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Con Malinconia(우울하게)

조용히 노크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책상 너머에 앉아서 서류에 열중하던 여자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들어와요.”

피곤한 표정을 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문을 닫고, 여자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죠?”

여자가 서류에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뭐… 예상하고 있겠지만, 새로운 임무가 생긴 거죠, 카에스틴 요원. 내일부터 시작할 거에요.”

“이번에는 또 어디로, 누구로 변장해서 가는 겁니까? 저번의 그… 캔스필드 꼴 나는 건 아니겠죠?”

여자가 어깨를 으쓱하고, 서랍을 하나 열어 그 안의 봉투를 꺼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다음 임무 역시, 캔스필드로 가는 거에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처럼 단기 임무도 아니에요. 어쩌면 몇 년은 배치될 수도 있는 일이죠.”

카에스틴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요, 지금 우리가 같은 지역에 대해 얘기하는 거 맞죠? 리마이아 프로젝트가 처참히 실패해서 800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이 생겼고, 그걸 감추려고 3개월 동안 온갖 공작을 했던 그 캔스필드 말입니다, 국장님. 도대체 그 지역에 무슨 볼일이 또 생겼다는 겁니까?”

제니퍼 올라시, 광역 정보국 국장인 그녀가 카에스틴을 잠깐 노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봉투를 열고 그 안의 내용물을 책상에 쏟으며 말했다. “글쎄요. 일단 먼저, ‘처참히 실패했다’는 말은 틀렸어요. 그 조치는 엄연히 프로토콜 06에 따른 것이었고, 분명히 모든 건 우리의 프로젝트 하에 있었죠. 다만 성과가 안 좋았을 뿐. 그리고 그 캔스필드가 흥미로워진 건 말이죠…” 그녀가 갑작스레 눈을 반짝거리며, 얼굴을 앞으로 확 들이댔다. “생각해 봐요. 당신 집 근처에서 총 든 작자들이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쏴 죽이고,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막는다면 어떻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도시 전체에 널려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3개월 만에 해결이 된다? 하,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불과 3개월밖에 안 걸렸단 말이죠. 그건…”

“그냥 도시가 이상하다는 뜻이겠죠. 그 도시는 제가 가장 가본 곳 중 가장 역겨웠다고요. 불협화음이 가득한 곳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 도시는 ‘이상하고 괴상한 일들’에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 거에 너무 익숙해져서, 무의식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는 걸 수도 있죠. 아주 흥미롭지 않아요?”

“뭐,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카에스틴이 책상에 놓인 봉투에서 나온 카드 하나를 집어들었다. “확실하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같은데요. 거기다가 저번에는 스티네(Stine)이더니 이번에는 에르티스(Ertis)입니까? 맙소사, 이름 좀 그럴듯한 걸로 지으면 안 되요?”

그녀가 느긋하게 책상에 등을 기댔다. “제가 국장이니 제 부서 인력과 예산을 어디 돌리든, 별 신경 쓰실 일은 아니랍니다, 카에스틴 요원. 그리고 이름 문제는 뭐…” 그녀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신경 쓰실 일이 아니죠. 가봐요, 요원. 준비 잘하고.” 그러고는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카에스틴은 한숨을 내쉬고, 책상에 있는 것들을 주섬주섬 모아 방을 나왔다.


다음 날, 카에스틴은 선실에서 문서들을 읽고 있었다. 제니퍼 올라시 국장이 다소 빈정거리는 경향이 심하기는 하지만, 완벽주의자인 그녀답게 모든 건 깔끔했다. 그는 캔스필드 시장 딸의 음악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내가 리마이아 때 봤던 그 시장이었나? 기억 소거는 받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간단하게, 그는 그저 이상 징후가 있으면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가장 무난하고, 평이한 언더커버 업무. 가정교사라. 요즘 시대에도 그런 게 남아 있을 줄이야. 어쨌든, 올라시 국장이 말한 대로 그는 시키는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카에스틴은 문서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선실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 있었다. 잠깐 초조한 듯 손톱을 잘근잘근 씹다가, 그는 바닥에 놓인 조그마한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슈트케이스 안에는 만년필 하나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오선지들이 놓여 있었다. 곧 손에 쥐인 만년필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은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오선지를 바라보고 있어도, 도저히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작곡가는 악보에 자신의 삶과 경험을 그려내죠. 당신은 아직은 어려요. 누가 그 말을 했더라? 닥쳐. 제발 좀 닥치라고.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누가 했는지도 모를 그 문장 하나에, 깨질 듯한 두통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길고 불쾌한,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슈트케이스를 닫고, 가방들을 들고 선실을 나섰다.

이곳은 여전하군. 아직도 캔스필드는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끔찍한 비린내에, 사방에 널린 거지들, 구역질 나는 추레한 사람들. 배에서 내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카에스틴은 대합실로 향했다. 아직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합실 문을 연 그는, 마중이고 뭐고 그냥 바로 시장 집으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대합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매표구는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은 듯 유리창이 산산조각나 있었고, 의자에는 퍼덕거리는 물고기들과 대야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는 새까맣게 물든 옷을 입은 여자들이 악을 써 대며, 칼로 바닥에 대고 물고기들을 내리치고 있었다. 물고기 피와 바닷물이 섞여서, 바닥은 온통 흥건했다. 그 주변에는 아이들이 몇 명 몰려 있었고, 눈을 반짝거리며 물고기 내장이 여자들의 손에서 양동이로 던져질 때마다 낚아채려 했다. 여자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고함을 질러대며, 눈을 부릅떴다. 한 아이가 마침내 운 좋게 내장 덩어리 하나를 움켜쥐고 그가 서 있는 문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하자, 카에스틴은 잽싸게 문에서 물러서서 그 아이를 피했다. 아이가 내장을 입에 밀어 넣으며 도망쳤고, 다른 아이들이 여자들이 악 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뒤따라갔다. 그 광경을 보고, 그는 진저리를 내며 택시를 잡으러 향했다.

택시들이 서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슈 에르티스! 에르티스 씨!” 뒤를 돌아보자,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택시를 잡을 필요 없습니다, 에르티스 씨. 시장님 집까지 가겠다고 나설 택시는 없을 테니까요. 정문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경비원이 강도로 판단하고 쏴 죽일 테니까. 저와 같이 가셔야 합니다, 무슈 에르티스.” 카에스틴은 그의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첫날인데 그래도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해 보자고. 그 남자는 그를 차로 안내했고, 짐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운전을 시작했다.

도시를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전은 길어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운전수 내지는 하인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계속해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어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를 몰고 있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한 카에스틴이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그 때, 눈 앞에 거대한 철책문이 나타났다. 무슨 군 시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앞에는 우락부락한 경비원들이 대여섯 명은 서 있었다. 차가 가까이 다가가자, 문이 철컹 하고 열렸고, 그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내려서는, 빙 돌아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내리십시오, 무슈 에르티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 뭐… 그러죠.” 그는 꼭 무슨 에스코트라도 받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그 남자가 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남자는 그에게 다시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앞장서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잔디밭 사이에 벽돌로 깐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저택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꼭…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 같군. 정원이 없고, 훨씬 더 어두침침하다는 것만 빼면. 그래, 베르사유 궁전과 꼭 닮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짐을 들고 걸어가던 남자가 말했다. “아실 지 모르겠는데, 저 집은 시장님 부인이 베르사유가 마음에 들어서 똑같은 외관으로 줄인 겁니다. 내부는 훨씬 더 간단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저 건물의 서쪽은 저 아키드처럼 고용인들이 사용하는 건물과 부엌, 식당 뭐 그런 것들이 모여 있습니다. 중앙은 응접실과 무도회장, 손님방 같은 방들이 잔뜩 있고요. 시장님 내외분은 동쪽의 방들만 쓰시죠. 저는 식당까지만 안내해 드릴 겁니다. 거기부터는 길을 알려 드릴 테니 혼자서 가셔야 해요.”

카에스틴은 뒤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아키드… 아키드 맞죠? 난 여기 처음 왔어요. 길을 알려 준다고 해도 저 대저택에서 딱히 길을 잘 찾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키드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 불안하게 웃었다. “그게, 뭐, 길을 잃어도 먼지만 보면 금방 찾을 겁니다. 지나다니는 곳이면 바닥에 먼지가 없을 테니까요.”

이제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경비원들을 정문부터 배치할 여유가 있으면, 청소할 사람들 구하는 건 일도 아닐텐데. 먼지가 왜 쌓여 있다는 거에요?”

아키드가 멈춰 서서는,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은밀하게 가까이 붙어서는 은밀하게 말했다. “저희들은 되도록이면 동쪽 건물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마녀가 도사리고 있어요. 두 눈은 악마한테 넘기고 그 대가로 온갖 흉악한 것들을 부린답니다. 에르티스 씨도 그 독사 같은 혀를 조심하세요. 시장님 내외의 영혼을 신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갑작스레, 그는 몸을 홱 돌려 건물의 어딘가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곧, 그러고서는 허둥지둥 달려가기 시작했다. 카에스틴은 아키드가 바라보던 곳이 어디인지 가늠해 보았다. 문득 검고 키 큰 형체가 보인 것 같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는 건물을 힐끗 다시 둘러보고는, 아키드를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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