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덴발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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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각지에서 무차별적인 폭력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루 체호프는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밤이 다가오건만, 인가라고는 털끝만치도 안 보이고 그저 길고 황량한 숲만이 그녀의 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각국의 미 대사관도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세 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나타난 것은 제376기지의 종말이었다. 루이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기지의 모든 인원들이 동료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한 꼴을 목격했다. 온갖 곳에 유혈이 낭자했고, 살점과 팔다리들이 사방에 나뒹굴었다. 움직이고는 있으나 살아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생명체들만이 기지에 남아 있었다.

“쿠오모 대통령은 오늘 4시에 국가재난령과 이동제한령을 선포했습니다.”

한 가지 의문점은, 그들이 루이즈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 루는 머리 한 쪽이 찌그러진 터커 교수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옷을 갈아 입은 후 라디오를 집어들고 나왔을 때, 그녀는 신음하던 터커를 만났다. 그녀가 본 대로라면, 분명히 터커는 루를 공격해야 옳았다. 그런데도 터커는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신음을 계속 흘리며 제 갈 길을 갔을 뿐.

“백악관 대변인은 국민들에게 집 안에 거주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에 여론이 정부의 불친절한 설명에 대한 반발로 들끓어…”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스와 제리, 프레드는 기지를 공격했던 생명체들과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좀비… 정말로 그랬다. 사람을 물고 감염되면 그들처럼 변하는 행위, 이들과 같았다.

그럼 나도 그렇게 변했어야 했잖아.
루이즈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머리를 싸쥐었다. 그녀도 분명 물렸다. 그런데 왜 혼자만 그렇게 변하지 않은 건지, 루는 가늠할 수 없었다.

“하루 빨리 사태가 진정되기를 빌겠습니다. ABC 뉴스의 앵커, 데런 윌크스였습니다.”

"나도 그러길 바래요, 윌크스."

루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침내 마을을 찾았을 때는 루이즈는 반쯤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라도 조금은 쉬어갈 작정이었다.

곧 밤이 찾아왔다. 밤이 되는데도 마을은 불이 켜지지 않았다. 마을 한 켠의 벤치에 앉아 있던 루이즈는 점점 깔리는 어둠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불을 키지 않는 꼴이, 마치 모두들 전기를 아끼기로 서약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더해감에 따라 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몸을 떨었다. 입은 것이라고는 흰 맨투맨 티에 체크무늬 셔츠, 낡은 청바지 밖에는 없었는데, 이러다가는 영락 없이 얼어 죽을 판이었다.
그녀는 일단 민가에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루이즈는 마을 중심부로 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마을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들어오면서 그녀는 몇 사람들과 마주쳤다. 딱히 특별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단지 한 가지, 그녀를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고 간다는 점이 조금 걸렸지만.

루는 열린 창문 너머로 가까운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TV 하나 없는 거실은 악어 가죽을 닮은 초록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것이 거실 벽면에 걸린, 의미를 알 수 없는 붉은 색 도상과 대조를 주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 안에서는 붉은 옷을 차려입은 가족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중년의 남녀, 어린 아이 둘.

루이즈는 여자가 제일 어린 아이에게 '성찬식'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아이는 그 말을 듣자 좋아라 했고, 부모 역시 미소를 지었다. 유일하게 웃지 않는 사람은 거기서 제일 어린 아이 하나밖에 없었다. 루는 고개를 내밀어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불안하고 거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 하면 안 돼요?" 아이가 제 엄마에게 물었다.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모두 네 나이 때는 하는거야. 사라를 생각해보렴. 그 애는 작년에 울지도 않고 했어." 중년의 여자가 대답했다. 루는 그 여자의 표정이 아까 전부터 계속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마치 마스크를 쓴 것만 같았다. 루는 순간적으로 돋는 소름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엄마… 사라가 그 다음부터 너무 무서워졌단 말예요…"

아이의 애원하는 소리는 가족이 집을 떠나면서 멀리 사라졌다.
성찬식이라면… 교회가 있다는 말이렸다.
그녀는 마음을 바꿔 교회에다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하느님의 성전에 불쌍한 어린 양 하나가 거처해도 될 일 아닌가.
그녀의 뇌리에 여자의 기이한 표정이 떠오르는 바가 아닌 건 아니었다. 손발이 차가워지게 만드는, 그 광경. 그러나 지금은 추위를 버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제 와서 얼어 죽기는 너무 아까웠다.
설마, 간다고 죽기야 하겠어.

루는 계속 걸었다. 마을의 중심은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몇 번이고 헤멘 끝에, 그녀는 벽돌담으로 둘러쌓인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루이즈는 재빨리 담을 돌아 높고 녹이 슨 철문을 발견했다. 잠겨 있지 않았다. 루가 손으로 문을 스윽 밀자,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철문이 안쪽으로 돌아갔다.
교회에서는 흥겹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루는 난로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루가 교회 내부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예배가 시작된 후였다. 예배당을 지키는 두 건장한 젊은이의 눈총 세례를 받으면서, 그녀는 빈 자리를 찾았다.
루이즈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루는 이를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꾀죄죄한 행색의 젊은 여자와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붉디 붉은 드레스코드는 정말이지 파리의 다리 길이만큼이나 비슷했으니까.

그녀는 용케 단상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앉아보니 그 옆은 아까 그 집의 가족들이었다. 루는 겁먹은 듯한 금발 머리 남자애 바로 옆에 앉게 된 셈이었다.

"누나."

루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게 아이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구세요?"

"나?"

그러고보니 남자애로써는 의아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번개 같이 루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항상 보던 인간들과 어울려 교회를 나왔을텐데.

"지나가다가 들렀어." 루가 작게 소곤거리자, 남자애의 얼굴빛이 조금 밝아졌다. "넌 누구니?"

"앤써니요. 앤써니 야카슨Anthony Jakason."

"난 루이즈 체호프."

루의 입가에 미소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앤써니는 어딘가 루의 동생, 안톤과 닮은 점이 많았다. 얌전하게 생겼지만 친화력 좋은 성격이라던가, 공손한 어투 같은 점. 그녀는 갑자기 코 끝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누나는 여기서 뭐해요?"

"쉬어가는 거야."

"그래요? 나는 성찬식 하러 왔는데."

루는 갑자기 궁금증이 확 일어, 조용히 앤써니에게 물었다.

"성찬식이 뭐야?"

"난 8살이에요. 8살이 되면 누구나 다 하는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내 친구 산드라나 사라도 몇달 전에 했어요." 그러더니 아이는 이내 시무룩한 투로 말했다. "그런데 개넨… 이제 좀 무서워요."

"무섭다구?"

"네. 가끔… 팔이 늘어나거나 얼굴이 무서워져요. 혼자서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해요."

앤써니는 얼굴을 숙였다.

"성찬식 안 하고 싶어요."

중년 여자가 이상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자, 루는 대답하지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앤써니의 어깨를 부여잡고 자기 쪽으로 끄는 것을, 루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맨 앞의 거대한 공간에 목사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회사원들이 착용할 법한 쥐색 양복 위에 붉은 로브를 입은 기묘한 차림이었다. 루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신세를 지려면 적어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키리덴발Kiridenbal의 주민 여러분, 성찬식 행사를 위해 오늘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루는 흠칫 놀라서 몸을 떨었다. 목사의 목소리는 어딘가 기이할 정도로 쉬어있었고, 마치 인간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근래 세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지 않음을 여러분은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천에서 폭력과 사망이 듫끌으며, 시기와 혐오가 판치고 있습니다."

목사는 침을 삼켰다. 루이즈는 예배당의 창에 불길 같은 붉은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서 인영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옛날, 아르콘들이 주술사왕에게 도전했던 시기의 세상이 다시금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극적 효과를 위해 말을 멈췄다. "낼캐를 거부하는 세상이 이 땅에 오고 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서 동조하는 외침이 일었다. 루이즈는 불안하게 침을 삼켰다.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과열되고 있었다. 루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는 목사의 선동에, 신자들은 광적인 흐느낌으로 화답했다.

"그 세상은 다분히 적그리스도적입니다!"

옳소, 하는 외침이 일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울부짖으며 구원을 외쳤다. 울먹이고 흐느끼는 외침들이 사방에 만개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걷잡을 수 없이 루의 판단을 점거하고 있었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루 옆에 앉은 가족들조차 이 거대한 광기에 동참했다. 중년 여자가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울부짖을 때, 그 남편은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며 비명에 가까운 기도문을 외웠다. 루는 하나도 이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를 느꼈다. 이건 아니었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리를 메웠다. 하필 들어와도 미친놈 소굴인 사이비 교회란 말인가.

곧이어 첫째 아이조차도 이내 제 부모를 따라 미친 듯이 뭔가를 외쳐댔다. 그러더니 곧 의자 위에서 날뛰었다. 화가 난 원숭이 같다는 생각이 루이즈의 뇌리에 일었다. 생각만큼 웃기지 않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이성을 찾고 있는 사람은 앤써니뿐이었다. 아이의 눈이 혼란스럽게 흔들리다가 루이즈의 시선과 마주쳤다.

앤써니가 소리 없이 입으로 살려달라고 말했다.

루는 자기가 뭘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엔도르핀이 신경계에 분사되었다. 여기서 나가야했다. 아무도, 가족에서조차도 도와주는 이가 없는 이곳에서 아이가 계속 있는 것은 학대나 다름없었다. 루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 일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둘은 부리나케 뒤로 달려 갔다.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덩치가 둘을 막아섰다.

"이거 비켜요." 루가 날카롭게 외쳤다. "우린 나갈 거니까."

덩치들은 말 없이 뒤를 가리켰다. 앤써니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루는 잠시 당황하며 덩치들을 쏘아보다가 뒤를 바라보았다.

목사와 신도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텅 빈 듯이 퀭한 얼굴들에 공허한 눈동자, 흔들림 없이 무표정한 이들의 모습에 루는 잠시 넋을 놓았다. 기괴할 정도로 그들은, 앤써니와 루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저만치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아이의 부모였다. 어떤 젊은 년이 아들을 납치하고 있다고, 멱 따는 소리가 좌중에 높게 울렸다.

목사가 입을 열었다.

"사탄이 우리 사이에 숨어 있는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목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루이즈는 머리에 격통을 느꼈다. 루는 욕지거리를 뱉으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식이 순식간에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앤써니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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