건 좀 의외의 대답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하지만 안 될 것도 없어. 지천으로 널리고 널린 게 변칙 개체고 변칙 현상인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못 믿을 건 또 뭔가."

"명언이네요, 그거. 지천으로 널리고 널린 게 변칙 개체라니."

"물론 그와는 별개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은 따로 있네."

어떤 말?

"그와 이번 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은 있나? 혹은 얘기 할 의향이 있나?"

그렇다고 하려다가 멈추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진지하게 얘기한 적은 없었다. 서로가 각각의 평행우주에 있다는 걸로 매듭지은 이후로는 그 얘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와 얘기하는 게 즐거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건 내 추측인데, 아마도 자넨 '평범한'삶이라는 것에 동경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네. 혹은 자네를 잘 알면서도 자네와 마음 놓고 얘기 할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른 인격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자네 개인 단말기를 통해 나타난 것 같군."

"하지만 왜 하필 이거죠? 환각도 있고 환청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일종의 자가방어겠지. 인격이 분리된 게 아니라고 느낄 정도의 보험. 환각을 본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지 않나?"

"최소 상담에서 약물 처방, 심하면 기억소거나 은퇴겠죠."

"너무 업무적인 면에서만 얘기하는군."

가장 껄끄러운 게 남긴 했다.

"남들의 시선?"

빅터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뭐야, 내가 다중인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다는 걸 내 자신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인격이 개인 단말기를 통해 나타난 것이라고? 이게 말이 돼?

"믿기 힘드네요. 혹시 제가 최근에 기억소거를 당한 일이 있었나요?"

그는 서랍에서 종이 파일 하나를 꺼내 몇 장 넘겼다.

"자네가 증상을 보인 게?"

"전입오기 몇 주 전부터요. 그 전에는 없었죠."

"그럼 아니군. 시간대가 맞질 않아."

나도 모르는 새에 기억소거가 가해지긴 했나보다. 궁금하긴 했지만 알아도 득 될게 없다.

"기억소거의 부작용이나 기억 혼란은 아니군."

"박사님도 제가 정신적인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도 아마 아니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제가 이상한 거네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들었으니 이만 나가보기로 했다. 그때 빅터 박사가 불러 세웠다.

"그와 얘기는 꼭 해보게. 진지하게. 답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알겠다고 했다. 그가 돌아온다면 이번에야말로 끝을 볼 것이다.

"하나 더."

왜 자꾸 나가는 사람 붙잡고 그럴까. 한 번에 말 하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그가 하는 말은 허투루 넘기기엔 뼈가 굵다.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원인이 어떻던 그와는 그만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 말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7월이 찾아왔다. 7월말. 녀석도 찾아왔다.

Armygrim: ㅎㅇㅎㅇ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건넸다. 도저히 웃으면서 받아줄 수가 없었다. 바로 본론을 꺼냈다.

풀그림: 너 누구야.
Armygrim: ?????
풀그림: 너 누구냐고.
Armygrim: 이놈이 변비약을 처먹었나.
Armygrim: 갑자기 묵은 헛소리를 싸지르네.
Armygrim: 아니면 기억소거라도 당했냐?

당연히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Armygrim: 그래서 네가 다중인격이고, 내가 네 인격 중 하나라는 거냐?
풀그림: 나도 몰라서 묻잖아.
풀그림: 넌 내 인격 중 하나야?
Armygrim: 살다살다 이딴 질문은 또 처음이네.
Armygrim: 맞다하면 어쩔 거고 아니라하면 어쩔 건데?
풀그림: 질문에 대답이나 해 줘.
Armygrim: 난 네 인격 아님. ㅇㅋ?
Armygrim: 살도 있고 뼈도 있어. 그리고 나도 너랑 비슷한 일 겪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Armygrim: 내가 스마트폰 앱으로 채팅하는 거 알 거야.
풀그림: 그렇지.
Armygrim: 언젠가 한 번은 화면 잠근 버튼을 누른다는 게 홈버튼이 같이 눌려서 캡처가 실행됐어. 그래서 채팅방이 찍힌 적 있었지.
Armygrim: 한참이 지나서 앨범을 확인했는데 여기 로그가 찍힌 거야.
Armygrim: 그런데 거기 네 로그는 없었어.
Armygrim: 그게 작년 11월 말 일이야. 캡처는 8월에 됐고.
풀그림: 그런데 왜 말 안했어?
Armygrim: 꼭 말 해야 돼? 어차피 서로가 재미로 이 짓거리 하는 건데.
Armygrim: 굳이 불편해질 것 같은 이유를 만들어야 하나?
풀그림: 무슨 뜻이야?
Armygrim: 생각해 봐. 내가 너한테 네가 내 다른 인격이냐고 물으면 넌 뭐라고 생각할 건데?
Armygrim: 분명 너도 나랑 반응이 비슷할 걸?
Armygrim: 그래서 먼저 얘기를 안 꺼낸 거고.
풀그림: 그럼 언제 얘기하려고 했는데?
Armygrim: 언젠가 기회가 되면.
Armygrim: 기회 안 오면 계속 숨기는 거지.
풀그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Armygrim: 여보세요? 내가 지금까지 리예어라도 쓰고 있었나요?
Armygrim: 제대로 본 거 맞아 멍청아.
Armygrim: 난 어디까지나 갈등을 피하려고 한 것뿐이야.
Armygrim: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껏 없었어.
Armygrim: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테고.
Armygrim: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랐어.
Armygrim: 대판 싸워놓고 흐지부지 갈라지는 꼴이 되긴 싫었다고.
풀그림: 원인을 찾는 게 잘못됐다는 거야?
Armygrim: 아까 이미 말했잖아.
Armygrim: 내기 네 인격 중 하나면 어쩔 거고, 그 반대면 어쩔 건데.
Armygrim: 이제 네가 대답해봐.
Armygrim: 아이고 손 아파.

솔직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내가 정말 다중인격인지, 그리고 그가 내 여러 인격 중 하나인지. 단지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풀그림: 모르겠어.
Armygrim: 그럴 것 같더라.
Armygrim: 원인 찾아보겠다고 서로 갈등만 일으키다가
Armygrim: 홧김에 채팅 서버 닫아버리고
Armygrim: 다시 연락 안 되면
Armygrim: 나중에 후회하려고?
Armygrim: 여기 나 혼자 떠드냐? 손가락 나가겠네.
풀그림: 좀 기다려 주면 안 돼?
풀그림: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래.
Armygrim: …
풀그림: 빅터 박사는 연락을 끊는 게 좋을 거라고 했어.
Armygrim: 이유는?
풀그림: 아직 모르겠어.
Armygrim: 이유도 모르면서 의견을 따르겠다고? 남의 의견이 그렇게 중요함?
풀그림: 의견이 아니라 조언이야. 들어서 나쁠 건 없어.
Armygrim: 조언도 상황 맞춰서 써먹어야 조언이지.
Armygrim: 그리고 봐라.
풀그림: 뭘?
Armygrim: 분위기 이따구로 변했잖아.
풀그림: 네가 험악하게 말 한 건 생각 안 하고?
Armygrim: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처음 듣는 말이 '너 누구냐'느니, '넌 내 인격 중 하나냐'느니, 퍽이나 좋은 말이 나오겠네.
풀그림: …
Armygrim: 그래, 일단 진정하자.
Armygrim: 진정하고 좀 있다 다시 만나자고.
Armygrim: 한 시간이면 되냐?
Armygrim: 겜 한 판 돌리고 옴.
풀그림: 넌 이런 상황에까지 게임이야?
Armygrim: 이런 상황이 뭔데? 뭐 세계멸망 시나리오라도 펼쳐졌어?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케이크가 막 불어나?
Armygrim: 휴가도 짧아서 바쁜 건 난데 왜 네가 급해?
풀그림: 그럼 뭘 어떻게 하라고? 손 놓고 기다리라고?
Armygrim: 현자타임 오게 손이라도 쓰던지. 머리는 맑아지겠네.
풀그림: 개자식.
Armygrim: 네, 저요?
Armygrim: 갔다 온다.

두어 번 그를 부르는 로그를 남겼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처음 그와 대화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머릿속의 산산이 흩어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고 싶었다. 버릴 건 버리고, 모을 건 모아 합치고. 잠깐 눈이라도 감으면 머릿속이 진정될까?


눈을 떴을 땐 이미 아침이 되어 있었다. 어제 책상에 엎어졌다가 그대로 잠든 것 같았다. 삐딱한 자세로 엎드려 자서 그런지 허리가 아팠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두드리고 있는데 개인 단말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부랴부랴 다시 채팅 서버로 들어갔다.

Armygrim: 나 왔음.
Armygrim: 여보세요?
Armygrim: 자냐?
Armygrim: 23시쯤에 다시 연락함.

오전 6시가 막 넘었으니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그 때까지 할 말을 생각해야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오늘따라 유난히도 시간이 빨리 흘렀다. 약속했던 시간이 왔고 다시 연락이 왔다.

Armygrim: 마무리해야지.
Armygrim: 어떻게 할 지는 정함?
풀그림: 너는?
Armygrim: 네 의견에 따라야지.
Armygrim: 난 아직 다른 사람들이 알거나 하진 않았는데 넌 아니잖아.
Armygrim: 왜 또 머저리마냥 걸려가지고.
Armygrim: 다중인격자 의혹을 벗던 어쩌던 일을 해결하려면 네 의견에 따라야지.
풀그림: 고마워해야 하냐.
Armygrim: 고럼, 당연하지.
풀그림: ㅇㅋ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걸까. 천천히 타자를 두드렸다.

풀그림: 연락은 그만 하는 게 좋겠다.

대답이 금세 돌아올 리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답이 돌아왔다.

Armygrim:예상은 했지만.
풀그림: 그래서, 기분은?
Armygrim: 글쎄.
Armygrim: 복잡한 일 해결돼서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네.
Armygrim: 1년 넘게 연락 주고받다가 하루아침에 그만두려니까.
풀그림: 네 의견은 어땠는데?
Armygrim: 솔직히 나도 연락은 그만 하려고 했어.
Armygrim: 아무리 펜팔 친구여도 같은 곳에 살아야 펜팔친구지.
풀그림: 하긴, 아예 속한 우주가 다르면 만날 방법도 없지.
Armygrim: 갑자기 연락 끊겨도 확인할 방법도 없고.
Armygrim: 어중간한 관계에서 연락만 드문드문 이어지느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풀그림: 아쉽지만.
Armygrim: ㅇㅇ

다시 침묵.

풀그림: 이제 할 말도 없네.
Armygrim: 1년 동안 신나게 떠들었으면 그걸로 된 거지.
풀그림: 연락 닿을 때 마다 텀이 너무 길어서 문제지만.
Armygrim: 슬슬 서버 닫아야지?
풀그림: 12시에.
풀그림: 로그 날아가는 거 알지?
Armygrim: ㅇㅇ

로그가 사라진다는 말이 이토록 와 닿은 적이 있을까.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

풀그림: 잘 지내라. 몸조심하고.
Armygrim: 마지막 인사인데 끝까지 오그라들게 하네.
풀그림: 그럼 덕담이라도 해봐.
Armygrim:어디 가서 끽하고 븅신같이 뒤지지 마셈. 뒤질 때 뒤지더라도 얼굴은 되찾고 뒤져야지, 네 영정사진 보고 조문객들이 토하면 안 되잖아. 장례식장 바닥에 부침개 파티 벌어지겠네.
Armygrim: 덕담을 하려면 이쯤은 돼야지.
풀그림: 농담 아닌 것 같아서 더 무섭네.
Armygrim: 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너님도 덕담 좀.
풀그림: 전역하면 뭐 하려고?
Armygrim: …
풀그림: 전역하면 뭐 하려고?
Armygrim: ㅅㅂ…
풀그림: 전역하면 뭐 하려고?
Armygrim: 존나 너무하네. 그것도 세 번이나.
풀그림: 이겼다!
Armygrim: 이겨서 좋겠다, 이 눔아.
Armygrim: 간다.
풀그림: 정들기 전에 꺼져.
Armygrim: ㅗ

그가 서버를 나갔다. 서버를 닫기까지 10분이 남았다. 의자를 뒤로 기울였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일 뿐이다. 그마저도 순수하게 연락한 시간만 따지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친한 친구 한 명을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찾아와서는 갑자기 떠났다. 지역사령부 본부에서 봤던, 재단 활동이 어려워진 직원들의 목록이 자꾸만 겹쳐져 떠올랐다.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상처가 되는 거죠. 하지만 그 상처는 천천히 메워져요. 또 다른 누군가와 친해지면서요.'

그래, 관리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언젠간 다른 누군가와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12시까지 2분 전, 채팅 서버를 닫기 전에 한 번 더 서버에 입장했다. 채팅 로그가 남아있었다. 다 읽은 로그 아래로 낯선 로그가 보였다. 그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남긴 로그였다.

Armygrim: 전에 이번에 겪은 일을 테일로 쓴다고 했는데
Armygrim: 선물 받아라 얼굴 븅신아.
Armygrim: 간만에 해피엔딩이나 써 봄.
Armygrim: ㅂㅂ 재단 풀그림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생각해보면 그는 해피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 그가 쓰는 해피엔딩이라니, 그녀석 말고는 어느 누구도 그런 선물을 줄 수 없으리라. 선물도 받았으니 답을 써야지.

풀그림: 해피엔딩 잘 받았다.
풀그림: ㅂㅂ 군인 풀그림

답장을 쓰고 서버에서 나왔다. 그리고 서버를 30분 정도 더 열어두었다. 12시 30분이 되자 서버를 닫았다. 그가 로그를 확인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모든게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더 이상 다른 우주로부터 오는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남들은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이는 채팅 로그를 볼 일도 더는 없었다.
그와 연락이 끊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그가 만드는 창작물이 나에겐 사건이자, 업무였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은 그가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도 되리라. 그러니, 나는 일을 시작한다.
아마 얼마간은 일이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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