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것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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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락.
…쿠웅.
딸그락.
…쿠웅.
딸그락.
…콰앙.

SCP-055는 (에스-시-피-공-오-오 라고 읽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랄 없이 둥근 막대를 네모난 구멍에 대고 밀어 넣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큰 진동이 있었기에 쉽지 않았지만, 조금 전의 평소보다 큰 소리와 함께 더 이상의 진동이 없어진 것도 있고 또 이젠 진동이 일상이 되었었기에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어차피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 바깥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네모난 구멍에 둥근 말뚝을 끼우지 못하는 모습을 봐야 안심할 수 있는 듯했다.

이게 뭐냐고. 그렇게 생각하며 055는 말뚝을 만지작거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한 구멍에 전혀 모양이 다른 말뚝이 들어갈 확률은, 강제로 하지 않는 이상 거의 0에 수렴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을 지켜보며 안심하고 있는 바깥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그렇게나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말뚝을 구멍에 넣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어도 저들은 계속해서 다시 보러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고? 저들은 이 모습을 보여주고 또 안심시켜도 얼마 있지 않아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리곤 인트라넷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처박힌 문서 파일에서 (어쩌면 그 소문의 incoming이라는 폴더 안의 055의_야릇한_비밀.docx라는 파일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055는 생각했다.) '055라는 녀석이 네모난 구멍에다가 둥근 막대를 넣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관찰해야됨 ㅇㅋ?'라는 글귀를 다시 발견하고선 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곳에는 '둥근 말뚝을 네모난 구멍에다가 넣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사건 해결이네.'라고 중얼거려, 이 시설의 대빵 (O5라는 이름이라는 말을 얼핏 엿들었다.) 들이 '젠장, 그건 생각 못 했네.'라고 말하며 자신을 풀어줄 그런 정상적인 사람은 없는 것일까?

어차피 아무도 날 기억 못 할 텐데. 봐,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이곳에 언제부터 갇혀있었는지, 누가 가뒀는지 따위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055는 우울하게 말뚝을 자신의 코에다가 올려놓고 균형을 잡아보았다. 아무도 그에 대한 것은 기억할 수 없었다. 오직 기억이 가능한 것은 그가 '아닌 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연구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고, 7년 반 동안 연구팀이 낸 성과는 055가 '둥글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팀은 잊혔다. 이후 한 박사가 3일 동안 고민해서 같은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여담이지만, 그때도 잊힌 연구팀을 기억해낸 사람은 없었다. 본인들도 잊어버렸는데 누가 기억해주겠나?

얼마나 오랫동안 말뚝과 구멍을 짓주무르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상당히 오랜 기간인 듯했다. 물론 지금 055가 있는 방 안에는 시계 따윈 없었다. 바깥에서 자길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그가 시계의 숫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도, '시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사실도 모르니 말이다.

055는 이전에 들어왔던 수많은 소위 '재단'의 연구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055가 완벽한 영어를 - 어째서 영어인지는 055 자신도 모르지만, 연구원들의 말로는 완벽한 북유럽 악센트라고 했다 - 구사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들의 말을 이해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고,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 재단이 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에 세 번 놀랐다.

그들은 055에게 꼭 이 사실을 알려 꺼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왜 이곳에 갇혀있는지도 모르니 굳이 계속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055는 계속 기다렸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잊어버렸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055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생각났다.

꽤 오랫동안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연구원들이 055를 '연구'하기 위해 이 방에 들어오고 나갔었다. 헌데 그들의 흰색 가운을 보지 못한지도 꽤 되었다고 055는 생각했다.

뭐,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055는 자신의 '둥글지 않은' 몸을 방 이리저리로 굴렸다. 원래 심심하면 뭘 안 하겠는가.

쿵.

"아코." 입 밖으로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세게 벽에 부딪혔다. 쓰라린 등을 슥슥 만지고 있을 때, 어딘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투둑

투둑? 분명 이런 소리는 격렬한 운동을 하던 도중 바지의 실이 더는 구조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받아 끊어지거나, 심적으로 너무나도 큰 자극을 받아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가느다란 무언가가 한순간에 끊어져 버리거나, 아무 생각 없이 바닥에서 뒹굴다가 갑자기 벽을 들이받았는데 어째서인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조금 코믹하면서도 괜스레 개인에 따라서는 길게도 느껴질 수 있게 늘여 쓴 뭔지 모를 서술이 나오면서 벽이 무너져 구멍이 뚫릴 때 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우연이게도, 세 번째 상황이 벌어졌다.

055는 눈을 말똥말똥 뜬 상태로 벽에 난 구멍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벽은 살짝 박은 듯했는데 꽤 큰 구멍이 났다.

아니, 이제 보니 그것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흰색이었던 벽은, 어느새 먼지가 쌓여 회색으로 변해있었고 곳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풀마저 자라고 있었다. 깨끗하고 맑으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건만, 방이 이렇게 더러워지다니 자신감이 어디 생기겠나.

055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곤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바깥의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방을 청소하고, 벽을 수리하고, 또 잊어버리겠지. 아니, 어쩌면 여기가 'SCP-055'의 격리실인지도 모른 채 벽에 구멍이 나서 수리하러 들어왔다가 격리실인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나갔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깜짝 놀라 나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을 수리하러 오는 이도 없었고, 방을 청소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으며, 가끔 이 방에 들어오던 흰 가운의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꽤 오래전부터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결국 055는 심심함 반, 호기심 반인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벽에 난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다행히도 '0번 죄수가 어쩌고저쩌고'와 같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내부 조명보다도 밝은 빛이 바깥으로부터 들어왔다. 055는 한쪽 팔을 들어 빛을 가리고 바깥으로 발을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드디어, 자유였다.

방 '바깥'은 황량했다. 어렴풋이 드는 느낌으론 바깥세상은 이것보다 꿈과 희망이 넘쳐나는 따뜻한 곳이었지만, 055는 아마도 지금이 겨울이라 그런 것일 거라며 일축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숲도 뭐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던 방이 있는 건물 하나만이 그나마 형태를 유지한 채로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반파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건 그저 세상의 끝이거나 좀 더 좋게 봐주자면 인류 멸망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준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보아하니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이 재단도 망한 것 같았다.

"젠장."

055는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했다. 몇십 년을, 어쩌면 몇백 년을 저 방에 갇혀서 바깥을 그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그려온 바깥세상은 한 번도 이런 광경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럴 계획도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055는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세상은 멸망했지만, 아직 인류에겐 055라는 희망이 남아있다. 055가 인류를 부흥 시킬 거라 믿으며,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라는 식의 결말을 맞은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상황 좋게 바로 옆의 해안가 수평선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에는 왠지 모를 푸른색의 횃불을 든 손이 올라와 있었다.

"크아아아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는 055가 짜증을 견디다 못해 울부짓었다.
055는 세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시끄러워"
"뭐가?"
"어, 어? 내가 뭐라고 했나?"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은 주변엔 없었고, 멀리서라도 들은 사람들은 몇 초 후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055는 죽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 깊숙이 총알이 박혔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수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다…!!!

Dr. 히루루크, 원피스(오다 에이치로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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