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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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녀석이.jpg

"그래, 네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개를 들여보낼리가 없지. 기어코 사냥을 다시하겠다고?"

노인은 연신 손을 놀리며 양 옆에 나있는 고추를 따 바구니에 넣었다. 엉덩이를 들어 다음 모종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조막만한 강아지가 노인 앞에 털썩 눕더니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잠시 멈칫하였으나 이내 강아지를 옆으로 옮기고 다음 고추 모종으로 넘어가니 강아지는 재미 없다는 듯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였다.

"뭐, 다리도 다 났으니까요. 수렵면허도 다시 땄겠다, 다시 다녀야죠."

"에잉, 종교도 불교면서 그렇게 살생하고 다니면 못쓴다."

"어머니 따라 절에 다닌거지 딱히 종교가 불교인건-"

"아구구구 귀여워라. 그래 간식주까?"

아들의 말을 듣지도 않은채 연신 재롱을 피우는 강아지를 보며 노인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육포를 꺼내 강아지에게 건네준다. 아직은 딱딱한 간식인건지 강아지는 육포를 입에 물고는 앞다리로 누르거나 치며 연신 먹으려 노력했고, 아들을 그 둘의 모습을 보며 이내 작게 웃으며 마찬가지로 앉은뱅이 의자를 끌고 다음 모종으로 몸을 옮겼다.

"뭐, 사냥은 안한다해도 개 한마리 있어서 나쁠건 없잖아요. 안그래도 요즘 사람들 출입도 많아졌는데 든든한 보디가드 하나 정도는 있어야-"

"차라리 네 총을 여기다 두고 다녀라. 이 쪼막만한 녀석이 보디가드 하는거보다 그게 더 안심된다야."

"원장님 아니랄까봐 아예 불법을 저지르라고 하네. 그거 여기다 두고가면 끌려가는건 아들내미인 전데요."

그렇게 노인과 아들이 투닥투닥 하는 동안 차 한대가 급히 농장 입구에 멈춰선다. 멈추기 무섭게 차에서 내린 이는 원장이 김과장이라 부르는 청년. 평상시와 다른 급박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추 하우스에 들어가니 뒤늦게 손님이 온걸 알아챈 원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그를 바라보았다.

"김 과장이고만. 잘 지냈는감?"

"원장님. 큰일이 터졌습니다."

"으응, 이 나이 먹으면 어느정도 큰일은 그렇게 안와닿는데 말여. 무슨 일인데 그랴?"

"두레원 조합원 중 한명이 국가초상방재원에게 체포, 구금당하였습니다. 곧있으면 재단에 인계될거라는 소식도 있고요."

이번 일은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그녀도 휘청일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평소같으면 서로 이야기하느라 시끌벅적했을 대회의장.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두 침묵을 한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몇명은 드디어 터질것이 터졌다며 한숨을 폭 내쉬었고, 몇명은 저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다수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며 막 프린터한 사건 요약본을 보고 있었다.

"원장님 들어오셨습니다."

그런 심각한 분위기는 원장 역시 내뿜고 있었기에 회의장에 있던 조합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시작하기 전에 말 하나만 할끼다. 지금이라도 자기가 여기 전체 조합원 회의나 별도 청구 루트로 변칙 소유 신고 안한 사람 있으면 바로 나오라."

"사태가 사태인만큼 오늘을 기점으로 변칙 개체 소유를 숨기고 있다가 적발될 시 규정에 따라 강력하게 징계할 것입니다."

최교수의 말에도 모두가 침묵을 지키니 원장은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숨기는건 없으리라 여기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다들 알고있겠지만은… 조합원중 한명이 변칙개체를 몰래 숨기고 있다가 국가초상방재원에게 적발되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아울러 곧 재단에 인계될 예정이고요."

"죄명은 뭡니까?"

"공식적인 법적 근거는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입니다만 이는 해당 조합원이 가진 변칙개체의 특성으로 인한 죄명으로-"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않은가, 최교수."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가 뒷편에서 들려온다. 회의장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원장보다 더 연로한 노인 다섯명이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한채 회의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김 팀장님…"

"그래… 막내-, 아니 원장. 우리 '동지'가 재단에 곧 끌려갈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원장을 막내라 부르려했던 노인은 출입구 바로 앞 의자에 앉아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모두는 자네만 믿고 모든 실권을 내려놓았네. 자네가 그 능구렁이 손과 손잡기로 결정한것, 국가초상방재원과 공식적인 관계 체결을 한것, 수신도나 셀레스트인지 뭔지 하는 조직들과 관계를 가진 것.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찬동해주었고 지지해주었네."

"…"

"하지만 재단은 아니야. 아니, 그래. 재단의 힘이 필요해 어쩔수 없이 손을 잡은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하겠네. 허나 그들의 손에 우리 동지가 넘어간 것. 그거만큼은 참을수 없네. 나나 여기 내 동료들, 그리고 선배들이 재단으로부터 무슨 짓을 당했는지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구해내리라 믿고 있겠네, 원장."

그렇게 할 말을 마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뒤이어 들어왔던 노인들은 그를 뒤따라 회의장 바깥으로 몸을 돌렸다. 한동안 다시 침묵에 빠진 회의장은 한 사람의 질문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십니까?"

"일단 국가초상방재원과 계속 연락 중에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피어슨 각서로 인한 재단과의 불평등 관계로 인해 바로 인도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한번은 재단 측에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 중에 있습니다."

"그럼 재단 측에 넘겨져서 고문당하는걸 두고봐야한다는 뜻입니까?"

"방재원 요원 둘이 붙어 같이 조사한다고 합니다. 저희가 우려하는게 뭔지 잘 알고 있다면서-"

"잘 알고 있다면 냅다 재단에 신고할게 아니라 최소한 우리한데 알려야 했던거 아닙니까!"

"결국 저 새끼들은 재단의 개새끼들이란걸 이번 일로 증명되었습니다! 차라리 능손에게 연락하십쇼! 그들의 도움이 있다면 구출따위-"

"원장님."

한 사람이 조용히 손을 들어 보인다. 양복을 차려 입은 것이 중앙농협 출신인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직책을 맡은것인지 그가 손을 들자 시끌시끌했던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말해보그라."

"한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현 상황에서 저희가 능손과 붙어 재단과 충돌하든, 방재원과의 관계를 끊든 결국 불리한건 저희 아닙니까."

"…부정은 안하겠네."

"현재 여기 계신분들이나 원장님 포함 지도부는 별다른 계책이 없는듯 하구요."

"그라는 자네는 방법이 있는거처럼 말하는고만."

"세계 오컬트 연합은 어떻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원장과 지도부, 조합원들은 당황한 모습을 내비췄다. 오직 그를 따르듯 양복을 입은 몇몇 이들만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상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방재원과 손 잡은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재단의 개새끼가 어딜봐서 당당한 초상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입니까. 개새끼와 손을 잡아봤자 개새끼밖에 안되는거, 차라리 연합 쪽과 손을 잡고 그 조합원도 구하고 당당하게 초상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납시다."

"말은 번지르르하구만. 연합에서 우리에게 108평의회 자리라도 약속했던가?"

"108평의회는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래 준가맹단체는 약속했습니다! 능손이 아무리 대단한 조직이라지만 소수의 이권단체 아닙니까! 정말로 방재원과 재단과 맞먹는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아예 108평의회를 노리는게 옳습니다!!"

청년이 외치자 그 뒤로 다른 사람들 역시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 새끼들이 IMF때 우리 종자 권리 뺏어간 건 잊은건가!! 그때 그 새끼들이 우리한데 뺏어서 파괴한 변칙 종자가 몇 종이었는지 지금 한번 까볼까?!"

"그 이야기를 꺼내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오히려 자랑스러운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를 얕본 세계 기구가 우리에게 준가맹단체를 권한 일이 어디 쉬운 일이냔 말입니다!"

"자네에게만 연락이 간건가?! 지도부에 알리지도 않고?! 이는 연합이 우리 두레원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반증아닌가! 정말 우리에게 그런 자리를 권할거였으면 전체 조합원 회의 때 이야기를 했어야지!!"

"하, 그러면 능손이랑 방재원간의 관계 성립때 전체 조합원 회의에 안건이 올라오긴 했답니까?! 그때도 통보였잖습니까!"

싸움판이 되가는 회의장에서, 그들을 말리려 뛰쳐나간 최교수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서로 멱살잡이 중인 조합원들을 보며 원장은 그저 황망히 웃어보일 뿐이었다.


"일단 확실하게 말해두지. 자네들이 연합과 손잡으려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우리는 즉각 두레원과의 관계를 청산, 적대 관계로 돌리고 교전에 돌입할거야."

"거 칼 같은 답변이고만…"

"예상한 것 아니었나?"

자리에 앉기도 전에 호야가 답하니 원장은 그저 웃으며 차를 건네주었다.

"여기서부터 내 사견이지만 이번 회의 때 나온 말들은 매우 불쾌하군… 그 새끼 연합의 끄나풀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아니지, 애초에 그 쪽이 더 잘 아는거 아닙니까? 당신 네들 정도면 한 사람 신원 찾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더 불쾌한거야. 연합에 대해 뭐 아는 것도 없이 그저 감투하나에 헥헥대는 꼬라지 하고는. 네 놈들도 볼장 다봤군."

"말씀이 지나친-"

"뭐, 부정은 안하겠고마."

호야의 말에 반발하려는 최교수의 말을 막은 것은 원장.

"허나 예상한거 아니었남? 저번 재단 접촉건 때 도와준건 고맙긴하지만 조합원들은 그거 말고 능손이 우리에게 무얼 도와주었냐고 물어보면 답변하기 궁색하지않나."

"몇 십 년 전, 능손에게 도움받은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군, 원장."

"그건 두레원의 이름으로 도움받은게 아니라 자립농학연구조합의, 그리고 그 이전 내 개인이 받은 도움이었고, 자네가 아닌 당시의 주석대리 량 당골이 도와준 것일세."

확연히 선을 긋는 원장의 태도에 호야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 기세를 몰아 계속 이야기를 하는 원장.

"다음 회의 때까지 어떻게든 결판을 지어야하네. 조합원이 석방되든 아니면 능손이랑 손잡고 재단과 본격적인 상호 마찰을 시작하든. 최악의 경우 연합과 손잡고 방재원과 재단, 그리고 자네들과 전쟁상태에 돌입하든 말일세."

"그래도 최악의 수란건 알고 있구만."

"전쟁 그 자체가 최악인거지 연합과 손잡는다는 선택지는 엄연히 초련계 반방재원파의 공식 입장이여. 지난 사태들 이후로 친방재원파에 밀려 조용했을뿐 결국 조그만한 틈이 보이면 튀어나올 사안이었단 말이지."

말은 호야에게 하는 듯 했으나 시선은 호야에게 향해있지 않았다. 둘러앉은 회의용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한 청년에게 시선들이 몰려있으니, 날이 점차 선선해지고 있었으나 연신 식은땀을 흘리던 그는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연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겁니까."

"너가 아니라 너가 있는 방재원에 바라는게 있는거다, 머저리 새끼야."

"지금 있던 대화, 그리고 아까전의 회의 그대로 방재원에 전해주게. 정말 사태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다음 회의 전까지 무언가 보여주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날 있었던 두레원 전체회의 내용과 두레원-능손간의 대화 내용이 방재원에게 넘어가니 한동안 방재원에서는 그 누구도 퇴근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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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사결과는 나왔던가."

"어느 조직과 거래를 통해 얻었다고만 했을뿐, 구체적으로 어느 조직인지는 당사자도 모르는듯 했습니다."

"쯧… 그 놈 팔랑귀 성격을 늘 조심하라 일렀건만 듣지를 않더니 이렇게 되는고만."

어느덧 가을이 훌쩍 다가왔다. 다시한번 열린 고구마 캐기 체험장은 사람들로 가득하니, 작년보다 어린아이들이 더 많이 모여 고사리손으로 연신 흙을 파헤쳐 고구마를 캐고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옆에 어느덧 성장한 강아지역시 연신 앞발로 땅을 파니 혹자는 그것을 보고 고구마 농장 개답게 고구마를 캔다며 좋아하였고 혹자는 저놈의 개스끼가 흙을 자기한데 던지니 삶아먹어버리겠다며 호미를 들고가자 같이 온 새까만 인상의 녹안을 가진 여성 친우에게 얻어맞고서는 다시 조용히 고구마를 캤다.

"자식들이 알아서 할테니 우리는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하지, 최교수."

"예, 원장님."

저를 데려온 아들보다 원장을 더 주인으로 여기는 것인지 원장이 창고 하우스에 들어가자 빠르게 발을 놀려 같이 하우스에 들어오는 강아지. 이제 입구에 있는 발판에 털썩 눕고서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그래… 이번 일로 방재원이든 재단이든 능손이든, 누구든지간에 우리 속이 탄탄한 조직이 아니란걸 알게되었겠지."

"자유로운 의사 개진은 조합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원장님."

"허나 연합정도의 단체가 나나 지도부가 아닌 일개 조합원과 접촉한 건 좋은 선례가 아니야."

원장은 간식을 꺼내 강아지에게 흔들어보았으나 식욕보다 수면욕이 더 컸던 것인지 그저 꾸벅꾸벅 졸 뿐이었다.

"조합원과 접촉하여 벌어진 결과를 보게. 결국 내부에 불협화음이 벌어지지 않았나. 연합의 의도가 두레원의 내부 분열이었다면 그 발판은 제대로 해낸 셈이지."

"…"

"뭐, 이 부분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잘 해결해봄세. 자네는 고생 많이 혔어. 재단에서 그 작자 빼오느라고 말이야."

"제가 한게 뭐가 있나요."

"조사가 막혔다 그 말인가…"

원장은 개 간식을 강아지 밥그릇에 던져주고서는 품안의 지갑에서 명함하나를 꺼내 최교수에게 전해주었다.

"이건 뭡니까?"

"자네, HEA라고 들어는 보았남?"

갈라진 길 끝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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