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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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된 이야기일세.

한 남자가 있었다네. 돈은 부족했지만, 가난하지 않았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밭 몇 뙈기가 있었고, 그걸 경작할 농기구도 있었고, 농작물을 잘 기를 기술도 있었어. 농촌의 평범한 사람이었네. 길을 걸어가면 하루에도 수십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네. 그는 아침이면 밭에서 밭을 갈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잠을 잤지. 그렇게 수 년을 밭에서 살았네.

조금은 진부한 도입부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밭에서 항아리를 하나 발견하게 되네. 항아리에는 한자가 새겨진 기이한 부적과 함께, 알지 못할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온통 먹인지 흙탕물인지 모를 검은 무언가 범벅이기도 했지만 말일세. 그는 한자를 읽지 못해서 부적에 뭐라고 쓰여있는지는 몰랐지만, 항아리가 꽤나 무겁다는 건 알았네. 그는 기뻤네. 항아리에 싸서 묻었으니 꽤나 비싼 물건 아니겠는가. 보아하니, 저 항아리에 새겨진 그림 역시 범상치가 않은게 항아리도 값이 나가 보였지. 그래서 그는 항아리를 열려고 했지. 하지만 용을 써 봐도 항아리는 열리지 않았네.

그는 화가 나서 홧김에 항아리를 던져 버렸지. 항아리는 신기하게도 깨지지 않았지만, 너덜너덜한 채로 붙어있던 부적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항아리의 뚜껑이 열렸지. 그 안에 있던 건, 검은색의 움직이는 무언가였다네. 그건 그 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지. 생전 처음 보는 동물에 남자는 놀라서 들여다보았다네. 그렇게 가만히 눈길을 주고 있자니 그 동물이 점점 커지는게 아닌가? 처음에는 손가락 마디만했던게 이제는 손가락 하나만큼 커져 있었지. 농부는 신기해서 계속 보았네.

동물은 계속해서 커져갔지. 하나의 형태를 이루지 않고, 마치 흘러내리는 점액이나 자신의 의지가 있는 물 처럼 계속해서 모양을 바꿔가며, 항아리를 다 채워갈때쯤 남자는 겁이 났네. 이대로 가면 저게 넘쳐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기껏 횡재했는데 도망가게 두면 돈이 날아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남자는 항아리를 멀찍이 두고 눈길을 돌렸지. 한 몇 분 지나서 남자가 다시 항아리를 보았을 때 동물은 원래 크기로 돌아가 있었네.

남자는 비록 글은 읽을 줄 몰라도, 머리는 뛰어났던 모양일세. 그는 이내 생각했지. 이 진귀한 동물을 팔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지 않을까 하고 말일세. 그래서 그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네. 그는 동물의 존재를 마을에 알리고, 보러오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았지. 입소문은 퍼지고 퍼져 한양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네. 그때즈음 그는 매우 부자가 되어서,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네. 이미 자신이 뭘 하고 살았는지, 자신의 원래 직업은 뭐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지.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무당들이 속속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도복을 입은 꼬마가 그의 집에 찾아왔네. 그 소년은 이렇게 말했지.

"저 안에 들어있는 건 필시 어둑시니다. 내 그동안 개입하지 않으려 했으나, 사람을 홀려놓은 걸 보니 필경 안 될 놈이로구나. 내 저놈을 동해에 던져놓아 반드시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야 말겠다."

원래라면 노비들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 내쫓을 일이었지만, 소년의 몸에 흐르는 알 수 없는 기품에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네. 남자는 노발대발해서 직접 나왔지. 소년은 남자를 안쓰럽게 보더니, 한마디 더 했다네.

"정월 초에 계획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네. 그 날, 자네는 필경 죽을걸세. 그렇게 돈을 밝혀선 오래 살지 못하네."

남자는 분명 정월 초에 큰 축제를 계획하고 있었지. 동물을 큰 우리로 옮겨,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하고 싶었거든. 그는 그 말을 들으니 필시 이 아이가 신통력이 있는 아이구나, 하고 겁이 났다네. 그래서 싹싹 빌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지.

"주인의 의지가 이리 완강하니 어쩔 수 없군. 재액을 피하고 싶다면, 동물을 원래 찾아놓은 밭에 보름간 묻어두도록 하게. 그 땅은 신령한 곳이니 어둑시니도 기를 못 필 것이야. 보름 후에는 쇠약해진 상태일 테니, 그때 항아리째로 내게 가져오게."

하고, 소년은 구름으로 변해 동쪽으로 날아갔지. 사라진 곳에는 경주,라고 적혀있었네. 남자는 다만 신났지. 만약 저 신통력을 가진 소년이 힘으로 이 동물을 뺏으려고 했다면 꼼짝없이 내줘야 할 판이었는데, 보름만 묻어두면 아무 일도 없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큰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네. 그가 가진 수많은 땅문서들 중에 그는 그의 원래 땅을 찾을 수가 없었지. 그는 부랴부랴 주변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을 모아, 옛날에 신목이 있었다고 하는 땅을 찾았다네. 이 땅이다, 하고 얼른 항아리를 묻어 버렸지.

보름이 지나자, 그는 항아리를 들고 경주로 찾아가려고 했지. 그러나 그는 경주에 도착해도 그 소년을 만날 수 없었네. 사기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씩씩대며 돌아와 예정대로 일을 진행시켰지. 그리고 축제 당일, 그는 항아리에서 동물을 꺼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높이 들어올렸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되었지.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네. 다만, 며칠 후 직지사의 절에 동해신령이라는 소년이 찾아와 항아리 하나를 놓고 갔고, 주지스님이 그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받아 대웅전의 불상 앞에 놓고 몇날며칠 독경했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라네. 그 남자가 살던 마을은 평평한 평지가 되어 있었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하네. 집도, 사람도.

평범한 요괴 이야기라고 말 했지 않은가. 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네. 그 남자를 사라지게 한 요괴는, 항아리 안에 든 동물이 아닌 남자의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그 소년이 말했던 보름의 유예 기간은, 동물이 없던 옛날 시절로 한번 돌아가, 탐욕을 버려보라는 권유가 아니지 않았을까?

..오늘은 이만 늦었군. 들어가보도록 하게. 다음에 또 만나면 다른 이야기를 해 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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