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F 보존원리, 혹은 왜 토끼는 뇌가 두 개씩이나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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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 항목이 얼마나 현실적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현실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정답은, 짜증 나게도, “적당히”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느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겠네요.

먼저 SCP가 무슨 이상한 짓을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줘야 합니다. “이거 정말 쩔고 무서워 보이는데!” 하고 생각하도록 단순히 시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지리겠네. 이거 겁나 무섭잖아!” 하고 반응하도록 겁을 줄 수도 있겠죠. “만약 이렇게 된다면… 와, 이거 괴상하겠는데. 아마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예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뭔가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제법 괴상한 것을 만들고 싶어 할 겁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죠. 문제는, 얼마나 괴상해야 할까요?

작품에 괴상한 설정을 집어넣는다면 강한 인상을 줍니다. 얼마나 강한 인상을 주느냐는 괴상한 점이 어떤 것이냐에 달렸습니다. 가끔은, 제 생각에는 대부분 작품이 그렇지만, 괴상한 점이 한가지인 작품이 제일 좋습니다. SCP-426의 괴상한 설정은 한가지뿐입니다. 정말 특별한 물건이지만, 괴상한 점이라고는 대상을 언급할 때는 무심코 일인칭으로 말하게 된다는 것 한가지뿐입니다. 다른 효과는 그저 그 효과의 연장선에 있을 뿐입니다. 물론, 가끔은 여러 괴상한 점을 섞을 수도 있습니다. SCP-914에는, 자세히 보신다면 두 가지가 있죠. 잘 보이는 한 가지는, 집어넣는 물건을 더 좋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실 914는 그냥 태엽 장치일 뿐이죠. 용수철 몇 개 말고는 동력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건 작동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사용 자체를 못해야 정상이죠. 그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 독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또 하나의 괴상한 점입니다. 이렇게, 가끔은 괴상한 점을 조금만 잘 섞어도 작품을 더욱 좋게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위험 부담도 있습니다. 만약 괴상한 점 사이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다면 그 작품은 개연성이 없을 겁니다. 황금알을 낳고 에이즈를 치료하는 독이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나르는 오리너구리… 그딴 게 먹힐 리가 없죠. 이건 그저 아무 효과나 마음대로 뽑아다가 모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오리너구리를 플라톤처럼 만드는 것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이런 효과 사이에는 튼튼한 기반 설정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씨발 이게 뭐야(What The Fuck)’, 즉 WTF 보존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독자가 당신의 작품을 읽고 “씨발 이게 뭐야?(What The Fuck?)” 하고 반응하길 바라겠죠. 하지만, 독자가 당신 작품을 보는 내내 그런 반응을 하거나, 흥미를 잃어버리기를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얼마나 괴상해야 지나치게 괴상하지 않은 것일까요? 많은 요인에 달렸습니다. 글을 잘 쓰면 될까요? 네, 잘 쓴 글은 SCP의 이질적인 설정 끼리 잘 조화될 수 있도록 해주며, 독자는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좀 과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글이 그만큼 잘 쓴 것이라고 기대할 순 없습니다. 기어스라면 또 모르겠지만, 당신은 기어스가 아니잖아요. (어, 기어스 맞아요? 안녕하세요!)

그렇다면, 각 요소가 서로 잘 어울리게 해야겠죠. 아시다시피, 이건 좀 직관적인 문제입니다. 독자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괴상한 설정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 소재”를 찾게 됩니다. 부식성 화염을 내뿜는 오리는 어떻겠느냐고요? 대체 지금까지 뭘 읽은 겁니까? 부식시키는 능력 따위는 차원 주머니로 사람을 사냥하는 썩어가는 시체같이 생긴 늙은이에게나 주시죠. 독자가 더 잘 읽을 수 있게 중심 소재와 여러 설정을 일치하게끔 하셔야 합니다. 잘 쓴 글이라면 더 좋고요.

또 다른 요소는 작품의 규모입니다. 어느 정도 길고 거대하면 되는 거죠… 방대한 규모로 밀어붙이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로, SCP-093가 있습니다. 이 항목과 부록에는 정말 많은 괴상함이 들어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지를 않나, 색깔도 바뀌고, 고요함이나 침울함이 느껴지기도 하죠. 거울 속에 존재합니다. 아, 그리고 대상을 통해 다른 현실로도 갈 수 있고요. 평행 세계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겁니다. 아마 093이 재단에서 가장 복잡한 SCP일걸요. 하지만 그 방대한 규모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자그마치 다른 우주 하나를 통째로 다루고 있잖아요! 이 작품만의 배경 설정도 있고요. 대상에게서 처음 발현되는 변칙성을 설명하다가, 뜬금없이 당신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지만, 내용은 부드럽게 이어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잘 묘사하고 있죠.

물론, 당신의 SCP가 그만큼 큰 규모를 자랑할 순 없을 겁니다. 당신이 그럴 능력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저 역시 그런 야심 찬 SCP를 앞으로 더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방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도중에 설정이 꼬여버리지 않게끔 잘 구성하기는 더럽게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당신은 큰 개념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들어맞게 글을 구성해 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093 같은 작품을 완성할 때쯤이면, 의문이 남을진 몰라도, 전체적으로 서로 잘 조화롭게 이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말이 되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단은 SCP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지까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심지어 그 SCP가 뭔지도 알 필요가 없죠. 바로 그 사실에 초점을 맞추세요. 재단이 감당할 수 있는 실험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작가로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재단이 알아낼 방도가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재단이 충분히 실험 가능한 부분인데 당신이 정해둔 설정이 없다면, 하나쯤은 생각해 내세요. 하다못해 암시라도 하나쯤 해 주셔야 합니다. 어떤 논리적 과정을 통해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정하고, 그걸 작품에 반영하세요. 그러고 나서 당신의 초기 아이디어와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만약 어긋난다면, 정보를 더 추가하고 재단이 그 SCP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자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히 괴상하면 됩니다.” 그 중심 소재, 규모, 초기 아이디어에 따라 그 작품이 감당할 수 있는 괴상함의 정도가 다릅니다.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하다면, 독자는 당신의 작품에 흥미를 갖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당신의 SCP에 대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지만, 재단이 알 방도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당신 스스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느 문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먹히는 게 있을 뿐이죠. 쓰시는 작품에 적절한 WTF 계수를 찾는 것은 스스로 체득하셔야 할 기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써도 작품에 대한 반응이 영 좋지 못하다면, 가끔은 WTF이고 뭐고 필요 없고, 그냥 한 발짝 물러서서, “토끼는 정말로 뇌가 두 개씩이나 필요한가?” 하고 질문이나 하며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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