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탈주 사건 1009/2001 회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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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째

담당관에게 부탁해서 내 일기장과 펜을 받아낼 수 있었다. 내용을 검열했을거라 생각하니 찝찝하긴 하지만. 사실 좀 놀랐다. 주 교도소에서는 펜을 흉기로 간주하고 소지를 허가하지 않았는데 여긴 별로 신경도 안쓰는 모양이다. 펜이라고? 그걸 쓰느니 차라리 벌침을 쓰겠지. 어쨌든 내 소지품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고, 나는 다시 일기를 쓸 생각이다. 여기 간수들은 그리 나쁘지 않다. 말이 통하는 녀석들이다 이거지.

다만 감형을 약속받고 이곳에 왔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여기서 일하는 놈들은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을거라는 사실이다. 처음 계약서에 싸인할 때만 해도 나는 사형수까지 쓰는 실험이니 어디 구석에 쳐박힌 지하 벙커 안에서 몰래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여긴, 더럽게 크다. 존나 어디서 어떻게 보든간에 보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크다. 난 이미 여기가 인권 단체에서 아무리 지랄을 떨어도 눈도 깜빡하지 않을 곳이라는 걸 안다.

그건 오리엔테이션만 들어도 눈치챌 수 있었다. 재단인지 뭔지, 아마 자기네들을 기부금 모으는 자선 단체쯤으로 보일 속셈인가 본데, 하여튼 그 따위 이름을 붙여놓은 곳에서 왔다는 인간들은 우리 코앞에서도 하나같이 지루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건 사형수를 상대로 하는 일에 도가 텄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람 목숨에는 좆도 신경 안 쓸거라는 얘기도 되고.

물론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다른 멍청한 새끼들은 대부분 이걸 모른다. 크레이그, 영, 미니, 벤덤, 사이먼, 그리고 돼지 같은 프란츠.

쓰고 보니까 전부 다군.

3일째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설 청소를 하게 된다. 그 차례의 결과가 새출발이 될 지 방사능 덩어리 괴물이 될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걸레질은 이제까지 내가 겪어왔던 막노동 중에서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당연히 한여름에 시멘트 퍼나르면서 20kg짜리 포대하고 씨름하는 것보다야 똥냄새 나는 화장실 청소가 낫겠지.

제일 짜증나는건 내 청소 구역 담당 감독관이다. 감방 담당하고는 달리 도무지 닥칠 줄을 모르고, 결벽증이라도 있는지 창틀에 먼지 덩어리 하나만 끼어있다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그 새끼가 빌어먹을 군인 출신이라는게 가장 큰 문제다. 'D-5420! 지금부터 C-13번 복도를 깨끗이 닦는다! 실시! 뭐라고? 제군, 제군의 행위는 용납할 수가 없다! 지금 당장 내 앞으로 집결하도록!' 그 복도는 나 혼자 다 청소하는데 씨발 무슨 놈의 집결? 그 새끼가 'D'까지만 말해도 치가 떨린다. 군인이 애초에 여기 왜 있는거야? 군사 실험이라도 하는건가?

그것만 빼면, 여기 생활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매일매일 귀찮은 거짓말 테스트를 해야되긴 하지만 질문도 다 거기서 거기고 인원이 너무 많아서인지 대충 넘기는 모양이다. 급식 수준도 교도소 때보다 훨씬 낫고, 자유 시간엔 우리들 감방이 있는 복도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다. 다른 방에 수감된 녀석들과는 말도 못하게 하는건 좀 이상하지만, 뭐 이 정도면 생각지도 못한 처사다.

4일째

서열 싸움이 시작됐다. 방 옮길 때마다 이 지랄이다. 프란츠 그 고문관 새끼가 아무나 싸잡고 끝도 없이 입을 털어제꼈기 때문인데, 크레이그가 참지 못하고 던진 한 마디로 시작된 말싸움이 주먹다짐까지 번져갈 기세라 나와 벤덤이 어떻게든 막았다.

사나흘이 지나니까 대충 룸메이트들의 위치가 눈에 보인다. 덩치 좋은 크레이그와 힘만 세고 머리에 든 게 없는 프란츠가 지금 먹이사슬 꼭대기를 놓고 다투고 있고, 벤덤은 나와 비슷하게 찌그러질 때와 나설 때를 아는 놈이지만 그다지 영리하지는 않다. 사이먼은 아무리 봐도 기회를 노리고 있는게 빤히 보이는데 아마 크레이그와 프란츠 사이의 승패가 기울어지면 그 쪽에 잽싸게 붙을 것이다. 미니는 아직 뭘 잘 모른다. 구석에 쳐박혀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얼굴도 곱상하게 생겨서 걱정스럽다. 그리고 영은. 약쟁이라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금단 증상으로 손을 떨고 있는데 이틀 정도만 더 지나면 반쯤 미쳐버릴 것이다.

5일째

공지를 봤다. 건장한 2-30대 남성, 키는 170cm 이상, 몸무게 60kg 이상. 보상이 가관이다. '실험이 종료되는 즉시 석방함'?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제정신인가? 방에 돌아가 이 얘기를 해주자 조건이 안되는 미니만 제외하고 모두가 지원서를 썼다. 나를 포함해서. 실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거나 석방이 걸린 일 아닌가? 해볼 만한 도전이다.

생각해보니 영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내 말을 이해는 했을런지 의문스럽다. 지금 녀석은 벽을 향해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중이다.

6일째

크레이그와 프란츠의 신경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조만간 사단이 날 것 같다. 방 안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다. 벤덤이 이걸 어떻게 해보려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어딜가나 감옥 안에서는 똑같은 화제로 흘러가는가 보다. '자기가 왜 잡혀오게 되었는가?'

벤덤은 주택가에 불을 질렀다. 우발적이었다곤 하는데, 판사 나리께서야 코웃음을 치셨겠지. 미니는 여자친구를 목졸라 죽였다. 아마 그건 진짜로 우발적이었을테지만, 불쌍하게 멍청한 자식 같으니, 이걸로 미니가 이 방의 최하 계급이라는 게 확정됐을 것이다. 크레이그는 별 미사여구 없이 일곱을 죽였다고만 했다. 그건 무시무시했다. 영은 여전히 벽을 보고 있었고 사이먼은 뻥튀기로 떠벌리는 티가 났다. 프란츠 그 씨발놈의 새끼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침을 튀겨가며 장황하게 연설을 했다. 뭐라고 했는지 쓰기도 싫을 정도다.

나는 대충 세 명 쯤 쏴죽였다고 적당히 대답했다.

7일째

프란츠가 또 말썽이다. 아무래도 미니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 같다. 자꾸 치근덕거리는 걸 못 봐주겠던지 크레이그가 그걸 못 하게 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고 있다. 목소리도 징글거리는데 돼지 새끼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꿈틀거리는 걸 계속 봐야한다는게 좆같다. 크레이그는 벽에 기대서 눈을 감고 어떻게든 참고 있는 것 같지만 난

방금 연구원들이 벤덤이 실험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데려갔다. 그는 이제 이 방에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다. 씨발,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한 게 뭔데? 내가 신체 조건도 더 좋고, 염병할 대가리도 더 잘 돌아간다고. 대체 그 자식이 갈색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무슨 실험이길래 지랄맞을 사형수 눈 색깔을 따지냐고. 그 새끼는 심지어 수십 명을 싸그리 태워죽인 새끼야. 난 어제 그 새끼가 말할 때 보이던 그 또라이의 눈빛을 똑똑히 봤다. 그 새끼ㅡ방화광이라고, 씨발.

8일째

일이 터졌다. 그것도 존나 허무하게 안좋은 쪽으로. 오늘 일어나보니 갑자기 크레이그가 죽어있었다. 프란츠가 비겁하게 크레이그가 자는 사이에 공격한 듯하다. 사실 모두가 자고 있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간 일인지 모르겠지만, 씨근덕거리면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뚱땡이 얼굴을 보면 그 자식 짓이라는 게 확실하다. 목구멍에 양말을 쑤셔박고 위에 올라타서 목을 졸랐을 것이다. 파랗게 질린 크레이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현실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 놈이 진상을 피기 시작할 거라는 거다. 이제 벤덤도 크레이그도 없는데 누가 이 새끼를 막으랴? 감독관에게 방에 다른 죄수를 넣어달라고 몰래 요청해봤지만 인원 추가 예정이 없어서 힘들 거라고 한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두에게, 특히 미니에게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니, 니기미 아멘.

10일째

예상 적중이다. 사이먼은 프란츠의 개가 됐다. 프란츠가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고, 불러오라고 하면 불러온다. 돼지 뚱땡이가 이제 이 방 안의 독재자가 된 거다. 조지 오웰의 그 엿 같은 소설이 생각난다. 어릴 때 그걸 읽을때만 해도 이런 미래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지. 사이먼, 그 병신은 이제 기가 살아서 나한테도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그 놈 혼자라면 아주 묵사발을 내줄 수 있지만. 별 수 없이 나는 내 몫의 급식을 나눠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도대체가 사람이 죽었는데 그 경위 조사도 제대로 안ㅎ

복도에서 괴성이 들려온다. 호랑이 소리 비슷했는데 사실 많이 달랐다. 기지에 적색경보가 울린 듯 하다.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방 아니 기지 전체가 동요하고 있다.

경보가 멈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맹수가 탈출했었고, 꽤 많이 죽었다고만 추측할 뿐이다. 어떤 미친 놈이 실험에 맹수를 이용하는걸까? 유감스럽게도 우리 감방 담당 감독관이 교체되었다. 앞뒤 꽉 막힌 놈으로 보인다. 예전의 사람 좋던 그 인간은 어디로 갔는지. 어쩌면… 오늘은 그 놈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프란츠 병신 새끼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 같다. 무능한 감독관 새끼는 제지할 생각을 안하고. 씨발, 하필이면 이런 새끼가

11일째

뭔가 이상하다. 내가 늘 청소하던 복도가 피범벅이었다. 내 생각에 살덩어리도 몇 개 본 것 같았다. 우두커니 보고만 있으려니까 감독관이 어서 닦아내라고 재촉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혹시 벤덤도 그 맹수에게 죽었을까? 아니 평범한 맹수가 이 정도로 난장판을 칠 수는 있을까? 분명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생체 병기를 실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내가 그 실험에 참가하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을 냈는지를 생각하면 소름돋는 추측이지만 . 아무래도 진짜로 그럴 듯 하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쩌면

좆같다. 그냥 좆같다, 씨발. 프란츠 개새끼가 내 일기장을 보려고 했다. 이 안에 써놓은 그 새끼 욕이 몇 페이지가 되는데 . 걸렸으면 난 아마 뒈졌을 것이다. 영이 우리 둘 사이를 밀치면서 지나가지 않았으면. 프란츠도 그 놈은 손대지 않는다. 언제 눈깔이 뒤집혀서 어디서 가져온 걸로 칼부림을 할지 모를테니. 놈은 그 퉁퉁한 입을 실룩거리더니 미니한테 눈을 돌렸다. 이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감독관에게 제지를 요청했지만 참견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씨방새같으니.

크레이그 사건은 경보 때문에 완전히 잊혀진 것 같다. 프란츠도 내게 슬슬 이빨을 까기 시작하고, 그러면 사이먼도. . 막다른 길이군.

앞으로 일기는 모두가 잠들고 난 새벽에 쓸 생각이다. 아마 힘들겠지, 이 방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한 일이니까. 어쨌거나 이걸 프란츠 눈에 띄게 해서는 안된다.

14일째

사이먼이 미니를 괴롭히고 있다.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간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실험에 계속해서 참가 신청서를 낼 생각이다. 죽음 아니면 자유라면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어떤 괴물이 앞에 나타나도 그리 만만하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아주 말도 안되는 걸 시키기 위해서 사형수까지 모집해서 데려오진 않았을 테니까 살아남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쩌면 일을 잘 다뤄서 직원으로 삼아줄지도 모른다는 유치한 희망도 품어봤다.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영과 같이 다니기로 했다. 프란츠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 방 안의 유일한 인물이다. 어쩐지 요즘은 손도 안 떨면서, 여전히 음침하긴 하지만 비교적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해줬으니. 영은 내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해 별 신경도 안 쓰는 듯 했고, 의외로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이 새끼 눈이 풀려있다. 어디선가 약을 다시 구한 게 틀림없다. 뭐 상관없겠지, 약을 했거나 어쨌거나 녀석과 한 번 친해지면 이건 내게 굉장한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18일째

영과 친해지는 데 성공했다. 이건 프란츠에게 아주 잘 먹혀들었다. 놈은 영의 존재에 위축되는 듯 했고 영이 방 안에서 돌아다닐 때는 그 가벼운 입도 쉽사리 놀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일부러 그와 붙어다닌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역시 골빈 새끼다. 다만 사이먼은 그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위대하신 프란츠의 오른팔이라는 자부심에 나를 계속해서 찔러대고 있다. 충직한 개새끼 같으니.

영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는 내게 몰래 자신의 약 조달원을 알려주었다. 두 칸 건너 방에 버거킹이라는 녀석이 시설 바깥하고 손이 닿는다고 한다. 녀석을 만나봐야겠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동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대체 무슨 실험을 하는 거지? 사람이 버틸 짓이 못 된다는 건 확실하다. 내가 미쳤지, 민주주의 국가 만세.

20일째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놈은 이미 이 복도 안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어제 청소 시간에 개같은 병사 나리의 눈을 피해서 구역 간 경계선에서 버거킹의 따까리에게 쪽지를 전했다.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작은 장도리 정도야, 만일을 대비해서. 이제 프란츠, 그 인생의 패배자 새끼에게 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은 사태를 지켜봐야겠지.

사이먼이 고의적으로 내 얼굴을 쳤다. 사과하는 모양새를 봐서는 싸움을 원하는 모양이다. 좆같은 새끼같으니! 그 새끼는 장도리도 필요 없이 정말로 한주먹거리도 안되는데. 하지만 여기서 함부로 말썽을 피우면 정 맞는건 내가 된다. 현명하게 대처해야한다.

21일째

이제껏 수많은 실험 계획에 지원서를 내봤다. 그리고 모두 터무니없는 이유로 탈락했다. 나 뿐만이 아니고, 당최 이 방 안에 있는 사람을 쓸 생각이 있긴 한건가 싶을 정도로 아무도 뽑히지 못했다. 매일 하던 기도와는 달리 이번만큼은 정말로 간절히 빌어줬지만. 그의 다섯 번째 탈락 소식을 듣고 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프란츠는 아주 노골적이다.

22일째

결국 프란츠가 미니를 데리고 .

.

더 이상은 두고볼 수 없다.

24일째

범죄 사실까지 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니 나도 참 웃기는 놈이군. 어차피 이걸로 걸리면 그것도 운명이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 사이먼의 이불로 몸을 싸고 프란츠의 대갈통을 부숴버렸다. 이불은 프란츠 침대 밑에 쑤셔박고, 피를 살짝 찍어내서 사이먼의 옷깃과 머리카락에 조금 묻혀놨다. 변기물로 손을 씻은 뒤 장도리를 속에 넣고 물을 내렸다. 물론 장도리는 중간에 걸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25일째

사이먼이 잡혀갔다. 역시 감식은 커녕 제대로 된 수사도 없었다. 븅신 같은 감독관은 신속한 해결을 원했고 누가 봐도 븅신 같이 일을 처리한 것처럼 보이게 된 사이먼은 5분도 되지 않아 끌려나갔다. 울부짖는 게 아주 가관이었다. 영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눈치챈 모양이지만 그도 약을 하고 있으니 찌르지 않을 것이다. 미니는 자기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마 자는 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면 그 얼굴도 볼 만할 것이다.

오늘 청소 시간에 다시 버거킹과 이야기를 해볼 생각

좆 같은 씨발 새끼들 . 미니가 죽었다

26일째

그 날은 버거킹이 직접 나타났다. 퉁퉁한게 굼뜬 흑인이지만 영리한 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에 커다란 은십자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생각난다. 우리는 '지적으로' 대화했다. 문제는.

걸레질을 하면서 몰래 나눈 얘기에 따르면 우리는 이 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버거킹은 시간이 없다는 얘기만 계속했다. 이제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확실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

여긴 미쳤다. 이건 신약 실험이나 생물병기 실험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이건. 나도 잘 모르겠다. 버거킹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이곳에서 매일 같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을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믿지 않았지만, 버거킹은 그럴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던 것 같다. 발이 넓어도 문제지.

우리는 그가 챙겨온 다른 색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다른 구역으로 파견된 척 청소하는 시늉을 하다가 실험 구역으로 잠입했다. 그리고 강화유리 너머의 '그것'을 봤다. 뭐 . 믿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까지 나를 스쳐지나갔던 모든 연구원들, 감독관들, 보안 시설들, 사형수들은 안중에도 없던 그 태도, 괴성, 비명소리, 군인, 핏빛 복도, 비정상적인 기지 규모, 오리엔테이션 .이건 정신병원에 가깝다.

탈출해야한다.

27일째

계획은 확실하다. 청소 시간을 이용해 감독관을 때려눕히고 보안 카드를 훔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문으로 걸어나간다. 빈틈이 너무 많지만 어차피 임기응변에 따라 달려있다. 버거킹이 모든 장비를 준비 중이고, 나는 감독관의 의심을 죽이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단 말만 트게 된다면 눈치 채기 전에 재빨리 기절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대충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손이 떨린다. 제발, 버거킹이 준비를 끝마쳤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

28일째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내일이 개시다. 영은 내가 불안해하는 기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방이 넓어졌다는 사실에 좋아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처음 들어와 약에 취한 상태로 벽을 향해 앉아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방 안에서만 세 명이 죽었고 두 명이 죽음을 향해 끌려갔다. 계획을 위해서는 잠을 자둬야겠지만 이 안에서는 소름이 돋아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다시 소피아가 나타난다. 나는 계속해서 사과한다. 그녀가 날 바라본다. 그건 정말로 진심이 아니었는데 . 그녀는 그렇게 쉽게 가버리면 안되는 것이었다_/

씨발, 이곳이 정신병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자마자 멀쩡하던 내가 미쳐가고 있다. 웃기지 않는가? 어쩌면 원래 정신병원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정신 나간 곳에 있으면 괜찮던 사람도 그렇게 변하고야 마니까. 여기서 일하는 그 소름 끼치는 직원들까지! 이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상인이 약쟁이 영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정상인이라?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약에 취했지만 분수를 알고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이 핑크빛 코끼리와 방울진 맥주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곳이라고 해도. 내가 옆에서 미친듯이 미안하다고 중얼거려도 흥얼거리면서 벽을 쓰다듬는 자식,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한 명씩 사라져가는데도 오히려 공간이 넓어진다고 좋아하는 싸이코 자식이 이 지역에서 제일 현실적인 새끼라니!

내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신이 우리를 보살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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