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과 감독관

사슴대학 오디세이

The Buck Stops Here

스리포틀랜즈 2019년 1월 11일 (금) 당신의 맏配偶子

사슴대와 감독관들

민폐의 역사 50년

by 헤비메탈 죽음의 신 잭 매더(Jack Mader, ⁂spaghetti_alfredo_)

사슴의 제도는 사슴대에서 두 번 일어난 일.
사슴의 전통은 사슴대에서 한 번 일어난 일.
사슴의 일화는 사슴대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

자, 이제 사슴과 재단1 이야기를 꺼낼 차례군요. 최근의 여러 가지 사건 이후로 재단의 감독관 평의회는 격렬하게 전복되어 새로운 인물들로 감독관 평의회가 재구성되었습니다만, 이들도 나중에는 직전 감독관들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파시스트 폭군이 되기는 매한가지겠죠. 직전 평의회의 사망 선고를 기념하는 의미로 저는 사슴대가 감독관들과, 그리고 더 나아가 재단 나머지 놈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거쳤는지 그 역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말썽의 시작: 60년대

처음 몇 년은 조용했습니다. 1948년부터 1966년까지 사슴대는 재단에게서 어떠한 형태로도 지나친 관심을 받지 않는 채로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선지 우리가 눈에 띄고 나서2 재단은 사악한 음모를 스멀스멀 꾸몄죠. 재단은 우리 대학의 근간을 휘저어 놓고는 우리를 개종시켜서 파시스트 과학자와 인권 모독자의 신세대로 탈바꿈시키려고 계획했습니다.3

그런 목적으로 O5-4 (재단 홍보부장) 가, 사슴대의 발표 초청을 받았을 때 캠퍼스로 들어왔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마담 알 피네4, 앨리슨 챠오5, 팀 윌슨6 같은 세계적 오컬트 인사들도 초청받은 자리였어요. 꽤나 보통때 같은 행사일 수도 있었습니다. O5-4가 재단스러운 연설을 늘어놓고, 질문에 대답하고, 끝나고 팸플릿 나눠주고. O5-4가 개인적으로 온갖 국제전쟁범죄에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요.

그런데 사슴대생들이 O5-4와 재단의 행적을 한 번 파고들어 보니, 머지않아서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이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곧바로 학생들은 그런 사람이 연설에서… 뭐 어떤 소리7를 한다는 이야기에 항의하게 됐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크노르관 연좌시위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큰 저항이 잇따랐죠.

화난 사람들이 들끓는 모습을 본 행정실은 재빨리 O5-4 캠퍼스 초청을 취소하고, 학생 여론 전반이 그자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재단은 이를 받아들였고, O5-4는 사슴대가 재단을 거부했다는 기회를 득달같이 잡아낸 ICSUT로 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법을 무너뜨려라: 70년대

O5 평의회의 사슴대 사이의 긴장의 절정은 1978년, 사슴대생들이 사법위원회에다 감독관 전원을 대상으로 궐석재판을 걸었을 때였습니다. 사슴대생들이 감독관 평의회 전원을 대상으로 제기했던 혐의는, 현실성을 상대로 행사하는 지속적 폭력, 집단 학살 및 멸종의 반복, 인류의 기초권 및 기본권 오용, 불법 감금, 횡포, 기억소거제 사용에 관한 국제법 위반, 몇 세대에 걸친 오컬트 사회 탄압 등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소송은 성공했습니다. 사법위가 감독관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무슨 이유로 인정했는지는 불명이지만8, 어쨌거나 소송은 그대로 진행되고 감독관의 유죄 판정이 났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물론 반복되는 제재 대상이었고, UN 세계 오컬트 연합의 규탄 대상이었으며, 대개는 국제전쟁범죄로 간주할 만한 짓이었습니다.

평의회에 내려진 처분은 자신들의 행동에 관련하여 공식 사과하기, 캠퍼스 내 출입금지, 음식 나눔 탁자 사용금지9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슴대학 사법위가 내리치는 정의의 따끔함 또한 예외는 없었고, 감독관들은 이 판결 때문에 악영향을 입었다거나 언짢은 기색 하나 보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맥빠지는 일이었습니다. 그자들에게 유죄를 내리고 맞서 저항하고 그랬던 그 모든 시간들을 생각하면요.

그런데 사슴대에게, 재단 홍보부에서 편지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쓰기는 낮은 직원이 쓴 듯하지만 서명은 O5-4가 한, 그 편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슴대학 여러분,

재단은 "사슴대학 사법위원회"가 나타내는 법적/도덕적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해당 조직이 내렸다는 판결이 어떤 자격으로도 구속력이 있다거나 유효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재단은 이 재판의 정황 (피고인의 법정대리인조차 없는 궐석재판) 으로 말미암아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공정하거나 편향 없다고 보지 못하는 관계로, 제기된 모든 결론이 무효임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재단은 제기된 숙의 및 결론을 모두 즉시 거부하며, 또 전술한 소위 "권한"의 이름으로 지시된 보상 사항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원고 측에서 저희를 대상으로 사법처리를 단행하도록 만들고자 하신다면, 재단 법무실을 방문해 첨부된 양식 10장을 각 3부씩 작성하여 적절한 부서로 제출하십시오. 우송료는 저희가 지불 및 변상하지 않습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홍보부
O5-4

솔직히 재단에서 우리한테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훨씬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청구한 사항들을 감독관 평의회에서 일절 거부했습니다만, 우리는 알아서 가능한 처벌 하나는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캠퍼스 출입금지였죠. 감독관 13명 전원의 사진을 바로 수소문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얻을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와서, 대신 스틱맨 그림을 그려서 O5-1 ~ 13 번호를 써놓고 공동체 보안실 위에다 내걸게 됐습니다.

우리 돈을 훔쳐가네: 80년대

여기 이야기는 사슴대와 감독관 사이하고는 스치는 관계 정도입니다만, 관련성이 약간은 있습니다. 1983학년도가 끝나갈 때쯤, 재단에서는 스리포틀랜드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시에서 시내의 마법대학, 즉 ICSUT과 사슴대와 스리포틀랜즈 공동체대학에, 얼마 안되는 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요구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저희는 격분했겠지만, 그때는 시점이 5월이었고 다들 다가오는 기말 때문에 굉장히 지쳤는지라 학생들은 의견을 별달리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학기 끝내고 집에 가는데, 그런 데 대응한다고 귀찮아지는 건 그랬으니까요. 다음 학년도 시작할 때 대응해도 되는 거고요. 어차피 시간이 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힘든 짓을 ICSUT는 했습니다. 바로 세계 오컬트 연합을 호출해서 자기들도 108인 평의회 가입단체라고 상기시킨 다음에, 커다란 경비견놈들을 얻어 가지고 재단에게 편지로 아주 센 어조를 가지고 개같은 짓 하지 말라고 전달했죠. 연합은 83년 여름 몇 달을 재단과 복닥복닥 다투는 데 썼습니다. 시장의 지지와 시의 자율성을 뒷배로 해서요.

가을에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때쯤, 이 상황은 그냥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시 자금은 고스란히 남았고, 결국 재단은 물러섰죠.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정의의 따끔함: 90년대

1998년, 큼지막한 스캔들이 또 하나 일어났습니다. 소규모 학생들이 변칙예술 작품 하나를 O5들을 넣어서 만들려고 계획했습니다. 정확도를 최대한 높일 작정으로 이들은 평의회를 조사하다가, 수정점을 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재단은 이 과정 초기에 이 학생들이 평의회에 관심을 가진 점을 파악하고 (다만 그 목적은 모르는 채로) 감독관들과 관련된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줄을 깨닫고는, 즉각 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의 민감성 때문에 아무 재단 직원이나 캠퍼스로 침투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O5-11가 몸소 사슴대생으로 가장해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의 모임으로 섞여들어가 어떤 방법으로라도 막아내기로 했죠. 이 감독관은 자기 오컬트 능력을 발휘해 자신을 완벽하게 가장하고 명예훼손으로 추정되는 사태를 손쉽게 방지해낼 공산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1978년 사법위 사건의 감독관 출입금지 판결은 아직도 적용 중이었고, O5-11은 학내에 발을 들이면 안 되는 자였죠. 그래서 이자가 어느날 아침 사슴대 교내를 걸어다니려고 할 때, 마법 알람이 바로 일제히 울리면서 감독관이 몰래 들어왔음을 똑똑히 알렸습니다.

공동체 보안실이 곧 도착해 곧바로 감독관을 구금하고, 잡아놓은 이 불명의 이상한 인물이 누구인지 조사를 거쳤습니다. 출입금지자 사진에 나오는 인물들과 일치하지 않았으니까요. 몇 시간이 자나자 O5-11은 결국 자신의 정체를 밝혔고, 공동체 보안실은 피구금자가 예상보다 훨씬 중요한 거물인 줄을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O5-11은 이후 스벤스도티르 총장의 명령으로 머지않아 풀려나 돌아갔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원통한 일이었죠. 계획을 꾸미던 학생들은 나중에 작품을 완성했는데, 몇 년 가지 않아 예술동에서 유달리 격렬한 토끼싸움Rabbit Right이 일어나던 도중 파괴되었습니다. 다만 O5-11은 풀려날 당시 학생이 몇 년 전부터 요구하던 그 사과문을 쓰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에 나온 사과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본인 O5-11은 변칙세계 및 변칙시민들에게 폭력 및 압제를 다양한 형태로, 민간의 삶을 보존 및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거듭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자 합니다. 또한 해당 행위 당사자의 대표권을 표명하는 감독관 평의회를 대표하여 사과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제 생각에 진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품: 00년대

놀랍게도 2000년 ~ 2010년 사이 기간에 사슴대학과 감독관들 사이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재단은 우리를 내버려뒀고, 우리도 크나큰 관심이 끌릴 만치 과격한 짓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얻을 만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봤는데도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3개 신문을 모조리 찾아봐도 재단에서 지나가는 한 마디 남긴 것조차 없습니다.

해묵은 원한: 10년대

O5 평의회와 사슴대 사이의 마지막 주요 사건은 2011년 일이었습니다. O5-1이10 오컬트 관련 논문 〈변칙성의 본질에 관하여〉(On the nature of anomalous things)를 발표했음이 알려졌습니다. 〈변칙성의 본질에 관하여〉는 Hum 111 (오컬트사) 상에서 걸출한 텍스트 대접을 받고, 또한 대개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개쓰레기 같은 텍스트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일한 필수 과목에서 인간과 비인간 모두의 권리를 끔찍하게 악용한 사람을 다루고 있었으니, 바로 난리가 나 버렸습니다. 갖가지 학생단체 (요정학생회Fae Student Union 등) 에서 강의계획서에서 해당 논문을 빼라고 요구했습니다. 작성자의 이념이 대량학살에 적극적이라는 (그리고 그 사실을 다들 알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요. 일부 거지같은 반항아들11이 작가의 죽음death of the author 논리를 들고 나와서 논문 자체가 그런 걸 부르짖지는 않는다며 옹호하기는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빚어지기 바로 앞 단계라는 사실은 싹 무시하고요.

학생들의 항의와 룬드 총장 사무실 점거농성이 줄지은 끝에, 결국 강의계획서는 재검토 과정으로 들어갔으며 이내 〈변칙성의 본질에 관하여〉는 강의계획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대신 〈동료학자철학〉(The Philosophy of a Fellow Scholar)이란 글이 들어왔습니다. 요정 대학살 당시의 이름 없는 피해자가 쓴 글인데, 오컬트 및 재단, 그리고 요정 민족의 현 상태를 깊이 고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더구나 저자는 해당 텍스트 관련 특강차 사슴대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Hum 111 시간에 특강을 열었죠.

끝은 이렇게 온다: 지금

하지만 가장 중요한 뉴스가 하나 남았습니다. 학생회에서 오늘밤 10pm ~ 2am 시간에 감독관 기념 파티를 개최합니다! O5 평의회 전원의 사망을 축하하며 한탕 진하게 놀아볼 시간입니다12! 첫째 감독관이 죽었을 때부터 기획하던 행사가 바로 오늘 진짜로 실현됩니다! 음악은 상관없고, 테마도 딱히 없습니다.

그곳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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