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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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요."

카일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소야."

나는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풀이네요."

여전히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나는 계속 무신경하게 대꾸했다.

"어, 그리고 초록색이고요."

"풀이니까 당연하지."

"하지만 소잖아요."

"그리고 풀이잖아."

비슷한 내용의 짧은 문장이 오가는 무의미한 대화가 반복되자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얘네들도 물과 사료를 먹는다면서요."

"그렇지."

나의 목소리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그럼 평범한 소와 같은 먹이를 먹는다는 거죠?"

"맞아."

"그런데 소는 풀을 먹잖아요."

"그래서?"

"저 소는 자기 몸을 뜯어먹을 수 있을까요?"

카일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방금까지의 짜증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아니. 신체 구조 때문에 못 해."

"그럼 서로 잡아먹진 않나요?"

"멍청한 대화는 이쯤에서 그만두지."

난 무신경하게 말하며 축사로 부를지 농장으로 부를지 애매한 공간의 문을 열며 카일리를 잡아끌었다.

"선배, 저거 소잖아요!"

내가 문을 열자마자 카일리는 질색을 하며 뒤로 물러서며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어이없어하며 다시 문을 닫고 카일리에게 다가갔다.

"풀이라고."

"소 맞네요."

"그래. 소의 모양과 특성을 한 식물체지."

"몸을 구성하는 것이 풀이라는 점만 빼면 소잖아요."

"응, 맞아. 하지만 중요한 건 몸이 풀이란 거지."

"401은 몸이 사람이잖아요?"

"응."

"같은 논리라면 401은 동물 아닌가요?"

"그 외의 모든 특성은 식물이잖아."

"네, 그리고 843도 몸이 풀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특성이 소고요."

"조직배양으로 개체 수를 늘렸잖아. 조직배양은 식물만 되는 거고."

"네, 하지만 여기는 상식을 초월하는 초국가 비밀 기관의 농장이고, 저건 소잖아요."

"그래서?"

"동물이라고 조직배양을 못 하리란 법 있어요?"

"라운드업 제초제가 필요한 품종들 알지?"

"당연한 소리를. 저 농대 나온 여자라고요. 왜요?"

"조직배양으로 정확히 똑같은 개체를 복제하는 것이 가능한데, 종자를 재생산하는 건 유전자 단위로 잠겨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해. 대부분의 제초제에 반응하지만 유독 4R-w 유형의 비선별성 제초제에 완벽한 내성이 있어. 또 어떤 녀석들이 이런 비슷한 특성을 가졌더라?"

"어… 라운드업이 필요한 작물이요."

"바로 그거야. 이건 누가 봐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든 유전자 변이 식물체라고. 결정적으로, 송아지 때 뿌리를 파 보면 뿌리혹박테리아를 잔뜩 달고서 토양에 질소를 고정시키는데, 또 누가 그러더라?"

"콩, 클로버, 자운영, 헤어리베치, SCP-6…"

"그 정도면 됐어. 그거 다 식물이지?"

"네, 하지만 여긴 재단이잖아요. 그리고 저건 소고요."

"내가 저걸 키워냈어. 그럼 식물이야."

"왜요?"

"왜냐하면 난 식물을 알아보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니까. 난 동물하고 별로 안 친하거든."

"근거는요?"

"그야 물론…"

"아니에요, 됐어요. 보나 마나 또 식물이라서 식물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식물이냐고 물어보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어물쩍 넘기겠죠. 어쨌든, 저건, 어, 그, 그냥 소잖아요!"

"건방지다. 선배 말이나 끊고. 헛소리 그만하고 일이나 하자고."

"에이 씨! 진짜 이 아저씨가 뭐라는 거야! 전 저기 절대 안 들어간다고요! 저건 누가 뭐래도 소라고요! 절대 안 들어가요! 아니, 못 들어가요!"

당장에라도 구역에서 뛰쳐나갈 듯이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이 시점에서 카일리의 목소리는 굉장히 날카로워 져 있었고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나는 그제서야 카일리가 한참 전부터 내 어깨를 붙잡고 잔뜩 움츠린 채 뒤편에 숨듯이 서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 혹시 동물 무서워하냐?"

카일리는 울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무슨 농사짓는다는 인간이 동물을… 아니다, 됐다. 여기는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저건 소가 아니라 풀이야."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카일리의 표정에서 긴장이 조금 가시는 기색이 보였다.

"네, 풀이에요. 제가 저기에 들어갈 필요만 없다면, 풀 하라 그래요. 아무렴요, 풀이죠. 풀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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