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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과거형 문장입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때의 결심을 옮기기엔 남은 시간이 한 달 남짓, 여러모로 빠듯합니다. 아직 완결하지 못한 글도 많고, 쓰지 못한 망상도 많아요. 그렇습니다. 전 자살하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심경의 변화라고 해 둘 까요.

사람의 마음을 찢는 데에는 장황한 연설이나 세심하게 설치한 모욕이 굳이 필요 없습니다. 미디어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불의가 아닌, 선의로서 투박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모욕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은 조각나는 것입니다. 그의 얼굴에서 날 향한 적대감이 아닌 동정심을 읽고 나면 갈 곳 없는 우울감은 자신의 심장을 두드립니다.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전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야만 그걸 떠안고 죽을 수 있습니다. 생존 본능이란 실로 두렵습니다.

장소를 물색했었습니다. 내게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 무엇일까, 한 세 달 고민했었습니다. 주변의 정리가 되지 않아서 고생도 했습니다. 술에 취한 채 무진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저는 딱 알맞은 다리를 발견했습니다. 주변에 민가라고는 없는, 차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작지만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큰 그런 크기의 돌다리였습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이 잘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경을 벗더라도 그 아름다움이 잘 보였습니다.

안개가 껴서 중심가의 불빛이 흐릿하게 보였던 게 제 마음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대라고 하면 수백가지의 다른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 돌다리가 심하게 마음에 들었고, 그곳에서 몇 시간 정도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점차 푸른색으로 물들고 아침 안개에 햇빛이 서로 부딪힐 때 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안개가 저를 둘러싸 제 시야를 가렸습니다.

겨울의 끝이었습니다. 아마 3월 초였을 텐데, 안개가 그렇게 심하게 낀 적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

다리부터 강물까지는 3미터 남짓이었을 텐데 흘러가는 물 소리만 들릴 뿐, 강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떠오르는 햇빛도, 다리 바로 앞에서 빛나던 가로등도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안개가 따뜻하게 날 감샀습니다. 난 어느 순간부터 안개 아래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다리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한낮이었습니다.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 햇빛이 따뜻해서 나는 원래 그 날 죽으려고 했던 걸, 그저 장소만 찾아놓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두 달 뒤에 비슷한 일이 한번 더 있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질긴 목숨을 끊어놓으리라, 그렇게 맹세하며 나는 저번의 돌다리를 찾아갔습니다. 한 손에는 유서, 다른 손에는 벗어놓은 구두를 들고 돌다리의 모퉁이에 위태위태하게 섰습니다. 작은 개울이지만 사람이 빠져죽기에는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생애 마지막 무진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해질녘의 무진은 제가 늘 좋아하고 아꼈던 곳 답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개가 두 번째로 제게 엄습했습니다.

난 그 광경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빌딩들 사이에서 하얀 안개더미가 뛰쳐나와 이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왔습니다. 눈 앞을 가리기까치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종이에 눅눅함이 느껴져 바라보니 유서는 이미 못 쓰게 된지 오래였습니다. 곤란한걸, 역시 미루는 게 나을까 생각하다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빌어먹을, 방해하라면 방해하라지. 갈 곳 없는 짜증은 내게, 그리고 그 화풀이를 막는 무진의 안개에게 행해졌습니다. 서 있던 곳은 분명히 끝자락이니까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차가운 강물이 날 반길 것이 분명했습니다. 난 그래서 몸의 무게중심을 천천히 이동시켰습니다. 얼굴부터 떨어져 확실히, 이론의 여지 없이 죽으리라. 깊은 각오 끝에 나는 몸을 기울여 얼굴부터 떨어졌습니다. 고통이 제 머리를 엄습함과 동시에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밤이었습니다. 난 가로등에 머리를 박았다는 말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농민이 날 본 모양입니다. 꼴사납게 내가 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겁니다. 허탈했습니다. 가로등에 머리를 박으며 나는 나의 존엄성과 자살충동을 박살냈습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는 무진이 알선해 준 행복감이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 위로가 생각납니다. 안개가 내게 원하던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개에게 크게 빚졌고, 그래서 그만큼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개가 원했던 대로, 행복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난 그만큼 그것에게 미안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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