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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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어나셨네요. 안녕하세요?

여기가 어디인지 궁금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실 필요도 없고요. 모든 존재는 상대적인 거니까요. 설사 절대적이라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죠? 우리는 어차피 그것조차도 상대적으로 인식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좋을 대로 생각하시면 돼요. 궁금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있어보이나요? 농담이에요. 나름대로 진지하게 말한 거예요.

아마 재단에서는 지금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겠죠. 그쪽 입장에서 보면 무리도 아니에요. 안 그래도 인원이 부족한 사령부에서 4등급 요원 한 명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아, 일어나지 마세요. 제 기준으로 때가 되면 열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저와 나누는 대화는 당신이 재단에서 맡은 업무에 어떤 방해도 되지 않을 거예요. 이건 당신의 기준에서 하는 말이에요. 어차피 시스템만 조금 손보면 완전히 무인으로 돌아가는 업무잖아요.

그리고 아무리 난리가 벌어졌다한들 아무 준비도 없이 더 큰 혼란을 겪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아마.

일어나지마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이 대화는 당신이 맡은 업무에 어떤 방해도 되지 않을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이 대화를 그만두는 게 거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죠.

네. 이제 알아들으셨나 보네요. 거기 앉아계시면 돼요. 지금 보니, 사무실에 있던 그 의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봐요? 어차피 진짜 그 의자는 아니고, 그냥 점토덩어리에 불과하지만요. 질료와 형상. 조금 클리셰 같긴 하지만 저는 마음에 들어요. 뭐 그건 실패작이지만.

성공작은 따로 있었죠. 그건 아주 똑똑한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우리 인류는 수많은 문화를 창조해내고, 즐기다가, 곧 잊어버려요. 문화는 사람들의 입과 손을 통해서 지어지고 완성되죠.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계속 완성되어 나가는 또 다른 문화들, 거기에 밀려서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지어지고 무너져버리는 이미지를 조각에 대입했죠.

네. 저는 "공원"에 관해서 이야기하러왔어요.

앉으세요.

아, "공원". 그건 우리가 한 것치고는 상당히 '조용한' 생각이었죠. 그 전에 생각했던 "공황"이나 "영화제"는 그다지 조용한 생각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무리 단단한 돌 위에 새겨진 조각이라도, 흘러가는 급류에는 지워지기 마련이죠. 예전에는 그 급류의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 조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형상을 기억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어요.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급류─인류의 의식의 흐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죠. 우리가 조각의 형상을 기억할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요.

설상가상으로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문화를 창조하죠. 급류 속에 항상 어떤 표상이 서있기를 바라면서 끊임없이 조각을 만들어낸다고요. 그리고 그걸 급류에 던져서, 혹시 급류의 흐름을 더 오래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조각을 부숴버리죠. 그건 황혼으로 달려가는 길이나 다름없어요. 언젠가 다시 암흑시대를 불러올지도 모르죠.

우리는 그 점을 지적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었죠.

그건 멋졌어요.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메세지를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전달하고 있었죠. 우리는 예술적인 만족감에 빠졌어요.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죠. 우리는 곧 부족함을 깨달았어요. 거기에는 뭔가 실현하려하는 의지가 없었죠. 메세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갈증". 어리석게도 우리는 거기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던 거예요.

우리는 빠르게 수정에 들어갔죠.

우리는 강바닥에 있는 부서지고 갈라진 조각들을 되살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잔해가 급류를 막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누군가 떠올렸죠. 옛 문화들은 살아나고, 급류는 천천히 느려지다 멈출 거예요. 너무나도 빨리 달려온 현대 인류의 의식의 흐름이 멈추고, 드디어 휴식기의 해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 전에 우선 문화의 선구자랍시고 급류에 끊임없이 조각을 던져대는 바보들을 막아야겠지만.

당연히 부작용은 좀 있을 거예요. 급류를 막으면 홍수가 나기마련이니까. 당신이 사라진 것보다 더 큰 혼란이 찾아올 거라고 했던 거 기억나죠? 옛 문화들이 되살아나고 새 문화들의 생산이 더뎌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거예요.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느린 흐름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아주 큰 혼란에 빠질 거라고요.

하지만 그건 잠시에 불과할 거예요. 마치 번개처럼 말이에요. 강하지만 아주 짧은 홍수.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인류는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에요. 어떤 것보다 향기로운 향수에 젖어가면서, 과거로부터 찾아올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게 될 거에요. 아름답지 않아요?

물론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에요. 이건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치수사업이 다 그렇죠 뭐.

이제 우리의 대화가 끝날 시간이네요. 제가 지금껏 한 말을 재단에 전할지 말지는 당신이 선택하세요. 저는 전하지 않기를 바래요. 그들이 재개장된 "공원"을 처음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거든요. 보나마나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겠지만.

그러면, 언젠가 과거로부터 되살아난 새벽이 찾아올 때.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출구는 당신 엉덩이 밑에 있어요. 재미있죠? 상대적인 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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