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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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26-423 사건 생존자 현황
제376기지 의료부 심리학반 반장 Ge████ B███ 박사입니다. 최근 발생한 실험 중단 건의 생존자를 조사한 자료를 보고합니다. 생존자 루이즈 체호프 B계급/2등급 연구원은 현재 기지 가설3동에 격리 중이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가까운 G2 기지로 옮겨 정밀 검사를 받게 할 예정입니다.

826-423 교차실험-a 생존자 조사 자료
개요: 20██ 4월 23일 시도된 826-423 교차실험-a는 실패로 끝났다. 당시 투입되었던 새뮤얼 존스 B계급/2등급 연구원, 제리 스미스 C계급/2등급 요원, 루이즈 체호프 B계급/2등급 연구원 중 루이즈 체호프 연구원만이 생환하였다. 본 자료는 루이즈 체호프 연구원의 심리 및 신체적 변화와 녹취록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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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산 초이Sally San Choi는 교전용 천막 안에서 제376기지에서 날아온 메일을 완독했다.
008 감염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꽤 메일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737기지가 파괴된 시각으로부터, 15시간 뒤.

가설3동의 일상은 무료했다. 루이즈 체호프는 심리학 박사가 두고 간 재단 신문의 낱말 퍼즐을 맞추다 말고 펜을 집어 던졌다.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찬 방 안은 버려진 정신병동처럼 음울했고, 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조차도 공허했다. 걸리적거리는 “환자복”도, 나가려고만 하면 바로 닫혀버리는 문도, 이젠 전부 지긋지긋했다.

루는 처음으로 SCP가 느낄 법한 감정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루는 한숨을 쉬며 등을 침대에 기댔다. 벌써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두 주가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의 “병실”을 찾지 않았다. 루이즈는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심도 높은 고민 끝에 나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나 무료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흘은 귀찮을 정도로 취조를 해대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요즈음에 와서는 담당 심리학 박사조차도 루이즈를 찾지 않았다. 그냥 그녀를 심심해서 죽게 만들려고 하는 듯이.

루이즈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고독은 불친절했고 부담스러웠다. 적어도 취조당하고 신체검사를 당하고 온갖 문서를 들이대는 실험자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을 때는 외롭지 않았다. 그럴 때는 루도 제리 스미스와 샘 존스, 프레드에 대한 생각을 안 해도 됐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 나았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녀도 주책없이 질질 짜는 찌질이가 아니었다.

문제는 홀로 있을 때였다. 그때는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그녀에게로 왔다. 루는 멍하니 머릿속에서 울리는 장면들을 보았다. 그 속에서 자꾸만 존스가 기침을 했다. 제리가 신음하며 쓰러졌다. 프레드가 그녀를 향해서 돌진해왔다.

루는 신음하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침대 난간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 강하지는 않은 아픔이 일었다. 충격은 뇌를 울리지 않았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픔 때문인지 기억 때문인지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점심 식사가 병실 침상 위에 놓여 있었다. 전에 받았던 식단과 같았다. 계피를 뿌린 빵, 우유, 에그 스크램블. 루는 잠시 식판을 응시하다 한숨을 쉬고 옆의 빈 침상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신문 연재소설이 수록된 쪽을 찢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루가 그 2주간 섭취한 것이라고는 이런 것들이었다. 생생한 소설과 딱딱한 문서 따위를 찢어서 입에다 넣으면,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포만감이 들고 힘이 났다. 그 외의 음식은 액체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살아 있었다. 쇠약해지지도, 말라비틀어지지도 않았다.

소설을 먹기 시작한 즈음부터 이미 나는 미친 거야. 루가 자조적으로 낄낄거렸다.

루는 이내 병실 침대에서 일어나 저만치로 굴러간 볼펜을 주우러 갔다. 너무 세게 던졌는지 펜은 이미 부서진 상태였다. 그녀는 허리를 깊게 숙였고, 갈라진 플라스틱 쪼가리를 그러모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자 창 밖이 온통 불바다인 것을 보았다. 종말의 한 광경이 시야에 생생하게 꽂혔다. 그녀는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망치는 연구원들을 뒤쫓는 모습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살을 물어뜯고 있었는데, 턱 힘이 얼마나 강한지 물어뜯긴 사람이 몸부림치며 주먹으로 머리를 강타하는데도 절대 놓지를 않았다. 공격당한 사람들은 이내 다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곧 기지 기동특무부대가 등장하여 진압을 시도했지만, 이미 수백 명으로 늘어난 괴물들을 고작 몇십 발의 총탄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루는 벌벌 떨면서 교전복의 드러난 살결에 이를 박으려고 달려드는 괴물을 지켜보았다. 몇 번의 새된 비명 끝에 살가죽이 찢긴 시체들이 완성되었고, 마치 3분 카레처럼 곧 시체들은 일어났다.

기지 전체에 경보음이 울렸다. 경비실장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울려 퍼졌다.

“경비 태세: 5단계. 전 인원은 지정된 위치에서 기지 방어 프로토콜을 실시하십시오.”

루의 휴대폰이 울렸다. 재단의 인원이라면 모두가 받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메시지는 기지 방어 프로토콜의 상세를 설명했다. 매달 갱신되는 인원 행동지침에서 지정받은 위치에 있으라는 것. 기지 전체를 5구역으로 나누어 해당 구역의 요원 중 높은 직급에 있는 자가 지휘관이 된다는 것. 연구원 중 전투 가능자는 요원들에게 간략한 전투 개요를 설명 받고 전투에 투입된다는 것.

창 밖에서는 또 다시 총격음이 들렸고 공포에 질려 지르는 비명과 긴장해서 떠드는 말소리가 울렸다. 그들이 살 수 있을까? 루가 생각하기엔, 아녔다. 전투 한 번 일어나지 않았던 기지에서 연구원들이 요원의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 생각을 입증이라도 하듯 곧 끔찍한 괴성이 세상을 덮쳤다.

루이즈는 전원을 끄고 침상으로 몸을 돌렸다. 곧 격리 될 인원에게도 문자가 오다니, 이는 기만이었다. 창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거세진 비명 소리가 창문을 때려댔다. 루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괴물들의 공격으로 기지가 망하는 것보다, 끝 없는 고독이 더 무서울 따름이었다. 루는 곧 그녀를 데리러 올 인원들을 여유로이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데리러 올 인원마저도 없을까, 과연.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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