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공지: 이건 23부 연작 쿨전 중에서 21편입니다. 이 편부터 읽는 건 어마어마한 스포일러가 될 거라 아주 나쁜 생각입니다.


발신자: 피코
하트퍼드가 16번지 와서 날 뚜까패던가 말든가

루이즈는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캐롤, 혹시-"

루이즈는 고개를 들었다. 캐롤은 계산대 뒤에 없었다. 루이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찬히 제 스튜디오로 되돌아갔다. 그는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 찬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동생은 분명히 자가 파괴적으로 변하였다. 항정신병제 금단 증상의 마지막 단계였다. 루이즈는 약상자를 열어, 자기가 복용하는 항우울제와 멀티비타민제를 한쪽으로 치운 뒤, 안쪽에 손을 뻗었다. 그는 작은 클로자핀 병을 하나 집어 들어, 오른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루이즈는 제 옷장으로 향해서는 진한 갈색 항공 점퍼를 꺼냈다. 그러곤 안주머니에서 제 고무줄 권총을 꺼내, 왼손으로 꽉 쥐었다.

루이즈는 문자를 두 통 보낸 뒤, 피코의 은신처로 달려갔다.


발신자: '절단사'
하트퍼드가 16번지 이젠 저뿐이에요

'조각사'는 앉아서 생각했다. '절단사'는 무모한 멍청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절단사'는 방정식에서 빠져야만 했다.

'조각사'는 점토 벽으로 돌아서며, 기대에 차 손을 비볐다.


탠저린 요원은 바쁜 거리를 내달렸다. 주소록에 있는 모두가 사라졌다. 위장 신분은 어떻게 되돌릴 수가 없었고, 자신의 유용성도 없어졌다. 다른 부서로 이전되는 건 당연해 보였다. 다시 서류 업무로, 일반적인 현장 업무로, '나쁜 놈들'에게 총을 겨누는 그때로…지루할 정도로 단순한 일들이었다. 너무나도 지루했다.

탠저린은 저만치에 있는 갤러리를 볼 수 있었다. 보아하니 간단한 몇 통의 전화가 필요한 전부였던 것 같았다. 루이즈 뒤샹의 스튜디오는 몇 년간 저 위치 그대로였다. 애초에 스튜디오를 옮기게 하지 않은 것도 멍청한 짓이라 할 수 있겠으나, 아마도 뒤샹이 그다지 부주의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한몫했으리라. 탠저린은 계속해서 달리며, 갈색 항공 점퍼를 입고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남자를 피해갔다. 그는 권총집에 들어있는 권총을 손으로 꽉 쥐며, 현관으로 들어가서는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뛰어서 숨을 헐떡거리며, 탠저린은 질문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뒤샹의 스튜디오는?"

접수대 너머에 있는 남자가 갤러리 안 쪽을 가리켰다. 탠저린은 뒤로 돌아, 호흡을 느리게 하며 걸었다. 그는 모퉁이 돌아보았고, 거기엔 노골적인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 찬 방이 있었다. 탠저린은 휴대전화에 그린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린, 저 지금 뒤샹의 스튜디오에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거기 가만히 있어, 우리 지금 '절단사'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얻었으니까. 뭔 일 있으면 전화하고."

통화가 끝나면서 탠저린의 전화기에서 삐 소리가 났다. 탠저린은 한숨을 쉬고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아무 생각 없이 앉을 수 있는 의자로 향했다.

그러곤 전기의자에 중절모 하나가 놓여있는 걸 알아챘다.


발신자: [메타데이터 오류]
하트퍼드가 16번지 절단삽니다 안뇽

"좋아, 제군들.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작자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니, 우린 박쥐만큼이나 눈이 먼 채로 진입하게 될 거다. 우린 눈먼 박쥐라 이 말이야. 눈멀고 귀도 먹고, 자존감 문제까지 있는 박쥐라 이 말이지."

그린은 기동특무부대 입실론-18을 둘러보며, 효과를 노리고는 일부러 말을 멈췄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작자가 여기 있는지도 알지 못해. 이게 일종의 함정일 가능성은 높고, 사실 거의 확신하고 있지. 그래, 알콘Alcorn?"

현장 요원 알콘이 손을 내렸다. 약간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왜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겁니까?"

"훌륭한 질문일세, 알콘. 그럼 멍청한 답변을 해주지. 더 나은 행동 방안이 없기 때문일세. 우리에겐 악의적이고 예술적인 사이코패스의 주소가 있을 수도 있어. 만약 그 작자가 뼈다귀를 던져줄 정도로 멍청하다면, 어찌 물어뜯어 주지 않을 수 있겠나. 10분 뒤에 진입하지, 제군들. 쇠뿔도 단김에 빼라 그러지 않았나."

알콘은 마지못해 라커룸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발신자: '절단사' (피코 윌슨)
난장판이 될 겁니다

'청소부'는 방독면을 통해 웅웅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몸을 돌렸다.


루이즈는 버려진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낡고 부서져, 제자리에서 벗어난 콘크리트 조각이 건물 앞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이다…라고, 밖에서 봤을 때는 말할 수 있었다. 루이즈는 픽건을 정문 자물쇠에 거칠게 쑤셔 박고는, 방아쇠를 몇 번 당기고는 손잡이를 비틀었다. 루이즈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문이 닫혔다.

"피코!"

루이즈가 휑뎅그렁한 방에 소리쳤다. 곳곳에 원통형 콘크리트 탑이 놓여있었다. 꼭 공업용 창고 같아 보였다. 다 무너져가는 거주 지역에 있지만 말이다. 루이즈는 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뭔가 움직이는 게 있는지 기둥 뒤쪽을 훑어보았다.

"쉬이이이이잇. 목소리 낮춰, 형."

루이즈는 왼쪽을 향해 몸을 비틀며, 제 총의 나무 가늠쇠를 소리 방향으로 향했다. 피코의 뒤틀린 목소리가 작은 휴대용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었다. 분홍색 바탕에 흰색 꽃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애들용 무전기를 개조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루이즈는 그걸 집어 들고는 통신 버튼을 눌렀다.

"알약 배달 서비스, 이쪽은 루이즈이올시다. 어떻게 도와드릴깝쇼?"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알약은 날 죽일 뿐이야."

"아냐. 아냐, 그건 분명 사실이 아니야. 넌 지금 사실 아닌 것들을 말하고 있어. 바보 같은 짓이고."

"그렇다면 말을 분명하게 다시 하도록 하지. 방금 에스시탈로프람이랑 토피라메이트를 각각 10알씩 먹었어. 내가 클로자핀을 한 알이라도 먹으면, 심장이 터져나갈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야."

"썅."

"어쨌든 간에, 꼭대기 층으로 올라와. 싹둑 싹둑."

루이즈는 아직 스피커에서 잡음이 나오고 있는 라디오를 주머니에 넣고는,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시멘트 가루가 날리며, 그의 신발을 회색으로 더럽히고 있었다. 루이즈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가고는, 이윽고 3층으로, 결국에는 4층에 도달했다. 꼭대기 층은 다른 층과는 다르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바닥은 여전히 콘크리트였으나, 잘 광내고 닦아서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빛을 반사할 정도였다. 기둥들은 여전히 원통형이었으나, 양 끝부분에 장식성 조각이 되어있어, 효과적으로 고대 그리스 건축물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리고, 피코 윌슨은 시체 더미 위에 편안하게 앉아 심드렁히 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즈. 오랜만이야."

루이즈는 제 나무총을 능글맞게 미소짓고 있는 제 동생의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렸다.

"피코. 왜 그를 죽인 거야?"

피코는 시체 더미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시체의 손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 사람?"

"누구 말하는지 알잖아."

"뭐야, 그래서 내가 왜 이 사람을 죽였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 거야?"

"그래."

"도노반 스틸워드Donovan Stilward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거야? 죽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다고? 진짜로?"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자는 세 명의 아이를 납치하고, 강간해서, 결국에는 죽였어."

"…뭐?"

"내 말 들었잖아."

"거짓말. 넌 묻지마 살인마야."

"난 거짓말 안 해, 형. 오직 예술만이 거짓말을 하지. 그리고 바로 그 거짓말 덕분에 우리가 진실을 자각하는 거고. 그리고 진실은 바로 이거야. 유일한 진실은 예술의 거짓말 안에 있다는 거."

"그만해. '비평가'는 왜 죽였어?"

"이유가 필요한가?"

"왜 그랬는지 말해."

"그냥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그러는데, 형은 내가 그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죽였고 이 소아성애자 도노반 스틸워드는 이유 없이 죽였다는 거야?"

피코는 강조를 위해 시체의 손을 흔들었다.

"루이즈, 형의 문제는 나와 같아. 일관성이 없어. 뭐, 그거랑 극단적으로 과장된 자존심도 있지. 모든 게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건 아니야, 형."

피코는 시체 더미에서 뛰어올라,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대며 루이즈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루이즈는 총을 제 동생의 머리에서 돌리지 않았다.

"있지, 형과 내 유일한 차이점은 말이야, 난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거야. 형은 내가 왜 '비평가'를 죽였는지 알고 싶어? 애초에 내가 그런 게 형이랑 뭔가 연관성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냐, 형,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형은 정말로 이 모든 것의 주동자가 되고 싶겠지만, 형은 그렇지 않고, 그 사실이 형을 괴롭히고 있는 거지."

피코는 주머니에서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홱 꺼내 들고는 그걸 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루이즈는 제 감정을 다잡았다.

"가끔은 말이야, 루이즈, 일이 그냥…일어나기도 해. 뭔가 이유가 있다거나,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 말이지. 사람들은 꼭 모두 원인이 있어서 그러는 척하길 좋아하잖아?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길 좋아하지. 꼭 뭔가 다른 것을 할 수 있었다는 듯이 행동하길 좋아하고, 그렇다면 어떤 다른 결과가 발생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그렇게 앉아서는 이걸 던져보고 저걸 돌려보며, 세상을 역설계하려고 해. 마치 그렇게 해서 해법을 찾아내면 소급적으로 다른 것들을 바꿀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하지만 그건 전혀 상관이 없어. 전부 이미 일어났던 일들이고,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하는 건 시간만 낭비할 뿐이야. 더 많은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모든 건 결국 의미 없는 자위성 가정으로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만단 말이지."

피코는 칼날을 가져다가 제 턱에 대고 휘저으며, 살을 베지 않고 튀어나온 수염을 깎아냈다.

"가끔은 말이야, 루이즈, 모든 게 그냥…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쩌면 '역전'이라 해야 하려나. 가끔은 모든 게 뒤집혀. 눈치챈 적 있어? 꼭 우리가 동전 가장자리에 사는 것처럼 말이야. 아니면 칼날이라 해도 좋겠지. 가끔은 모든 게 뒤집히고 세상이 끔찍하리만큼 다르게 느껴져. 느낄 수 있어? 느껴본 적 있지, 안 그래?"

루이즈는 계속해서 제 총을 내려다보았다. 피코는 턱수염을 깔끔히 밀어버리고는, 제 손등을 가르기 시작했다.

"우린 항상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거야. 변화를 논하지만, 사실이 아니지. 모두 정적이고, 가짜야. 가짜라고! 모르겠어, 형? 우린 그냥…그냥 신 놀이를 하는 거야. 평생 살 수 있다면 신들은 뭘 할까? 내가 답해줄 게, 형. 그냥 서로 등쳐먹고 그러는 거야. 서로에게 전부 이유가 있다고 말해. 사실은 그게 전부 헛소리를 지어낸 건데 말이야. 그리고, 만약 운이 좋다면, 형, 어떤 신들은 망각하기도 하지.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야, 루이즈. 이해하겠어?"

"넌 미쳤어."

"아니, 난 일관성이 없어. 그 둘은 분명히 다르다고. 제정신이라는 건 임의적인 거야, 형. 멍청이들이 합의한 개념에 불과하다고."

"왜 '비평가'를 죽였어?"

"그냥 내가…할 수…있으니까?"

루이즈는 방아쇠를 당겨, 초음속 고무줄을 제 동생의 가슴팍에 쏘았다. 피코는 숨을 전부 토해내며 쓰러졌다.

"말해!"

"정말로 알고 싶어?"

"그래!"

"뒤를 봐."

루이즈는 제자리에서 뒤로 돌았다. 이윽고 제 눈이 '청소부'의 가면에 있는 어두운 유리에 비추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바보 같은 생각 같습니다만."

현장 요원 알콘은 흰색 재단 위장용 승합차 안에서 그린 요원을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그린을 포함하여) 아홉 명으로 구성된 이 분대는 어색하리만치 한 차량에 끼어 앉아 있었다. 차량이 하트퍼드가 16번지를 향해 내달리며 핸들을 꺾을 때마다 요원들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네가 대체 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겠지, 안 그래 알콘?"

알콘은 자신을 무감각하게 평가하는 그린에게 성이 나서 얼굴을 찌푸려 보였다.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말게나. 나도 대체 가능하니까. 우리는 대체 가능하기 위해 월급을 받는 거지. 안 그러면 현장에 있지 않을 테니까."

그린은 콧잔등을 문지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더 안전한 방법론은 수없이 많을 거야.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것이 한 방법이겠지. 저격수를 데려오거나, 목적지를 봉쇄하는 방법도 있을 거야. 위험도를 낮추는 대신, 비용이 더 들 걸세. 그렇지만 우린 대체 가능하지 않나. 게다가 우리는 필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나, 우리 요원들은 부자가 아닐세."

그린은 몸을 기울여 알콘의 귀에 대고 말했다.

"들리는 것만큼 나쁜 일이지, 알콘. 가장 바보 같은 생각이 가장 싸게 먹히니까 하는 거야."

승합차가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그린은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알콘은 제 소총을 붙잡고는, 승합차의 뒷문을 밀어 열며 나머지 분대원들이 입구로 향하는 동안 엄호하였다. 그린은 입구로 달려가고는 안쪽에 있는 기둥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권총을 눈높이로 올려 조준한 채로 안으로 들어가며, 입실론 18 부대원들이 천천히 퍼져서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구석구석을 지켜보았다.


루이즈는 전조등 앞에 선 사슴처럼 멍하니 서서 '청소부'를 바라보았다. 피코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왔군요, 요 아름다운 것. 이리로 와요."

'청소부'는 몸을 돌려, '절단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피코 앞에 무릎을 꿇었고, 피코는 가볍게 그의 머리를 토닥였다. 루이즈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있지, 여기 이 '청소부'는 근본적으로…뭐, '신'이라 하면 좀 너무 갔나. 반신 정도라 하면 되려나?"

'청소부'는 제 주인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게는 신성이 없습니다."

"오, 하지만 있는걸요, 내 사랑. 있고 말고요. 어떻게 생각해, 루이즈? 웨딩드레스를 어떻게 맞출지 잘 모르겠어가지고 말이야. 검은색 바탕에 흰색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마는."

루이즈는 정신을 다잡고, 다시 '절단사'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피코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형 지금 고무줄을 갖고 날 위협하고 있는 거야. 사무용품으로 날 위협하고 있다고."

"어째서야?"

"뭐가 어째서야?"

"어째서 이 모든 걸 하는 거야? 네 마지막 수가 뭔데?"

"왜 내게 마지막 수가 있다 생각하는 거야? 젠장, 형의 마지막 수는 뭐였는데? '비평가'를 죽이고, 그다음은?"

"모든 게 바뀌겠지."

"바뀌는 건 없어. 심지어 지금도, 무엇 하나 바뀐 게 없지. 모두가 그냥 저가 있을 자리를 바꿀 뿐, 본질적으로는 같아. 의자 뺏기 놀이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형은 음악을 멈추었지만, 의자 하나를 빼두는 걸 잊었어."

"틀렸어. 난 그를 잘라냈어. 암 덩어리에 그러듯 걷어냈지. 그 인간의 부업은 전부 다른 이들에게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상관없어. '비평가'는 이제 없어."

피코 윌슨은 양팔을 벌렸다.

"당연히 있지. 지금 본인에게 말하고 있잖아."


"안전한가, 알콘?"

"적어도 이 층은요. 올라갈 겁니까?"

"그래."

"퍼킨스Perkins, 도프먼Dorfman, 나와 함께 간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층을 봉쇄해.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없게끔."

퍼킨스와 도프먼이 층계참에서 알콘과 그린에게로 합류했다.

"먼저 가세요, 그린."

그들은 조심스레 2층을 향해 올라가, 분산되어 수색을 시작했다.


"넌 '비평가'가 아니야."

"당연히 맞지. 내가 자리를 비웠으니,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어."

"냅뒀으면 알아서 죽었을 사람이야."

"중요한 건 '죽었을'이라는 거지. 내가 먼저 죽였잖아. 그러니 그 빈자리는 내가 가져가도 된다는 거지. 혹시 그걸 몰랐어?"

"그렇다면 만약에…내가 널 죽인다면?"

피코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미친 듯이 키득거렸다.

"어디 한 번 해봐, 형. '청소부'. 이 난장판을 청소해."

'청소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루이즈를 마주 보았다. 그는 손을 든 채로 루이즈를 향해 걸어갔다. 루이즈는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컷."

'청소부'는 몸을 돌려, 피코를 땅바닥에 자빠뜨려 그의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저 멀리 구석으로 던져 보냈다. '절단사'는 필사적으로 가면 쓴 인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는 더러운 손톱으로 가면을 마구 긁어대다가, 결국에는 손가락을 그 밑으로 집어넣어 가면을 확 벗겨냈다.


되감기


"여. 샌드라."

'연출자'는 혼수상태에 빠진 채로 누워있었다. 루이즈 뒤샹은 그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연출자'의 뺨을 쿡쿡 찔렀다.

"좀, 샌디. 저 사람들은 속아 넘겼어도, 난 못 속여."

'연출자'는 한쪽 눈을 뜨고는, 산소마스크를 통해 속삭였다.

"꺼져, 루이즈."

"카메라엔 루프 영상 돌리고 있고, 문은 잠갔어. 마스크 빼도 돼."

샌드라 폴슨은 산소마스크를 벗고는, 팔에서 가짜 정맥 주사용 점적기 몇 개를 잡아떼어냈다.

"젠장, 루이즈. 원하는 게 뭐야?"

"뭐, 왜 의식이 없는 척하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시작해볼까."

샌드라는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양복네들이 날 잡아서 말이야. 약을 썼지만, 당연히 나한텐 아무런 효과가 없지."

"그렇겠지."

"네가 나한테 그 연극을 유출했다는 헛소리를 좀 먹여줬어.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뭘 했다고?"

"야, 진정해.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 너였던 걸 어떡해. 그날 밤 나타나질 말았어야지."

"너한테 경고를 할 필요가 있었어!"

"진짜로 내가 목매달린 왕에 대해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거 완전 고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젠장, 난 시트콤 형식으로 파일럿 에피소드를 쓴 적도 있단 말이야. '목매달린 왕과 함께 지내기(Hanging with The King)'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 같은데."

"그럼 도대체 그 연극은 왜 한 거야?"

"감시받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내가 멍청하고 짜증이나 내는 할망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연출자이기 이전에 배우였어."

루이즈는 얼굴을 찌푸리곤, 샌드라가 한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래서…누가 준 건데?"

"'조각사'. 그 새끼가 우릴 다 죽이려 하고 있어."


'연출자'의 침댓가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연출자'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는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루이즈?"

"샌디, 도움이 좀 필요해. 내가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장소에 존재할 수가 없고, 펠릭스가 날 보고 있어서 말이지."

"잠깐, 너 펠릭스랑 만나고 있었어?"

"어, 우리…같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직 그 사람을 믿어도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은 무해해. 뭘 하면 되는데?"

"내 동생 뒤를 밟아줬으면 해. 어디 사는지 좀 알아줘."

"당장 어디 있는지는 알아?"

"아니, 그렇지만 오늘 밤 어디로 갈지 알고 있지. 로칸(Rokan)가 27번지. 그 치들 전부가 모여서 과자를 곁들여 차나 한잔 할 거야."

"차랑 과자?"

"미안, 내 말은 '조각사'가 나를 마녀사냥의 동기로 사용하여 내가 참석하지도 않을 전시회를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라는 거야. 왜 그 둘을 혼동했는지 모르겠네. 해줄 수 있겠어?"

"그래. '조각사'에 관한 건 어떻게 되고 있어?"

"한 번에 한 문제씩이야, 샌디."

'연출자'는 전화기를 탁자 위에 돌려놓았다. 그러고는 침대 아래에서 공기 주입식 인형을 꺼내어, 이불 밑에다가 쑤셔 넣고는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연출자'는 문을 잠그고(다행히 개인실이었다), 창문 밖으로 나가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사라진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루이즈의 전화기가 주머니 속에서 진동했다. 그는 전화기를 열어 귓가로 가져다 대었다.

"안녕 샌디."

"루이즈. 주소 알아냈어. 하트퍼드가 16번지. 커다란 버려진 건물이야."

"훌륭해."

"걔 '청소부'하고도 만났더라."

"누구?"

"키 큰 사람. 방독면 쓰고."

"누굴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샌드라의 전화기가 주머니 속에서 진동했다. 그는 사실 처음 병원에서 탈출한 이후 아직 돌아가지 않은 상태였다. 간호사들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안녕 루이즈."

"'비평가'가 죽었어."

"아. 그래서 제대로 된 거야?"

"아니. 피코가 죽였어."

"젠장."

"그래. 나 대신 걔 좀 감시해줘."

"'조각사'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작업하는 중이야. 걱정하지 마."


루이즈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샌디?"

"방금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어. 내가 진짜 연기 잘하는 거 알지?"


수신자: 샌디
시간 됐어.

수신자: 펠릭스
'청소부'한테 제 스튜디오에서 만나자 할 수 있을까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펠릭스는 제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몇 자를 입력하고는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발신자: '절단사' (피코 윌슨)
난장판이 될 겁니다

'청소부'는 방독면을 통해 웅웅거리는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았다. 전화기가 다시 삑삑거렸다.

발신자: '편집자' (펠릭스 코리)
루이즈 뒤샹이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보자는 군.

'청소부'는 화면을 검토하며, 메시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깊고, 웅웅거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방독면을 벗어, 가면 아래의 사람이 되었다.

가면 아래의 사람은 커피숍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연출자' 양. 그랬군요. 그랬어."

숨 막히는 방독면을 벗은 샌드라는 손쉽게 온몸으로 피코를 제압할 수 있었다. '절단사'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아아아… , 우리 '연출자' 양. 무얼 하고 놀까요?"

'연출자'가 목 조르기로 넘어가, 피코의 숨을 막으려 했다.

"아뇨 그건 지금 먹히지 않을 것 같네요. 우리에겐 안 먹힌다고요, 아세요? 우리에겐 먹히지 않아요."

'절단사'는 몸을 비틀어, 제 상의를 찢으면서 그 틈을 이용해 '연출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가 미친 듯이 헐떡이는 동안 빼빼 마른 흉곽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우린 그렇게 쉽게 스러지지 않을 거예요 '연출자' 양. 그리고 우린 너도 잊지 않았어 루이즈."

루이즈는 고무줄 두 개를 제 동생의 머리에다가 쐈다. 첫 번째 고무줄은 피코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고, 두 번째는 눈에 맞았다. 피코는 몸을 움찔거리고는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아냐 이렇게 스러지는 게 아니야. 우린 그냥 재시작할 수도 있어. 우린 그냥…재시작할 수도 있다고, 알아? 현실이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없다고."

피코는 미친 것처럼 제 시체 더미를 향해 달려가, 수집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통제라는없어. 그건 그냥 환상이야. 이해하겠어? 전부 꿈에 불과해. 꿈인 게 분명해. 세계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살 수는 없는 법이잖아."

루이즈도 더미를 향해 달려갔다. 샌드라는 제 검은 트렌치코트에서 피하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규칙은 따르고 싶지 않지만 제 규칙을 따르지 않는 건 싫어하는 세상에 대한 유효한 반응이라는 건 없어. 난 그냥 가장 당연한 출구로 사람들이 떠나는 걸 도와줄 뿐인데, 그럼 난 일종의 사신이 되는 건가? 어쩌면 저승사자일지도, 응?"

루이즈는 여러 몸뚱이를 거쳐, 유일하게 맥박이 뛰고 있는 몸을 붙잡았다.

"난 항상 내가 중요한 인물인 척을 하고 싶었어. 몇 명은 그렇게 속여 넘겼지. 이렇게 끝날 것이 아니아. 난 이기게 되어있단 말이야. 내가 여기서 죽게 놔두지 마.이것보다 낫잖아. 이것보다 나을 있어."

루이즈는 제 동생을 시체 더미에서 홱 잡아당겼고, 피코는 그 와중에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보다 더 나은 일들이 있지 않아? 내가 그렇게도 싫은 거야, 형? 우리의 예수님은 우릴 이보다 가르쳤잖아. 우리의 아담이 우릴 알았어."

샌드라는 주삿바늘 뚜껑을 빼서, 꽂아 넣을 준비를 했다.

"이건 광기가 아니야, 형. 제정신이라는죄악만큼이나 임의적인 개념이야. 네겐 날 재단할 권리가 없어."

루이즈는 발작하는 동생을 누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샌드라는 주삿바늘을 피코의 가슴팍에 박아넣고는, 진정제를 그의 혈관에 퍼트렸다.

"우린 신이야! 형과 나 말이야! 멍청하고 태만한 인간들 틈바구니에 신들이라고!"

'절단사'가 상의가 벗겨진 채로 몸부림쳤다.

"우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었어. 우린 전부 창조자란 말이야. 세계가 우릴 위해 존재해."

피코의 눈꺼풀이 아래로 처졌다.

"우린 일관성을 견딜 수 없어.

루이즈는 의식이 없어 축 처진 동생을 바닥에 떨구었다.


"하하하하하하아아아…"

그린 요원은 들려온 소리에 놀라 건너편 벽을 향해 돌아섰다.

"알콘. 따라오게."

알콘은 그린에게로 합류했다. 둘은 층계참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천천히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을 통해 먹먹한 고함을 들었다. 3층까지 계단이 절반 정도 남았을 즈음에, 알콘의 무전기에서 지상에 남아있던 요원들의 말이 지직거리며 들려왔다.

"부지 내에 들어오려던 사람을 구속했습니다. 자신을 '조각사'라고 하더군요."

그린이 뒤로 돌더니, 건네라고 말하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알콘은 한숨을 내쉬고는 제 무전기를 넘겼다. 그린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얼마나 저항하던가?"

"전혀요. 미친놈처럼 미소 지으면서 수갑을 차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말게나. 높은 중요도의 요주의 인물 취급받는 사람이니."

"승합차로 옮기겠습니다."

"좋아. 혼자 두지 말게나. 만약 그가 뭔가 하려고 한다면 즉각 제거해도 좋네. 오버."

알콘은 무전기를 돌려받아 허리춤에 달았다. 그는 그린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절단사'를 지원하러 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지난 금요일에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아마도 그는-"

"우린 신이야! 형과 나 말이야!"

그린은 입에 손가락을 대고는, 3층에 올라갈 때까지 조용히 하였다.


루이즈는 혹시 숨겨둔 무기가 있나 피코의 몸을 수색했다. 주머니는 낡은 휴대전화를 제하면 비어있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화면을 조작해, 보낸 문자함을 열었다.

수신자: '조각사'
하트퍼드가 16번지 이젠 저뿐이에요

수신자: 좆밥 여단
하트퍼드가 16번지 절단삽니다 안뇽

"씨발."

샌디가 피코를 제 어깨에 들쳐메고는 루이즈를 향해 돌아섰다.

"왜?"

"양복네들이랑 '조각사'가 오고 있어."

"씨발."

"내 생각도 그래. 전투 계획이라도?"

"도착하기 전에 튀자."


알콘의 무전기가 다시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그린에게 넘겨주었다.

"또 다른 사람을 체포했습니다."

그린이 얼굴을 굳혔다.

"신원을 밝히던가?"

"그게…본인들이 '조각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알콘을 보았다.

"좀 전에 '조각사'라고 했던 인물은 아직 구금 중인가?"

"네, 그렇습니다."

"둘이 똑같이 생겼나?"

"네."

"당장 둘 다 처분하게. 더 있는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지금…잠깐, 또 다른 '조각사'가 방금…아니, 다섯…일곱! 젠장! '조각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사격 개시! 머리를 노려라! 모두 로비로 들어와!"

총성이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고, 그린과 알콘은 2층을 향해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샌드라는 피코를 계속해서 어깨에 들쳐멘 채로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루이즈는 계단을 내려가며, 방향을 바꿀 때마다 제 고무줄 총을 주변에 조준했다.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루이즈가 하던 말의 끝부분은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끊겼다. '연출자'는 화가 나서 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둘은 3층으로 이동해, 창문 밖을 내다봐 지상의 상황을 확인했다. 수백 명의 '조각사'가 사방의 거리에서 건물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양복네 요원들 세 명이 계속해서 그 무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으나, 숫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요원 중 한 명이 무리 안으로 세열수류탄을 던졌고, 금속 조각이 터져나가며 골육의 환상을 부수고 점토 조각을 바닥에 흩뿌렸다. 루이즈는 제 작은 나무총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젠장."


그린 요원은 1층으로 달려내려 갔고, 그 뒤를 알콘 요원이 뒤따랐다. 기동특무부대 입실론-18 부대원들은 한 명이 철제 파이프로 정문을 막는 동안 짧으면서도 절제된 사격으로 엄호했다. 그린은 '조각사'들 중 한 명이 창문으로 기어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총을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고, 점토 몸체는 떨어져 문을 막았다. 그린은 제 권총을 살펴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알맞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린은 총성 속에서 소리쳤다.

"알콘! 남는 돌격소총이 있나?"

알콘이 고개를 저었다. 그린은 들리지 않는 욕설을 내뱉었다. 둘은 나머지 분대원에게로 합류하여, 엉망이 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 더미 너머로 몸을 피했다. 매번 총을 쏠 때마다 화난 예술가가 한 명 줄어들었지만, 그 말은 곧 총알 한 발이 없어진다는 것과도 같았다. 이들은 치고 빠지는 급습을 위한 채비를 했지, 장기 농성을 위한 채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조각사'들은 창문을 통해 넘어오고, 또 무너진 복제품들 위로 기어오면서 함성을 질러댔다.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동시에 터져 나온 합창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고, 곧 총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루이즈는 샌드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샌드라는 벌써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낸 상태였다.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

"진짜 '청소부'. '조각사'가 직접 날 죽이려 했잖아. 규칙을 어긴 거니까 그에게 걸린 보호도 무효로 돌아간 거야. 반면에 나에 대한 보호는, 여전하지."

'연출자'는 화면을 두들기고는 귓가로 전화기를 가져갔다. 루이즈는 다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수가 어마어마했지만, 추가되는 복제품은 이제 없었다. 루이즈는 분필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콘크리트 잔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ceci n'est pas une bombe(이것은 폭탄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적고는, 무리를 향해 던졌다. 루이즈는 그게 불덩이로 변하며, '조각사'들이 터져나가며 바닥을 더럽히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가면 밑의 인물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려 목소리를 죽인 채로 말했다.

"'연출자'. 위장이 들통나셨습니다."

"그래, 그거 말인데. 날 병원 침대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 바로 '조각사'야."

"고의로요?"

"그래."

"위치는?"

"하트퍼드가 16번지."

"알겠습니다."

가면 밑의 인물은 얼굴을 다시 가면으로 덮었다.

'청소부'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지붕 위를 달려나갔다.


"그린, 퇴각해야 해요!"

분대는 예술가들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는, 이제는 활짝 열린 문을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다. 복제품 중 하나가 요원 한 명을 제압하여, 비명 지르는 신체를 다른 형제들이 처리하도록 바깥으로 던졌다. 알콘은 다른 분대원들에게 계단을 통해 2층으로 퇴각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린은 마지막 남은 총알을 가장 근처에 있던 '조각사'의 찰흙 두개골에 쑤셔 박아준 뒤, 무용지물이 된 총을 옆으로 던졌다. 그는 계단을 통해 알콘의 뒤를 따르다가 잠깐 멈춰서는 층계참 절반 즈음에 널브러져있던 쇠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린은 계속되고 있는 합창 너머로 가까이 있던 분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계단을 막아!"

마지막 남은 분대원까지 계단을 오른 뒤, 그린은 근처에 쌓여있던 콘크리트 더미를 계단 아래로 미는 데 힘을 보태, 광적으로 날뛰는 '조각사' 두 명의 하반신을 짓뭉갰다. 또 한 명이 저지선을 넘어서 오려고 하자, 그린은 파이프를 머리통에 대고 휘둘렀고, 그러자 만족스러운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박살 나면서 맥없이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샌디는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창가에 있는 루이즈에게로 갔다. 샌드라가 피코를 다시 꽉 붙들어 매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청소부'가 오고 있어. 그때까지는 버티고 있어야지."

"뭐 쓸만한 거 없어?"

'연출자'는 외투 안주머니 중 하나에서 갈고리 총을 꺼냈다.

"잘됐네, 어서 여길 뜨자."

"우리 둘 무게는 못 버틸 거야."

"썅. 좋아…"

루이즈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는, 가까운 옥상을 가리켰다.

"저쪽에 가서, 피코를 떨구곤 날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장전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최선의 계획이잖아."

"알았어. 좀 이따가 보자."

샌드라가 맞은편 건물에 갈고리 총을 쏜 뒤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창문 밖으로 끌려나갔다. 루이즈는 샌드라가 지붕에 오르며 갈고리를 다시 감는 모습을 보았다.

"미확인 인물이 위층에 있다, 사격 개시!"

루이즈는 뒤로 돌았다. 양복네 중 한 명의 총에 맞기 전에 콘크리트 탑 뒤로 숨을 시간은 없었다. 그는 엄폐물 주변을 고무줄로 조준하다가 공격자를 향하자 손에서 고무줄을 풀었다. 루이즈는 회의적으로 외쳤다.

"실례합니다만, 쏘지 않으신다면야 거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청소부'는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다니며, 하트퍼드가 16번지에 도착했다. 그는 땅에 착지하며 '조각사'들을 박살 냈다. 그는 근처 복제품을 향해 손짓하여 변칙개체의 변칙성을 날려 생소지로 돌려보냈다. 다른 복제품들은 외경심과 공포로 인해 움직일 수 없었다. '청소부'가 방독면을 통해 웅웅거리며 말했다.

"규약을 어기셨군요.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복제품들은 비명 지르며 '청소부'로부터 도망쳤고, 전부 먼지로 화하며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는 우아하게 건물의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고, '조각사'들은 반쯤 봉쇄된 층계참으로 도망쳤다.


요원들은 콘크리트 탑을 향해 계속 총을 쏘며, 루이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였다. 루이즈는 보지도 않고 한 번 더 고무줄을 쏘았다.

"샌디, 좀 도와줄래!"

'연출자'가 창문을 통해 쏜살같이 들어와서는, 탑 뒤에 있는 루이즈와 합류했다.

"알았어, 알았어. 소리칠 필요는 없잖아. 잡아."

루이즈는 샌드라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는 트렌치코트에서 작은 공을 꺼내 들고는, 땅바닥을 향해 세게 던졌다. 그러자 공이 터지며 작은 연기구름을 토해냈다. 샌디는 창문을 향해 달려나가더니, 밖으로 뛰어내리며 반대편 지붕을 향해 조준했다. 지상에 있는 성난 '조각사'들을 향해 자유 낙하한 그 찰나에, 루이즈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곧 갈고리가 쏘아져 나왔고, 둘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안전하게 반대편 지붕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지나치게 힘을 쓴 탓에 헐떡이며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다. 루이즈는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혼란스러운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피코는 어딨어?"

샌디도 혼란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 상관없어. 어쨌든 우리도 여기서 뜰 거니까. 걔는 뭐 알아서 하겠지."

루이즈는 작은 소리로 다채로운 욕설을 내뱉으며, 샌드라를 따라 지붕을 통해 탈출하는 데에 동참했다.


그린 요원은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분대원들은 계단 아래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근접 전투 중인 이들과 고속의 총탄이 뒤엉켜 엉망진창이었다. '조각사'들이 틈새로 밀려들며, 콘크리트 조각을 옆으로 밀어내며 가까이 있는 요원들을 둘러쌌다. 그중 두 명이 넘어지며 무리에 짓밟혔다. 알콘은 벨트에서 수류탄을 꺼내 들어, 핀을 뽑아 들고는 숫자를 셌다.

"수류탄 투척!"

그는 수류탄을 무리 안에 던져넣어, 상당한 숫자를 줄였다. 그린이 남은 분대원들에게 외쳤다.

"길목을 지켜야 한다! 모두 위층으로!"

남은 일곱 명의 요원이 3층으로 후퇴하면서, '조각사'들이 밀고 들어와 2층을 가득 채웠다.


'청소부'는 성큼성큼 1층으로 들어와, '조각사'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 줌의 재로 되돌려보냈다. 그는 손을 흔들어, 찰흙으로부터 환상을 걷어냈다. 그가 천천히 숨을 쉬는 동안 방독면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러면서 태연하게 '조각사' 떼를 없애 갔다. 복제품 중 하나가 몸을 돌려, 키 크고 검은 형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복제품은 '청소부'의 신발에 달라붙었으나, 내부 열로 인해 찰흙이 구워지면서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그는 뭔가 움직이는 건 없는지 방을 둘러보고는, 완전히 청소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부'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알콘은 마지막 총알을 쏘았다. 최후의 예광탄피가 탄창에서 튀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쓸모없어진 돌격소총을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바닥에서 철봉 하나를 집어 들고는 가까이 있던 '조각사'의 머리에 박아넣었다. 그린은 복제품의 가슴팍에 파이프를 밀어 넣은 뒤, 몸을 회전시키며 머리를 목에서 깔끔하게 날렸다. 남은 분대원들도 화기를 더는 쓸 수 없었기에, 근접 무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도프먼은 무용수처럼 돌면서 컴뱃 나이프로 찰흙 덩어리들을 베어내고 있었고, 퍼킨스는 그냥 머리를 붙잡고는 벽과 콘크리트 탑에 충돌시켜 박살 내고 있었다.


'청소부'는 2층으로 올라갔다. '조각사' 떼가 그를 에워싼 채, 싸우지 않고서는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청소부'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트렌치코트를 찢어버리고 장화를 벗기며, 방독면을 낚아채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임박한 파멸을 회피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조각사'들은 합창하며 소리쳤다.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이건 전부-"

'청소부'가 손가락을 튕기자, 공격자들의 안팎이 뒤집어졌다.


그린 요원은 거칠게 헐떡이며, 방을 더럽힌 찰흙 더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도프먼은 마지막 남은 찰흙 조각을 제 칼에서 퉁겨냈고, 퍼킨스는 발치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머리를 짓밟았다. 알콘은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 미소지은 채로, 그린에게로 걸어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직 살아 있네요!"

"아직 살아있지. 좋아. 그래. 그래도 일단 위층은 수색-"

그린은 말을 하다가 말고, 검은 방독면을 쓴 채로 계단을 오르는 키 큰 인영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청소부'는 저보다 아래에 있는 요원들을 둘러보며, 장화에 붙은 찰흙 쪼가리를 차서 떼어내고 있었다. 그는 그린 요원을 향해 걸어왔고, 그린은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게 총을 장전했다. '청소부'는 걸음을 멈추더니, 이윽고 땅에 무릎을 꿇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불편을 끼친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청소부'는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창문을 향해 걸어가서는 1층으로 뛰어내리더니 곧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린은 알콘을 바라보고는, 아직 열려있는 3층 창문을 보았다. 그린은 침착하게 주머니로 손을 뻗어서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들고는 불을 붙였다. 그는 깊게 한 모금을 빨고는, 피곤한 듯이 연기를 내뿜었다.

"이젠 씨발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구만."


루이즈는 낙담하여 미술관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샌드라는 진짜 '조각사'를 찾아 나섰다. 피코를 잃은 이상, 남은 단서가 없었다.

"뒤샹 씨, 아까 누군가 당신을 찾아서 왔었습니다."

"누군데요?"

"그게…죄송합니다, 뒤샹 씨. 잊어버렸어요."

루이즈는 한숨을 내뱉었다. 무능한 등신들. 전부 그랬다. 그는 모퉁이를 돌아 제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전기의자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붉은 머리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회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회색 중절모를.

루이즈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런 젠장 씨부럴."

새로운 아무도 아닌 자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손가락을 튕겨 루이즈를 꿈 없는 잠에 빠트렸다.


그린 요원과 알콘 요원은 하트퍼드가 16번지 건물의 모든 층을 샅샅이 뒤진 후에 낡은 승합차로 돌아왔다. 차에 올라타려는 찰나에, 그린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전화기를 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탠저ㄹㄹㅣㅣㅣ**@%

그린은 전화기 화면을 두드렸다.

미확인 발신자

그는 전화기를 귓가로 가져갔다.

"그린 요원."

"누구요?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루이즈 뒤샹이 게노센샤프트 현대 미술관(Genossenschaft Gallery of Contemporary Art)에 정신을 잃은 채로 누워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 데려가시지요."

"당신 누구야?"

"잊힌 친구입니다."

그린은 익명의 조언에 혼란스러워하며, 휴대전화를 닫았다.

첫째 중 다섯째는 전략
둘째 중 다섯째는, 금요일의 쇼.
마지막다섯째는 청산된 원한
따라서 의견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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