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 위의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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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는 또다시 비디오 테이프 한 편이 재생되고 있었다.

오늘 꼬마 아이가 죽는 걸 봤다. 도와줄 수가 없었다. 없었다.

유란은 그것이 자신의 뇌가 악의적으로 조작한 영상일 뿐임을 알았지만, 그의 감정은 이미 잠식되어 있었다.

숨을 쉬기 힘들다.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든 곧 끝날 것 같은 기분이다.

글과 그것을 영상화한 것은 분명 다르다. 글은 현실로 정확하게 만들어질 수 없다. 글에 나타난 현실은 충분히 거짓일 수 있다.

그의 슈트가 녹아내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유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시야에 흐릿하게 보이는 기지를 향해 걷고 있었고,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유란은 보름달과 함께 걸으며 그에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의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왜 꼭 그 둘이지?"

"무슨 둘 말인가?"

도마뱀은 최대한 인자하게 대답했다.

"이거 말야."

유란은 오른손에 들린 가방을 툭툭 쳤다.

"우리가 보는 건 우리가 정말 보는 것과 같지 않아."

"그렇겠지. 괜히 인식재해가 있진 않을 거 아냐."

"이데아와 현실 세계, 삶과 죽음, 인간 정신과 인간 정신을 잇는 실이 있지."

"믿음과 신도 이어주지."

어린 신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도마뱀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깨어있었나?"

"아까부터 쭉."

도마뱀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 실을 잡고 인형극을 하는 독립체 하나가 있지. 우리가 처단하고자 하는 바로 그놈이다. 우리는 같은 차원, 끽해봐야 한두 차원 위에서 그 실을 가지고 놀거나, 믿음을 빨아먹고 살지만, 그놈은 아득히 높은 차원에서 인간에게 달린 모든 믿음과 관련된 실을 관리한다."

"그렇다면 피에트로 윌슨은 왜 그렇게 노력했던 거지?"

"그 답은 곧 나온다. 너도 알다시피, 재단은 다양한 신앙과 관련된 개체들을 격리해왔다. 그건 어떤 평행세계이든지 간에 불변인 사항이지."

"그게 문제인 건가?"

"그래. 한 자리에 모인 실들이 엉키고 꼬여서 강력한 밧줄이 되는 것이다. 보통 신들은 믿음을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기에 그걸 선호하곤 한다. 허나 놈은, 그 행동의 이유는 팡글로스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걸 풀어놓고자 한다. 그 과정 속의 일련의 반응들이 내 고통의 존재 이유이다."

유란은 미지의 지식을 알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동그란 구멍에 네모난 말뚝을 박는 것, 매우 상징적인 행위이지. 니들이 말하는 그 둘, 055와 579는 간단히,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개념이 꼬였다는 것이지. 풀어져 있던 실이 바늘에 꿰여 구멍으로 넘어가 버린다. 이 정도로 설명하면 되려나?"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아직 감이 안 오는데."

도마뱀의 등 위에서 잠들어 있던 카나리아가 말을 꺼냈다.

"이런, 이 얘기가 이렇게나 관심을 가질 얘기인가? 개념체는 실을 잡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해 묶여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실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그놈도 끌려다니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놈은 결코 그걸 원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할 것이다. 이게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이지."

"프뉴마 프로젝트는 그 놈한테 끌려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실을 모조리 끊어버렸던 것이군. 하지만 지금은 왜 그렇지 않은 거지?"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개념이 꼬이는 게 놈한테 유효타로 들어갔다는 거지. 우리는 불신자의 영혼을 신의 몸속에 넣으면서 1차 목표를 달성한 거야. 우린 시간을 끌고 있는 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는, 실을 그물로 짜내서 놈을 끌어내는 재봉사인 거야."





어린 신은 궁금했다. 만약 이 일이 성공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전지전능함을 잃고 필멸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세상 모든 신앙이 사라져, 개념의 부재 속 혼돈에 놓이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난 없어지는 건가?"

"음?"

"실을 관리하는 놈이 없어진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건데?"

"자유다."

어린 신의 심장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다시 뛰었다. 이 단어는 이전에 들은 같은 음가의 단어, 그러나 숭배자들에 의해서 들었던 단어와는 다른 단어였다. 재단의 손아귀 따위에서 벗어나는 물리적 자유가 아닌, 자신을 둘러싼 모든 정신적 압박에 대한 자유를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확실했다.

"이 일이 끝나면, 일본 온천 여행을 갈 거야. 가서 게임 굿즈들도 좀 사고…"

"어이, 플래그 좀 세우지 말라고."

유란은 쏘아붙였다.

"무슨 소리지?"

카나리아는 원초적인 감각을 지새우며 주변을 둘러봤다.

"헬기 소리 같은데."





카나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적은 여태까지 만났던 숭배자들과 차원이 다른 적이라는 것을.

헬기 앞편에 달린 확성기가 울렸다.

"아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반복한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너희들은 포위됐다."

몇 초 후에 스무 대 가량의 대형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대원들이 내려왔다. 맨 앞에 서 있는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SCP-682 대응팀 준비하라!"

전차 한 대가 도로 위에 등장했다. SCP-682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발포!"

그러나 아무것도 발사되지 않았다.

"씨발. 씨발! 씨발 그만해!"

SCP-682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카나리아, 유란, 그리고 SCP-2662는 그의 등에서 떨어졌다.

"뭐야? 왜 그래? 정신차려 임마!"

"안돼, 아니 못해. 내가 아까 말한… 그 과정이다. 씨발 이걸 어떻게 찾아낸 거지? 누구의 계략인거야?"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음흉하게 말했다.

"우리 델타-1은 O5 직속 특무부대이다. 네 신상 정도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지, SCP-682."

SCP-682는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자기 혀를 깨무는 행동까지도 보였다. 곧 치유되었지만.

"흩어져! 일단 저 전차부터 공격한다!"

카나리아는 전투의 시작을 알리고, 재빠르게 측면을 노렸다.

잘 훈련된 요원들은 역시 전투의 달인이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그들은 카나리아가 공격을 집중하는 곳의 반대편으로 계속 이동하여 카나리아의 집중을 흐트려놓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피바람이 계속 일었고, 전투는 끝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델타-1 대원들은 전차를 중심으로, 꼭 전차를 지켜야 하는 입장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수비했다.


어린 신은 정신 공격을 시도했지만, 보호 헬멧을 쓴 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물리적인 힘으로 주파하려고 노력했다. 소녀의 눈가에 노란 빛이 돌았고, 곧 주변에 있던 요원들의 몸이 융합되었다. 머리와 몸, 다리와 머리, 손과 다리가 서로 뒤엉켜 그에게 더 이상 총알을 쏠 수 없게 되었다.

어린 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씨발 이게 뭐야!"

요원들은 경악하고 신음했다. 어린 신은 유유히 그 틈을 걸어갔다.


카나리아는 새로운 몸에 적당히 적응된 듯한 느낌이었다. 촉수로 칼과 방패를 만들며 저들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공격을 되돌려 줄 수 있었다.

"위험한 개체다! SCP-2662 메뉴얼 참고하도록!"

"난 SCP-2662 아니라니까."

카나리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촉수를 칼날로 만들어 그들에게 날렸다.

그리고 곧 서른 명 남짓 되는 요원을 몰살하고 나아갈 수 있었다.

"다음엔 어떤 무기로 만들어 볼까."

카나리아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걸었다. 곧 자신이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상상을 했음을 깨달았다.


유란은 힘겨웠다. 나도 저들처럼 초월적인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시가전의 경험을 살려 자동차 한 대에 엄폐한 채 싸울 수 있었으나, 곧 요원들에 의해 포위당했다.

유란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항복하는 상상도 해봤지만, 팡글로스가 말한 '과업'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절대 없었다. 또한 저들은 그녀를 살려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 왜 하필 아무것도 없는 나인 거야. 다른 짱짱 센 애들한테 맡기면 얼마나 좋아.'

그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서류 가방의 잠금을 해제하고 그들 앞에 던졌다.

1분 후,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유란은 고개를 들어 자동차 창문 너머를 확인했다.

"식은 죽 먹기 군, 그래…"

유란은 서류 가방의 안쪽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린 채 잠금장치를 다시 잠그며 애써 생각했다.


델타-1, 재단의 특무부대 중에서도 가장 정예의 이들만 모아둔 부대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초월적인 자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결국은 평범한 인간에서 비롯된 요원들일 뿐이었고, 전세는 밀리고 있었다.

결국 카나리아가 전차에 거대한 촉수를 꽂아 넣었고, SCP-682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이거 좆됐군. 기지를 버리고 후퇴하라!"

남아있던 헬기 한 대만이 빠르게 날아가버렸다.






"의원님, 이거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죽을 각오로 싸우란 말이야!"

"5명 빼고 전부 사망입니다!"

O5-10은 책상을 내리쳤다.

"그렇게 강했단 말인가? 그 애송이들이? 거대한 사건의 지평선의 직전까지 향할 정도로?"






도마뱀은 그의 일행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의 힘으로 그들이 부숴놓은 제62C격리기지의 입구 앞에 놓인 잔해를 치웠다. 그러자 기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그때,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당신은 누구죠?"

유란은 경계심을 품으며 말했다.

"아, 제 이름은 피에트로 윌슨입니다."

유란이 놀라 뒤를 쳐다보았을 때, 피가 흐르는 도마뱀의 입가에서, 그것이 난생처음으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았다.

"반대쪽 바늘이 실을 끌고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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