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계급 인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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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에서는 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당연히 가짜를 내밀었지만, 당직을 서고 있던 어린 친구는 내용을 상세히 살펴보기는커녕 거기에 적힌 성을 보자마자 자기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 무섭게 받는 걸 보니 나를 온종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직 서던 청년은 내 도착을 알렸고, 곧 쏟아지는 명령을 들어야 했다.

이 훌륭한 감옥의 소장은 재단 요원과 직접 대화하는 걸 그다지 달갑지 않아 했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속도만큼은 정말 빨랐다. 여기에 네 번 오는 동안 한 번도 기다린 적 없었고, 간수는 예의를 지켰고, 죄수들은 협조적이었다. 업무 환경 하나만큼은 좋았다.

당직 청년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명령을 들어가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말해 댔다. 그는 전화를 끊고는 나에게 앉으라 하고 동행할 사람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얹었다. 나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면서 아침부터 뇌리에 박혀 있던 가락을 흥얼거렸다. 아침에 라디오에서 새 히트곡 하나가 나왓는데, 노래 제목이나 가수는 기억나지 않았다. 당직은 나를 한 번 흘겨봤다.

곧 동행인이 도착했다. 행복한 하마마냥 큰 미소를 지은 뚱뚱한 양반이었다. 내가 마치 자기 할머니인 듯, 나를 본 걸 아주 기뻐했다. 그 전염성 있는 미소에 나도 웃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세이 야린?" 그가 우둔하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시는 길 무탈하셨는지요?"

"별 일 없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밀레트는 좀 어떻나요?"

"얼마전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강아지 필요하세요? 농입니다. 얼른 시작하고 싶으신 거 잘 압니다. 따라오시죠."

우리는 창백한 복도를 산책하듯 걸어갔다. 동행인은 걸으면서 계속 팔을 휘둘러 댔고, 걸음새는 무슨 발차기를 하는 것 같아서 신발이 벗겨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이 양반과 이야기하는 건 한시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밀레트"라는 바보같은 이름을 가진 개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스운 점은, 그 개 이름은 기억하는데 주인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 좋아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왜 물어보시죠?" 그가 똑같은 속도로 걸어가며 어깨너머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들은 노래 한 곡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요."

"음이라도 불러 보시죠."

"이렇더군요. 디-디-디-덤-디덤-디덤-디덤-덤-디-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을 거의 안 들어서요. 그보다, 그 사람들 정말로 보리소프를 데려갈 건가요?"

"본인이 동의하면요."

"알겠습니다. 전화하시면 설득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 도착했네요."

심문실은 아주 단순했고 좁았다. 햇살이 희미하게 안을 비추고 있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청소를 해 놨습니다.

"아유, 뭐 그렇게까지…"

방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레 방의 모퉁이까지 둘러봤다.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면 족했지만, 이쪽에서는 내가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하기에 보기 좋게 해 두는 것도 필수였다.

"좋네요." 나는 앉으면서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의자를 빼면서 철제 다리가 바닥에 끌리면서 찢어지는 듯한 끼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죄수들 준비됐습니까?"

"아, 물론요. 다들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몇 명은 순진하게도 내가 풀어주려 온 거라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순서에 적힌 그대로 한 번에 한 명씩 데려와 주세요."


나는 한 줄로 늘어서 있는 사람 중에서 몇 명을 뽑아 통째로 삼키는 그런 마귀가 아니다. 난 그저 목록을 받고, 감옥 감독관에게 건네주고, 죄수들과 말할 뿐이다. 난 그 사람들을 잡아가는 게 아니다. 그저 동의를 받는 거다… 다만 좀 더 끈질기게 굴 수 있을 뿐이다.


처음 들어온 사람은 창백해 보이는 젊은이었다. 귀는 축 늘어졌고, 멀대같이 키가 크고 비쩍 마른,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곧 이감될 죄수라 이 사람을 여기서 마주친 건 정말로 행운이었다. 간수들이 그자를 내 맞은편에 앉히고 바을 나갔다. 나는 천천히 동의 파일이 든 폴더를 오른쪽에 툭 던져놨다. 지금은 비어 있는, 사인된 서류를 담을 폴더는 왼쪽에 두고, 녹음기를 책상 모서리에 두고 그걸 켰다.

나는 기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날입니다, 막심. 기분은 좀 어떻습니까?"

"좆까."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이고, 무서운 분이시네요."

"씨발 니 목 졸라서 죽여버릴 거야 개씹창새끼야. 족쇄 찼다고 못 할 거 같아?"

진심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지금은 목을 조르는 것을 참겠다는 듯 비쩍 바른 손을 책상 위에 두었다.

"자, 이제 합의점을 찾았으니 좋은 제안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난 네가 좀 꺼졌으면 좋겠는데."

"여기 계신 게 선생님 잘못은 아닐 겁니다. 전부 앓고 계신 병 때문 아니겠습니까. 여기 보시죠." 내가 이 악인 앞에 문서와 펜 한 자루를 놓아두며 말했다. "시험용 치료약 임상실험 참여 동의서입니다. 이 약으로 병을 고칠 수도 있을 거에요."

마지막 문장을 듣자 죄수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서를 뜯어본 죄수는 아무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이 약을 먹으면 더 이상 내 기억력이 왔다갔다 하지 않을 거란 거지?"

"선생님께서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기억력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네, 완전히 치료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신약 실험하면서?" 이 불쌍한 친구는 결심이 안 서는 모양이었다.

"네, 그리고 한 달 내로 석방될 겁니다. 이 약은 아주 중요한 약이라, 실험에 참여만 한다면 형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내로 엄마 볼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죄수는 흥분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잠시 뒤 그는 펜을 집어들고 동의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네, 여기요, 다음 장에도 같은 곳에 하시면 됩니다. 다 됐습니다. 저녁에 선생님을 데리러 사람이 올 겁니다."


전부 무고한 사람들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은 비난할 수가 없다. 오로지 '환경'만을 비난할 수 있을 뿐이다. 빚, 가난, 술, 질병. 이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죄인이다. 그렇기에 죄수들은 이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것이다. 실험까지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약물 실험을 하긴 할 것이다… 기억상실증 약이 아닐 뿐이지. 그리고 한 달 내로… 어머니는 뵐 수 없을 것이다. 죽었으니까. 그리고 이자는 그 사실을 잊은 것 같다.

뭐, 덕분에 기억소거제 값은 굳었지만.


다음 대상은 키가 크고 야윈 운동선수로, 뭔 야쿠자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만 용과 사쿠라 문신 대신 몸에 새겨진 켈트 십자가, 철조망, 독수리같은 나치즘의 상징이 이자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었다.

또 이자는 내 얼굴을 침을 뱉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스타니슬라브 베를로긴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래? 넌 누군데?"

"알렉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베스노브 교화소에서 나왔습니다. 선생님께 이감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씨발?"

언제나 듣는 욕설이다만 짜증나긴 매한가지였다.

"나라에서 저희 단지에서 재사회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종혐오 치료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 후보자로 뽑히셨습니다."

"난 인종혐오자가 아냐. 내가 사람을 죽인 건 다른 나라에서 와서가 아니라, 그놈들이 우리나라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을 해서야!"

"선생님께선 많이 배우신 분이신가 보네요. '인종혐오'가 뭔지도 잘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말씀하신 바로 그 행동 때문에 여기 계시잖습니까. 소수인종을 향한 태도 때문에 징역을 선고받으신 거고요."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 나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난 경찰이 좆도 신경 안 쓰는 외국인 놈들만 쳐죽였어."

"그 이유 때문에 공범들과 함께 화염병으로 외국인 교환학생 여러 명이 타고 있던 버스를 태워버린 건가요?"

"우리 일자리를 뺏으러 왔잖아."

"교환학생이라니까요. 여기서 공부하고 돌아가서 본국에서 일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갈 지원금을 뺏어갔잖아."

"각자 본국에서 지원금을 내 줍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요."

나치 동조자는 그래도 자기 말이 옳다는 듯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평정심을 잃은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꼬아 놓은 그물을 던질 때다. 그에게 서류를 한 부 내밀었다.

"읽고 계시는 동안, 조건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 샤워실, 체육시설, 컴퓨터실, 일일 정신과 상담이 보장되고, 육체 노동은 최소한만 하시면 됩니다. 상담이 성공적이라 생각되면 선생님 형량이 무기징역이 아니라 15년형으로 조정될 수도 있습니다. 또, 선생님과 같은 분들만 모아놓은 곳에 배치될 겁니다."

그 말에 나치가 솔깃해졌다. 그는 동의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그 말은, 좆같은 유태인 새끼들이 없다는 거지?"

"한 명도 없습니다. 아, 물론 저는 빼고요."

"허, 웃긴 놈일세. 좋아. 어디다 사인하면 되지?"


재단에서 D계급이 되는 건 징벌의 일환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특히 죄가 중한 사람들을 뽑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린 먼저 사형수를 뽑는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문 자원이다. 그 다음엔 감형해도 무기징역밖에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뽑고, 이 중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도록 연고 관계가 없는 사람을 뽑는다.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들이 제일 좋다. 방금 이 나치 놈같이 말이다.


다음으로 밀려들어온 사람은 다부진 체격의 거칠어 보이는, 이마가 아주 넓은 사람이었다. 내 이마가 이랬다면 못 박을 때 망치 대신 박치기로 박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땅달막한 죄수는 거의 억지로 의자에 앉혀지다시피 했지만, 일단 의자에 앉자 즉시 침착해졌다. 난 이런 사람이 특히 좋다.

"안녕하세요, 알렉산더 보리소브 씨, 제 이름은 알렉세이입니다. 일단 경고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 면담은 공식적으로는 아예 없었던 겁니다."

"당신 누구요?" 그가 쏘아붙였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먼저 질문에 답해 주십시오. 집단주택에 방화를 저질러서 갇히신 거 맞습니까?"

"네, 하지만 전-"

"몇 명이 죽었습니까?"

"서른 한 명이요. 하지만 아무도-"

"그 중 외계인이 몇입니까?" 나는 눈길도 안 주고 말했다.

키 작은 죄수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도 이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외계인 침공을 막는답시고 건물을 홀라당 태웠다는데, 정신병원 대신에 일반 감옥에 갇혔다. 그야말로 명약관화였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자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 세 명이 이 사람의 정신이 멀쩡했다고 판단했기에 아무도 이 사람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항소심 청구를 했을 때 그 수는 한 명이 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 눈 앞에는 자기 말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농담하는 거요?"

"농담이나 하려고 감옥에 와서 당신과 인터뷰하는 줄 아십니까? 아뇨, 전혀 아닙니다. 동업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여기 동의서입니다."

레지스탕스 대원은 몇 줄을 읽어내려가더니 다시 음침한 눈길로 나를 째려봤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흉측할 수가 있나.

"이해합니다만 제 말을 믿진 않으시겠죠." 내가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심입니다. 자, 눈에 익은 모습이지요?"

주머니에서 사진 한 뭉치를 꺼내 그의 앞 책상에 던져놓았다. 그의 갈색 눈썹 사이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지만… 사진을 넘길 때마다 눈썹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그는 분노에 휩싸여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라는 말이 목전에 걸린듯해 보였다.

"좋으십니까?" 내가 몸을 책상에 기대면서 말했다. "이 사진 보이십니까? 삼각형 머리에 온통 비늘이 나 있네요. 또 이 녀석은, 봐요, 비단으로 둥지를 짜 놨어요. 사실 비단은 아닙니다. 저희가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에요."

이 미치광이는 우리 편으로 거의 다 넘어왔지만, 다시 의심에 휩싸였다. 그는 나를 단호하게 쳐다보며 증거를 더 내놓으라고 말했다.

"이거 가짜 아니죠?" 그가 사진을 찔러보며 물어봤다.

"당연히 아닙니다. 아직 마음이 안 움직이셨다면 한 가지 더 말씀드리죠."

나는 특수 주머니에서 구멍이 뚫린 동전 하나를 꺼냈다. 구멍에는 긴 실이 꿰어져 있었다. 내가 손을 펼치자, 동전이 떨어졌다. 천장으로. 죄수는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로 내가 실로 동전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한 방에 두 명 씁니다. 계약 기간은 한 달이고요. 다 하고 연장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또-"

"가는 길에 들읍시다. 어디에다 서명하면 됩니까?"


후보자를 철저히 검토하는 일은 우리 책무이다. 면담 때 만반의 대비를 다 해놔야 하니까. 범죄 내용부터 학업 성적, 정신 건강과 이빨 건강까지, 상관없는 게 하나도 없다. 후보자와의 면담은 몇 주간의 리허설 끝에 아주 세세하게 짜놓은 각본을 따라 하는 일종의 연극이다.

그들의 심리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체포 기록, 재판 기록, 그리고 감옥 내 죄수의 행동까지 전부 꿰고 있어야 한다. 아주 힘든 일이다… 겨우 서명 몇 개 받기 위한 것 치고는.


다음 손님 맞이 준비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단 만나자 나는 그자의 상판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몇 분 동안 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턱을 괴고 6피트 6인치나 되는 거구의 모습에 눈을 떼지를 못했다.

그의 얼굴은 인상깊었다. 왼눈 대신에 재봉틀로 찍어낸 듯한 흉터가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무슨 글래머 모델 같은 외모는 아니었을 거다.

"눈은 칼로 찔려서 그렇게 된 거죠?"

"네, 위쪽으로 찔렸죠."

"도데체 어떻게 살아남으신 겁니까?"

"부엌칼이었는걸요." 그 거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게 뭔 상관입니까, 눈을 정통으로 찌르고 들어갔는데!"

"그냥 좀 패인 것뿐인데요." 그가 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부인 짓입니까?"

"네. 아내가 바람을 폈다고 생각해서 다퉜는데, 아내가 미쳐 날뛰더라고요."

"그래서 죽였나요?"

"그냥 손만 봐주려 했는데, 한 대 후리니까 바로 쓰러져 죽더라고요. 그때 장인과 장모님을 부를 정신은 남아있었습니다. 30분만에 제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들겨 대더라고요. 자기방어를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일곱 명이나 더 죽였고요?"

거한이 손을 펼쳐 보였다.

"그럼 뭐 어쩝니까? 사촌까지 데리고 왔던데."

"트래볼타라고 부르죠." 내가 폴더에서 필요한 동의서를 꺼내며 말했다.

"왜요?"

"'페이스 오프' 생각이 나서요."

"좋을 대로 하쇼." 그자가 끄덕였다.

"여기 정부 일자리 제안서입니다. 한 달만 일하시면 가셔도 좋습니다. 읽어 보시고 서명해 주시죠."

거한은 문서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펜을 집어들었다. 서명 대신에, 그자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거기서 담배 필 수 있나요?"

"아뇨, 대신 니코틴 패치를 제공해 드립니다."

"아깝네요." 그가 서류에 서명하며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 뿐이다. 죄수가 원하는 말.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한다. 다만, 여러 가지 말 중에서 우리는 한 치도 오차가 없이 알맞은 어조, 단어, 몸짓이라는 언어를 뽑아내야 한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일한다. 방에 들어가면 취해야 할 순서를 모두 안다. 정찰은 필수다. 외무부 덕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 받는다. 그 대신 우리는 서명을 위조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번엔 소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데려왔다. 그가 앉자마자 나는 펜 하나와 종이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사인해."

"이게 뭔데요?"

"씨발 대가리에 총 맞았냐? 사인하라고, 개새끼야!"

그 겁쟁이는 펜과 동의서를 집어들었다. 아마 형을 선고받을 때와 똑같이 떨고 있었을 테다.

"뭘 쳐 읽고 앉아 있어! 얼른 사인하고 방으로 꺼지지 못해!"

서명을 받았다.

"나가."


맞다. 우린 이런 것도 훈련받는다. 최대 스무 명 중 한 명 꼴로만 먹히니 쓰는 걸 추천하지는 않지만, 될 때는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누가 아나, 오늘 일이 일찍 끝날 지.


다음 사람은 특이하게도 자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디 정보기관 같은 데서 나온 사람이요?"

"아뇨, 빅토르 씨, 비밀 기관 같은 데서 나온 사람은 아닙니다."

"입고 있는 정장이 꽤 좋은 거라서 말이요."

"선생님이 여기 오시기 전에 입던 거에 비하면 누더기나 다름없습니다."

"내 사건 기록은 읽어 본 거요?"

"소셜 네트워크 프로필을 봤습니다."

빅토르 로고프는 나를 꿰뚫을 듯 째려봤다. 팔짱을 낀 채,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나르시시즘이 잔뜩 묻어나는 미소를 얼굴에 띄고서.

"자, 그럼 말쑥하게 차려 입으신 비밀 기관에서 오지는 않은 분들이 왜 나를 찾으실까?"

"과학입니다." 내가 다른 동의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비살상 무기 실험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다면 형을 최대 10년형까지 낮춰드릴 수 있습니다."

이 변덕스러운 친구에게 실제 약관을 밝히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형을 한 달로 줄여 주겠다는 말을 믿기엔 너무 의심이 많다.

빅토르는 내 손에서 종이를 받아갔지만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실험에 중범죄자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비살상적이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말씀드리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시험 조종사 같은 거죠. 그 분들도 위험은 감수하지만 죽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무기는 어떤 형태요?" 그는 지루하다는 듯 물었다.

"포말입니다. 선생님을 일단 제압한 다음, 포말을 긁어내고, 샤워실로 보낼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씻으실 거에요. 깨끗한 거 좋아하시잖습니까?"

"의심스러운데."

"직접 보시죠." 내가 아직 사인을 받지 않은 동의서를 담아 둔 폴더를 열며 말했다. "여기 종이가 두 장만 있고, 세 번째 장은 선생님께서 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 보시다시피 사인된 종이는 다섯 장이나 있지요. 전 여기 오후 두 시부터 앉아 있었고요."

내가 제시하는 대안은 점점 더 희망차지는 듯해 보였다. 빅토르는 공주마냥 콧대를 홱 돌리는 대신 곰곰히 시작하기 시작했다.

"좀 꼼꼼히 훑어 보겠소." 그가 동의서를 자세히 보며 말했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동의서는 내가 한 말과 한치도 틀린 바가 없다. 지금까지 사인받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각 동의서는 구체적인 가짜 이야기에 맞게 맞춤 제작되었다. 또 전혀 불만을 제기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 법무팀에 박수를 보낸다) 한 달 주기 교대 이야기도 거기에 다 들어 있다.

공개를 하거나 정체를 드러내는 게 두렵지는 않다. 읽을 만큼 읽어도 된다. 하지만 세상에, 정말 오래 읽고 있기는 하다.


세부사항은 모르지만, 각 후보자는 특정 물체에 배정된다고 한다. 어떨 때는 특정 실험에만 배정되기도 한다고 한다.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의사들이 이상하리만치 구체적으로 요구를 한다는 건 안다.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동료가 나에게 말한 바로는 맹인, 외계인 손 증후군을 앓는 사람, 화학적 거세를 받은 사람, 양손잡이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다… 그리고 생각해 봐라. 내가 그 요청을 맞출 수 있는지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결정된다.

아 물론, 나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많고, 난 이 업계 최고봉도 아니다. 사실은 그런 걸 기록하고 있지는 않기에 누가 최고인지는 모른다. 나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 사람이 들어왔을 대, 나는 창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어린 녀석(감옥의 일상을 겪고 나니 상태가 조금 안 좋아 보였다)은 자리에 앉고 나를 텅 빈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가는 교도관을 무시하며 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네, 표토르 로마노비치 씨, 방금 들어왔습니다. 어디 맞은 것 같진 않네요. 아뇨, 안타깝지만 아직 말은 못 합니다. 저… 표토르 로마노비치 씨, 이해합니다만, 지금은… 표토르 로마노비치, 때가 아닙니다. 이미 위험을 너무 많이 감수하고 있어요. 네, 계획 변동은 없습니다. 맞습니다. 오후에 내보내죠. 아직 잘은 모르겠네요.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 쪽에서 답장이 없습니다. 아뇨, 하지만 자기가 모든 일을 다 맡겠다고 말을 했어요. 지금까지 실패한 적 없는 사람이고.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합시다."

나는 전화를 끊고(실제로는 전화를 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표토르 로마노비치의 자식에게 동의서를 보여줬다.

"여기 보세요. 문서에 사인하시면 다른 감옥으로 옮겨 드리죠. 어찌됐든 여기보다는 환경이 훨 나을 거고, 아버님과 같은 방을 쓰실 겁니다. 네, 방금 아버님과 통화한 것 맞습니다. 아버님께 큰 은혜를 입어서 지금 선생님을 꺼내드리는 겁니다.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거에요. 일처리에 한 달은 들 것 같습니다만, 일단 손을 쓰고는 있어요."

"알겠어요." 돈 많은 어리고 버릇없는 녀석이 자세한 내용을 묻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 사인하면 돼요?"

"네, 거기다 사인하시면 돼요. 다른 페이지에도요. 됐습니다. 오후에 아버님께 보내 드릴 거고, 그 다음엔… 뭐, 추진해 보도록 하죠."

"고마워요." 어린 범죄자는 그렇게 말하곤 출구로 서둘러 나갔다.


이자는 아버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2주간 재단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까 확실히 해 두지는 않았지만, 방금 진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정당화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그 예시로 이번이 있다.

범죄자 가족은 아무 일 없이 탈출하긴 했을 것이다.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연줄이 많았다. 경찰 총경 하나, 지역 행정부 사람, 조폭 두목 몇 명… 그리고 뱀의 손까지.


마지막 사람이 진국이었다. 이번 사람은 잔혹한 살인마도, 미치광이도, 폭탄마도, 심지어는 불법 다운로드로 잡혀 온 사람도 아니었다.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한, 조금 과체중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총천연색 멍과 물집이 몸에 나 있었다. 이 사람을 데리고 오느라 정부와 한참 씨름을 해야 했다.

이 새끼는 테러리스트에게 정부 비밀을 빼돌려 팔았다. 조사 결과로는 문서 53부를 팔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원래라면 총살형을 당해도 쌌지만, 사안이 공공에 알려졌다. 러시아 온구석에서 인권단체가 들쑤시고 일어났다. 이놈들은 어떤 망나니라도 보호하려 했다. 압력이 너무 거세서, 이 인간 쓰레기의 형은 무기징역에 그치고 말았다. 좆같은 호구 새끼들.

3년만에 이 사람을 만났다. 마지막 남은 정보를 빨아낼 때까지 후두려팬 끝에 이 사람은 여기 던져졌다. 이후 같은 감방에 갇힌 사람들도 이 사람을 두들겨 팼다. 이 중에도 애국자는 여럿 있나 보다.

우리 둘만 남았을 때, 나는 일어나 그 쪽으로 걸어가 동의서를 내려놨다. 천천히, 무섭게. 펜 한 자루도 옆에 두었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교 다섯 명이 가족과 함께 칼로 몰살당했어. 내 좋은 친구도 한 명 있었지. 네놈이 정보를 팔아치운 그 단체는 테러를 세 번이나 저질렀네. 군 기지를 공격해서 무기를 탈취했어. 네가 흘린 정보와 확실히 연관성이 있는 것만 해도 이 정도야. 손이 아주 피칠갑을 했군, 중위."

나는 점선을 가리켰다.

"이제 펜을 꺼내서 서명을 하게." 나는 조용하지만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거부합니다."

"어이, 러시아식 고문을 버틸 만큼 깡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고 생각하나? 여기를 봐."

나는 바짓단을 걷어 밑에 있던 권총을 보였다. 그는 놀란 듯했다.

"무기를 들고 감옥으로 걸어들어왔는데도 상처 하나 없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이나 가나? 내가 너에게 온갖 짓을 저지르는 동안 아무리 고함을 쳐 대도 사람 한 명 오지 않을 걸. 당장 펜 잡지 않으면 내가 거기다 친히 X표를 해 주지. 견책만 받고 끝날 걸."

"녹음기 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녹음기를 벽에 던져 부숴버렸다. 교활했던 놈은 마지막 남은 자신감까지 잃고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냥 사인이나 해, 씹새끼야, 빡치기 전에!"

그놈은 마음을 고쳐먹곤 펜을 집어들었다. 서명할 곳에 서명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나는 진정하고 내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좋군." 내가 폴더를 서류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케테르 임무나 맡아 버려라."

"케테르?" 그가 서명한 동의서를 건네주며 말했다.

"기지에 가서 설명해 주도록 하겠네."

"아니, 잘못 알아들으셨습니다. 어떤 케테르로 배정하실 겁니까? 보는 것만으로 물을 증발시켜버리는 녀석입니까? 아니면 살아있는 간헐천에 저를 던지실 겁니까?"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조소를 흘리는 놈에게 고개를 돌렸다. 입장이 바뀐 것 같았다.

"이 개자식, 도대체 뭘 팔아넘긴 거야?! 누구한테 판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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