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daykey 09/08/13 (수) 21:47:54 #26497756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렸을 때 하던 놀이, 혹은 이곳 주민이라면 괴기를 불러내는 주문이라는 쪽으로 귀에 익겠지요.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머리를 감는 동작, 혹은 샤워 때 거품을 내는 동작이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의 술래(鬼,오니)가 하는 모양을 닮아서, 그런 동작을 하는 상태로 그 말을 입밖에 내거나 머릿속에 떠올릴 경우, 이 세상 것이 아닌 존재들이 모이게 된다는 도시전설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6월에 이 말을 알았습니다. 그 즈음에는 더 스포근(스포츠 근성)이라는 동아리에 소속되어서, 학교를 나서는 건 해가 뉘엿 질 때였습니다. 귀가는 동아리 부원들과 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함께 귀가하던 친구가 「야, 이런 얘기 들어 봤어?」 라고 운을 떼고, 그 도시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둑한 상황도 작용해서인지,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는 제 마음 속에 자리잡았고, 그날 저녁 목욕이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 날 저녁 뿐만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1개월 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평소에 괴담 같은 것은 믿지 않았기 떄문에, 어째서 유독 이것만 머리에 박혀서 따라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해야 하는 습관에 두려운 존재가 숨어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샤워하기 직전의 일입니다. 저는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 계속 대책을 강구하다가, 그날 저녁에야 대책을 마련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반대의 의미」의 주문을 외우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워를 할 때 「오뚝이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할 순간 「넘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을 덮어쓰는 것입니다. 그것과 동시에 넘어지지 않은 오뚝이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지금 생각하면 안이한 고찰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 저는 「어째서 이걸 하지 않았지」라며, 마치 세기의 대발명을 한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뚝이는 원래 넘어지지 않는 것이니까, 넘어지지 말라고 열심히 염원하고, 거기에 넘어지지 않는 영상까지 이미지 트레이닝하면 되지 않았겠어요.
해서 뭐 그런 짓을 그날 저녁부터 실행하여, 겨우 샤워시간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 초엽의 어느 날, 제가 소속된 동아리는 대회를 위해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합숙이래봐야 하루종일 학교에서 연습하고, 학교에서 자고, 학교에서 밥먹고, 또 연습하는, 소규모의 것이었지만.
연습이 끝나고 나면 그냥 학생들의 집단. 여자가 셋이 모이면〜 따위 말도 있듯이, 참 시끌벅적한 밤이었습니다. 특히 추억에 남은 것은, 취침 전에 사이좋은 아이들끼리 모여서, 잘 때까지 수다를 떤 것이었습니다. 내게 그 말을 퍼뜨린 친구도 그 모임에 끼어 있었고, 그 아이의 주도로 괴담대회 같은 걸 한 기억이 있습니다. 나온 괴담 중에는 문제의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실에서의 낯선 취침이었기 떄문이었지, 일본의 여름답게 후끈후끈한 열기를 참을 수 없어서, 새벽 4시에 눈을 떴습니다. 잠을 설치고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땀으로 담요가 흥건하고, 숨을 하아후우 쉬면서 필사적으로 산소를 흡입하며, 다리 전체가 덜덜 떨리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시각에는 고문 선생님도 준비를 시작하고 계셔서, 샤워실 열쇠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점점 따스해져 가는 수온에 악몽에 떨던 몸도 따뜻해지자, 마지막으로 샴푸를 손에 들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이 때는 이 주문을 외우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염원씩이나 하면서 공들여 외우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오뚝이는 여전히 의식 속에 눌러앉아 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오뚝이는 빨갛게 칠한 일반적인 타입으로, 금으로 문양을 넣은 축하용 디자인. 한쪽 눈에는 약간 뭉개진 먹물을 찍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스윽 하고 멀리에서 뻗어온 손이 오뚝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이 때 처음 손의 존재를 알아챘습니다. 손은 생살을 어루만지는 듯한 힘의 가감으로 오뚝이를 밀기 시작합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조금 늦었지만 제가 염원하기 시작하면서 오뚝이는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손의 힘은 풀리기는 커녕 더욱 강해집니다. 조금씩 밀어뜨리고 있습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저는 필사적으로 염원했습니다. 뭣하러 샤워 따위 하러 왔을까. 했어도 샴푸만 참았으면…….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오뚝이가 넘어지지 않는다!」


이 글타래의 여러분께는 면목없지만, 그 다음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건실에서 눈을 뜬 것이 그 다음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저를 수상히 여겨 샤워실로 달려온 선생님들에게 간호를 받았는데, 빈혈이거나 뭔가로 실신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역시 그 시절이라고 해야 할지, 그 뒤 가볍게 수분을 보급하고 남은 아침을 먹인 뒤, 곧바로 연습하러 보냈습니다. 저로서도 그것을 생각해내기보다 연습에 몰두하는 편이 좋았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여름 이후, 오뚝이가 제 의식 속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긴 글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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