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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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서 오세요. 그냥 편하게 앉으세요. 의자가 구리긴 하지만, 앉는 데는 지장 없을 겁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참으시고 말입니다.

그래, 생일… 아니, 생신이라고 하셨죠. 뭐, 일단은 축하드립니다. 1년에 단 한번뿐인 날인데, 당연히 축하받으셔야죠. 헌데 어째 표정이 그 모양이십니까? 사과 먹다 반만 남은 벌레를 보신 것 같은 표정이시군요. 혹시 생일빵이니 뭐니 그런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안심하세요. 전 그런 건 즐기지 않으니까요.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냥 흘려들으세요. 연구원들을 시켜요? 하하, 제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일단 아이디어 접수는 받아두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흠, 생일이시고하니, 뭔가 선물을 하나 해드려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마땅한 게 없군요. 요즘 지갑 사정이 영 좋지 못해서 말입니다. 나름대로 뭘 해본다고 한 것도 죄다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안타깝군요.

그래도 이왕 생일이신데, 짤막한 얘기라도 하나 해드리죠. 아, 거기 있는 과자는… 벌써 드셨습니까. 뭐, 상관없습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생일을 끔찍하게도 싫어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보통 아이들은 매년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는데 말입니다. 생일엔 모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두의 축하, 맛있는 음식, 큰 선물. 하지만 아이는 어느 하나도 누리질 못했습니다.

아이의 생일은 뭔가 이상했습니다. 예, 정말로요.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난 날 사망했습니다. 과다출혈이었죠. 아이의 쌍둥이 동생 역시 죽었습니다. 그건 아이의 돌 때 일입니다. 아이 아버지의 사업은 망했습니다. 아이의 두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이의 생일이 되면, 집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생일을 맞을 때마다, 아이의 주변사람은 -친가와 외가를 포함해 아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곤 했습니다.

아이는 버림받았습니다. 친가도, 외가도, 이웃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아이에게는 항상 여러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불행을 가져오는 아이. 흔하디흔한 수식어죠. 개성도 없고. 분명 그 아이는 달랐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불행을 가져오는 존재는 넘치고 넘칩니다. 그러나 1년에 단 한 번 불행을 가져오는 아이는 -사실은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 아이밖에 없을 것 입니다. 상당히 특이한 경우였죠.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이가 생일을 맞을 때면, 아이는 이웃사람들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유가 있을 리가요.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는 일을 구실삼은 폭행에 불과했습니다. 화재가 일어난 때에도, 태풍이 몰려온 때에도, 신종 독감이 유행한 때에도. 아이는 그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맞아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15살이 되던 해, 아이의 생일은 더 이상 불행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아이가 사라졌을 때, 그 누구도 찾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아이의 아버지만이 슬퍼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습니다. 그러나 협조하는 주민들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가난했던 아이의 집안은 더욱, 더더욱 가난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그만 포기하라 했지만, 그가 들을 리 없겠죠. 제아무리 못났다 해도, 자신의 아들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세 달 후,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물론 기쁜 건 오직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돌아온 아이를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었죠. 불행을 가져오는 존재가 다시 돌아와 버렸는데, 기쁠 리가 있겠습니까.
아이가 돌아온 날 저녁, 주민들은 아이의 아버지를 몰래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술을 권했죠. 아이가 돌아온 걸 축하한다며 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는 너무도 순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기분 좋게 취한 그날 밤, 주민들은 아이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살해했습니다.

주민들은 곧바로 아이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마저 처리할 속셈이었습니다. 주민들이 거칠게 문을 열려하자, 아이는 놀라며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집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주민들은 아이를 찾아내려고 온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아이는 주민들에게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의 손에는 모두 험악한 흉기가 하나씩 들려있었습니다. 아이는 여태껏 쌓인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대체 내게 왜 그러느냐고, 왜 자신이 미움 받아야하느냐고, 왜 자신은 행복할 수 없느냐고. 아이는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핏기가 빠진 주검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주민들은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아이는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습니다. 주민들의 흉기가 아이에게 날아든 순간.

…죄송합니다. 잠깐 혼란스러워서. 아, 괜찮습니다. 마저 얘기하겠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이에게 흉기가 날아든 얘기까지 했죠? 흠흠, 계속 하겠습니다.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 때 알 수 없는 빛이 쏟아지고, 그리고, 아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예? 뭔가 허무하다구요? 그럴 수밖에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의 생일은 더 이상 불행을 가져오지 않았다는군요.
자,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다시 한 번 생신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제 업무 보러가야겠네요. 그쪽도 이제 업무 보셔야죠. 생신 전에 며칠 쉬셔서 일거리가 제법 쌓였을 겁니다. 지루한 얘기 듣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 안 가셨습니까? 이야기의 결말을 맺어달라뇨, 전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지못합니다. 정 궁금하시면 상상의 나래를 직접 펼쳐보십시오. 그런 거에 능숙하시잖습니까. 아이는 요즘 뭘 하고 지내냐구요? 흠, 그거에 관해서는 대충 알고 있긴 한데. 아마 그쪽도 잘 알고계실 듯합니다.

혹시 모르죠.

어디선가 누군가의 생일을 맞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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