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의 색 -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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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세상이 불길에 휩싸여 끝날것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얼음에 잠겨 끝날것이라 말한다.


-〈불과 얼음〉로버트·리·프로스트

【그 소란스러움은】

  아이스버그는 마지 못해 손에 꽉 쥐고 있던 펜을 내던졌다. 그는 눈앞의 서류에 집중하고 싶었으나 갈수록 날카롭게 들려오는 초침 소리와 문밖의 발소리에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손에 쥔 문서가 손아귀의 힘에 점차 구겨지고 셀룰로스로 된 흰 종이 위에 얇은 얼음층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는 자신의 주변이 성가신 서리로 뒤덮이지 않도록 당장 침착해져야 한단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서류가 젖어 축축해진다면 공교롭게도 얼마나 처리하기 힘들까. 그는 폭우에 교과서가 젖어 종이 페이지가 한쪽으로 붙어버리는 비극을 다들 겪어 봤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바닥에 떨어진 서류 더미가 맞을 결말에 대해 생각할 힘도 없었다. 단지 눈앞의 서류를 노려보았을 뿐인데도 서류의 무수한 글이 가시를 형성하여 자기의 심장을 꿰뚫는 거 같다고 느꼈다. 진료실에서 암 말기 선고를 받은 환자들이나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지라도 자신은 병이 없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비정상적인 체온을 병증의 탓으로 돌릴 순 없었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저체온으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러한 특성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는 아직 잘 살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문서를 받았을 때 그는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전엔 이러한 불만 서류는 그에게 직접 전달됬지만, 이번에는 그상사가 직접 건네주러 왔다. 그의 뇌리에는 아직도 방금 전 기어스 박사가 출입증을 긁고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의 표정이 생생했다.

  그래, 여느때처럼 무표정했다.

  "아이스버그 박사, 여기 당신 앞으로 온 불만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사무용 책상 앞에 이르러선, 서류를 건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심장이 점차 조여드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두근거렸다 "이번 달만 3번이나 당신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받았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는 재빨리 일어나서 설명했다. "그, 그들은 간단한 일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걔넨 조심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라고요……"

  "동료에 관한 당신의 관심은 이해합니다. 아이스버그 박사.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자신의 감정을 좀 조절해주시면 좋겠군요."

  남자는 서류를 건네받고 머리를 숙였다. 눈앞의 상사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계산만으로 미래를 산출할 수 있고, 자신의 반평생을 실험을 주관하는데 쓴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어스 박사."

  "괜찮습니다." 조금도 꾸짖는 투 없이 그는 여전히 무감정하게 말했다. "조정되는 대로 가능한 빨리 일을 시작해 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삶에 일이나 실험만 남는건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자신이 처리해야 할 몫을 초과하는 서류를 매일 처리하고, 하급 연구원들을 이끌고 실험하고, 기록하고, 모아서 정리하고, 그 자료를 자신의 상사에게 넘기는 등 하루하루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오히려 상당한 재미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신입 연구원이 어느 실험에서 죽을지 내기하거나, 매일 다른 동료들과 두 마디 대화를 나누거나, 간혹가다 라이츠 박사의 케이크나 머핀을 먹는 식으로다 말이다. 이 여자는 문서 처리에 있어서 뛰어나진 못했으나 마치 자신이 기지 전체의 어머니인 것 마냥 모두를 잘 보살펴 주었다. 적어도 자신은 라이츠의 한 접시 가득 구운 과자가 우울한 월요일을 몰아낼 거라 기대했다.

  이 여자는 자신이 한가할 때면,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생일파티를 위해 사람들을 데려와 방을 꾸몄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사망률이 높은 직장에서 생일을 챙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당시 목에 하와이안 화환이 걸려 있었고 머리에는 폭죽에서 나온 종잇조각과 리본이 올려져 있던 걸 기억했다. 라이츠 박사가 자신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자 주위에 자신과 친한 연구원들이 둘러쌌다. 한 명 한 명 그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자, 라이츠가 그에게 케이크 칼을 건네주었다.

  "미안해, 기어스 박사를 만날 수 없었어. 그래도 괜찮지?"

  아이스버그는 라이츠 박사가 자신의 체온 때문에 손을 떠는 것을 무시하고,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케이크 칼을 걷네 받았다. "괜찮아. 그가 어떻게 사무실에서 떠나겠어. 난 이미 개리슨이랑 천 달러를 걸고 내기했는걸."

  "그럼 네가 내기에서 이기길 빌게." 라이츠 박사는 웃으며 아이스버그 박사가 테이블 중앙에 놓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비켜줬다.

  "당연하지, 난 언제나 그 녀석만큼은 이긴다고."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로 부드러운 케이크를 깊게 잘랐다.

  동료들과 생활 속에서 가끔 나타나는 놀라움과 기쁨 외에도, 화약을 사용하는 실험을 포함하여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상을 실현할 기회가 많았기에 그는 자기 일을 좋아했다.

  그의 체온과 취미는 온도 차가 컸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선 조롱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걸 나쁘게 느끼지 않았고, 심지어는 '불같은 아이스버그 박사'같은 별명을 칭찬으로 여겼다.

  "다른 해결 방법은 없나?" 동료가 서류 뭉치를 들고 연구에 몰두하며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을 보고 몇 번이고 지나쳐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C4 폭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라고 동료에게 말해주고 싶은 걸 참았다.

  빌어먹을 제이미와 애덤. 그 빌어먹을 '호기심 해결사'1

  그러나 실제로 아이스버그에게 폭탄은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가 폭발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했었단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는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해낼 순 없었지만, 언젠가는 3등급, 심지어는 4등급 연구원직까지 올라가 세상의 변칙 프로젝트들을 보고 화약을 사용하는 실험 마다 다른 폭약을 설계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정말 흥분되는 일이지 않나?

  "아이스버그 박사, 재단에 매우 충실하던데." 글라스 박사가 그와 함께 기지의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을 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내 꿈에 충실하거든."

  "자넨 3등급 연구원으로 승진하고 싶나?" 글라스가 웃었다.

  "조만간 일어날 일을 꿈이라고 여기진 않잖아. 자넨 내일 아침까지 살아서 아침밥을 먹는 걸 꿈으로 생각하나?" 아이스버그는 자신 있게 대답하며 그의 목에 감긴 청회색 목도리를 잡아당겼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기에 자네의 꿈은 뭔가?"

  "그건 심리상담 질문이 아닌 거로 아는데."

  "그냥 친구끼리의 수다로 생각하면 되네." 글라스가 가볍게 말했다.

  "나는……"
 

  나한테 무슨 꿈이 있지?

  

  그는 끝내 자신의 손을 펴 서류가 책상에 떨어지도록 두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랍을 열고 안에서 유리로 된 작은 병을 꺼내 뚜껑을 돌려 열어 안에 채워진 플라스틱 필름을 꺼내곤, 자신의 머리색과 비슷한 하늘색 알약 두 알을 쏟아냈다. 옅은 머리색을 가진 이 연구원은 처음 재단에 왔을 때 뛰어나게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많은 여성 직원들의 주목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백인이냐고 묻는 남성 직원들이 그보다 더 많았다.

  그는 이미 어릴 때부터 이런 질문들을 받아왔기에 이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표준 답안이 있었다. 먼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곤 자신은 백인이 아니고 머리색이 흰색이나 은색에 가까운 것이 어머니가 북유럽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유럽 사람들의 머리색이 옅은 것은 일조량이 적기에 모발 속 멜라닌 색소가 적어서 그렇다고 했다. 한 마디로 백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의 감정은 아직 비교적 풍부했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싸웠다. 하급 연구원들은 언제 어느 실험에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부주의했기에 재단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는 D등급 인원을 경멸했지만, 이들이 사형수였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같은 부서의 여직원을 희롱하고 전화번호를 묻고는 밸런타인데이에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내곤 했다. 어쩌면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여 슬픔에 사로잡힌 밤을 함께 보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할 일도, 걱정할 일도 너무 많았다. 그의 마음속은 너무나 많은 소리로 가득 차, 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다. 그 소리를 멈추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 소리를 멈추려 시도하였다.

  그래서 그는 작년부터 자신을 내려놓기로 했고 따뜻한 물과 함께 약을 삼켰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은 마침내 멎었다.   

  그는 불만 서류를 처리하는 걸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여전히──

  
  
  

  눈보라를 무릅쓰고 헬리콥터는 마침내 기지 계류장2 위에 강제로 착륙하였다. 사실은 급히 서둘러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제45기지에서 꼬박 3주 동안을 일한 후, 그는 5일 이상의 휴가를 신청할 자격이 있었다. 1년 내내 눈이 내리고, 새도 사람 흔적도 없는 유령 도시 같은 이곳에 돌아오지 않고 어딘가 따뜻한 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자격이 말이다. 그러나 역시 돌아가는 쪽을 선택했고, 그의 수많은 연구의 성과인 20여 종의 신형 폭탄을 들고 제19기지로 돌아갔다.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농담하지 말아 주십시오." 자신의 신분증을 긁자, 문 옆 디스플레이에 그의 이름과 보안 인가 등급, 얼굴이 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홍채 인식기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이 인식기에 협조한다고 인식 과정이 1초라도 일찍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무거운 철문의 램프가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뀌며 미끄러지듯 열렸다. 거기서, 그의 옅은 눈동자에 비친 사람은 그의 상사인 기어스 박사였다.

  "이 시간대에 돌아올 사람은 없습니다."

  "그치만 전 할 일이 없다고요. 안 그래요?" 그는 무표정한 상사를 향해 미소지었다.

  "아이스버그 박사, 전 당신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드렸습니다. 푹 쉬셔야 합니다만, 당신이 무사히 귀환한 것에 대해 안심하고 있단 걸 숨기진 않겠습니다. 3주 동안 당신이 검토해야 할 서류를 사무실에 놓아두었습니다. 컨디션 조절하시고 내일 아침 같은 시간까지 제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 받으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 3주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지는 따질 필요가 없었다. 서류가 책상에 가득 쌓여 있지 않으면 테이블 위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개자식이 그의 인사 파일에 서류나 자료가 있으면 그가 처리할 수 있다고 항목을 붙여 뒀을까. 그 후로 매일 결재되지 않은 서류와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료를 정리해야 했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아직 그 범인을 찾지 못했고 C4 폭탄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다. 아이스버그 박사는 담당 사항의 맨 앞에,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적었다.

  '이 일만 끝나면, 어쩌면 승진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그는 당장 일을 시작하지 않고 식당으로 먼저 갔다. 지금은 식사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 그거 알아? 기어스 박사 밑사람의 실험으로, 몇 주 동안 또 D등급 인원 7명이랑 하급 연구원 3명을 잃었데."

  "SCP-106 말이야?"

  "그거 말고 또 들은게 있어. 1명이 SCP-673에 감염됐데. 지금 감염된지 3주밖에 안 되긴 했지만, 보니깐 뇌 지배형인거 같아."

  "그게 어쨌다고, 직접 처분하긴 했어?"

  연구원은 고개를 저으며 몇 초간 침묵한 후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는데, 기어스 박사는 단지 침착하게 그 2등급 연구원을 바라봤을 뿐이었어. 걔를 킨더라고 부르는거 같더라고."

  "그리고?"

  "SCP-673-13으로 일련번호를 지정하겠습니다. 뇌 지배형은 드뭅니다. 아론스 박사가 그의 자리를 인계받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지.

  "잔인해,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그들은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2, 3주만 더 있으면, 그는 그냥 뇌 덩어리가 될 거야. 난, 난 2주 전에 겨우 그와……"

  "1주일 전에 발생했던 SCP-106 격리 파기 때 말이야?"

  연구원은 어깨를 으쓱이곤 잠시 침묵하더니 자신의 머그잔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그의 여자친구가 그와 함께 꽃밭에 서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비참하네. 기어스 박사 밑에서 일하도록 배치되겠네."

  "재차 말하지만, 그 네 사람 중 가장 좋은 사람은 브라이트 박사야. 기어스 박사를 상사로 둔다면, 그게 누구든 겁나 불행한 인간이 될걸."

  "끔찍하네.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무관심하다고. 인간의 반응이 아니야. 우리는 로봇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거라고."

  "같은 기지의 인사 팀장이 이렇게 말한 걸 들은 적 있어. 네가 방금 말한 그 브라이트 박사가 그러는데, 기어스 박사 부서에선 인사이동이 항상 빈번하다고 말했어."

  "안돼, 난 아직도 너무 무섭다고. 나도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싶─"

  여직원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옆에서 유리잔을 식탁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 옅은 머리카락이 조명 빛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아이스……아이스버그 박사, 돌아오셨군요……"

  "너희 방금 기어스 박사가 어떻다고 했어?"

  "아니, 난, 아니 우린……"

  "너 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지, 설마 너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다른 한쪽에 있던 남자 직원이 일어섰다. "넌 어떻게 버티는거야, 넌 기어스의 보조 연구원이잖아? 희생된 연구원들에 대한 자료를 읽어본 적 없어? 다른 사람이랑 얘기해 본 적 없어? 어떻게 너흰 항상 이런 일들에 대해 얼렁뚱땅 넘길 수 있는거야?"

  "얼렁뚱땅 넘긴다고?" 아이스버그가 어세를 높여 말했다.

  "틀렸냐고!" 다른 쪽에 있던 남자는 일어서며 테이블을 세게 두드렸다. "한 달째가 아니야, 아이스버그.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벌써 2년이 됐어. 너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어. 맥이 SCP-212에 개조됬을 때 넌 토했잖아! 데일이 SCP-882에 말려 들어갔을 때도, 파르가 SCP-409에 접촉했을 때도, 넌 거기 있었잖아. 그때 우리랑 같이 기어스를 비난하고 원망했었잖아!"

  "기어스 박사가 얼마나 냉혹한지 몰랐던 건 아니잖아."

  아이스버그의 두 눈은 분노를 담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내쉬, 그건 다 필요한 거야!"

  "그건 피할 수 있는 거였어!"

  "아니, 필요한 거라고! 이런 각오도 없으면 재단에서 일하지 마!" 그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케이크를 던지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냉기와 서리는 그의 동료들을 두렵게 하였다.

  "아이스버그 박사, 네가 더 심한 거 아니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직원은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사무직원 두 명에게 끌려갔다.

  "넌 이미 비정상적이야, 아이스버그. 우리가 알고 지낸 동안에도 네 성격은 더러웠지만, 이젠 인간성이 결핍됐다고!" 내쉬가 외쳤다. 그의 눈에는, 아이스버그는 이미 동료가 아닌 금방이라도 격리 파기를 저지를 것 같은 SCP인 것 마냥 보이는듯, 그의 눈엔 공포가 서렸고 서리가 그들의 음식 위까지 뒤덮었다.

  "넌 네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것도 몰라!" 반대편의 남성도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나한테 서류 한 무더기를 주면서 승진 문서를 절대 주지 않는 걸 빼곤 그들은 나한테 아무 짓도 안 했다고!"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

  그게 기어스야! 폭발 실험 사고로 부상 입고 의무실에 함께 누워있던 그 사람은 나한테 자신의 감정에 있는 문제를 말해주고 나에게 재단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알려줬어!

  "아이스버그, 넌 너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그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인진 알아?" 내쉬는 여직원을 옆으로 밀치고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나한텐 말이야, 아리사라고 3등급 연구원 동료가 있었어. 걔가 그랬지, 4등급이나 더 높은 등급의 연구원이 손꼽을 정도로 적은지 이유를 아느냐고!"

  "왜 손에 꼽을 정도인진 알아?" 그가 외쳤다. "왜냐하면 다들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지!"

  "너도 알잖아! 그들은 많은 압력을 받고 있어. SCP-682、SCP-882、SCP-409、SCP-238、SCP-718、SCP-775、SCP-575、SCP-510、SCP-352、SCP-280,전부 케테르 등급 변칙 개체들이라고."

  "또 기어스 박사는 어떻고? 왜 유클리드 격리 전문가가 수많은 케테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진 생각 안 해봤어?"

  "왜냐하면 기어스가 잘 처리 할 수 있으니깐……"

  "당연히 그가 전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거잖아, 아이스버그! 정신 차려!"

  "너 뭐라 했어……"

  "진정하십시오, 아이스버그 박사." 주먹을 내밀기 직전 낯선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고, 목소리의 주인은 아이스버그의 팔을 조금도 움찔하지 않고 가볍게, 세게 잡았다.

  "너……" 그는 한눈을 팔고 있었기에 언제 이 점잖은 남자가 식당에 왔는지 몰랐다. "……기어스 박사."

  "아이스버그 박사의 무례에 대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기어스는 그의 보조 연구원을 보지 않았다, 다만 기계적인 시선으로 3명의 연구자에게 눈을 돌리고 있었다. "저희가 여러분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는 게 아니길 바랍니다. 다음 실험까지 20분 정도 남았습니다. 디저트를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고위 연구원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대답할 뿐이었고 심지어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기도 했다. 아무도 이 박사가 누군가에게 사과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에 대한 겁니다, 아이스버그 박사. 이 사태를 수습하자마자 제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매우 급한 일입니다." 그는 아이스버그의 팔을 잡은 손을 거뒀다.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마음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의 불만과 억울함이 있었으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선, 끝까지 선임 연구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자각하셔야 합니다." 기어스는 작고 투명한 병을 한 손에 쥐고 있던 머그컵과 함께 건네주었다.

  "전, 전 죄송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박사." 아이스버그는 사무 책상 정면의 의자에 조용히 앉았고, 나무 의자는 이미 얇은 서리로 뒤덮여 버렸다.

  "저는 이전에 이 일에 대해 여러 번 충고했습니다. 전 당신이 뭐라 말하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체온에 신경을 쓰신다면, 우선 감정부터 조절하셔야 합니다."

  아이스버그는 작은 유리병을 집어 들어 플라스틱 필름을 손으로 집어 꺼내곤 알약 두 알을 쏟아냈다. 그는 알약을 손에 꽉 움켜쥐었다. 보통 약품은 고온에 영향을 받았기에 -7도는 충분히 차가워 꽉 움켜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이스버그 박사?" 자신의 보조 연구원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선임 연구원은 끝내 자발적으로 물었다.

  "당신, 당신이 전에 말했죠. 마치 감정이 자신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거 같다고. 그럼 예를 들어, 예를 들어서, 눈앞에 매우 오래 굶주린 사람이 있다고 하죠. 당신이 만약 음식을 준다면, 그는 기뻐하고 만족할 것이며 행복해질 겁니다. 그럼, 당신이 이 행복과 만족을 느낄 방법이 있습니까?"

  "……그에게 음식을 주겠습니다. 그 행동이 사회에 유익하다는, 옳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그 결과로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정신은 만족감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그걸 느낄 수 있지만 공감할 순 없을 겁니다."

  "행복은? 사랑은요?"

  "죄송하지만, 무엇이 알고 싶어 이런 질문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행복, 사랑, 슬픔, 아픔 중 어느 것이든 전 그저 느낄 뿐입니다. 사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할 것이지만 그것들은 저에게 필요 없으며, 사실 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는 감히 상사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그의 앞의 마루 위를 기어 얼어가고 있는 얼음 결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그는 아직도 알약 두 개가 자신의 손에 꽉 쥐어져 있는 것과, 자신의 손과 이빨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과 다양한 답변이 스쳐 지나갔고, 다양한 조합들과 대처 방법들은 마치 실험 전, 기어스가 꼼꼼하게 계산하는 것과 같았다.

  꼼꼼하게만 군다면, 일반적으로 미래는 계산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눈 앞의 변수에, 남자에게 갇혀 계산해 낼 수 없었다.

  "앞으로, 나도 당신처럼 매정해지는 걸까요."

  
  

  손에 약통을 들고 기어스의 사무실에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이 그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는데도 불과하고 슬퍼해야 할지 말지 몰랐다.

  "하지만 체온 문제를 피하고 싶다면, 현 단계에선 이 방법을 추천하고 싶군요."

  그는 라이츠가 그와 만났을 때 약간 손을 떨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오래 있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7도라는 온도는 여전히 너무 차갑기에 같이 짧게만 걷는다면 문제는 없었다. 그럼 만약, 같이 오래 걷는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자신을 -7도라는 환경 속에 노출시킬 수 있을까. 누가 이런 추위를 충분히 참을 수 있겠어. 여름에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점을 줄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온도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큰 감정의 기복은 곧 많은 얼음과 서리와 얼음 결정에 차츰 뒤덮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었다.

  눈의 여왕의 거울이 깨지곤 거울의 파편이 소년의 눈에 들어간 그때부터 소년은 차가워졌다는, 그런 옛 동화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차가워져 가는 자신처럼 말이다.

  그가 순간적으로 눈을 비비자, 눈물은 곧 얼음 결정으로 변했지만, 거기엔 깨진 유리는 없었다.

  "제가 SCP처럼 보인다는 거 다 압니다." 다시 돌이켜 보면, 그는 왜 이때 그렇게 말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게 일종의 실험이 맞다면, 제발, 제발, 기어스 박사."

  "뭘 부탁하시는 겁니까?"

  "진정제를 복용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병 안으로 약을 다시 넣었다. "이건 제 변덕스러운 요구입니다. 박사."

  "이 실험에 연관 안 되어 있길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선, 당황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깐 이 실험이 당신의 실험이 아닐 수도 있고 다른 박사의 실험일 수도 있겠지만 중립적인 관점에 서기를 부탁합니다. 저는 제 감정을 스스로 통제 할 수 있습니다.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통제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이스버그는 기어스에게 허락해 달라고 감히 간청하지 못했다. 결국, 그의 실험 속도에 영향이 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이 그의 프로젝트와 부서 일을 담당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하는 게 더 쉬울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를 먼저 말씀해 주시죠."

  "전 이게 그냥 억제제인 걸 알고 있습니다, 또 제가 너무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요." 그의 목소리에선 슬픔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감정은 제게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왜 안 되죠?" 기계 같은 대답은 마치 시리처럼 상대방의 문장에 맞추어 무의식적으로 화제를 이어갈 수 있게 계속해서 대답을 내뱉을 뿐이었다.

  "뭐 때문이냐 하면……그건"

  뭐 때문이냐고? 그는 너무 늦었지만, 그는 옆에 서서 재단 복도를 함께 걸었으며, 함께 일하고, 실험하도록 이끌었으며, 식당에서 같이 먹고, 같이 다쳐서 의무실에 같이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의 일생에 절대 가질 수 없을 거 같단 느낌과 '두근거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잘 적응하고 있다'라는 또 다른 사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건 저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는 끝내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가까스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떠나셔도 좋습니다, 아이스버그 박사." 눈앞의 남자가 말하였다. 그의 얼굴은 이 순간에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약병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먹든 안 먹든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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