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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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박사는 커피를 마시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그로서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또한 커피가 지랄맞게 뜨겁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입천장을 데여가면서 커피메이커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을 때 휴게실에 또 다른 종이컵을 들고 있는 남자가 들어섰다.

"식혀가면서 마시라고, 박사. 안 그래도 열 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고생이잖아."

테이트 박사는 하반신에 담요를 덮은 휠체어 환자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곧이어 그는 자신을 약올린 뒤 한껏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흥, 자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러나?"

남자는 크게 웃어보였다.

"테이트 A. 키넛. 3등급 현장 요원. 정찰특무부대 출신. 추적과 탐사에 특출난 재능을 인정받아 채용됨.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나이퍼. 그러나 성질이 급하고 자주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흠임. 더 높은 보안 등급을 제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서류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됨을 이유로 거절함."

"빌어먹을, 그거 내 담당 교관이 써갈긴 평가 아냐. 난 정말 서류랑은 안맞다고. 그건 또 어디서 본 거야?"

"서류 작업이야 내 특기 아닌가? 난 모든 문서를 읽을 수 있잖아."

"잘 나셨소, 패닝 감독관님."

패닝 박사는 피식 웃었다. 그는 토라진 테이트 박사를 풀어주기 위해 옛 치부를 들춰냈다. 이곳에 채용되고 처음으로 훈련받으러 가던 때…….

"어이, 흰 가운 기억나?"

효과는 뛰어났다.

"흰 가운! 진짜 신참 티 팍팍 냈지, 그래!"

테이트 박사는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패닝 박사는 예상보다 강한 반응에 기분이 약간 상했다.

"그냥 기본으로 주는 옷이었을 뿐이었지, 나도 알아. 하지만 난 그 때 박사가 됐다는 생각에 정말 춤이라도 한 바탕 추고 싶던 기분이었다고."

패닝 박사는 이제 얼굴에 점점 웃음이 번져가는 남자에게 가까이 휠체어를 몰았다. 커피 마시기를 포기한 테이트 박사는 자신 앞에 나있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유리창은 그들이 앉아있는 기지로 들어서는 입구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의료 시설이라, 흠. 휴가 쓰기 좋은 곳이지.

"어쩌다 다친 거지?"

패닝 박사가 테이트 박사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테이트 박사는 잠시 깁스를 바라보더니, 맥없이 웃었다.

"조수 놈이 돌아버렸지. 그 자식이 우리 팀을 다 죽일 판이더라고. 권총으로 가슴에 두 발을 갈겼는데 글쎄 아주 말짱한거야. 역으로 내가 빵! 맞은거지, 뭐. 원래 멍청한 녀석이었으니 망정이지. 그 놈이 조준이라도 좀 잘해서 머리를 맞혀줬으면 난 벌써 천국에서 술이나 퍼마시면서 지내고 있었을텐데."

테이트 박사가 정말로 아쉬운듯이 얘기했기 때문에, 그의 침울한 표정을 보면서 패닝 박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쨌든간에, 그놈이 내 어깻죽지를 쏘고 나서 다른 녀석을 골라잡고 싱크대 물 속에 쳐박는게 아니겠냐 이거야. 그래서 네가 선물로 줬던 나이프를 꺼내서 푹, 찔렀지."

패닝 박사는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목 뒤에."

그제서야 살짝 반응이 왔다. 감독관은 아마도 그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거야. 물 먹은 그 불쌍한 친구는 아직도 혼수 상태로 누워있지. 회복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군."

"그건 박사도 마찬가지 아냐?"

테이트 박사는 묻는 눈치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군. 이제 더 이상 이 어깨로 대구경 라이플은 무리겠지. 스나이퍼 얘긴 인사 파일에서 빼야겠는걸, 4등급 양반. 내 목숨을 살린, 음, 누군가의 목 뒤를 날린 행운의 나이프 보여줘?"

그는 금으로 장식을 새긴 파란색 나이프를 자랑스럽게 꺼내들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나이프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던 패닝 박사는 종이컵을 내려놓고 담요 속에서 나이프를 두어개 더 꺼내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이프랑 붙어사는군."

"그래, 내 솜씨도 그쪽 저격 전적만큼이나 유명했잖아. 이젠 이 짓도 못하게 생겼지만."

패닝 박사는 무관심하게 응답했다. 테이트 박사는 나이프들이 동시에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면서, 실례라고는 생각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순간 테이트 박사는 나이프가 패닝 박사의 손에 꽂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니 박사의 손가락이 나이프의 날을 붙잡아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별 거 아니었어. 보안문이 너무 빨리 내려왔지. 멍청한 프로그래머 자식이 7초를 4초로 설정해놔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키보드 오른쪽 숫자 패드는 7하고 4가 붙어있더라고……."

패닝 박사가 낄낄거렸다. 테이트 박사는 그의 유난히 쾌활한 웃음소리가 굉장히 거북하게 느껴졌다. 패닝 박사는 나이프를 돌려준 뒤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대니가 아니었으면 아마 거기서 죽었을거야. 그 녀석이 쩔쩔매는 걸 보는 일도 흔하지 않은데말야."

"대니? 대니 G. 레이번?"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오자 테이트 박사는 재빨리 감탄했다. 패닝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자식 내 휘하에 있었잖아! 근데 여기서는 네 밑으로 가버렸군. 이것 참 희한한 일이야."

"글쎄, 여전히 누구 부하로 있는건 마찬가지지만 말이지."

두 박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그들의 과거 얘기로 흘러가면서, 몇 분간은 밝은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웃음은 곧 가셨고 그들은 이제 창 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지 입구에 버스가 한 대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테이트 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어쩔 거야?"

패닝 박사는 자신의 대화 상대와 마찬가지로 얼굴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대구경 라이플 쓰는 방법을 배워볼까 하는데."

"내가 나이프 던지는 법 연습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알고."

분명 재미있는 대화였을 테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테이트 박사는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패닝 박사의 텅 비어있을 노란 담요가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심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유감이야, 패닝."

패닝 박사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괜찮아, 형. 늘 있는 일이잖아."

그들은 다시 창 밖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버스에서 내린 흰 가운들이, 새로운 직장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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