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얼마나 걸렸는가?
얼마나 왔는가?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딸칵.
1.
똑딱, 똑딱.
언제나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시곗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혼란스러운 머리로 주위를 둘러보니, 항상 보는 내 사무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괘종시계에, 원목 탁자와 술이 든 진열장.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들이 쌓아 올려져 있고, 책상 뒤의 벽에 큼지막이 나 있는 창문으로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이질감에,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현기증이 찾아왔다. 곧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현기증은 사라졌다.
“실례하겠습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얼굴을 확인하고 3초 정도 있어서야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날마다 보는 비서의 이름을 순간적으로라고는 해도 잊어버리다니. 나를 바라보는 제인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서렸다.
“괜찮으신가요? 얼굴이 좀 창백하신 거 같은데….”
“난, 어,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아마도 원인 모를 현기증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손을 내저으며 안심시켰다. 제인은 손에 우편물을 들고 들어와 내 책상 위에 봉투를 늘어놓았다.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대부분은 별것 아닌 것들이었으나, 그중 눈에 띄는 평범한 봉투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특색이 없는 봉투이나, 이상하리만치 눈에 띄는 봉투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인을 보았다.
“고마워요, 제인. 일은 좀 어때요?”
“음, 아주 좋아요. 오늘이 첫 출근인데,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는것 같아요.”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묘한 느낌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제인은 이번으로 5년째 근무 중이다. 철저한 정보 보안을 위해 날마다 기억 소거가 시행된다. 물론, 본인도 이에 동의한 바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제인을 보내고는 평범하면서도 눈에 띄는 봉투를 손에 들었다.
1.
딸칵.
2.
책상 밑에 달린 작은 단추를 누르자, 방 전체에서 기계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며 작은 진동이 일었다. 방에 설치된 장치가 작동하며, 자동으로 문이 잠기고 도청 방지 장치가 작동하였다. 곧, 홀로그램 장치가 작동하며 이 자리에 없는 열 두 명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좋은 하루입니다, 여러분.”
『13초 늦으셨습니다, 7.』
보통은 13초 정도는 늦은 거로 안 친다,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삼키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4는 그런 인간이었다.
“미안해요.”
『모두 편지를 확인했으니 화상 회의에 참석하신 것이겠지요.』
1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11명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11이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 우로보로스의 완성이라, 예상하던 50년에서 20년은 앞당겨졌군요.』
『아우렐리우스 박사의 공이 크지요. 현실장 이론을 완성한 덕에 일이 훨씬 간단해졌어요.』
프로젝트 우로보로스. 내가 이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는 이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목표하던 바를 완수하려면 반세기는 걸릴 것이라고 예상되던 것이, 이번에 새롭게 정립된 이론 덕분에 다수의 문제점이 해결되어 급격히 진행되었고 결국에는 완성되었다. 그걸 생각하고 있자니 문뜩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의문은 내 입 밖으로 나왔다.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확인했나요?”
2.
딸칵.
3.
후우, 하고 숨을 내뱉자, 폐까지 들어차 있던 연기가 입과 코를 통해 빠져나와 별 가득한 밤하늘 속으로 흩어졌다. 붉게 달아올랐던 담배 끝은 이내 회색빛 재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필터만 남은 담배에 불이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하고는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담뱃갑에 손을 뻗어 뚜껑을 열어보았지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런, 아까 처음 필 때만 해도 열 개비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다 피워버렸나 보다. 안에 들어가면 서랍에 또 들어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많이 피지 않는데, 오늘따라 왜 자꾸 담배에 손이 가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이를 먹었는지, 자꾸 깜빡깜빡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운 반짝이 가루를 한껏 흩뿌린 양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평화롭다. 세상이 전혀 평화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고 말았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하게 될까? 그 누구도 알 방법은 없었다. ‘재단’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까? 역시나 알 수 있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와야 하지 않을까?
“….”
한 조직의 수장 중 한 명이, 조직이 사라지는 미래를 꿈꾼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에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3.
딸칵.
4.
보고서를 손에 들었다. 방금 제81-람다 현실 관측소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수치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나, R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였다. 관측소가 설립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20여 년이 지났으니 어쩌면 장비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할까. 컴퓨터를 켜 SCiPNET에 접속했다.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를 그냥 단순한 측정 오류라고 무시하거나, 관측소에 연락하여 다시 측정해보라고 명령을 내릴 수가 있다. 사실 그리 고민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뒤다.
그대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해, SCiPNET 메일 클라이언트로 들어갔다. 수신자는 제81-람다 현실 관측소였다. 오차 범위 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기준치를 넘어섰다. 일단은 다시 측정한 뒤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장비를 점검하여 재측정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이리라. 그런 내용의 이메일을 작성하여 송신하였다.
4.
딸칵.
5.
착잡한 기분으로 다시 책상에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변함이 없는 이상 수치였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또한, 내가 취해야 하는 행동도 분명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비상 통신기의 전원을 넣었다. 익숙한 1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비상 감독관 회의를 소집해주세요.”
5.
딸칵.
6.
『당혹스럽군요.』
4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프로젝트 우로보로스뿐인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애초에 우로보로스는 그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초석이었으니까요.』
6.
딸칵.
7.
『별수가 없군요.』
1이 말했다.
『할 수밖에요.』
7.
딸칵.
8.
『도망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닙니까?』
한동안 잠자코 있던 13이 입을 열었다.
8.
딸칵.
9.
동의 버튼이 화면에 나타났다.
9.
딸칵.
10.
도대체 얼마나 걸렸는가?
『얼마나 걸린 것일까요?』
8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얼마나 왔는가?
『상황은 얼마나 바뀐 것일까요?』
8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죠.”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동의 버튼을 눌렀다.
딸칵.
10.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1.
똑딱, 똑딱.
언제나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시곗소리에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