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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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고것 참 쓸모 없다. 우치 그 후레자식 힘이나 뺄 수 있으려나 했더니 것도 못하는도다. 쓸모없다, 모다 쓸모없다! 가진 공력이라곤 쥐뿔만치도 없고 먹을 정기도 없으니, 너흴 낳은거이 다아 쓸모없는 일이로다. 내 불찰이라. 그래, 이 남은 것들을 어찌한다? 잡아 먹을까, 아님 계속 납둔다? 호오라, 그래도 둔갑은 할 수 있는게냐? 요것 고냥 두면 원흉이 될지라, 대충 버혀놓고 짓밟아 저 버려두면 알아서 죽지 않?

산골에는 짧게 여인의 웃음소리가 울렸으되, 그 웃음은 가히 인간의 것이 아니더라. 곧이어 여우 짖는 소리가 들리니, 지리산 산자락엔 눈안개만 자옥하더라. 그리고 그 날 웬 중 하나가 지리산 피앗골을 지나쳐가되, 제 딴에는 시간이 이리 될 줄 몰랐더라. 달 없는 하늘에는 별만 총총한데, 그 젊은 중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만 깊더라. 저도 모르게 입 안으로 불경을 중얼중얼 외니, 제 발 밑에서 나는 소리도 태산같이 크더라. 산사만 찾아 헤메이다 문득 소리가 들렸으니, 제 발 밑에서 나는 소리거니 하고 자리에서 멈췄더라. 허나 바싯바싯하는 소리는 계속 나더라.

아하이고, 부처님 보살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고 젊은 중놈이 화들짝 놀라 민머리를 감싸고 눈밭에 풀썩 주저앉으니, 그 근처에 사람이 없음이 참 다행이더라.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이니, 큰 기척은 아니고 작은 것이라.

하이고, 기껏해야 삵이로다.

중은 살그머니 일어났으니, 그 와중에도 기척은 끊일 듯 끊이지 않더라. 방금 오줌을 지리며 눈밭에 풀썩 앉던 고 중놈이 무슨 용기가 들었는지, 아니면 죽을라고 환장을 한건지 조촘조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더라. 눈이 야트막이 쌓인 그곳엔 낙엽과 짚풀이 흩어져 있으되, 꼭 그 모양이 인간이나 즘생이 부러 그런 것이라. 중은 퀘퀘한 냄새에 땅바닥에 고개를 바투하였으나, 곧 놀라 뒤로 나자빠졌겠다.

아이고, 아이고오, 이건 또 뭣이당가.

중이 죽는 소리를 내며 눈을 털어내니, 죽다 만 여시 새끼 둘이 있음이라. 하나는 머리가 짓눌려 깨졌고, 다른 하나는 크게 버혔으니, 상처의 모양이 즘생이 낸 것도, 인간이 낸 것도 아님이라.

귀신이 곡할 노릇이도다.

중은 제 처지도 까맣게 잊은 채 혀를 끌끌 차더라. 두 즘생을 가여이 여겨 묻어나 줄까하고 가만히 들어올리니 버힌 놈이 날카롭게 외마디 짖더라. 담 작은 고 중놈은 하마터면 여우 새끼를 떨어뜨릴 뻔 했더라.

너는 참 명이 질기다. 너가 죽질 않고 네 형제누이와 함께 나를 만났으니, 이거이 부처님의 뜻이 아니고 무어겠느냐? 내 너를 절간에서 살펴보리니, 너는 그 질긴 명줄로 날 좀 보호해다우.

중이 두 즘생을 품에 품고 그 자리를 떴으니, 그의 뒤에는 어찌된 조화인지 도깨비 불이 얼른얼른하더라. 천지신명의 도움인지, 부처의 보살핌인지 고 젊은 중은 지리산 첩첩산중에 있는 절간에 무사히 당도했더라.

늦은 시간에 죄송하오만, 문 좀 열어주시오.
거 참 친절도 하다. 어디서 오는 누구냐?

문 안에서 고약한 목소리가 들리니, 중은 콧잔등을 쨍긋하더라.

모 암자에서 당도한 어린 객승이오.
오호라, 용캐 호랭이 밥이 되잖고 잘도 찾아오셨수.

절간 문이 빼꼼히 열리니, 고 안에 있는 놈은 이제 마악 수염이 돋아나는 동자승이라.

허허, 요놈 참 당돌하다.
내 이래뵈도 당취로는 그대 선배라.
그래, 그래. 그렇다 하라.
고 품에는 뭣이냐? 내 선배로 한번 봐야 쓰겄다.
어허, 그냥 여시 새끼라.

객승이 동자승을 엄중히 밀어내니, 어린 놈은 입을 옴죽거리더라.

흥, 고놈들 차암 맛나겄다.

하며 그 어린 놈이 입맛을 부러 다시더라.

옛끼, 부처님 가라사되 살생을 금하라 하시니, 어찌 그 계율을 지키는 자가 괴기를 탐하느뇨? 어리고 또 어리도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꼽이야!

동자승은 객승의 말에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경박하게 웃어젖히더라.

이 고지식한 객승아, 우리 당취는 불도국(佛道國)을 세우는 것이 염원이라. 고로 칼도 갈고 활도 싸야하는듸, 거 괴기 안 먹고 어찌 힘을……. 아얏!

동자승이 머리를 감싸쥐니, 그 뒤에는 주지승이 있더라. 중은 급히 머리를 숙이니, 주지승이 엄한 모습으로 동자승을 꾸짖더라.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이놈이 아직 깨우치지 못한지라.
아닙니다.

객승은 주지승에게 고개를 다시 숙였으되, 동자승은 아직 분이 안 풀렸더라.

스님, 스님. 내 말 좀 들어보소. 저 사람 품 안에 여시가 있으니, 여시는 본디 간사한 동물이라. 고것이 무신 재주를 부려 우리에게 어떤 해악을 끼칠줄 알고……. 아얏!
기껏해야 쥐새끼 잡는 재주 말고 더 있으랴.

주지승은 동자승의 머리를 한 대 더 줘박으니 그제야 고것의 입이 다물리더라.

하여, 고 즘생은 웬 것이요.

주지승의 물음에 중이 공손히 답하니,

길 가다 다친 가여운 것들이라. 여기 따순 방에서 뉘여 잠시 보살피다가 죽으면 제 명이요, 살아나면 그 도한 제 명일진즉, 요행이 살아나 은혜를 갚는답시고 쥐새끼를 잡으면 그건 득이요, 행여 은혜를 몰라 도망가도 우리에게 해는 없으리니, 다친 것들을 그냥 이리 들고왔나이다.
그대의 말 또한 타당하다. 허나 저 즘생을 보듬는데 쓰일 것은 그대가 직접 마련해야 할 것이라.
소승, 명심하겠나이다.

그 밤, 객승은 제 승복을 찢어 두 여시 새끼를 동여매어 아랫목에 뉘니 그래도 아직 숨은 붙어있더라. 그 이후로 밥 끓인 물이나 버러지를 잡아먹이니 그래도 기운이 나는 듯, 두 새끼가 눈도 깜짝이고 귀도 쫑긋이고 하더라. 시주 나서는 중들에게 부탁하여 달구 뼉다귀나 잔치 있으면 도야지 비계라도 얻어먹이니 한달 쯤 되어 버힌 놈은 비틀대며 곧 잘 일어나더라. 간혹 동자승 놈이 몰래 달구를 잡아 뜯는 것을 덮쳐 먹이기도 하니 곧잘 기운이 나는가 싶더라. 다만 대가리를 다친 것은 상처는 나았으되 걷지를 못하니, 그것이 마음에 걸리더라.

신수가 핀 것은 여시 뿐이 아니라. 그 사이에 고 담 작은 객승은 그새 당취놈들에게 인정을 받아 모 월 모 일 그놈들이 작당을 모의하는 비밀스러운 자리까지 약속하게 되었더라.

각설하고, 그 날은 겨슬 바람이 춥던 날이었으니, 참선을 하는 중에도 몇 번씩 정신이 흐트러지더라.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이제 마악 불도에 집중하려는 차에, 문이 왈칵 열리더니 도망난 동자승 놈을 찾으러 나선 중놈들이 호들갑치며 와르르르 닥쳐오더라.

뎃끼, 무언 소란이냐?

주지승이 엄히 꾸짖었으나 중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며 황망히 가뢰되,

이 일을 어쩔지고, 이 일을 어쩔지고. 저 객승이 데려온 요물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요.
그거이 뭔 말인지 차례차례 설명해 볼 것이라.
저 객승 방을 보소서, 아이고 저 방에 든 동자승이 황망히 뛰쳐나오기에 들어가니 산나해 한 놈과 겨집 한 년이 있으니, 반은 즘생이요 반은 사람이라. 몸에 난 터럭 빼고는 두 연놈 다 걸친 것이 없으니 에고 망측하다. 근처에 있는 작대기루다 고 연놈을 쳐버리려니 또 산나해의 힘은 장사요 몸이 날래기로는 딱 여시 새끼라, 되려 작대기를 꺾어들고 덤비는 것을 요리조리 피해 간신히 도망쳐 왔나이다.

여시를 데려온 객승이 놀라 외치되,

그게 무슨 말이오, 내 본시 거둔 것은 여시 새끼 두 마리인 즉, 사람도 요물도 아니었더라.

그에 맞서 쫓아 들어온 중놈 중 하나가 분연히 외치되,

필시 그대가 거둔 것은 꼬리 아홉 달린 요호 놈의 새끼라!

좌중이 조용해졌으나 객승만이 그 말을 알지 못하고 그저 헛헛 웃는도다.

요 근래 지리산 피앗골에 구미호 한 마리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럼 그거이 저 새끼를 치기 위험이었는가.

주지승이 중얼거리니 객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더라.

소승은 그 말이 의심쩍으니 내 눈으로 두 여시를 보아야겠나이다.

객승이 자리를 떨치고 나가되, 모인 중들은 끌끌 혀만 차누나. 객승이 제 방 앞에 당도하매, 이미 문 앞에는 활을 든 중들이 진을 쳤더라. 제 방 안을 본 객승은 제 눈을 믿지 못하였으니, 벌거벗은 산나해와 겨집이 방 안에 있으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며, 형상은 사람이되 머리에 돋아난 귀와 엉덩이에 돋아난 꼬리와 손발에 돋아난 날카로운 발톱은 가히 여시의 것이라. 객승이 황망히 꾸짖되, 아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으리라.

너희가 사람의 말을 듣고, 은혜를 아는 즘생이라면, 마땅히 내 말을 들어라. 이 절에서 너희를 박해한 적이 없거늘, 너희는 어찌 죄없는 이들을 겁주느냐? 너희가 마땅히 은혜를 알고 도리를 알면 아무리 요물 즘생일지라도 이런 분란은 만들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일 즉! 내 말을 들었으면 너희는 발톱을 숨기고 몸을 가린 채 나를 따르라.

산나해는 객승의 말을 알아 들은 것인지, 아니면 밥 주던 사람을 알아 본 것인지 순순히 그 말을 따르더라. 겨집은 산나해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더라.

잠시 활을 치우시고, 남는 승복을 주시오.

객승의 말에 중들은 서로 눈짓을 하다 그의 말대로 하더라.

그 뒤로 한동안 주지승과 그에 버금가는 자리에 앉은 중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밀회를 가졌으니, 그 동안 두 요물이 날뛰지 못하게 온 몸에 사슬을 채워 가두고 감시하였더라. 객승은 매일같이 피가 타들어가는 심정이었으니, 겨슬보다 더 차운 나날이 계속된지라. 이윽고 이레가 되던 날, 음기가 적고 양기가 많은 날을 골라 주지승이 엄명을 내리니 그는 다음과 같더라.

당취는 들어라.

본디 사찰은 귀신과 요물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곳이라. 허나 개심한 요물이 되려 불도를 지키기도하니, 너희는 그 예를 익히 들어 알리라.

현재 분란을 일으킨 저 두 요물은 열살 남짓한 산나해와 겨집으로, 산나해의 몸에는 가로닫는 흉이 있고, 겨집의 머리에는 내리찍은 흉이 있더라. 산나해가 객승의 말을 들은 것으로 보아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는 듯 하나, 천지간의 도리를 알아 불도를 깨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 허나 겨집은 머리를 되게 맞은건지 운신과 이해가 딸리니, 부러 이러는 것인지 원체 백치였던 것인지는 차차 두고 볼 일이라. 또한 두 요물은 사람의 형상을 했으되, 귀와 발톱과 꼬리가 여시의 것이라. 이는 두 요물의 본이 여우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허나 이것들이 소문으로 들리던 구미호의 새끼인지는 명확치 않으니,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이되 이들은 꼬리가 하나라. 이 역시 차차 두고볼 일이라.

이 두 요물을 데려온 객승은 책임지고 두 요물을 가르쳐야 할 것이니, 처음에는 인간의 의복을 입는 법을 일러야 할 것이요, 그 다음은 말이 통하게 함이요, 그 다음은 글을 일게 해야 할 것이요, 그 다음은 무술을 익히게 할 것이요, 그 다음은 불도를 깨닫게 할 것이라. 만일 가르치는 과정이 여의치 못하면 무(武)를 아는 당취가 저 요물을 잡아 죽여도 되니라.

허나 저 두 요물이 사람들의 눈에 띄면 우리가 위험해질 터, 분명 양반 사대부 놈들이 우릴더러 역적 도당이라 할 것인 즉, 저 요물들을 신선각에 기거하게 하며 산신의 영물인 듯 꾸며 이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속여야 할 것이라.

저 요물이 당취의 편에 서면 불도국(佛道國)을 만들기 더욱 편해질 것이나 아니라면 우리의 큰 적이 될진즉. 너희들은 이를 명심 또 명심하여 고것들을 달래 우리의 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라.

객승은 중대한 일을 맡았으니, 합장하여 고개를 깊게 숙이고 물러나더라. 그 사찰의 중들은 일제히 움직여 주지승이 명한대로 하니 두 요물이 괜히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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