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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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냐, 오늘은.]

내 말에 녀석은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의 수치가 또 줄어 있었다.

[사유는?]

[네가 확인해 봐. 어차피 다 알 수 있잖아.]

녀석은 말하지 않았다. 물론 사유를 알 수는 있었다.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좋지 않은 일인 것은 틀림없으니까.

[오늘은 순위 변동 없어?]

녀석이 화제를 돌렸다. 나는 순위표를 확인했다. 역시나. 순위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는 순위가 확 뒤바뀐 적 있었냐. 늘 그대로지. 아니면 아주 느리게 바뀌던지. 가로등, 지하철, 상담전화. 항상 탑 쓰리지 뭐. 새로 순위 권에 진입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간이 약간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분 남짓한 시간 정도였다. 그리고 무언가 만들어졌다. 아마 새로운 ‘창작자’가 새로운 것을 쓴 모양이었다.

[신입이 생겼네. 창작자도 처음 보는 사람이고. 어디 보자.]

녀석은 신입을 살펴보았다. 나도 하는 일 없으니 신입이나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이걸 누가 만든 거야?]

녀석이 놀랐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입 놈은 정말 끔찍했다. 생김새는 엉망인데다가 도저히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꼬리표도 제멋대로였다. 그것은 곧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도마뱀을 죽였다는 거짓말을 일삼았고, 위대한 전사를 무릎꿇게 만들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창작자도, 창작자의 창조물도 모두 엉망이었다.
신입 놈의 등장에 놀란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었다. 다른 창작자들과 ‘더 높으신 분’들마저 치를 떨었다. 일부는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엔 냉정하던 그들마저 화가 날 정도라면, 신입 놈이 얼마나 악질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나도 악질이지만 얘는 더한데?]

녀석이 킥킥거렸다. 어딘가 쓴웃음이었다.

[20시간.]

내가 먼저 말했다.

[난 12시간. 내기할래?]

[콜.]

나와 녀석은 멀찌감치서 신입 놈을 구경했다. 아니나다를까, 신입 놈의 수치가 점점 떨어졌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신입 놈의 수치는 빠르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신입 놈은 바뀌지 않았다. 외형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다른 창작자가 대신 수정해 준 것이었다.
얼마 안가 신입 놈의 머리 위에 숫자가 생겼다. 18로 시작하던 숫자는 점점 줄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20시간인데?]

내가 여유를 부리자, 녀석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모를 일이지. 20시간이 될지, 12시간이 될지. 창작자가 먼저 선수를 칠 수도 있잖아?]

물론 녀석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 높으신 분’들의 만장일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신입 놈은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작성 된지 20시간만의 일이었다.

[내가 이겼네.]

녀석은 아무 말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악질이었지?]

[응, 악질이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녀석의 수치를 보았다. 녀석의 수치가 더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아마 다른 창작자들이 재평가를 한 모양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녀석이 물었다. 다소 힘없는 목소리였다.

[화요일.]

[그럼 내일이네.]

녀석은 웃었다. 쓸쓸하게 웃었다. 동시에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이었다.

[넌 좋겠다.]

녀석이 말했다.

[창작자 잘 만나서. 네 수치는 지금도 오르고 있잖아? 난 호불호가 엄청 갈린 모양이다, 야. 안 좋은 쪽으로 더 갈려서 문제지만.]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입을 열었다.

[나도 몇 번씩 고쳐졌어. 너도 나아질 거야.]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네.]

녀석이 킥킥거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 인마. 언젠가 살 붙여서 멀쩡하게 돌아 올 테니까.]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이었다. 녀석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창작자 스스로가 녀석을 지웠다.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청소’를 피하기 위해 창작자가 택한 방식이었다.
녀석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창작자가 몇 날 몇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만든 것이 자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허무했다. 창작자들은 냉정했다. 물론 비난이 아닌 정당한 비판이었다. 그들이 내린 비판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다시 볼 수나 있으려나.]

나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어떤 것을 열었다. 녀석의 창작자가 남긴 포스트였다.

SCP-███-KO 삭제합니다. 언젠가 살을 덧붙여 다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문득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쁜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다만 설명이 제대로 안되어있을 뿐이죠.]

누군가의 말 이었던가, 아님 모든 창작자들이 알아야 하는 필수사항 이었던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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