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의 크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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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란이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격리실 안에 있던 모든 인간, 그리고 자신보다 더 초자연적인 존재 앞에서 한낱 인간과 별다를 게 없어진 위대한 존재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훈계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경청할 뿐이었다.

목소리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더욱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다시 그 목소리는 조용해졌고, 무언가 깨달은 듯한 감탄사를 냈다.

[그렇군. 그런 건가?]

이윽고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들려왔다.

[원래 이렇게까진 안 하려 했건만.]

유란은 푸른 섬광을 보았다. 그러나 별빛처럼 차가운 섬광은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 엄청나게 뜨거운 푸른색 구를 본 유란은, 그 이후 순간들을 구분해낼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꾸고 있는 꿈에서 벗어나려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유란은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유란이 깨어났을 때는 거룩한 촉수 괴물과 카나리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잔챙이 광신도들은 이미 뒤처리를 하러 온 기동특무부대에게 제압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유란은 공포감에서 벗어나 잠깐 안정감을 느꼈으나, 카나리아가 없어졌음을 자각하고 다시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기동특무부대는 쓰러진 유란을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유란은 의식 없이 이송되는 와중에도 카나리아를 찾아야 한다며 비몽사몽한 채로 절규했다.


카나리아는 형언할 수 없는 공간에 놓여 있었다. 홀로는 아니었다. 위대한 괴물이 그녀의 옆에 쓰러져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죽여야 한다고 여겼던 저 강인한 괴물이 자신보다 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지 생각하던 때, 목소리가 편두통처럼 관자놀이를 울려왔다. 그녀는 귀를 막았지만 저항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구나, 인간이여. 내게 배려심이라는 감정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 심심한 사과를 표하지.]

카나리아는 상기와 분노가 섞인 얼굴로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은 기름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이 공간 속을 울렸다.

[입 닥치고 저 새끼나 조지게 해줘.]

그러나 목소리는 지긋이 웃을 뿐이었다.

카나리아는 몸을 비틀어 바닥에 있는 칼을 집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에겐 이해심이라는 게 있다네. 원하는 게 정녕 저 생명체를 죽이는 것뿐인가?]

카나리아는 왜 저 목소리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이 공간부터 이 상황, 이 감정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카나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카나리아는 힘차게 끄덕였다.

[너는 네 기억에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목소리는 의미심장하게 웃는, 기분 나쁜 목소리를 내었다. 카나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난 변하지 않아. 내 목표도.]

[네 머릿속 감정과 기억이 변화한다면 지금 네가 하려는 모든 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일 텐데.]

[불가능해.]

[내가 왜 이 공간을 창조해 너희 둘을 불러냈다고 생각하는가?]

[닥치고 이거 풀어달라고!]

[원래는 나를 깨워낸 저 뒤에 숨은 무지한 자를 일깨워 주려 했으나, 일깨울 이는 따로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카나리아는 저 뒤에 숨은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잊어버렸다.

[그건 바로 너희니라.]

어느새 일어난 위대한 괴물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날갯짓 한 번이면 풀려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새장 안에 있는 한 명과, 새장을 부술 힘이 있지만 자유를 바라지 않아 울지도 않는 한 명.]

[이 모든 건 말뚝에 묶인 새끼 코끼리처럼 마음에 새겨진 기억 때문일 테니.]

목소리는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야. 너는 내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냐?]

위대한 존재는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자신을 그렇게 불렀던 이가 없었음을 깨닫고 몸서리쳤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구…시죠?]

[제 아비도 못 알아볼 정도라니 안타깝구나. 허나 이제 상관없다.]

노란 섬광이 보였다.


카나리아는 시멘트 벽에 둘러싸인 자신을 보았다.

그러나 그건 카나리아가 아니었다. 손이 있을 자리에는 촉수가 있고, 이목구비가 있을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장기들이 위치할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문득 들었다. 어째서인지 유란의 모습이 제일 처음 떠올랐다.

카나리아는 두려움에 소리 질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위대한 괴물은 불타는 오두막집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막강한 힘을 가진 촉수 괴물이 아닌, 그저 연약하기 그지없는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는 도망치려 했지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굳세었던 괴물은 자신의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그저 주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위대한 분을 위하여!"

함성과 자신을 따르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귀찮다고 여겨지던 예전과 달리, 이 여자아이에게 그들은 너무나도 버거운 괴물이었다. 위대한 존재는 자신의 힘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 여자아이를 동정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갈망하던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놓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이 현실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기대는 금방 공포로 바뀌었다.

그는 힘을 잃은 대가에 대하여 후회했고, 절규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같은 시각, O5-2는 초조해진 채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내 시나리오대로라면, 분명히 일어났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 속에 빠져 그의 비서가 그의 자리 바로 옆에 올 때까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저… 의원님?"

"어, 어, 그래."

"긴급 상황 종료라는 소식입니다. 모든 광신도가 제압되었고, 현재 SCP-2662의 소재를 찾는 중…"

O5-2는 책상을 내리쳤다.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 물건을 찾아서 소환의식을 진행하고, 어떻게 그토록 섬세하고 건드리면 즉발하는 함정을 제작하여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놨는데, 불발하였단 말인가. O5-2는 절규했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아냐, 아무것도 아닐세."

그러나, 뇌리에 'SCP-2662의 소재를 찾는 중'이라는 문장이 스쳐 갔다.

"잠깐만, SCP-2662가 뭐?"

"방금 말씀드렸는데…"

"다시 말해봐."

"SCP-2662의 소재가 불분명합니다. 모종의 현실 조작으로 SCP-2662와 특수 요원… 어, 코드명 '카나리아'가 사라졌고, SCP-2662의 소행일 확률이 높으나, 대상이 현재까지 그런 변칙성을 보인 적 없기에 이전에 소환하신 그 변칙 개체와의 상호작용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카나리아와 함께 사라졌다? 크툴루가 그런 힘을 발휘하던가? O5-2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이 불러낸 그 위험하고도 위대한 생명체의 짓임을 직감했다. O5-2는 미소지었다. 이 위대한 생명체는 너무 위대해서 방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물건 기억하나?"

"어느 물건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첫 번째 것은 소환할 때 이미 썼잖나. 두 번째 것. 지난주 금요일에 얘기한 거 말이야."

"예, 보관해두고 있습니다."

"그거 들고 나 따라와. 갈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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