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평가: +6+x

5월 12일 새벽 3시 21분.

경비원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들에게는 어두운 새벽을 덜덜거리며 배회해야하는 운명이 지어져 있다. 그들에게 임무란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 따위를 경계해야하는 의무다.

제737기지의 경비원들에게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페드로 림은 벌써 20분 전 즈음부터 사라진 동료들을 대신해서 기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마음은 짜증으로 물결쳤다. 그들이 어딜 갔겠는가. 열이면 열, 기지 한 구석에서 술담배를 곁들인 농땡이를 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성실한 사람만이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그가 쓰러진 누군가 위에 올라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떤 형체를 발견했을 때는, 오전 3시 29분. 림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쓰러진 사람은 남자였고 형체는 여자였다. 새벽이 깊은데 왜 얌전히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그러지 않고 밖에서 이 짓인지, 그는 가끔 머리가 굵다는 연구원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림은 헛기침을 하며 그 기묘한 연인에게로 전등을 비췄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형체는 빛을 감지했는지 멍한 얼굴을 들어 림을 펴다보았다. 페드로 림은 그 형체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액체가 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림은 얼굴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시야가 흔들렸다.

쓰러진 남자는 림의 경비원 동료였다. 전등이 더 멀리를 비추자 농땡이쳤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이에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를 물어뜯었던 존재가 림에게로 달려들었다.

새벽 3시 50분.

실험이 마침내 끝나고, 연구원 티엔 밀러는 굳어버린 어깨를 쭉 피며 자축했다. 카페인에 중독된 몸은 남은 3시간조차도 수면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는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3층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바로 그 앞에서 피로 얼룩진 경비원 제복의 남자가 동료 연구원 하나를 물어뜯고 있지만 않았어도 그는 얌전히 취사실로 갔을 것이었다.

물어뜯기고 있는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밀러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복도 저편에서 이성을 잃은 눈동자가 그에게로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페드로 림은 티엔 밀러의 살거죽을 물어뜯으며 신음했다.

새벽 4시.

카벤 드웰러Cavern Dweller는 자신이 불운한 작은 개미 하나를 삼켰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코를 골았다.

새벽 4시 40분.

기지 이사관 노스텔지어 아일랜드는 쾅쾅거리는 문짝을 멀거니 응시했다. 현실은 너무나 끔찍한 방식으로 그들의 일상에 노크했고, 아일랜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관리자실에는 그를 제외하고 5명이 있었고,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문은 이제 거의 뜯어지다 싶을 정도로 열리고 있었다. 실내의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고, 바깥에서는 신음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아일랜드는 얼어버린 몸을 애써 움직여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다. 화면에 “기지 불능 프로토콜”이라는 문구가 떴다.

아일랜드는 기지 내에 없는 소속 요원들에게 몇가지 문서를 수신했다. 물론 그는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요원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최후를 맞이했거나 맞이할 것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문짝이 뜯어지고, 피로 얼룩진 멍청한 얼굴들이 들이닥쳤다.

노스텔지어 아일랜드는 괴성을 지르는 인원들에게 물어뜯기며, 발할라가 있기를 빌었다.

새벽 5시.

카벤 드웰러는 몸을 뒤치락거리다가 바닥에 박힌 돌에 등을 배겨 신음했다.

새벽 5시 34분.

무리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생존자들을 추격했다. 그들의 신음과 비명은 절묘한 화음을 일구어냈고, 이에 화답하듯 기지 어딘가에서 굉음이 울려퍼졌다.

생존자 한 사람이 이판사판이라는 듯 나무 막대기에 불을 붙여 추격자들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 남자의 고깃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횃불은 추격자들이 폭식하는 동안 튕겨나가고 말았다. 불길은 가까이 있던 실험실의 화학 약품과 반응했다.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렸다.


오전 7시 30분.

카벤 드웰러는 흙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어났다. 또 다른 향기로운 아침의 시작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향기로운'은 '개같은'의 동의어였다.

드웰러는 몸을 일으키고 밤새 굳은 팔다리를 스트레칭했다.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서는 언제나 사람의 관절을 얼려버릴 법한 바람이 밤새 몰아쳤다. 차라리 텐트라도 하나 있었다면 좋았을 법도 하지만, 하나 받았던 것마저도 세 달만에 망가뜨렸으니. 현재 그에게 남은 거라곤 몸뚱아리와 침낭, 그 두 개뿐이었다.

드웰러는 침을 뱉었다.

그는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침낭 옆에 가지런히 놓았던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나뭇가지에 걸쳐 놓았던 외투를 걸쳐 입었다. 침낭은 단정하게 접어 올려 어깨에 맸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다.

카벤은 무심결에 제 턱을 만졌다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찡그렸다. 무성하게 뺨과 턱, 목을 덮은 수염은 불친절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면도를 정말로 해야겠어. 그는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정말로. 기지가 망하지 않는 이상에야 오늘 기필코 하고 만다.

기지가 망했다는 사실을 안 시각은, 그가 외투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들어 밤새 온 문자를 확인했을 때였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게 장난 문자일리가 없었다. 기지 이사관 아일랜드는 절대로 농담을 하지 않는 남자였다. 정말로 요원을 노숙을 시킬 정도의 인간이니, 그가 이런 류의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었다.

산의 흙이 신발에 밟혀 으깨졌다.

문자는 ‘기지 불능 프로토콜’에 의해서 발송되었다. 카벤은 그 용어를 몇년 전 신입 요원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기지가 SCP의 격리 파기나 요주의 단체의 공격으로 무너질 위기에 시행되는 조치였다. 그게 왜 지금 시행되었는지, 그는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튀는 모래들이 그의 바지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기지에 다다랐을 때, 카벤의 입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737기지의 외관은 거의 다 꺼멓게 검댕이 칠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있었다. 마치 사람의 뼈가 발골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벤은 눈을 두어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해내듯 감았다.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는 힘이 빠져나가는 팔다리를 느낄 수 있었다. 복부를 얻어맞은 듯 숨이 헉 하고 쉬어지지 않았다. 폐 속의 공기가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현실이 그를 사정 없이 때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카벤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큰 사고였지만 생존자가 아무도 없을까. 분명히 생존자용 천막이 근방에 있을 것이었다. 카벤은 비척이며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지금 상황에서 기지 안에 들어가 보는 것은 바보같은 행위였다. 그러니 기지 밖, 누가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보같은 걷기 트랙 위를 한없이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도시 한 바퀴를 도는 수준으로 오래 걷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걷기로 했다.


오전 7시 49분.

얼마쯤 지났을까, 천막은 없이 덜렁 사람 하나만 실성한 듯 멍하니 트랙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카벤은 조심스레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이…봐요."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였다. 카벤이 아는 여자였다. 그의 동료, 마리에타 하시니였다. 그제만 해도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이였다. 카벤의 굳은 얼굴이 조금은 풀렸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걸렸다.

"이봐요. 에타, 나 카벤입니다. 카벤 드웰러."

묵묵부답. 어쩔 수 없이 카벤은 그녀의 어깨를 조금 건드렸다. 그러자 하시니는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 카벤이라니까! 에타! 정신 차려요."

카벤은 황급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그는 숨을 들이켰다. 머리칼로 가려져 있어 몰랐는데, 그녀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물어 뜯긴 듯, 왼쪽 귀는 반쯤 사라져 있었고 뺨과 눈가는 상처로 가득했다. 이빨 자국이 드러난 목 부분도, 그는 볼 수 있었다. 하시니의 눈은 멍했다.

하시니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마구 내젓다가 카벤의 얼굴을 본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알아보겠어요?"

"드웰러 씨. 당신은… 당신은 무사해요?" 하시니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무슨 공격 말이에요?" 카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다시피, 난 기계 때문에 밖에서 노숙하잖습니까…"

하시니는 듣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그녀는 기침을 했고, 카벤은 그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다.

카벤이 두어번 재촉하자 하시니는 입을 열었다.

"밤새… 모두… 당했어요. 경비원들이… 아니, 연구원들도… 미치기라도 한 듯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었고…"

"정신 재해란 말입니까?"

하시니는 듣지 못한 듯 기침했다. 그녀의 숨은 점점 거칠어 지고 있었다. "난… 1동에 숨어 있었는데… 날이 밝아서 도망 나왔거든요… 그런데 누가 날… 덮쳤어요. 살려달라고 빌어봤지만 놈은 날 놓지를 않았어요…"

"에타, 괜찮을 겁니다."

"살고 싶어요." 하시니가 흐느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살려주세요…"

"살 수 있습니다."

카벤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시니에 대한 연민이 차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나 끔찍했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물품은 반파된 기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에야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정신 재해가 오염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타. 그런 방식으로 전염되지는 않으니까."

하시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카벤은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의료입니다. 빨리 여기서 탈출하든 기지 안에서 물품을 가져오든 해서, 당신을 치료해야겠어요. 일어나십시오."

그러나 하시니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심해지는 기침에 입을 감싸쥐다가 갑자기 쓰러져 눈을 뒤집고 몸을 비트는 것 밖에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하시니의 발작에 카벤은 놀라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는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받는 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에서 하시니가 숨이 넘어가도,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씨발."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하시니의 창백한 몸뚱아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간신히 찾아낸 하시니의 맥은 불규칙적이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카벤은 그녀가 위독하다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도 알았고.

맥이 가늘어지더니, 어느 순간 더는 뛰지 않았다.

"이런 씨발."

카벤은 다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방금 머리를 얻어 맞은 사람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 머리를 흔들었다.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죽음으로밖에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악몽 속에서, 그는 깨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깨어나고 싶은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란 사실은 금방 밝혀졌다. 마리에타 하시니의 텅 빈 육체는 꿈틀대더니 기묘하게 허리를 꺾어 일어났다. 핏자국이 새겨진 그녀의 입술에서 기어들어가는 신음이 울려퍼졌다.

카벤 드웰러는 동료였던 여자의 몸뚱아리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하시니가 달려오는 걸 피했다. 여자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화가 난 게 틀림 없었고, 카벤은 죄의식을 느꼈다. 하시니는 본래의 지성을 잃은 것이 틀림없었다. 카벤은 이런 일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 교육을 담당했던 땅딸막한 머저리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했다.

"죽여. 더 이상 그들은 네들의 동료가 아냐."

씹새끼. 카벤은 그가 씹새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씹새끼가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시니는 돌아올 수 없었다. 카벤은 전투 때면 으레 행하는 의식문을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나는 단지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임무, 다시 말해 나는 단지 종양을 적출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시에 그의 얼굴에 들끓던 수많은 감정의 분화구가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싸움을 앞선 긴장만이 은은하게 흐를 뿐. 의식문을 읊는 것은 그를 비롯한 기지의 모든 요원에게 한 줄기 위안을 주는 것이요, 전투 태세를 빠르게 갖추기 위한 포석이었으며, 요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한 가지 방책이었다.

카벤은 호주머니를 뒤졌다. 총도 한 정 없고, 칼도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오직 물렁한 침낭과 스마트폰 하나. 그는 스마트폰을 꼬나들었다.

여자가 다시 달려들었다. 카벤은 슬쩍 옆으로 짝다리를 짚으며 하시니를 피하고, 그녀의 뒤통수를 폰으로 찍었다. 하시니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나오며 앞으로 휘청거렸다.

충분하지 않았는지, 하시니의 육체가 몸을 돌려 덤볐다. 요원은 다시금 몸을 뒤로 빼며 공격을 피했다. 죽은 하시니는 분별 없이 달려들기만 하고 있었다. 쉬운 싸움이었다.

그는 춤을 추듯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원심력과 춤의 원리로, 덤벼드는 그녀의 미간에는 어느새 팔꿈치가 가 있었다. 괴물이 머리에 전달된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그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카벤은 폰의 각진 부분으로 정수리를 내려조겼다.

그러나 일순간, 죽은 하시니가 고개를 들었다. 카벤의 표정이 멍해졌다.

"살고 싶어요"

하시니가 말한다. 카벤은 잠시 멈칫하며 멍하니 하시니의 얼굴을 본다. 비참하고 애원하는 표정이 지어져 있고, 눈가에는 눈물이 어려있다…

아니다, 죽은 하시니의 눈은 텅 비어 있다. 그는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카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괴음을 지르는 하시니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 입이 열리고 괴물은 그의 살을 탐하려 돌진했다. 카벤은 뒷걸음질 치다가 문득 돌부리에 걸려넘어졌다. 그 바람에 최후의 무기였던 스마트폰마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씨발!"

괴물이 그를 덮쳤다. 둘 다의 입에서 괴성이 뿜어져 나왔다. 카벤은 용을 쓰며 하시니를 밀쳐내려고 애썼지만, 무슨 일인지 연약했던 하시니의 육체는 그를 능가하는 힘이 서려있었다.

그는 왼쪽 팔을 하시니의 턱 아래에 받쳐 들었다. 시체를 만지는 듯한 시퍼렇게 차가운 느낌이 피부에 퍼졌다. 카벤은 신음하며 재빨리 무기가 될 만한 걸 더듬었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다. 당연히 카벤의 물건에도 없다.

그렇다면…

그는 재빨리 하시니의 옷자락을 더듬기 시작했다.

연구원복. 연구원증 말고는 없다.

바지. 없다.

허리춤. 뭔가가 있다. 카벤은 그것의 윤곽을 만져보며 무엇인지 알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공이치기와 총신, 방아쇠를 만진 다음에야 그게 리볼버인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히 그것을 꺼내 하시니의 미간에다 대고 쏘았다. 충격으로 하시니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것이 느린 화면으로 카벤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마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고 곧 푸른 하늘이 보였다. 카벤은 그의 바지에 무언가 흩뿌려지는 것을 느꼈다. 곧 하시니의 머리가 툭 하고 그의 가슴에 떨궈졌다.

카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총을 든 손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고개를 당겨 하시니를 바라보았다. 하시니는 눈을 뜬 채로 완전히 죽어 있었다. 카벤은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젊은 연인이 바닥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으로 봤으리라.


오전 8시 30분.

카벤은 죽은 하시니의 육체를 기지 화단에 고이 내려놓았다. 모든 일이 좀비 아포칼립스와 너무 흡사했다. 어쩌면 정말로 좀비가 창궐한 것일 수도 있었다. 수많은 변칙 존재들과 현상들이 존재하는데 좀비라고는 없을까.

어쩌면 벌써 재단에 격리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는 기지의 문 근처, 누군가가 떨어뜨린 담뱃갑과 라이터를 주워 들며 생각했다. 담뱃갑 안에는 담배가 반쯤 차 있었다. 그는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 들었다.

단지 내 보안 등급으로는 못 보는 것일테고.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만약 제737기지에 소위 “좀비” 관련 존재가 비밀리에 격리되어 있었고, 격리 실패 사태가 일어났다면 지금의 이 꼴도 다 설명이 가능했다.

카벤은 심호흡을 하고 무너진 기지 2동의 문을 열었다. 실내는 그을려 까만 부분과 광택이 있는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움직이는 물체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재단을 떠나 마을로 가기로 결심했다. 누가 봐도 현 상황은 납득이 가질 않는 일로 가득했다. 격리 실패 사태던, 실험 도중 사고가 일어난 일이던 간에 사건이 일어난 시각으로부터 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다른 기지에서 파견 나온 인원이 없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카벤은 지금까지 두어번 다른 기지로 수습대로 파견 나간 적이 있었다. 모두 새벽이었고, 사건이 발생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된 시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도 고요하다. 그러니 혹여라도 다른 기지 모두 이런 상황을 맞이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카벤은 2동 1층의 드넓은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2동에는 의무실과 무기실이 있으므로 남아 있는 물건들을 챙길 작정이었다. 이따금 울리는 부서진 시설의 신음이 그를 전율케했다.

그리고 카벤은 정말로 가끔, 복도를 울리는 누군가의 신음을 들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그는 곧장 중앙의 계단으로 올라섰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계단 위에 서 있는 한 인영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 위에 있는 존재는 카벤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카벤은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장년의 남자는 얼굴의 가죽이 군데군데 찢기고 목은 부러져 있었지만 여전히 그 카리스마는 강건했다. 그를 발견한 기지 이사관 노스텔지어 아일랜드가 괴성을 질러댔다.

"…이런 씨발."


« 변이 | 허브 | 함락 »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