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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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떨궜다. 온 사방에 열기가 후끈거렸고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귀에는 이명이 끊이지 않고 들리고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이 이마를 타고 턱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이 바싹바싹 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하는 생각에 잠시 멍하니 있던 찰나, 갑작스런 쌕쌕이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고 그 때 정신이 확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인민군. 후퇴. 폭격.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전쟁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 본능적인 공포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왜? 간신히 고개를 들려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온몸이 굳는 걸 느꼈다. 아직도 불길이 꺼지지 않은 차바퀴 옆에 내가 신고 있던 고무신 한 짝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내 왼발과 종아리가 이어져 있을 것이다. 무언가 살색의 덩어리가 고무신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어디로 튀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아직도 다리가 멀쩡한 것처럼 감각이 생생한데,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니. 나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내딛고 땅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를 움켜쥐었다. 두 손으로 흙을 가득 그러안고 입으로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나는 미친 듯이 앞으로 기었다. 그때마다 끊어진 다리에서는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짐승 같이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죽는다. 진짜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엄습했다.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질긴 인생이라고 한탄한 적도 있었지만, 여기서 이제 진짜로 죽겠구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앞으로 기어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손톱이 부러지고 손이 이리저리 긁혀 나갔다.

그러나 불쑥 차라리 이게 더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여기서 살아서 무엇 하나? 밤마다 혼자서 울고 한탄한 게 몇 번이던가?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남편. 남편이 제일 먼저 갔다. 남편은 보도연맹이라는 곳에 속해 있었다. 면에서 나온 경찰의 말로는 공산주의 반역자들에게서 동조했던 빨갱이들을 완전히 교화시키기 위한 곳이라 했다. 그러나 남편은 빨갱이는 아니었다. 전혀. 정치니 사상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무지랭이 농부였을 뿐이니까. 남편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그 경찰이 말했던 밀가루 때문이었다. 우리 리(里)에는 보도연맹에 가입해야 할 인원의 할당량이 떨어져 있었고,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그 경찰이 가입하면 밀가루를 다섯 봉지나 주겠다며 남편을 꾄 것이다. 남편이 그 밀가루 봉지를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당으로 들어왔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밀가루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는 것이 드러났다. 라디오는 이장 집에만 있었고 그나마도 잘 터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전쟁이 났다는 것도 다음 날에야 들었을 정도다. 전쟁이 나자 아들은 빨갱이들을 다 잡아 죽인다는 소문이 돈다며 제 애비더러 썩 도망가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아들은 그래도 나름 시에서 학교도 다녔고 대학 문턱까지는 가 보았기에 정치 같은 것은 우리 부부보다는 훨씬 잘 알았다. 나는 고분고분히 아들 말을 따르려고 했고 남편을 도망가라고 했지만, 남편은 자기가 진짜 빨갱이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며, 천지신명이 내가 빨갱이가 아닌 걸 안다고, 농부가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냐며 절대로 갈 수 없다고 맞섰다. 얼마간은 잠잠했던 것 같다. 서울이 무너지고 미국이 참전했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차피 서울이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한 2주쯤 지났을까, 그 일이 터졌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프차를 잔뜩 몰고 리로 들어와서는 모든 보도 연맹원들을 끌고 간 것이다. 남편은 총에 한 대 얻어맞고 질질 끌려 태워졌다. 남편이 탄 그 차에는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족히 50명은 되어 보였다. 나는 울부짖으며 뒤꽁무니를 따라갔지만 당연히 차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길바닥에 앉아서 울다가 해질녘이 되었을 때 마을 여편네들에게 그 차들이 뒷산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 쪽으로 향했다. 산을 오르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파헤쳤다가 막 다시 메워 놓은 구덩이와, 주변에 잔뜩 떨어진 총알 껍데기들과, 흙 위에 꽃마냥 툭 튀어나와 있는 남편의 손뿐이었다.

아니 그것은 남편의 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편은 용케 살아남아 도망쳤을지도. 아마 칡뿌리를 캐어먹고 산 능선을 따라 부산으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그날 부여잡고 울었던 흙 위에 솟았던 손은 생판 모르는 외간 남자의 손일지도 모른다. 그 때 엉금엉금 기어가던 내 앞에 무언가 형체가 보였다. 몸을 일으킬 수 없었기에 볼 수 있던 것은 그 형체의 다리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따가운 햇볕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생김새는 꼭 내 남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여보 하고 불러보았지만 그 형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고개를 떨궜을 때 그 형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혼령이 보이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는데 하는 생각이 섬뜩하게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도 곧 따라가게 될 것이니. 다음 혼령은 누가 와야 하나? 아, 그래, 시부모들이다. 틀림없이 그들이다.

남편이 죽자 아들은 시에서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차피 인민군이 밀고 들어와서 피난가도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아들과 시부모를 데리고 도망쳤다. 다행히도 쌀은 충분히 남아 있었고 늙은 시부모도 아직 팔다리에 힘이 남아 있었다. 천운으로 우리는 군인은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꼬박 2주를 걸어 나는 영동의 노근리까지 도착했다. 충청북도 영동 노근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녹슨 철판 위에 대문짝만하게 그 주소가 쓰여 있었다. 우리는 빈 집을 적당히 골라 잠시 잠을 청했다. 이곳에서 며칠 쉬었다가 부산까지 계속 내려갈 생각이었다. 아들은 짐에서 돌돌 말린 달력을 꺼내 걸었고 시부모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화투짝을 꺼내 밤새도록 화투를 쳤다.

삼일 후였던 것 같다. 아들이 아마 7월 26일에 가위표를 쳤던 때였던가. 아니 7월 29일이었던가. 대전이 무너졌다는 소리가 들렸던 터라 마을은 점점 텅 비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떠나야지 하는 생각에 짐을 싸고 있을 때, 또다시 지프차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남편이 죽은 이후 그 지프차 소리나, 군인이나 하는 것들에 완전히 겁에 질려 있던 터라 허겁지겁 숨으려 했다. 아들은 장독대의 큰 항아리 속에 들어가게 하고, 나는 마루 밑으로 숨고, 시부모는 뒷방으로 숨고 장롱으로 뒷방 문을 가려 놓자고 했지만 시부모는 완고했다. 남편의 옹고집이 어디서 왔는지 알만했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도대체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냐며, 고향을 떠난 것도 모자라 이렇게 겁에 질려 살지는 못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나와 아들만 숨었다. 마루 밑으로 내다보던 나는 마을에 들어온 군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닌 것에 깜짝 놀랐다. 코쟁이 양키들. 그 말을 몇 번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코가 커도 얼마나 크겠냐 하는 생각만 했는데. 그 양키들은 시부모를 끌어냈다.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장독대에 있을 아들과 끌려가는 시부모를 번갈아 보던 것뿐이었다. 지프차가 떠나고 한참이 더 지나서야 가까스로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마루 밖으로 기어나올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전부 다 끌려나간 것 같았다. 그 때 갑작스레 멀리서 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따발총 소리라 했다. 쉴 새 없이 총을 쏘아댈 수 있는 무기라 했다. 저 멀리 철도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때 시부모가 어찌 되었을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아들은 밤까지 기다렸다가 가자고 했지만 그 따발총 소리는 소름이 끼쳤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차갑고 난폭한 그 소리를 더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아들을 재촉하며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둘째 혼령은 지나간다. 그 따발총 소리는 이미 혹시라도 시부모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완전히 버리게 해 주었다. 목이 바싹바싹 탄다. 더 이상 도망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고개를 드는 순간 쌕쌕이가 하늘을 다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거기서 떨어진 폭탄이 다시 한 번 터졌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곳이었다. 자갈 무더기와 흙먼지가 와르르 얼굴을 때렸다. 살고 싶다. 지금 국군과 양키들이 이미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의 인민군을 몰아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곳만 벗어나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어갈 때, 날카로운 돌 하나가 다리가 끊어져 나간 부분을 파고들었다. 눈앞이 흐려지는 듯한 섬뜩한 고통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 제발……. 그런 비수로 찔리는 고통을 겪었던 때가 하나 더 떠올랐다. 나와 아들이 도망쳤을 때. 도망쳐서 어느 마을에 거지꼴로 도착했을 때.

그 마을에는 이미 피난민들이 많이 거쳐 갔었고 아직도 여럿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피난민들을 차갑게 대했고 잘 봐주면 거지, 나쁘게 보면 도둑놈들로 여겼다. 어디 함부로 쏘다니고 다니면 아이들이 와서 돌멩이를 던져댔다. 그런 마을에서 나와 아들은 어느 해진 집의 행랑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방세를 쌀로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자, 우리가 먹어야 할 쌀을 생각하면 방세를 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내 아들을 길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어. 그런 생각으로 나는 집주인에게 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며 사정사정했다.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집주인에게 울며 매달렸고 그는 잔뜩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툭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아내는 육년 전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그 이후로 여자와 같이 자본 적이 없다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말들이 의미하는 건 너무나도 명백했다. 눈물로 젖은 눈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 눈동자는 이미 욕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내게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마을을 가나 피난민들이 받는 대접이 더 나을 리는 없었기에. 그날 이후로 거의 삼일에 한 번 꼴로 그 남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자는 걸 확인하고 대충 자정이 되었을 때 행랑을 슬쩍 나와 방문을 열면 되었다. 그 남자의 살은 땀으로 끈적거렸고 손은 진득하게 내 몸에 달라붙었다. 일을 끝내고 나면 이불이 땀과 그가 내놓은 체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지만 신음소리는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아들이 듣고 깨어날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지날수록 점점 더 그 남자는 노골적이고 끔찍해져 갔다. 나는 낮이면 그 남자의 그림자도 피해다녔지만 밤이면 그 남자의 품에서 매달렸다. 어쩌면 집주인은 내가 자신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큭큭. 역겨운 인간. 이 꼴로 지금 기어가고 있는 나보다도 못한 작자였어. 그런 생각이 들며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주인은 순식간에 너무나도 빨리 죽었다. 바퀴벌레를 죽이는 것처럼. 모든 것은 빠르게 끝났다. 어느 날 탱크들이 밀고 들어왔고 인민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지주’니 ‘인민의 적’이니 하는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며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다 잡아갔다. 집주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끌려가고 채 반나절도 안 되어 거적때기에 담겨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거적때기를 들추어 보았고 명태마냥 눈을 허옇게 부릅뜨고 관자놀이에 구멍이 뚫린 집주인을 응시할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침을 뱉고 시체를 미친 듯이 밟아대기 시작했을 때 아들도 모든 걸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나를 떼어놓으며 제가 되려 울었던 걸 보면.

그 때 나는 인민군이 차라리 낫다고 느꼈다. 나와 아들은 집주인의 집을 차지했고, 그 집의 부엌을 뒤적거리며 남아 있는 것들을 먹어치웠다. 남겨두어 봤자 인민군들에게 뺏기기밖에 더 하겠는가. 어쨌든 나는 그 인민군이 말하는 것에 조금씩 동조하기까지 했다. 친미예속 파쇼 정권에 민중을 억압하는 미제의 꼭두각시 정권을 몰아내자는 말이 슬슬 입에 붙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아들의 입에서는 저주와 증오로 가득 찬 말들이 거침없이 나왔다. 한 2년 전 총선거 때 있었다던 제주도 사태부터, 여순반란 등등.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험악한 이야기는 피가 줄줄 떨어지는 것 같았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몸을 떨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피비린내 나는 일이 일어날 거라며 아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내 말은 꼭 사실로 들어맞았다. 어느 날 인민군 둘이 들어와 아들과 나를 끌어낸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터로 끌려갔고 아들은 그 자리에서 인민군들에게 둘러싸여 두드려 맞았다. 나는 붙들려 있었고 버둥대자 군인 하나가 나를 땅에 쓰러트리고 자기 무릎으로 나를 찍어 눌렀다. 내 앞에서 아들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공터에 있던 아름드리 떡갈나무에 올가미가 매어졌다. 그 올가미가 드리워질 때 나는 울부짖었던 것 같았다. 지금 끊어진 다리에 박힌 돌에서 오는 고통에 울부짖는 것처럼.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아직 철이 덜 든 아이라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라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도시 물을 먹어서 그런 거라고.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횡설수설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변호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오히려 나를 찍어누르고 있던 군인은 화약 냄새 나는 손으로 내 턱을 붙잡고 말했다.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울음을 참아 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싸하게 식었다. 울음을 참아 보라. 나는 그 불가능한 것을 해내겠다며 애써 시도해 보았으나 그 군인들은 총구로 내 얼굴을 툭툭 두드리며 나를 조롱했다. 아직 눈물이 흐르는데? 눈에 홍수라도 났나보지? 뭐 그런 말들이었다. 그 때 아들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하고 아들이 괜찮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주먹으로 땅을 치며 미친 듯이 울었던 것 같다. 군인들도 질린 듯 나에게서 슬슬 떨어졌지만 그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나무에 매달린 아들과 나만 그 공터에 남은 후에도 나는 밤새도록 울었다.

그 이후 나는 집주인의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문을 열면 피범벅이 된 아들이 있을까 방문도 차마 열지 못했다. 라디오만 밤새 켜놓고 지직거리는 소리와 거기에 섞여 들리는 말소리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날씨가 선선해지고 9월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다시 바뀌었다. 라디오에서 인천에 국군이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서울을 공략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날 한 아침 열시 쯤 인민군들은 급하게 짐을 쌌다. 그러나 그들은 갈 때도 그냥 가지 않았다. 마을의 쌀이니, 담요니 뭐니 하는 쓸 만한 것들은 다 챙기고 갔다. 그리고 나 역시 짐짝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집주인에게서 보았던 눈을 군인들에게서 다시 한 번 보았다. 아마 차는 계속 쭉 올라가서 38선까지 도착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에게는 운 좋게도 국군은 전혀 만나지 않은 채. (물론 나에게야 운이 정말 나쁜 것이지만.)

그러나 38선에 막 도달한 이후는 아니었다. 쌕쌕이들이 곳곳을 날아다녔고 국군과 마주칠까봐 차를 멈추고 숨어 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더듬기 시작할 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군인이 미쳤냐고 내 뺨을 때렸으나 그럴수록 내 웃음은 커져만 갔다.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이제 모두 죽을 거라고 비웃어 주었다. 너희 군대는 패배했고 모두 죽을 것이라고. 그들이 나를 사정없이 때렸으나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계속 커져갈 때 갑작스레 쌕쌕이 소리가 모든 것을 뒤덮었다. 쌕쌕이 하나가 급하게 내려오며 폭탄 하나를 떨구었다. 그 폭탄이 떨어져 내려올 때 나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절대로 아무 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아무 것도.

그래. 이렇게 내 차례가 왔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내게 붙은 망령들이 그렇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내가 뒤따를 차례가 온 것이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또. 다시 한 번. 다만 나는 그들처럼 깨끗하게 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애써 기어가는 것을 멈추었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심해지는 듯 같다. 피와 눈물이 뒤섞여 뺨과 턱을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 그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무언가 몸을 타고 꿈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주 차갑고 매끈한 무언가가 내 옷 밑에서 몸을 타고 올라왔다. 능구렁이 하나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능구렁이가 천천히 내 얼굴 앞에 제 대가리를 들이밀고는, 혀를 쉴 새 없이 날름거리며 내 뺨을 타고 흐르는 피와 눈물을 핥았다. 이것도 내 망령 중 하나인가. 그런 생각에 능구렁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능구렁이의 눈이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지금 내 눈과 꼭 닮은 눈이라고 느꼈다. 능구렁이가 내 피눈물을 핥으면 핥을수록, 그 증오가 점점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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