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평가: +4+x

제737기지가 파괴된 시각으로부터, 20시간 뒤.

다시 말해, 5월 13일 오전 12시.

날은 차갑고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위를 올려다봐도 끝없는 검은 구름뿐이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카벤 드웰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산 아래에 있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밤새 행군한 탓에 몸은 축축하고 늘어진 상태였다. 그냥 어딘가에 머리만 대도 바로 쓰러져 코를 골 수 있을 수준이었다. 카벤은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카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와 별개로 매우 사나웠다. 그들 중 일부는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제 무기를 몸에다 부딪혀 쨍그랑 소리를 냈고, 일부는 침을 뱉었다. 카벤은 옆에 선 턱수염이 내뱉는 저주의 말을 듣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욕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체 왜 저 작은 마을에다가 증오를 퍼부어야 하는가.

메카네교도로 위장한 일이 왜 이리 들키질 않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기계와는 연이 없었던 삶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다 왔나? 다들 좀 모여보슈! 곧 내려가야 하니까, 점검 좀 합시다."

턱수염이 크게 외쳤다. 카벤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곧게 폈다. 주위에 넓게 포진한 신자들이 턱수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월광(月光)이 그들의 번쩍이는 부품 위로 떨어져 빛났다. 턱수염은 이내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린 자들이 손을 들자, 카벤은 몰래 그 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교단, 16명.

톱니바퀴 정교, 20명.

맥스웰파, 14명.

도합 49명의 사이보그와 순도 100% 인간 하나가 마을을 둘러싼 가파른 둔덕 위에 올라가 있는 셈이었다. 그는 새삼 놀라며 침을 삼켰다. 아무도 그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카벤도 맥스웰파가 호명될 때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다. 스스로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입단 신청이라도 해야 하나.

그는 피식 웃고는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끌렀다. 메카네교도들이 서서히 움직였다. 수많은 기계 안구가 저 아래의 마을을 향해 증오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좋수다! 다 왔구만. 에… 작전 시행 전에 몇 마디만 하겠소. 우리 세 분파는 여태까지 서로 공격과 파손, 해킹, 분쇄하며 갈라섰소. 그 역사는 매우 깊소. 아직도 감정의 골은 남아 있지."

사방에서 동조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 살덩이들이 그 더러운 살들을 세상에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행위요."

턱수염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신자들은 하나같이 열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그에게 고정하고 입은 다물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싸워서 되겠소? 다 같은 메카네교도끼리 살덩이에 대항하지 못할망정, 서로 거부하고 공격하며 부서뜨려야 할 일이겠냔 말이외다."

그는 극적 효과를 위해 말을 멈췄다.

"이젠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왔소."

누군가 신도들 속에서 외쳤다.

"우리 모두를 엮어주는 부서진 신 만세!"

같은 외침이 잇따랐다. 유일하게 무덤덤한 쪽은 맥스웰 파였으나,(나오미 카마초는 카벤에게 입 모양으로 “분열된”이라고 속삭였다.) 이들도 곧 신도들을 휩쓰는 거센 흥분의 파도에 휩쓸렸다. 곧 둔덕의 모든 이들이 부서진 신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카벤만은 따라 부르면서도 걱정스럽게 아래의 교회를 내려다보았다. 들리지는 않을까?

턱수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목에서 호스를 뽑더니 기형적으로 거대해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1분대 준비!"

곧 톱니바퀴 정교 출신 신도들이 둔덕 뒤편으로 가더니 미리 준비한 거대한 상자를 대여섯 개 끌고 왔다. 박스 안에서 무언가가 쿵쿵거리고 괴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카벤은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오이, 세뇨르.(Oi, señor.) 어딜 그렇게 봐요?"

카벤은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오미가 그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박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그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처음 봤습니다. 저런 거."

"신기하네요. 그쪽 교회에서는 엘레판테(elefante)도 안 길렀어요? 맥스웰파 교리가 되게 심했나 보네."

"엘 엘레판테요?"

"실수." 나오미가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 "코끼리요. 모양이 되게 닮았거든요. 이따가 봐요, 한번."

그리고 그녀는 카벤의 눈 가운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해서 시선을 피했고, 동시에 나오미 역시 시선을 돌렸다. 카벤은 그녀가 무언가를 의아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소음과 함께 상자가 해체되었다. 정교 신도들의 지휘 하에, 그 안에 있던 것들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을 보자 카벤은 나오미가 말한 '코끼리'가 무슨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그 생명체들은 크기가 건물 2층 정도는 되어 보였고, 그만큼이나 엄청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코끼리의 코와 유사한 긴 호스는 인공 근육을 장착하기라도 한 듯 자유자재로 살기 등등한 소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고, 상아의 위치에는 소총의 총신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달려 있었다. 귀의 위치에는 그 뒤가 비쳐 보이는 투명한 물체가 코끼리 귀 모양으로 융합되어 있었는데, 이따금 그리스 문자로 추정되는 글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로 처음 봐요?"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던 카벤에게 또다시 나오미가 말을 걸었다. 카벤은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기이한 풍경이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재단 안에서도 늘상 봐왔던 것이 변칙적인 물체들이었으나, 이 생명체는 급이 달랐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묘하고 정교했다.

카벤의 어깨에 손이 얹히자, 그는 화들짝 놀라 몸을 뺐다. 뒤에는 그만큼이나 놀라보이는 나오미가 서 있었다.

"미안한데… 만지지 말아 주겠어요?"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했다. 일부러 다른 메카네교도들과도 인사할 때 빼고는 접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접촉할 줄은 몰랐다.

"나라고 무슨 감정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코무니스타 메즈키노(comunista mezquino) 같으니라고."

"인색하다는 건 동의하지만 공산주의자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카벤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치자 나오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에스파뇰(Español), 아는 거였어요? 왜 모르는 척하면서 사람을 놀려요!"

재단에 들어오려면 에스파냐어 시험은 당연히 통과해야 하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꼬리를 늘렸다.

"난 모른다고는 안 했습니다. 단지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럼 왜 말을 안 했어요!"

"안… 물어봤으니까?"

나오미는 장난으로 카벤의 명치를 때리고 몸을 틀었다. 벌써 정교 신도들이 '코끼리'를 그들 앞의 둔덕 가장자리까지 끌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각 종파에서 사람들이 나와 '코끼리' 위에 올라탔다. 나오미 역시 이에 포함되어 있었다. 전투의 기운이 사방에 감돌았다. 신도들은 모두 전율에 몸을 떨었다. 턱수염이 다시 소리쳤다.

"1분대, 출격!"

성 발명자 다이어프램(Diaphragm)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루이즈 체호프와 붉은 머리 여자는 쇠사슬에 묶여 단상 위로 걸어나왔다. 어느새 정돈된 교회 내부는 기도하는 신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루는 몸을 떨었다. 어느덧 찬 바람이 감돌기 시작한 시각이었고, 그녀는 여전히 추웠다. 붉은 머리 여자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떨지 좀 마. 쪽팔리게."

"당신도 나처럼 춥게 입으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을걸."

"웃기시네."

"그럼 웃어라도 보던가요."

티격태격거리던 둘을 조용하게 만든 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목사의 단상 아래서,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그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눈 아래가 까맸고, 이따금 어떤 아이들은 도저히 인간이 가능하지 않을 수준으로 크게 입을 벌리고 있기도 했다.

루는 제일 선두에 앤써니 야카슨이 서 있는 걸 보았다. 경악과 무력감이 엄습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지울 수 없는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고, 얻어 맞은 듯 뺨에는 붉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연민과 슬픔으로 가슴이 아팠다. 루이즈는 조심스럽게 앤써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두 부모에게는 경멸의 시선을 날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추앙하는 눈길로 비굴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앤써니의 부모는 마치 허락만 하면 달려가겠다는 듯 아이의 손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루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둘을 좀비에게 던져주고 싶었다. 그들이야말로 감염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정말로 변이가 되긴 됐군."

여자가 중얼거렸다. 루는 그녀를 흘깃 보고는 물었다.

"뭐가 변해요?"

"쪼는 친구한테는 아무 것도—"

"거 계속 그럴래요?"

"알았어."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이씨, 기밀을 내 입으로 뱉으려니 별론데…"

"이미 격리 파기는 한참 진행된 것 같은데요, 뭐." 루가 꼬드겼다.

목사는 그들이 아이들 앞에 서자 사슬을 단상 한켠에다 묶었다. 신도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까 쏟아졌던 무표정한 경멸과 압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기쁨에 차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사가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더니 말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에게 또 한 분의 성인이 찾아오신 것을 축하합시다! 이분은 우리의 고결하고 귀한 시간을 축복하기 위해—"

"이 새끼 말 더럽게 기니까 빨리 끝내자. SCP-008은 니가 생각하듯 좀비 바이러스야. 프리온 집합체긴 한데, 일단은 넘어가자고."

"—오셨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하늘이, 바주마(Važjuma)가, 이온이 우리를 굽어 살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회개하십시오. 다가올 낙원 이쿠나안(Ikunaan)은—"

"원래 실험상으로, 그리고 보고서 상으로는 008이 적어도 이틀 정도는 걸려야 감염자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좀비로 만들어. 영화와는 다르게 달리지도 않는, 그냥 태곳적 좀비로."

"뭐야… 그러면 제압하기가 너무 쉽잖아요."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것입니다! 모두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내 기회를 버린 건 아닐까? 내가 내 욕망을 억제하고 살아간 건 아닐까? 내가 바보같이, 패배자 같이 순응하고 권력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건 아닐까? 여러분 모두가 바주마 앞에서 죄인—"

"그렇지. 여태까지 008 격리 파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도 그랬고, 이게 세계 멸망 시나리오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그런데, 너 여기까지 오면서 그냥 걸어다니는 놈 봤어? 네 기지 망하게 만든 애들 모두 걸어다니디? 그리고 감염 속도도 그래. 물리고 이틀 정도 뒤에 일어나서 '아 잘 잤다 인간이나 먹어야지'라고 돌아다니는 등신들이 있디?"

"아뇨…"

"—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신이 될 존재들입니다. 누구보다 더 깊어지고 누구보다 더 전능해질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간입니다. 더 없이 인간이에요! 신의 고기를 먹고 신의 피로 목을 축여도 여전히 인간입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곁에 나타난 선구자들은—"

"뭔가 이상해. 008 감염자들이 너무 강력해지고 있어. 내 팀은 연구 및 소탕을 목적으로 008 감염자들과 대치했지만, 놈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지. 정말 별 짓 다했다니까. 최신 무기를 얼마나 써댔는지…"

"—새 방법을 찾았습니다. 성스러운 이들은 진정으로 신격화에 다다른 겁니다! 이에 선언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성찬식은 이제부터 달라질 겁니다. 성찬식이 아닌 신으로 가는 관례가 될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이, 시간부터!"

거대한 함성이 밀물쳤다. 여자와 루는 고개를 들어 신도석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광란에 휩싸인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울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등 그들의 기쁨을 온 몸을 다해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앤써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다 괜찮아질 거야. 루가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괜찮아질 거야.

목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앤써니의 손을 잡고 있던 부모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루는 단상 옆에 책상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늘어진 머리카락과 힘 없이 내지르는 신음, 썩어가는 냄새와 초점 없이 바래버린 눈동자. 목사는 단상 아래에 좀비의 머리를 잘라 올려두고 있었다. 목사는 루의 손목에 묶인 사슬을 잡아당겨 가까이 오도록 했다. 루가 보고 있는 앞에서, 앤써니의 부모는 아이의 손을 좀비의 얼굴에 가져다대기 시작했다.

좀비가 깨어나 이를 딱딱거렸다. 아이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부모와 목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루의 얼굴에는 경악이 깃들었다. 너무 세게 잡아 멍이 든 앤써니의 손은 점점 좀비의 입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문짝이 열렸다. 문을 지키던 두 덩치가 놀라 달려갔지만 이내 기계음과 함께 목이 잘려 나뒹굴었다.

곧 거대한 기계 생명체들이 벽을 뚫고 교회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카벤은 손도끼를 꼬나 들고 몇 분 만에 폐허가 된 교회 안에 들어섰다. 그가 속한 2분대는 첫 공격에도 생존한 사르킥교도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다. 사르킥교에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지만, 카벤은 개의치 않았다. 굳이 따르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교회 안은 나무와 돌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로 가득했다. 그는 신도석이었던 나뭇조각 사이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저게 사르킥교도렷다.

카벤이 발견한 사르킥교도는 목이 부러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기도가 파손됐는지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그는 마구잡이로 카벤과 뒤따라오던 2분대 대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카벤은 손도끼를 꼬나 들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볼링공을 던지기 직전 자세를 취했다. 남자는 이제 문어 다리처럼 보이는 팔을 휘저으며 달리고 있었다. 사르킥교도의 입에서 기성이 발하더니 침이 흘렀다. 카벤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적절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카벤은 재빠르게 도끼를 올려 찍었다. 섬뜩한 퍽 소리와 함께 사르킥교도의 얼굴에 도끼가 박혔고, 남자는 서서히 철거당하는 건물처럼 무너졌다.

스트라이크.

카벤은 손쉽게 사르킥교도의 얼굴에서 도끼를 빼냈다. 대원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는 대충 손을 들어 화답하고 먼지 사이로 몸을 던졌다.

신도석 사이사이에는 의식을 잃은 사르킥교도 가족들로 즐비했다. 여전히 '코끼리'들과 그 주인은 교회 안에서 날뛰면서 이런 가족들의 육체를 짓밟고 다녔다. 이따금 먼지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이들의 움직임에 카벤은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다행인지 '코끼리'들은 카벤을 알아보고 밟지 않았다. 이들이 지나가면 쿵쿵 소리와 함께 질퍽이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반면에 의식을 잃지 않은 사르킥교도들은 힘을 합쳐 메카네교도들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사방에 싸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카벤은 안개처럼 짙게 깔린 먼지 너머에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도끼로 쳐냈다. 카벤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충격에 떨어져 나간 그 무언가는 자세히 보니 살덩어리였다. 또 다른 사르킥교도였다. 그는 재빨리 공격 자세를 취하고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내 살덩어리의 주인이 먼지를 뚫고 솟아올랐다. 붉은 드레스에 고풍스러운 구두를 신고 있는 중년의 여자가 기형적으로 뒤틀린 다리를 끌고 팔을 휘둘렀다. 알고 보니 살덩어리라고 생각한 건 그 여자의 손가락이었다. 카벤은 재빨리 날아오는 거대한 주먹을 피했다.

때마침 2분대 대원 중 일부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톱니바퀴 정교가 하나, 부서진 교단이 둘, 맥스웰파가 한 명이었다. 여자가 수가 불어난 그들을 향해 괴성을 내질렀다.

먼저 정교 출신이 여자에게로 달려들었다. 날아드는 무지막지한 살덩이를 슬라이딩하여 피한 다음, 몸통에다가 자기 팔을 꽂아넣었다. 믹서기의 소음과 유사한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고통에 차 비명을 질렀다. 정교 출신의 팔에서 고깃덩이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교단 신도들도 이에 가담했다. 들고 있던 쇠뭉치를 휘두르며, 이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심각하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뇌 손상은 뽑을 수 있을 듯한 상처였다. 이내 여자는 허물어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마지막은 맥스웰파의 몫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입고 있던 자켓의 안주머니를 뒤졌다. 카벤은 맥스웰파 대원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맥스웰파가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다면… 무슨 공격을 하는 거지? 전파 공격? 인지 재해?

맥스웰파 대원은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엎어진 여자의 뒷머리에다 대고 쏴재꼈다.

"어…" 카벤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특수한 공격은 안 하고?"

대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요."

카벤은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상황이 일단락되고, 그는 다시 전방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튀어나오는 것들은 많았지만 이는 다른 대원들의 몫으로 남겨뒀다. 이 교회의 종교 지도자가 있을 곳으로 가야 했다. 종교 지도자라면 당연히 이 모든 사태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더 일이 수월해질 것 아닌가. 그는 마구잡이로 부숴대고 있는 메카네교도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 친구들은 다 부숴버리는 게 목적이니까.

다리 근육이 뻣뻣해지고 목에 구슬땀이 흘러내릴 때 즈음, 그는 마침내 맨 앞의 단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상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과 그 부모들, 붉은 로브를 쥐색 양복 위에 껴입은 남자, 그리고 쇠사슬에 묶인 붉은 머리 여자와 갈색 머리 여자가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전부 목사 앞에 꿇어앉아 있었고, 붉은 로브의 입가는 분노와 당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로브 남자와 맨 앞에 있던 부모가 다급하게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무언가에 갖다 대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카벤은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

그리고 무언가의 정체를 보았다. 좀비의 목 위로만이 살아남아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카벤은 두 손으로 손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의 팔이 엄청난 힘으로 허공을 가르자 도끼는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곧 붉은 로브의 머리에 미사일이 날아들었고, 그는 즉시 뒤로 쓰러졌다. 엎어진 로브의 머리에는 피와 뇌수가 배어 나왔다. 도끼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듯 자연스러웠다.

아이의 부모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사슬에 묶인 두 여자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카벤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붉은 머리 여자는 재단 교전복 바지를 입고 상체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갈색 머리 여자는 꾀죄죄한 체크무늬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카벤은 그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쓰러진 목사의 시체로 걸어가 도끼를 빼냈다. 벌써 세 번째 헤드샷이었다.

"재단 인원입니까?"

붉은 머리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카벤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붉은 머리칼에 초록 눈동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뭐야, 너도 재단 인원이야? 세상 참 좁다. 여기 세 명이나 있네."

여자가 빈정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카벤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갈색 머리 여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푸른 눈에 어딘가 벙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럼 당신도?"

"네."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우릴 구하러 온 건가요? 기동특무부대가 조성된 거죠? 그러니까, 재단 기지가 다 망한 건 아닌 거네요? 대책은 뭔가요? 치료제는?"

"얘 또 이러네." 붉은 머리 여자가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카벤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을 재단의 요원이고, 구출을 위한 기특대원이라고 생각하는 이 여자 앞에서 자신은 메카네교도와 함께 사르킥교도들을 소탕하러 왔으며 내 기지도 망했다,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그들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을 끊었다. 쇠사슬은 녹슬고 가늘어 쉽게 끊어졌다. 자유로워진 둘은 굳은 손목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했다.

"여기서 나가세요." 카벤은 몸을 숙여 그들에게 속삭였다. "저는 여기서 더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어서…"

"이름이 뭔가요?"

갈색 머리 여자가 대뜸 물었다. 카벤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카벤 드웰러. 요원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있습니다."

"전 루이즈 체호프에요. 연구원이었죠."

체호프가 손을 내밀었다. 드웰러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연구원의 손은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인사를 나눈 둘은 빤히 팔짱을 낀 채로 딴청을 부리고 있는 붉은 머리 여자를 바라보았다.

"뭐. 이 신파극 주인공들아."

"빨리 오시죠." 체호프가 짜증이 어린 표정으로 그녀에게 손짓했다. "나도 아직 당신 이름 못 들었어요."

"샐리 산 초이야. 악수는 생략."

초이가 됐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체호프는 카벤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갑자기 먼지 저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카벤은 직감적으로 그게 나오미의 비명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등지고 달려갔다. 먼지 사이를 헤치고 그가 달려갔을 때 나타난 풍경은 괴기스러웠다. 여러 인간이 합체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고깃덩이가 꿈틀거리며 나오미가 타고 있는 '코끼리'를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나오미 카마초는 소지한 권총을 고깃덩이에다 쏘고 있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카벤은 코트 안자락에서 돌격 소총을 꺼내 들고 발포했다. 고깃덩이의 살거죽에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허공을 찢는 소리와 더불어 고깃덩이의 수많은 입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효과는 없었다. 그는 재빨리 '코끼리'로 다가갔다. 그가 달려오는 것을 본 나오미가 외쳤다.

"오이, 세뇨르! 콘 쿠이다도!(Con cuidado!)"

"나도 압니다! 어서 뛰어내려요!"

나오미가 주춤했다.

"얠 버릴 수는 없어요!"

"그러다 둘 다 죽는 수가 있습니다!"

고깃덩이는 어느새 제일 큰 입을 벌려 코끼리의 머리를 삼키고 있었다. 나오미가 잡고 있는 손잡이는 코끼리의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부분에 달려 있었고, 그녀는 서서히 침투해오는 부식성 점액질에 놀라 손을 떼었다.

카벤의 머릿속에 한 가지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 번도 시험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듯한 생각이었다. 그러니 지금 말고는 쓸 일이 없을 생각이다. 그는 다시 나오미에게 외쳤다.

"손잡이를 잡아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코끼리'의 몸에 가려져 카벤은 잘 보이질 않았다. 부식성 점액질이 손잡이까지 닿으려면 대략 15초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카벤이 다시 외쳤다.

"그냥 내 말 빨리 들어요!"

나오미는 손잡이를 잡았고, 외쳤다.

"잡았어요!"

그리고 카벤은 코끼리의 몸에 매달렸고, 생애 처음으로 뭐든 가까이하는 기계를 고장 내는 자신의 특성이, 빨리 발현되기를 빌었다.

서서히 부식되어 가던 '코끼리'의 머리가 눈을 떴다. 몸 안에서 여러 전선의 합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5개의 영구 엔진 중 3개가 고장 났고, 남은 2개는 10배의 속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발을 굴렀다. 심장 부위서부터 시작해 폐 부위, 위 부위, 소장 부위, 간 부위, 대장 부위 할 것 없이 모든 부위에서 합선이 일어났고, 몇 가지가 완전히 작동을 멈춘 후 다른 몇 가지의 부품들이 한 번도 갱신하지 못한 능률의 최고점을 달성했다.

'코끼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고깃덩어리가 앞길을 막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달렸다. 서서히 고깃덩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코끼리'를 삼키던 그 자세 그대로 고깃덩이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끼리'는 고깃덩어리를 뚫어버리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벽이 뚫리고 무언가가 먼지를 흩날리며 사라졌다. 루는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앤써니를 찾기 시작했다. 단상 가까이에는 이제 다 달아나 사람이 얼마 없었다. 루는 기절한 사람들과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를 훑다가 익숙한 얼굴이 그 안에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재빨리 아이를 빼냈다. 아이는 기절하지도 죽지도 않았고, 단지 숨 막혀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이 쓰러지면서 아이를 덮친 모양이었다. 루는 아이를 진정시키면서 물었다.

"앤써니. 누나랑 같이 갈래?"

아이는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듯이 눈을 비비더니 되물었다.

"우리 엄마는 어디 계세요?"

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를 가리켰다. 앤써니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 익숙한 붉은 드레스가 끼어있었다.

"돌아가신 건 아니고 그냥 기절하신걸 거야." 루는 앤써니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괜찮으실 거야…"

아이는 울먹였지만 울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널 데려가고 싶은 이유는, 나중에라도 네가 싫어하는 그 성찬식이 다시 일어날 수 있어서야. 그때면 누나가 널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네가 누날 따라간다면 성찬식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가족들하고 헤어져야 해."

앤써니는 불안하게 루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서, 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이런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한참 뒤에 아이가 말했다.

"그럼… 전 여기 있을래요."

"성찬식, 해도 되겠어?"

"아빠하고 엄마하고 형하고 같이 있으면 좋아요. 성찬식은 무섭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를 떠나기는 싫어요."

앤써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루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았던 몸을 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앤써니도 손을 흔들고는, 쓰러져 있는 제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차였네?"

루는 뚫린 벽에 기대 서 있는 샐리를 바라보았다. 능글맞은 웃음이 그 얼굴에 서려 있었다.

"재밌어요?"

"너 같이 갈 사람 없지?" 샐리는 팔짱을 끼더니 짝다리를 짚었다.

"나랑 같이 가자."


« 조우 | 허브 | 포획 »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