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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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 모든 게 그냥 장난 같다고 느껴지지 않아?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말야."

술집의 붉은 전등이 머리 위에서 대롱거렸다. 쓰르라미는 붉게 빛나는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무척이나 방어적인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괜찮아. 나도 가끔은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나중에서야 이해가 되지."

무진의 뒷골목에 자리한 이 술집은 안개나루의 모든 찌꺼기들이 거쳐가는 곳이었다. 인생을 낭비하기 위해 모인 청춘들은 이곳에서 시간과 재력을 낭비했고, 곧 약간의 한숨과 주정을 얻고 흩어졌다. 살덩이파의 비호 아래, 술집은 근방의 상권을 장악하는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쓰르라미는 탁자 가까이에 놓인 나무 이온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BE의 활동가라는 직책에서도, 개인적으로도 이 술집은 꺼림칙했다. 고깃덩이가 난무하는 식탁과 이미 그곳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듯한 담배 연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로 채워진 곳. 그는 그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고, 술집은 그런 곳과 완벽히 일치했다. 게다가 주인과 단골 손님들의 종교가 날개교, 다시 말해 사르킥교라는 점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리 자체가 자연 파괴인 종교를 무슨 수로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아닌 자가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는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그는 마주 앉아 싸구려 짜장면을 뒤섞고 있는 중절모 쓴 이를 바라보았다. 중절모에 붉은 빛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란 게 무엇입니까?"

여자가 팔을 움직일때마다 중절모가 들썩였다.

"별 것 아냐. 그냥 앞으로의 계획?"

"계획이라뇨?"

쓰르라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아닌 자는 마침내 완성된 짜장면을 한 입 물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른 곳에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쓰르라미를 보았다.

"계획은 계획이지, 쓰르라미. 다른 뜻이 있어?"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혹시 무서워하는 거 있어? 시체라던가."

"아뇨… 없는데. 시체도 잘 봅니다."

"그럼 돌아다니는 시체는?"

쓰르라미는 멍하니 아무도 아닌 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곧 자네들 고라니 거점으로 연락이 하나 올거야. 거기 상세한 설명이 적혀 있을테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쓰여져 있겠지."

"상부도 아는 일입니까?"

"그저께 팔인이사회와 접촉했어. 승낙했고, 고라니에는 내가 직접 전달하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왜요? 저희가… 중요한 임무라도 맡습니까?"

"그럴지도."

"정확히 어떤 임무입니까?"

"별 거 아냐."

아무도 아닌 자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 위로 붉은 빛이 내려, 마치 피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였다. 쓰르라미는 흠칫 몸을 떨었다.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죽여버려."


찰스 기어스Charles Gears 박사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공원 감시원 사무소에서 눈을 떴다. 요 근래 이어진 철야로 몸은 늘어졌고 정신은 물렁거렸다. 삭신이 쑤셨다. 그는 오후에 온다고 한 교체 인원이 예정을 바꿔 세 시간 정도 일찍 오기를 바랐다. 재단 내에서는 절대로 남들이 못 하는 분야를 할 줄 아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한 사람에게 이리 책임과 일거리가 몰리지.

그는 사무소 부엌에서 진한 커피를 타들고 재단 시설과 연결된 뒷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지하 특유의 눅진한 공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박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을 매일 동굴 안에 처박아 놓는 건 그닥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박사가 통로를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시설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싸우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개의치 않고 커피를 홀짝였다. 인원들이 다투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했다. 습기로 가득 찬 지하 아래서 사람은 으레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적어도 절대 재단에서 들릴 것 같지 않은 소리보다야 낫지 않은가. 기어스 박사는 지난 번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그가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도 싸우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박사는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그 안에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렴풋이 총 소리도 들렸다. 이것들이 총까지 쏘면서 싸우나. 혹여 총격으로 시설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그의 앞날은 정말로 불투명해지리라. 박사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옷깃에 매단 통신기의 전원을 켰다.

"담당 요원 호출. 담당 요원 호출. HMCL 감사관이다. 제1204지구 중앙에서 폭력 사건 발생으로 보임. 조사하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어스 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지만, 여전히 통신기에서는 잡음만 새어나올 뿐, 응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명 소리가 더욱 커졌고, 박사는 이제 그 소리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신음 소리, 애원,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박사의 뇌에서 불안 신호가 뿜어져 나왔다. 오랜 연륜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울부짖었다.

비명 소리가 그치고 걸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스산한 신음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박사는 조금씩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이는 불길이 사람들의 인영을 동굴 벽에 비추었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기어스 박사는 멍하니 이를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황겁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박사는 두어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여러 개의 생각들이 동시에 만개하여, 결국은 결론 나는 것이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오직 그의 본능 뿐이었다. 코를 자극하는 사취와 신음 소리, 이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생존 본능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뒤에서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기어스 박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생존자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절대 그것들은 뛸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가지를 연관 지을 수 없던 박사의 뇌리에 한 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변이.

아작나는 소리와 함께 기어스 박사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아닌 자는 무진의 술집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괜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고라니는 열심히 재단이라는 차 앞에서 진로를 방해할 것이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발랄하게 스텝을 밟았다.

그때 가까이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가 울렸다. 아무도 아닌 자는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건 사람이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니암미세브! 오랜만이야!"

"용케 알았네." 수화기 속 목소리가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이렇게 수작 부릴 수 있는 건 우리 귀요미 뿐이지. 우리 ‘후계자’ 양."

"난 그 이름 싫어."

"어쨌든 사람들은 널 그렇게 불러. 아니… O5-9로 더 많이 부르던가?"

"일이 성공했어. 곧 몇 시간 뒤로 기어스의 실종 소식이 제01기지에 전달될 거야."

"늙은 로봇이 갔군."

"다음은 뭘 해줘야 할지 알지?"

"배달은 내 전문이야. 넌 계획이나 성공시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들었다.

"걱정 마. 반란Insurgency은 성공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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