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영혼을 위한 갈리아르다
평가: +6+x

한 거대한 홀에서 무도회가 진행되고 있다. 홀 중앙에는 수많은 남녀들이 손을 맞잡고 발을 맞추어 춤을 추고있고, 홀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다과를 즐기며 카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홀 전체에 장중한 파바느가 울려퍼지고 있다.

당신이 만약 여기 있었다면, 당신은 세계 각지에 이름 있는 기업들의 오너, 열정 넘치는 젊은 간부들, TV를 틀면 곧잘 보이는 유명인들, 출신을 알 수 없는 수상한 갑부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여기 있었다면, 당신은 손을 맞잡고 춤추는 사람들 무리 틈에서 은밀한 밀회를 가지고 있는 나이 있는 귀부인과 젊은 신사를 볼 수 있었을테고,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나누는 은밀한 사랑의 속삭임들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여기 있었다면, 당신은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로 가득 찬 온갖 비즈니스 얘기들과, 사적인 탐욕과 욕망에 젖은 온갖 거래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얘기들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여기 있었다면, 당신은 홀 한 가운데서 피아노를 치고있는 한 가녀린 여성 한명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그녀의 충혈된 눈과 옷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붉은 자국들 역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금 막 홀 안으로 입장한,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에 검은 정장을 입고있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한 여성에게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랭크 맥코넬은 이 무도회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그룹 엥엘베르트 코퍼레이션의 신임 받는 젊은 간부로, 회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의 방증으로 여겨지는 사회환원부서로의 부임을 받을 예정이었다.

사회환원부서로의 부임이 확정된 다음날 이 무도회에 초대장을 받게 되었고, 관련 업계의 거물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할겸 이 무도회장에 왔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의 머릿 속에는 이곳에 발을 들일 때부터 한가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역겹군."

짐짓 점잖 빼는 척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는 이 더러운 탐욕과 욕정의 광경이라니.

그는 이미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한지 오래였고, 그는 춤과 음악을 별로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때문에 프랭크 맥코넬은 구역질 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서둘러 홀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검은 정장을 입고 굽 낮은 구두를 신은 한 여성이 홀 안으로 들어왔다. 무도회장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수수한 복장이었지만, 프랭크 맥코넬은 그때문인지 몰라도 그 여성에게 시선을 사로잡혔다. 그 여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만면에 싱글싱글 미소를 띄고있었다.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생겼군." 그는 생각했다.

이 장중한 파바느가 끝이 나고, 경쾌한 갈리아르다가 시작되면 프랭크 맥코넬은 저 여성에게 춤을 신청할 생각이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그는 끝내 그녀와 춤을 추지 못 했다.


맨디 스리블은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런던의 한 상인들에게 팔리기 이전에 기억들은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님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억나는 것은 그녀의 맨디 스리블이란 이름과 피아노 치는 방법 뿐이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잘쳤다. 그녀는 그게 아마 자신이 팔린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돈이 궁한 집안에 피아노를 잘치는 딸이 한명 있었고, 상인들이 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데려왔다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천대받고, 학대받고, 평생을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피아노 치는 법을 알고있었고, 그것에 꽤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무도회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더 나은 잠자리와 빵 한덩이를 제공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더 운 나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유를 갈망했다. 건반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저 귀부인들처럼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원했다. 이건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행복한 순간은 오직 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간 뿐이었다. 그 외에 모든 순간들은 지독한 외로움과 쓰라리는 흉터들의 고통을 견디는 시간 뿐이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이 거의 끝나가고, 새로운 더 경쾌한 곡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검은 정장을 입고 굽 낮은 구두를 신은, 긴 흑발의 여인이 그녀에게 또각또각 다가오고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손에 악보를 들고.


"예술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솔직히 무도회라는 곳을 한 번 와보고 싶기도 했고. 그녀는 꽤 신이 나있었다.

"생각만큼 멋진 곳은 아니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더 황홀한 광경을 바랐던 것 같다. "이런 가식적이고 억지스러운 품위라니."

그녀는 춤추는 사람들을 흘깃거리며 지나치고, 빈 테이블 하나에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홀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럴듯하게 연출되어 있는 품위와 화려함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지저분한 욕정들, 서로를 향한 멸시와 혐오, 교양과 품위를 방패삼아 본인의 더러운 면들을 감추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충분히 멋진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찾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피아니스트에게 멈춰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 침울한 표정. 하지만 정열적인 연주. 조화로운 선율. 그녀는 황홀하고, 아름답고, 물론 예술적이기도 할 광경의 완벽한 기폭제가 되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가녀리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구속되어 있노라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영원할 것 같은 심연 속에 속박되어 있노라고, 자신에게 자유와 예술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예술가와 예술은 구속된 상태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방금 생각해낸 말이었다.

저 가엾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는 그녀로 인해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될 터였다. 자유를 향해 날갯짓하고, 마침내 예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녀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오선지 몇장과 펜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펜을 몇번 돌리더니 오선지 위에 빠른 속도로 음표들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다섯개의 줄과 네개의 칸 사이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낮게, 또는 높게.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장엄하지만 경박하게. 감미롭지만 불쾌하게. 그녀는 한 가여운 피아니스트를 위한, 자유와 예술을 위한 선율을 오선지 위에 그려넣었다.

작업은 연주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오선지를 손에 들고 춤추는 남녀들 사이를 헤치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맨디 스리블은 지금 자신의 옆에 서있는 이 누군지 모를 싱글벙글 웃고있는 여자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지금까지 홀 중앙에서 연주만 했을 뿐, 누가 그녀에게 말을 걸려 하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이제 막 다음 곡을 연주하려던 참이었다.

"무..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용건은 연주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가 심하게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네가 이번에 칠 곡은 그거 말고 이걸로 하면 어때? 괜찮지?" 여자가 심하게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정장의 여자는 피아노 선반에 원래 있던 악보를 집어가고 본인 손에 들려있던 악보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아차하며 여자가 집어간 원래 악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여자의 오른손에 들려있어야 할 악보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녀가 뻗은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어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더욱 당황했다.

"연주하는 건 별로 안 어려울거야. 너만을 위해서 쓴 곡이거든."

"네..? 아니 그런.."

"자, 시작! 사람들이 기다려. 넌 연주하고, 이 사람들은 춤춰야 하잖아?"

여자는 거의 막무가내로 그녀에게 연주를 시켰다. 맨디 스리블은 어쩔 수 없이 건반에 손을 올렸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여자가 붙잡고 있는 어깨의 흉터가 쓰라렸다.

"누.. 누구신데 이러시는 거죠?" 그녀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 물었다.

"나? 내 이름은 지오다노인데."

그녀가 첫 건반을 눌렀다.


그 순간. 그녀가 첫 건반을 누른 순간. 홀 전체에 무거운 음이 울려퍼지던 그 짧은 순간.

맨디 스리블과 본인을 지오다노라고 칭한 여자를 제외한 홀 안에 모든 사람들은 그 1~2초 동안에 짧은 순간 동안 모든 동작을 멈추고 경직되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손을 맞잡고 춤추던 홀 안에 모든 사람들의 스탭에 우아한 패턴이 사라졌다.

홀 가장자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불안한 듯 이를 딱딱거리고 미친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홀 안에 울려퍼진다.

사람들의 춤에는 더이상 패턴이란 것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미친듯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맨디 스리블은 주변을 보고 겁에 질렸다. 지오다노라는 여자는 그녀의 어깨를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제 사람들의 움직임은 춤과 유사한 몸짓의 일종의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테이블이 엎어졌다. 몇개는 박살났다.

맨디 스리블은 연주를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자기 혼자 멋대로 움직이며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연주를 멈출 수 없었다. 지오다노라는 여자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네 자유를 위한 곡이야."

사람들은 몸을 격렬하게 흔들고 빙글빙글 돌며 사방으로 움직였다. 머리와 머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장렬하게 피가 튀었다. 피가 아닌 것들도 튀었다.

부딪히고 발이 걸려 넘어진 사람들은 일어날 틈도 없이 곧 수많은 발들에 의해 짓밟혔다. 넘어진 사람들 중 다시 일어난 사람은 없었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웃음소리들과 뜻모를 괴성들이 가득 울려퍼진다. 그럼에도 피아노 소리는 명확히 들린다.

그때, 피아노 위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짓밟히고 부서진 피투성이 남자 한명이 날아와 부딪혔다. 맨디 스리블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지오다노라는 여자가 그 남자의 몸뚱아리를 피아노 위에서 끌어내 사람들 속으로 집어던졌다. 그 남자는 아직 살아있었다.

연주는 계속되고, 광란의 춤들도 계속되고, 비명도 계속 되었다.


프랭크 맥코넬은 지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발을 미친듯이 움직이고, 몸을 미친듯이 흔들었다. 오직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머리를 부딪혔다. 피가 얼굴을 덮어 흘렀다. 이제 세상이 온통 붉은색이다.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피아노 앞에 서있는 그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와 세게 부딪혀 넘어졌다. 프랭크 맥코넬은 수많은 다리들 사이로 보이는 그 여자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발이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또 다른 발이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또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난 죽기 아까운 사람인데…'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퍽. 이제 암흑.


연주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홀 안에 두발로 서있는 사람은 피아노 앞에 두 여자 뿐이었다.

맨디 스리블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황급하게 일어나서 미친듯이 입구를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체들에 발이 걸려 넘어져 시체더미 위로 넘어졌다.

"내가 너에게 뭘 선물했는지 알겠어?" 지오다노라는 여자가 말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맨디 스리블은 이 말에 대꾸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피와 뇌수, 육편들을 뒤집어쓴 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다시 일어나 비명을 지르면서 입구를 향해 뛰쳐나갔다.

"넌 이제 자유야! 난 네게 자유를 선물했어! 이제 네 예술을 마음껏 펼쳐봐! 자유를 헛되이 쓰지 말라고!"

지오다노라는 여자는 입구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의 뒤편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맨디 스리블은 들을 수 있었다. 도망치는 그녀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그 웃음소리는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뛰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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