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이미 죽었기에

그렇게 간단해 보이던가? 자기 빼고 전부 시체뿐인 배를 모는 게 그렇게 간단해 보이던가?

우리는 더 많았다. 더. 훨씬 더. 모두가 기계처럼 움직였다. 모두 역할이 있었고, 모두 임무가 있었다. 우리는 엄밀히는 조직이라기보다는 지금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똑바로 알고 있는 사람의 모임에 가까웠다.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철창을 본 자도 있었다. 도서관을 본 자도 있었다.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할 이들의 피를 본 자도 있었다. 톱니를 사랑한 자. 다섯째주의자. 사들이는 자. 그리고 베푸는 자. 왜 그런지는 몰라도 위협을 느끼는 자도 항상 있었다. 모두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왜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제 나는 혼자다. 이 전지구적 망에서 혼자이다.

나는 지금 일어난 일을 다룬 파일을 읽고 있다. 동그라미와 화살표가 그려진 스티커를 서류가방에서 긁어냈다. 눈앞에 글자가 떴다. 공격을 했다. 거 참 재밌구먼. 그네들은 자기네들이 이 좆같은 물체를 줄 테니 우리를 좀 냅두라고 했다.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 조금 동안은. 재단은 쓸데없이 뭘 많이 갖고 있고, 우리는 그걸 얻거나, 심지어 쓰기까지 하는 게 목적이다. 지금 얻은 이 장난감이 우리의 연대를 끈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몰아놓은 토끼를 잡듯 우리에게 총질을 해댔다. 뭐라 하더라… 기동 특무부대던가. 젠장, 우리 쪽 말로 뭐라 해야할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스테프 그 친구가 GOC에서 일할 적에 자기네 팀이 재단과 협력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준군사조직Paramilitary이란다. Para라는 접두사가 여러 의미로 들어맞는 게 참 웃기지 아니한가.1
기적처럼 나는 살아남았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아드레날린은 참으로 초월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내가 딱 필요한 게 마침 내 호주머니에 있기도 했다. 재단은 우리가 뭘 갖고 있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계속 모르게 하자.

GOC는 좋은 놈들이다.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폭파시켜서 개박살을 내버리지, 웬 쪽방 같은 데 가둬두지 않는다. 친절할 때와 아닐 때가 확실한 놈들이었다. 조용히 파란 헬멧을 쓰고 있던 녀석들이 우선 파괴 대상을 칠 때는 확실히 친다. 우리에게 있는 게 GOC에게는 없지만 최선은 다하는 놈들이다.

뱀 얘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이미 한참 전에 우리 눈 밑에 두고 있던 놈들이다. 도서관은 하나의 힘이요 지식의 수호자이자 제일 큰 초자연과 변칙의 요새이자 수백 개 우주의 이야기이자 초상지식의 서적이다. 이 모든 책의 모든 판본의 종이 한 장 한 장을 재단이나 MC&D에게 넘겨준 다음 빈 책꽂이를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는 통로를 막을 것이다. 영원히.

뱀과의 싸움은 아주 피가 튀겼다. 그렇게 사랑하는 도서관에서 떼놓는다라? 수백 개 차원과 세계에 가는 통로? 지금은 우리가 파괴한 그 몇 개의 통로를 그들은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막고 있었다. 그 피가 흐르는 걸 보고 있는 게 내키지는 않았다. 그들 대부분도 우리와 같은 곳에서 자라 같은 땅을 밟고 자란 이들이었으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WWW, 이 세상을 바깥으로부터 막아버릴 망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수백, 수천, 수만 개 차원 구조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뭐가 있을 지 알겠는가? 통로 넘어, 물체들 넘어 뭐가 있는지 알겠는가?

그곳에는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재적 친구란 곧 잠재적 적이다. 우린 변칙 장기판 위의 말이고, 우리가 있는 걸 간수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이럴진대 누가 문을 두드리는 대신 부숴버린다? 점잖게 말해서 좆된 거다.

내가 계속 "우리"라고 하고 있는 건 나 빼고 모두가 죽었다는 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아닌가.

난 혼자지만, 누가 신경이라도 쓰는가? 최소한 나는 아니다. 네트워크를 홀로 재건하는 것은 힘들지만, 나는 우리 우주가 다른 우주와 진실로 단절될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철창을 열고, 뱀을 처단하고, 숭배자들을 이을 것이다. 그 누구도, 무엇도 내 앞길을 막을 순 없다.

왜냐 하면, 지금 내가 바로 WWW요,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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